나는 이 영화를 '럭셔뤼' 느와르 라고 부르고 싶다. 이병헌의 깔끔한슈트와 몸짓, 럭셔리한 배경. 땟갈나는 연출. 망설임없이 내려꽂히던 폭력의 비열한 아름다움. 무릎이 떨렸다. 무서웠는 지 잔인했는 지.
이 영화의 두 줄기는 조폭들의 세력다툼과 그 세계에 날아든 한 여인에 대한 감정의 문제, 그것이다.
이병헌은 '잘못했다'라고 빌지 않으며 (사실 그는 잘못한 것이 없다) 적대적 세력의 폭력에 맞선다. 사실 그것은 그 세계의 '생존'이기에 이해한다.
그러나 두목의 여인네로부터 느낀 '어떤 감정'으로 인해 죽음으로 내몰리는 것. 그것은 너무하다 싶었다. 시키는 대로 하지 않은 것, 두목으로선 자신의 질서를 위협하는 것으로 간주할 수 있겠지만....그 속에는 '질투'를 견디지 못하는 두목의 '쪼잔함' 이 깔려있다. 사랑에 장사없으니. 자신의 여인에게 느끼는 부하의 미묘한 감정을 간파한 두목, 마치 커피를 마신 후 종이컵을 구겨 쓰레기통에 던져버리듯이 그를 버린다.
냉혹한 세계의 단면에 충성하며 한길만을 걸어왔던 그에게 봄날의 꽃잎처럼 팔랑거렸던 감정하나. 여린 바람 한줄기. 단지 그것이 문제였던가. 흔들리는 것은....나뭇잎도 바람도 아니다. 바로 그자신이다. 자신이 흔들리고 있었으므로 흔들리는 나뭇잎이 시선에 들어온 것이다.
그렇다면...그것이 열렬한 사랑이었는가? 그렇다고 하기엔 너무나 짧았으며 아쉬웠던 기억. 힐을 신었던 그녀의 조그만 발가락. 뽀얀 귓볼, 그 뒤로 넘긴 머리카락..... 그 것에 시선을 빼앗기는 그의 눈길은 비록 간절했지만.
암흑의 세계에 날아든 청초한 그녀?..... 아쉽게도 그렇진 않다. 그녀의 모습은 청초하지만 적어도 본질적으로 순수하지는 않다. 자신의 아름다움으로 어떻게 돈을 얻을 수 있는 지 아는 여자이다.
그러므로 외면할 수 없었던 것은 순수했던 그의 감정쪽이다. 거칠고 비정한 세계에서 냉혈적인 이미지로 자신을 가다듬어온 그의 외면과 완벽하게 대조되는 건 오로지 그의 순수한 감정, 그래서 슬프다.
그녀와의 감정에 대한 개연성이 부족해서 좀 아쉬웠는데 뒤에서야 '눈길을 주고받으며 미소짓던' 장면등이 설명(나는 그렇게 믿었다)되어 그랬었구나....라고 이해했다. 그의 어두운 인생에 있어 짧았던 그 순간은 한줄기 섬광처럼 달콤하고 아름다웠던 것이었을 거라고 믿으며.
무엇보다 내가 이 영화에서 매료된 것은 '끝까지 가보는 것' 바로 그것이었다. 우리가 어떤 것을 걸고 끝까지 가보는 것은 얼마나 드문 일이던가. 비정하게 내쳐졌고 죽음으로 내몰려 버렸던 그의 마지막 선택, 가지지도 못했던 짧았던 감정의 교감, 그것으로 인해 파국으로 치닫았던 결말. 그 댓가가 너무나 커서 안타깝고 슬펐다. 생애를 걸만한 사랑도 아니었는데.
* 김영철, 황정민, 신민아, 그 외 패거리들 모두 좋았다. 탄탄한 조연들이 극적 긴장감을 끝까지 끌고 간다는 느낌. 황정민의 이죽거리던 표정은 끔찍할만치 탄성이 나왔다. 와이키키 시절에서 이젠 어느사이 주류배우로 성장했네. 조직의 보스가 사랑할 만한 느낌이 있는 여자, 신민아도 적절한 느낌. 에릭은 그림이 된다. 그가 한템포만 빨리 등장했어도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쿠엔틴타란티노를 자주 떠올렸다. 나는 그가 머리좋지만 어디로 뛸 지 모르는 산만함을 가진게 아닐까 생각했는데,, 김지운 감독은 마치 독수리가 먹이를 낚아채 듯 한 눈 팔지않는 깔끔함을 느끼게 한다. 무시무시한 도구(?)를 사용한다던 지, 땅을 판다던 지 하는 몇몇장면에선 블랙코미디 혹은 컬트같은 느낌이 들어 현실감을 떨어뜨리기도 했지만.
아무튼 달콤한 인생, 부루조아틱하고 세련되었다. 심지어 폭력조차도. 색감이 주는 아름다운 대비가 눈길을 잡았고 광각계? 혹은 심도깊은 렌즈의 선택은 이 영화를 더욱 차갑게 빛내주었다. 거칠고 비정한 세계에 어울리지 않는 순수한 감정, 그것의 운명이 슬펐던. 그 모든 것들을 더욱 실감나게 하는 2046을 닮은 듯한 그리운 음악, 달파란이었다. 피와 폭력의 그 한가운데에서 울리는.
단지 영화를 들여다 보는 것만으로도 감독이 누군 지 알수 있는 작품이 많아진다는 기분좋은 일이다. 김기덕 작품들, 홍상수식의 롱테이크 영화나 복수의그림자를 쫓는 박찬욱, 명민한 코미디의 김상진, 삶에 대한 관조적 시선 허진호... 김지운 감독의 영화또한 나름대로의 색깔을 느낄 수 있다. 대체로 그의 영화는 화려한 대비, 럭셔리한 셋팅. 땟갈나는 연출로 기억될 듯. 인상적이었던 장화홍련의 그 이미지는 여기서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비록 그것이 그의 한계가 아닌 개성이면 좋을테지만.
길었는데 아무튼.....
산다는 건 어찌보면 비겁한 것이다. 그 누구도 '순간의 감정'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걸지는 않는다. 사랑도 고통도 영원하지는 않다는 걸 안다는 것. 그러므로 어쩌면 우리는 '비겁하고 길게' 살아가는 것일 지도 모른다. 살아야 할 날들은 너무도 많으며 그것은 '두시간'이 아닌 '그 밖에' 너무나도 오랜 시간이기 때문에. 짧게 생을 살다간 이들에게 얼마간 연민의 눈길을 보낼지언정, 사소한 뒤틀림 그런것들로 인해 '끝까지 달릴 수'는 결코 없는 인생, 그것이 우리다. 비수처럼 가슴에 흠집만 내고 간 그 사랑만큼이나 또한 이 영화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도록 아름다운 이유.
'05. 4. 14 한참 지난 후 이제서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