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먹이 운다’ 는 외형상 권투영화의 모습을 띄고 있다. 특이한 이력을 가진 두 남자가 링 위에 올라가기까지의 힘겨운 과정과 링 위에서의 사투를 담담하게 그린 영화다. 겉으론 그런 영화처럼 보인다. 하지만 나 개인적으로 느끼기엔, 이 영화는 권투라는 소재를 사용한 대한민국 남자의 힘겨운 모습을 그린 영화인 것 같다.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수컷으로써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괴로운지 처절하게 보여준다. 인생의 반을 보낸 수컷과 이제 막 먹이를 잡으러 사회에 나가야하는 20대 초반의 수컷을 대비시켜, 비록 극단적이긴 하지만, 감독이 관객에게 하고자 하고 싶은 말은 바로 그것인 것 같다.
우선 43살의 ‘1990년 아시안게임’ 은메달리스트의 전직 복서 ‘강태식’. 그는 언제나 “나 강태식이야~!!”를 외치며 남에게 강하게 보이려고 하는 전형적인 한국남자다. 좀 더 강하게 보이고 싶고 마초냄새 나는 그런 남자로 보이고 싶어하는, 한국사회란 공장에서 찍어낸 수많은 남자들 중 하나다. 하지만 그가 그렇게 보일 때는 쌍욕을 내뱉으며 주먹질로 남을 때릴 때와 그의 얼굴에 난 수염을 클로즈업 한 장면 밖에 없다. 강한 수컷의 냄새를 가장 강하게 풍기는 스포츠인 권투를 배워, 정해진 규칙아래 링이란 공간 안에서만은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주먹질을 잘하는 남자가 됐지만 정작 사회에 나와서는 아무 힘도 못쓰는, 오히려 남에게 휘둘리는 어리숙한 모습을 보인다. 영화 속에서 친구는 보이지도 않고, 후배들의 번지르르한 거짓말에 속아 온 집안에 차압딱지를 허락하는 모습은 결코 사회를 휘두르는 마초의 모습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오히려 가족들에게 정신적으로도 안정감을 주지 못하는 무기력한 가장의 모습과 성적인 봉사로 무기력한 가장의 모습에 지친 아내를 일시적으로 달래주고 씁쓸하게 담배를 태우는 모습, 그리고 힘들 때마다 영광스러웠던 과거의 상징인 ‘아시안게임 은메달’을 만지작거리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모습은 같은 남자로써 상당히 애처롭기까지 하다. 우리사회에 뿌리 깊게 박힌 강한 남자에 대한 강박관념에 짓눌린 대다수의 중년들의 모습이기도 한 강태식이란 캐릭터는 나 역시 앞으로 도달할 길이기에
더욱 답답하기만 하다.
그리고 또 다른 수컷인 22세의 문제아 ‘유상환’. 지독한 오기와 어려운 가정환경, 자신이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 모르는 모습은 완전한 사회화에 이르지 못한 한국의 청년들을 나타낸다. 물론 영화 속 캐릭터가 극단적인 상황에 있지만 넓게 보면 보통의 청년들과 다를 바 없다. 대부분의 한국 남자라면 이 나이엔 아마 대학생이거나 군복무를 하고 있을 나이다. 인생에서 가장 근심 없이 순수하게 즐길 수 있는 나이지만 요즘같이 각박한 시대에는 오히려 아무 것도 확립되지 않은 뿌연 시야 때문에 앞날이 제대로 보이지 않아 가장 두려움이 많은 시기이기도 하다. 가정환경까지 좋지 않은 상환은 모든 것이 불안한 20대의 특징을 강조한 캐릭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이 너무도 불안정해서 자신을 강하게 밀어붙이고, 남들에게도 거칠게 대하는 모습은 속으로 완전히 단단해지지 못해 아직은 여린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하는 서툰 행동처럼 느껴졌다. 상환은 친구를 잘못된 방식으로 도와주다 일이 커지자, 자신이 한 일을 가족들에게 피해주지 않고 스스로 해결하기 위해 돈을 훔치다가 사람을 죽이고 소년원에 가는 최악의 결과를 맞이한다. 자신의 순수한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거금을 마련하기 위해 노인의 돈을 훔치는 장면은 사회에 발을 내딛기도 전에 생긴 절박한 형태의 자립심 보여준다. 이러 형태의 자립심은 사회에 용납되지 못하고, 그는 소년원에 들어가게 되는데 그곳은 거친 맹수들이 우글우글한 정글같은 또 다른 사회다. 맹수들은 새로운 구성원 앞에서 자신이 얼마나 확고한 영역을 소년원 안에 구축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상환을 괴롭히고, 상환 역시 새로운 사회 안에 자신의 영역을 확보하기 위해 오기로 맞서 대응한다. 이러한 수컷들의 영역 다툼은 어딜가나 끊이지 않고, 이런 생존 경쟁 속에서 살아남아야만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곳이 사회라고 영화는 보여준다. 소년원 안에서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할머니가 치매에 걸리시면서 더욱 더 궁지에 몰리게 되고, 이런 상황에도 아무 힘도 못되고 안에서 보낼 수밖에 없는 현실을 타파하려 신인왕전에 나가게 되고, 그 일에 죽기 살기로 매달려 자신의 힘을 기름으로써 목표에 조금씩 도달해간다. 이 과정에서 그는 소년원안에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 조금씩 인정받기 시작하는데, 타인에게 인정받는다는 것은 그 사회에서 힘을 길렀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다. 영화는 다른 사람과는 다른 방식이지만 한 청년이 어떻게 사회화되고, 어떻게 해야 자신의 목소리를 높이고 타인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지를 알아가는 과정을 그린 것이다.
이 애처로운 두 수컷이 필사적으로 다른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신인왕전 결승에서 만나게 되는데, 서로 물러날 곳이 없는 만큼 막판에는 개싸움마냥 본능적으로 살아남으려고 죽기살기로 싸우고, 이 경기에서마저 승자와 패자가 가려지게 된다. 우리는 두 인물을 영화의 시작부터 승패가 판가름 나는 마지막 장면까지 보면서 연민을 느끼게 되고 그들에게 감정이입이 되어 손쉽게 어느 한쪽을 응원하지 못하지만 영화는 잔인하게도 그 가여운 두 수컷마저 승자와 패자로 나눠버린다. 물론 어떤 이들은 마지막 결승만큼은 승패가 중요한 게 아니라 한 인물이 어떤 일에 몰두하고 거기서 최선을 다했으니 그것으로 됐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거기서 이 영화가 이렇게 끝나고 나면 그 다음에는 주인공들이 어떻게 살아갈까 생각해보니 패자는 정말 말도 할 수 없을 만큼 핀치에 몰려 더욱 힘든 세상을 살아가게 될 것이라는 잔인한 결말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영화의 한 대사처럼 세상에 사연 없는 사람 없지만 그들의 그런 사정을 세상은 전혀 알아주지 않기 때문이다.
경기의 승패가 결정되고 두 인물의 속내가 들어나는 장면이 있다. ‘강태식’은 너무도 지쳐서 몸도 가누지 못하지만 그 와중에 가족한테 힘없이 미안하다고 말하고, 아들이 그런 태도를 질책하자 미소를 띠며 조금 있다 아빠랑 목욕탕가자고 중얼거린다. ‘유상환’은 경기가 끝나고 몸도 불편하신 할머니가 경기장에까지 찾아온 걸 발견하자 그동안에 참았던 감정이 한꺼번에 폭발해 오열하다 할머니한테 달려가 안긴다. 이 때 할머니는 ‘아이구, 내 새끼’라고 따뜻하게 감싸준다. 이 두 수컷은 세상이 강요해온 강한 남자의 유령에 사로잡혀 자신의 솔직한 감정도 드러내지 못하는 처지가 됐었지만, 사실 그들이 원한 건 그런 사회에서 버틸 수 있게 도와주는 따뜻한 가족의 품과 그들 자신이 잠시나마 편안히 쉴 수 있는 작은 공간이었을 것이다.
영화를 보는 도중에 그들의 탈출구 없는 힘든 삶이 너무 답답했고, 결말에 이르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상환‘은 모든 것이 불안한 현재 나의 삶과 비슷하고, ’태식‘은 어떤 형식으로든 세상의 힘겨움을 뜨겁게 맛보게 될 테니 앞으로의 내 모습과 크게 다를 게 없다는 생각에 참 서글펐다. 나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남자들이 이렇게 힘겹게 부대끼며 살아갈텐데, 과연 인생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다시 한번 정답 없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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