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이 예뻐야 여자다'. 최근에 나온 신인 여가수 '춘자'는 이 노래로 M/V 신인여가수 상을 수상했다. 한 껏 부푼 가슴을 마음껏 뽐내며 그 앙가슴으로 모든 남성을 안아줄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지만 정작 가사는 '마음이 착한 여자가 진짜 여자'란다.
연말 쟁쟁한 영화들 틈바구니를 뚫고 이 '가슴 고운' 영화가 성탄 연휴기간 우리나라 사람들의 마음을 흠뻑 적셔놓았다. 일본 역사상 최단기간(2주) 500만 돌파, 한국흥행역사상 압도적으로 1위를 장식한 최초의 재패니메이션(금주 오프닝 80만명)으로 기록될 이 영화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일본이 낳은 세계최고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의 신작이다.
마음이 착한 소피는 마녀의 저주로 한 순간에 90세 노파로 늙어버린다. 하지만 '할머니 속에는 소녀가 있다'는 감독의 카피처럼 사람은 나이를 먹어도 그 순수함을 잃어버리지 않는다. 할머니같은 노련함과 소녀의 순수함을 가진 소피는 '움직이는 성'안에서 하울과 동거를 시작하면서 그와 사랑에 빠지고 그 사랑을 위해서 목숨을 건 모험을 시작한다.
영화는 전작들 처럼 너무나 어렵고 맑다. 소피를 통해서 '늙어감 속의 순수함' 을 말하는 듯 하더니 하울을 통해서는 이라크 전에 참전한 일본의 고민과 반전의 메세지를 이야기 하고 황야의 마녀를 통해서는 세월속에 흩어지는 탐욕과 질투의 덧없음을, 소피가 돌보는 불의 악마 캘시퍼는 집에 있는 자식들을 의미한다. (별의 점지로 캘시퍼가 하울의 심장에서 태어나는 장면, 캘시퍼 자신이 성(가정)을 움직이는 원동력이면서 자신이 죽으면 하울도 죽는다는 대사는 그것을 의미한다)
넓은 입구와 좁은 끝을 가진 깔대기 처럼, 지나치게 많은 빗댐과 은유가 난무하는 [하울의 움직이는 성]도 그 끝을 통과하는 한 줄기 말은 '착하게 살자'이다. 전쟁에 몸과 마음이 피폐해져가는 하울도, 예전에 악랄했던 마녀도, 권력자 밑에 붙어먹던 개도, 마법에 걸린 허수아비 왕자도 모두 다 소피라는 마음씨 착한 사람 에 의해 마음이 움직이고 깃털처럼 박혀있는 악한 마음도 다 사라진다.
모든 갈등구조가 해소되는 마지막 장면에서의 '히사이시 죠'의 노련한 음악은 또 한번 '어허..이렇게 당혹스러울수가..' 하는 눈물을 뽑아내고 머리가 하얗게 쇤 이 늙은 소년 감독의 신작은 그의 영화를 보물처럼 아껴온 사람들에게 또 하나의 성탄축복이 된다.
"나이를 먹으면 놀랄 일이 적어져서 좋다"는 그녀의 대사처럼 미야자키 하야오의 신작 [하울의 움직이는 성] 은 어쩌면 놀랍지 않아서 더욱 원숙하고 아름다운 영화다.
언젠가 부터 '얼굴이 착한' 사람 (특히 여자) 이나 '마음이 착한' 사람이 제 값을 받지 못하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영악하고 발빠르고 약간은 악한 사람이 오히려 매력적이다. 강하고 빠르고 새로운 것을 숭배하는 이 세상 속에서 거장의 묵묵하고 느린 메세지는 언제나 만권의 책을 읽는 것 보다 더 큰 감동을 가슴에 넣어준다.
영화를 보고나오면서 필자가 마음씨 고운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다. 전쟁같은 하루를 보내야 하는 하울은 바로 나이고 지친 날개를 닦아주고 안아주는 소피는 바로 당신이라고...
하울과 소피의 마지막 대사가 마음속을 가득 채운다. "마음이 왜 이렇게 무겁지.. (--)" "마음은 원래 묵직한거야~ (^^)"
FILMANIA crop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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