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rologue 2003년 제 8회 부산 영화제 때 썼던 글입니다. 개봉예정작이라 해서 한 번 다시 올려 봅니다.
#. 몇 줄의 단서에서 `국제 영화제에 와서는 절대 국내에서 개봉할 가능성이 없는 영화를 우선적으로 봐야 한다`란 것이 내 신조이다. 그러다 보니 언제나 영화를 고를 때는 브로셔에 있는 몇 줄의 소개 문구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특히나 나같이 한 작가나 배우의 역사에 대해 조예가 깊지 않은 자에겐 그 단서가 절대적이다. 그런데, 왠지 이 영화 감독의 이름은 좀 익숙했다. (지금 찾아보니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Bernardo BERTOLUCCI 감독이군 ㅡ.ㅡ) 여튼 `밖에서는 시위가 한창인데,이들 영화광들은 퀴즈를 즐긴다`란 소개는 극장 의자에 앉는 순간 일단 대사가 많은 영화가 아닌가 하는 걱정이 앞선다. 사건을 대사로 진행시키는 영화는 최악이다.ㅡ.ㅡ 다행스레 예상은 빗나갔다
#.시작부터 아이디어를 담아서 개인적으로 영화가 시작될 때의 느낌을 중요시한다. 고양이를 부탁해에서 블라인드와 텍스타일을 접목시킨 타이틀은 영화 내내 날 지배했다. 몽상가들의 타이틀도 날 매료시키기엔 충분했다. 하늘로 높이 솟아있는 송전탑을 내려오면서 하나 둘씩 뜨기 시작하는 인물 이름들. 교차하며 오르는 철골들 사이의 라인을 따라 뜨는 크레딧이라. 일단 아이디어에서 반은 먹고 들어가는 군.. 그리고 마지막 엔딩 크레딧도 통상의 룰을 따르지 않고 위에서 밑으로 내려온다. 굵은 폰트가 맨 밑에 깔리고 다음으로 이름이 뜨는 크레딧. 사실 이런 고에서 저로 내려오는 하강기제는 영화에도 종종 나왔지만 마지막까지 아이디어로 담아 끝내주는 배려라...
#. 난 영화매니아가 아니다 영화제를 먼길들어 왔지만 난 영화매니아가 아니다. 아니 정확히 영화매니아라고 말할 수가 없고 그러기가 겁난다. 앞서 언급했듯이 작가, 배우의 필모그라피도 별 관심이 없거니와 겁나게 영화를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화매니아라고 자처하는 분들의 엄청난 사전데이터와 핏줄 세우는 말발을 도저히 대적할 수 없다 ㅎㅎ) 그런데 몽상가들은 영화 매니아에게 엄청난 재미를 던져줄 듯 하다. (마치 아는 만큼 웃을 수 있는 패러디 영화처럼)
#.현실을 위한 판타지, 판타지가 된 현실. 틈 날 때마다 흑백필름과 현재는 교차된다. 그리고 메튜, 테오와 이사벨은 그 영화를 맞추어야만 한다. 틀리면 상상하기 힘든(?) 벌칙을 받아야 한다. 이쯤 되면 현실과 판타지의 벽은 무너지기 시작한다.
몽상가들이 바라보는 현실과 영화 속의 현실은 이들의 일탈을 통해 교차하기 시작한다. 메튜의 눈에 `변태`적으로 보인 픽션적 행위들도 결국은 이사벨과의 첫 섹스를 통해서 픽션에서 현실로 넘어온다. 이사벨의 첫 섹스 대상이 메튜가 된 것은 판타지도 현실이 될 수 있다는 반증이다.
#. 고뇌하라 영화 제목에서 암시하듯 이들의 판타지는 이내 위협받기 시작한다. 늘상 충돌하기 시작하는 메튜와 테오를 통해서도 결국 해묵은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다. `영화를 통해지식을 가지고 있어도 실제 행동으로 나타나지 않으면 아는 게 아니다`라는. 굳이 테오/이사벨의 아버지가 보수이고, 테오/이사벨이 진보, 메튜가 중도라는 도식을 그리지 않더라도 언제 이상가, 아니 몽상가들이 꿈꾸는 세계가 현실적인 적이 있던가. 그렇게 테오와 메튜 사이를 이사벨은 섬마냥 오간다.
#. 판타지는 언제나 위험하다. 판타지는 언제나 위험하다. 이들 셋의 일탈 행위가 부모에게 들킨 것을 알게 된 이사벨은 동반 자살을 시도한다. 그러나 흑백필름 속 실패처럼, 위험천만하게 자살은 실패한다. 그리곤 시위대의 맨 앞으로 테오와 이사벨은 테오는 뛰쳐나가며 메튜를 군중 뒤로 물러서게 만든다. 어떻게 보면 지극히 영화 자체를 위한 자기 변명일지도 모르지만, 마지막에 승리하는 것은 현실이 아니라 영화의 판타지다.
#.영화를 위한 영화 이 영화는 메타 영화, 아니 META-CINEMA다. 영화 그 자체를 위해 배열된 여러 장치들(그래서 아는 만큼 즐거울지도) 판타지와 현실 사이에 대해 끊임없이 던지는 문제들. 그래서일까, 개인적으로 이 영화가 열린 결말이었으면 어땠을까란 생각도 든다. 물론 구성상 불가피한 선택이었겠지만, 충분히 꺼리를 던지기엔 충분한 두 시간이었으니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