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개인적으로 좋아(기대)하는 감독들의 명단 중 상위에 존재하였던 이중 하나가 장윤현이라는 감독이다.
단 두 편의 영화 <접속>(1997)과 <텔 미 썸딩(Tell me Something)>(1999)만을 연출한 어찌 보면 초짜에 속하는 장윤현 감독은 장르를 넘나들며 현란한 영상감각을 발휘하며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하였던 감독이다.
특별하지도 유별나지도 않은 밋밋한 느낌의 줄거리의 어쩌면 다소 심각한 줄거리 때문에 지루해 보일지도 모르는 그저 별볼일 없을 수도 있었을 멜로 영화를 스타일리쉬하고 고급스런 영상과 그 영상에 너무도 잘 어울리는 음악으로 세련되게 연출하여 관객몰이에 성공하였던 <접속>, 그때까지만 해도 시도할 엄두를 못내 던 어둡고 탁한 도시를 배경으로 잔인한 그러나 의외의 연쇄살인마와 그를 쫓는 형사의 대결을 그로테스크하고 우울한 영상과 음악으로 흥미진진하게 담으며 결과에 대한 많은 논란을 낳았던 최초의 하드고어 형사스릴러 <텔 미 썸딩>에 이르기까지, 그는 삭막하고 우울한 회색 빛 도시를 배경으로, 그곳에서 상처와 아픔을 간직한 체 외롭고 고독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멜로 또는 스릴러라는 장르에 상관없이 그만의 세련되고 깔끔한 스타일, 감성이 살아있는 감각적인 화면, 역동성이 살아있는 액션 연출 등으로 영화에 대한 인상을 더욱 강하게 심어주었던 감독이었다.
영화가 가지는 고유의 재미를 배가시키는 섬세한 연출의 묘미를 보여준 그의 작품들은 기존의 한국영화에선 느끼지 못했던 진 일보 된 느낌의 새로운 스타일의 영화들로 한국영화의 또 다른 가능성을 느끼게 해 주었기에 난 장윤현이라는 감독의 행보를 눈여겨보게 되었다.
그런 그가 신작을 찍고 있다는 소식은, 그 영화의 제목이 <썸(Some)>이며 하루를 배경으로100억대의 마약을 둘러싼 형사와 범인간의 쫓고 쫓기는, 죽음을 넘나드는 흥미진진한 사건을 다루고 있는 형사 액션 스릴러라는 소식은 나에게 많은 기대와 설레임 그리고 흥분을 주었다. 거기에 영화에서는 신인이나 다름없는 순수하고 멜로적인 느낌의 고수와 조금은 덜 성숙된 느낌의 송지효라는 배우를 캐스팅하여 어떻게 액션과 긴장이 넘치는 스릴러라는 장르에 효과적으로 공연할 수 있도록 만들지 자못 궁금해 지기 시작했다.
제대로 된 느낌의 정통 형사 액션 스릴러 <썸(Some)>
한국영화의 제작실정에서 차량 추적 씬이 포함된 헐리우드식 정통 형사 액션 스릴러를 찍는다는 건 아마 제작자나 연출자, 배우 모두에게 굉장한 부담으로 작용한다.
그래서인지 이제까지 제작된 몇 편의 형사액션(<쉬리>,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와일드 카드>, <공공의 적>)과 형사스릴러(<텔미 썸 딩>, <H>, <하얀방>, <거울 속으로>)를 표방한 작품들은 어째 헐리우드에서 제작된 영화와 비교해서 그 스피디함이나 다이나믹함이 다소 정적이고 소극적인 느낌으로 한국 액션 영화의 한계 같은 것을 느껴야 했던 것도 사실이다. 아마도 액션영화에서 필요한 기술적인, 경험적인 노하우나 금전적, 위험에 대한 부담 등 여러 복합적인 요소 때문에 시도부터가 조금은 어려운 그런 영화로 인식되어 왔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썸>은 여지껏 보아왔던 한국영화에서 느끼지 못하던 화려하고 위험천만한 다이나믹과 스피디함이 잘 살아있는 진 일보 된 모습의 한국형 형사 액션 스릴러로 느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영화의 오프닝에서 벌어지는 극중 강성주와 흑마왕의 도심을 질주하며 벌이는 위험 천만한 차량 추적 및 추돌 씬, 중간중간 범인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스피디하고 다이나믹한 차량 액션, 또 범인의 소굴로 오토바이를 이용해 침입하여 벌이는 결투 씬 등, 영화<썸>은 형사액션은 바로 이런 것이다라고 이야기 하듯 시종 위험 천만하고도 역동적인 카메라의 움직임과 다양한 앵글을 보여주며 스타일리쉬한 화면을 연출한다. 그러한 현란한 화면의 움직임과 빠른 편집은 액션영화가 갖춰야 할 스피디함과 다이나믹함이 생생히 살아있는 액션영화의 묘미를 보여주는 느낌이다.
내 개인적인 생각일지 모르지만, 헐리우드의 그것과 비교해 전혀 손색이 없어 보이는 그럴 듯한 느낌의 멋진 때깔과 스타일을 갖춘 영화 <썸>은 화려한 볼거리를 갖춘 액션스릴러로 거듭나는 듯하여 뿌듯한 느낌마저 준다.
미스터리와 환상을 넘나드는 복합적인 느낌의 형사 스릴러 <썸>
100억대의 마약 탈취사건, 그 배후를 수사하는 젊은 열혈 형사, 강성주, 영화는 마약조직과 젊은 폭주족, 비리경찰 등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마약탈취사건과 사건의 키가 되는 증거물을 갖게 된 교통리포터이자 디카 동호회 회원인, 서유진이 사건과 관계된 범인의 우연한 목격자가 되어 강형주 형사와 만나게 되면서 그녀가 강성주 형사로부터 어딘지 낯설지 않은, 어디선가, 만난 적이 있는 듯한 묘한 느낌의, 사건과 관련된 강형사의 모습이 투영된 ‘데자뷰’ 현상을 느끼게 되며 복잡하고 오리무중으로 꼬여있던 미스터리한 사건의 비밀스런 내용의 실타레를 조금씩 조금씩 풀어헤치며 사건의 흥미를 더해가기 시작한다. 관객은 반복되는 서유진의 ‘데자뷰’를 통해 강성주의 음울(?)한 미래의 모습과 자신의 모습을 조금씩 조금씩 발견하고 또 강성주와 서유진 그리고 가리워진 범인간에 쫓고 쫓기는 팽팽한 긴장과 스릴을 느끼며 점점 영화가 가진 은밀한 비밀이 주는 유혹에 푹 빠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신비스럽고 환상적인 느낌의 현상 ‘데자뷰’를 통해 발견하는 스릴러의 묘미
영화 <썸>은 우연처럼 사건의 한가운데에서 범인들의 표적이 되어버린 교통 리포터 서유진의 강성주에 대한 ‘데자뷰’ 그리고 강형사 자신이 사건을 수사해 나가는 두 개의 큰 축을 중심으로 사건의 해결 및 그들의 운명적인 만남을 이야기한다.
또한 초반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서유진의 데자뷰가 실제의 상황에 봉착하며 그 상황이 조금씩 변화가 되면서도 그 예언(?)이 맞아떨어지는 모습을 보여주며 벌어지는 극중 상황은 과연 서유진이 느낀 강성주의 죽음에 대한 데자뷰가 실제로 일어날 수 있을 것인가 또, 다른 상황들처럼 강성주의 죽음에 관한 데자뷰도 현실의 상황에서 어떤 의외의 상황으로 변하여 극적인 재미를 더해 갈 것인지에 대해 의문과 궁금증을 주며 관객을 스크린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게 하는 흡입력을 발휘하게 된다.
하지만…
이 영화를 미스터리하고 환타스틱하며 스릴있는 영화로 거듭나게 하는 소재 ‘데자뷰’는 어째 역으로 영화의 전체적인 신선도와 새로움을 떨어뜨리는 기능을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데자뷰’로 일컬어지며 나타나는 환상인 듯, 겹쳐지는 미래의 모습들은 그리고 그 환상이 현실에 봉착하게 되면서 조금씩 변화되고 꼬여가는 과정들은 이미 많은 헐리우드 영화에서 익숙히 접해 보았던 소재이다. 즉, <레트로 액티브>, <마이너리티 리포트>, <사랑의 블랙홀>, 개봉대기중인 <이프온리>, <나비효과>등의 영화에서 중심적으로 다루고 있는 내용이 과거와 현재의 반복과 변화되는 현재에 대한 이야기로 비슷한 이야기를 오랫동안 익숙하게 보아와서 그 소재 면에서 식상하다는 느낌마저 주는 느낌이다.
더욱이 극적인 상황과 긴장감의 연출 및 스릴감을 배가시키기 위해 사용되고 있는 ‘데자뷰’라는 소재자체의 원인에 대한 규명(그들이 과거에 스쳐갔던 인연이었다던가 전생의 연인이었다는 등의)이 전혀 배제 된 체 운명적이고 필연적인 주인공들의 만남만을 강조하는 듯한, 데자뷰라는 기묘한 현상에만 기대어 작위적으로 풀어가는 듯한 인상을 주어 조금은 씁쓸한 느낌이다.
상대적으로 미비하게만 느껴지는 조연의 비중, 스릴러의 공식에 충실(?)한 줄거리
이 영화에는 꽤 괜찮은 조연급들의 연기자가 포진되어 있다. 즉, 강형사가 숨기고 있는 어떤 비밀을 알고 있는 듯 강형사를 감싸려는 듯한 오반장, 강성주의 파트너 격의 든든하고 자상한 인상의 이형사, 거칠고 투박한 느낌이지만 긴장 속에 유머를 느끼게 해주는 우직한 추형사, 조금은 기회주의자 같은 느낌의 김반장 등의 형사측과 마약조직과 경찰에 쫓기며 음모의 중심에 서 있는 폭주족 일당 민재일, 권철우, 정찬, 흑마왕의 캐릭터가 제대로 효과적으로 표현되지 못하고 특히 범인의 경우 그 역할도 다 하지 못하고 허무하게 퇴진하는 것 같아 많은 아쉬움을 준다.
또한 지나치게 헐리우드 형사 스릴러의 공식을 고스란히 답습하는 뻔하고 작위적인 느낌의 전개와 결말을 가진 영화 <썸>은 영화 자체가 가진 긴장감과 스릴을 오히려 느슨하게 하여 상대적으로 관객들이 편안하게 스릴러 영화를 관람할 수 있는 배려(?)를 보여주는 듯하여 조금은 맥이 빠진 느낌의 스릴을 느끼게 된다.
영화가 가진 가능성 때문에 추천하고픈 영화 <썸(Some)>
몇몇의 단점이 존재하는 완벽하지는 않은, 조금은 맥빠진 스릴과 작위적인 설정의 내용 등으로 스릴러의 진수를 맛보기에는 조금은 부족해 보이는 영화 <썸>이지만 이 영화는 나에게 꽤나 인상적인 가능성이 보이는 형사 액션스릴러다.
기존 어떤 영화에서도 본 적이 없었던 역동적인 느낌의 효과적인 카메라워크와 스타일리쉬한 화면, 몸을 사리지 않고 멋진 화면을 만들어 내려는 화려함이 묻어나는 격투씬 그리고 ‘데자뷰’를 통한 긴장과 스릴러의 묘미를 담뿍 담으려는 연출의 시도 등, 이 영화에는 형사 액션 스릴러에 대한 무한한 가능성이 숨어있는 느낌이다. 조금 더 완성도 높은 시나리오와 극적인 이야기만 존재했었다면 그가 의도하고자 하였던 이야기에 대한 에피소드들(오형사의 이야기, 강형사와 서유진의 이야기, 강형사가 피어싱 조직 내에서 수사했던 이야기 등)을 조금 더 이야기를 세세하게 영화 속에 담아 주었더라면 이 영화는 꽤나 멋진 한국형 액션 스릴러로 거듭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난 이 영화를 보면서 한국 액션영화도 마음만 먹으면 꽤 그럴 듯한 화면을 화려하고 멋진 스타일의 역동적인 화면을 충분히 만들 수 있는 잠재력이 있음을 보았다. 약간의 미숙함이 엿보이지만 차량이 전복되고, 차량이 정면으로 부딛히는 위험한 액션 씬들은 정말이지 감탄을 하면서 볼 수 밖에 없었다.
조금만 있으면 우리나라에서도 그럴 듯한, 멋진 내용과 완성도, 화려한 스타일을 갖춘 수준 높은 형사 액션 스릴러가 곧 나올 수도 있다는 기대에 흐뭇하고 설레는 느낌에 조금은 흥분되는 느낌을 받아 기분이 좋았다.
액션 영화를 좋아하신다면 (조금은 김이 빠진 느낌이 있지만) 이 영화가 ‘딱’ 일 것 같다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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