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 사랑한다 말하지 않아도, 그립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습니다. 바로 가족이기 때문입니다.
코미디와 액션. 소위 돈 들어간 영화들이 주를 이루는 요즘 영화 시장에 잔잔하고 따뜻한 느낌을 전해주는 영화가 있다. 해마다 좁은 틈새를 비집고 우리에게 다가오지만 실상 만날 기회는 그리 많진 않다. 추석이 다가올 즈음에 가족의 의미를 생각해 보게 하는, 더욱이 가족의 의미가 점차적으로 퇴색해 가는 요즘 따뜻한 가족의 사랑을 느낄 수 있는 한편의 영화가 준비를 하고 있다. 죽도록 사랑하지만 사랑한다는 말 한번 제대로 못하는, 많이 그립지만 그리웠노라고 쉽게 내뱉지 못하는 아버지와 딸의 애틋한 감정들. 가을 정취에 제격인 듯 싶다.
가족의 사랑에 대해 얘길 할 때면 항상 모든 모습이 불안한 상태에서 출발한다. 그 사랑을 극대화시키기 위한 어쩔 수 없는 방편이기에 눈감아주고 넘어갔으면 하는 바램이다. <가족> 역시 그런 정형화된 모습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다. 수감생활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딸 정은(수애). 아버지(주현)와 첫 대면은 차갑기 그지없다. 단란하고 소박해 보이지만, 알 수 없는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게 될 거라는 사실을 직감하게 된다. 더욱이 아버지는 백혈병을 얻어 이미 완치 불가 상태로 들어선 상태이고, 정은은 자신의 뜻과는 상관없이 다가오는 검은 그림자로 불안감을 가중시키고 있다. 그리고 아들 정환(박지빈)은 천진난만한 모습으로 아버지와 정은의 불안한 모습을 극대화시킨다.
이와 같이 뻔히 드러나는 모습으로 진행되지만, 중요한 것은 애틋한 가족의 사랑에 대한 감정선을 어떻게 이끌고 가는지에 있다. 아무리 눈에 보이는 이야기라 할지라도 영화를 보는 이들은 자신의 아버지, 또는 자신의 딸들을 생각하면서 보기에 그 감정선만 잘 이끌어 낸다면 눈물샘을 자극하는 데엔 별다른 무리는 없기 때문이다. <가족> 역시 이야기의 구조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눈물샘을 자극하기 위한 노력의 흔적들이 많이 보인다. 다만 그 노력이 너무 친절하였기에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온 점이 못내 아쉽다.
<가족>에서 아버지 주석은 좀 더 불쌍하고 불행한 사람으로 그려진다. 친한 동창들과 만난 자리. 8명중 유독 양복 차림이 아닌 사람은 주석뿐이다. 또한 그 친구들은 여유가 가득 넘치는 밝은 모습을 하고 있지만, 한쪽 구석에 자리 잡은 주석은 그리 편한 모습은 아니다. 단 한 모습으로 모든 것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상처로 인해 한쪽 눈은 제대로 뜨지 못하고, 아내는 일찍 죽고 가정 형편이 그리 넉넉해 보이지도 않는다. 그야말로 참 안됐구나 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정은의 모습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수감생활을 마치고 새 삶을 살기를 원한다. 하지만 그도 쉽지 않다. 과거 같이 소매치기를 했던 창원(박희순), 동수(엄태웅)이 놓아두질 않고 있다. 물론 새 삶을 살아가려고 마음을 가졌다면 굳이 왜 찾아갔을까 하는 생각도 잠시 든다. 아무튼 과거의 기억만을 가지고 찾아간 것이 화근이 된다. 때늦은 후회가 무슨 소용이 있으랴. 이로 인해 창원과 동수는 정은 뿐만 아닌 가족 모두에게 위협을 준다. 가족에게 피해를 막기 위해 홀로 동분서주 하지만 물론 역부족이다. 보다시피 <가족>에서 아버지와 딸의 인물은 정말 불쌍하기 그지없다. 최대한 불쌍하게 보여 눈물샘을 자극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그렇다면 다음은 무엇인가. 이렇게 불쌍한 인물을 어떻게 더욱 불쌍하게 보일 것인지, 그리고 그 속에서 따뜻한 가족애를 느끼는 동시에 어떻게 눈물샘을 자극할 것인지 고민에 놓이게 된다. 그 고민은 이야기가 풀어야 할 숙제이다.
<가족>은 아버지의 병(백혈병)과 정은의 주변인물(창원과 동수)을 통해 이야기가 구성되고 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따뜻한 사랑을 전달하려고 한다. 정은을 바른 길로 인도하기 위해 아버지는 정은 몰래 창원과 동수에게 빌어보기도 하고, 때려보기도 한다. 반면에 정은은 아버지의 병을 구하기 위해 골수검사를 하지만 역시 순탄하게 이루어지지 못한다. 결국 이들은 서로의 따뜻한 사랑만 확인한 체, 아버지는 정은을 대신해서 죽음을 택한다.
이런 과정 속에 감정은 쉽게 동화되지 못하고 있다. 이는 가족의 사랑을 너무 보여주는 것에만 치중했기 때문이다. 애틋하고 감춰진 부모의 사랑, 그리고 그 사랑을 자식들이 깨달을 즈음에는 이미 부모는 내 옆에 없는 이러한 일반적인 모습과 거리가 있다. 정은은 아버지의 친구를 통해 그 큰사랑을 너무나도 쉽게 깨우치고 만다. 가슴을 졸이며 숨죽이고 정은의 마음으로 아버지를 따라가야만 하는데, 관객이 누려야할 그 역할마저도 정은이 앗아간다.
하지만 <가족>은 가족의 의미를 되새겨보게 하는 역할은 충분히 해주고 있다. 감정 이입이 어려운 나머지 펑펑 눈물을 흘리게는 못하고 있지만, 아버지의 애틋한 사랑이나 아버지를 향한 딸의 마음은 우리의 가슴을 잔잔하게 적셔온다. 가족의 의미가 많이 퇴색해 버린 지금 <가족>이란 영화 한 편이 더욱 따뜻하게 다가옴은 부정할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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