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cropper]내가 도시락을 싸들고 다니는 한이 있더라도.. |
|
알포인트 |
|
|
cropper
|
2004-08-23 오전 8:19:47 |
3764 |
[18] |
|
|
영화에 너무 오랜 시간 절여진 탓도 있겠지만 특히 공포영화에 필자가 더욱 쫀쫀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그 동안 필자가 제대로 된 공포영화와 인연이 닿지 않았기 때문이거나 겁먹는게 싫어서 스스로 형성시킨 '분석' 이라는 이름의 방어술 탓이렸다. 하지만 호감 차원을 넘어서 필자 스스로 외모나 느낌이 닮았다고 착각하는 배우 감우성이 주연이다 보니 - 게다가 그의 귀공자적 외모에 '전쟁호러' 영화라니 - 제작 당시 부터 고운 시선으로 개봉을 기다리는 것은 평론가로서 버려야 할 자세거늘, 쯧쯧.. 좌석에 기대를 한껏 깔고 앉았다. 실망을 안겨준 영화 '텔미썸씽'의 장윤현 감독이 제작자로 뒷짐지고, 각본을 담당한 공수창이 감독을 맡았다는 사실 때문에 초반의 어색함은 불안했다. 72년, 한국의 파병이 마무리 될 무렵의 월남전쟁, 6개월전 단 한명의 부대원만 남고 모두 사망한 것으로 파악되었던 당나귀 3소대로부터 '살려달라'는 구조요청이 온다. 발신지는 Romeo-Point. 유능한 최태인 중위와 베테랑 진창록 중사로 구성된 소대원이 실종 부대원을 찾아 나선다. 임무만 완수하면 '쭉빠진 스튜어디스가 쥬스도 주는' 귀환 비행기를 타게 해준다는 조건. 목적지에 도달할 즈음, 두명의 베트콩으로 부터 공격을 받는데 이상하게도 한명은 오래전에 죽은 것으로 보이고 숨이 깔딱이는 소녀 베트콩은 기분나쁘게 죽어간다. 죽은자들을 빠뜨리고 메웠다는 예전 호수지역 R-point. '손에 피묻힌 자, 절대 돌아가지 못한다'는 글씨는 병사들의 마음에 불길함을 드리운다. 너무나 습하고 햇빛도 들지않는 이런 곳엔 묘자리도 쓸 수 없고 죽은자도 묻히지 못하기에 산자도 살 수 없다는 장의사 출신 조상병의 말대로 R-point 는 귀신의 인간 살육장 인가. 시간이 갈수록 병사들은 조금씩 미쳐가고 최중위는 기분나쁘게 숨져간 베트콩 소녀를 창문 밖으로 내려다 보게 되는데... 영화 초반의 잠깐의 어설픈 비틀거림은 어느새 투박한 형태로 중심을 잡고 일어선다. 안정감 있는 최중위 역의 감우성이나 진중사 역의 손병호를 비롯하여 얼굴없는 공포에 속절없이 매몰되어 가면서도 모든 캐릭터가 살아 숨쉬는 것은 이 영화를 값지게 만든다. 한국영화 중에 이렇게 많은 캐릭터가 짧은 시간에 모두 제 목소리를 내는 영화가 있었는지 되짚어 보게 만든다. 영화 'R-point'가 한국 공포영화 사상 가장 뛰어나다고 - 근래의 모든 공포 영화를 합쳐도 - 감히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등장 인물 모두가 각각의 명함을 내미는 와중에도 스물대는 공포는 조금도 갈짓자로 걷지 않는다는 점이다. 더군다나 슬래셔가 아닌 공포영화 라면 백이면 백 모두 공통적으로 갖는 '귀신 짠! 화들짝 꺄악~' 공식을 철저하게 무시한다. 이 영화를 침이 마르게 칭찬해도 아깝지 않은 두번째 이유는 바로 그것이다. 영화 R-point 에는 공포영화에서 공식처럼 등장하는 여자배우(소위, Scream queen)가 없다. 영화가 끝나기 직전까지 단 한번의 날카로운 비명소리도, 머리를 헤쳐푼 피흘리는 귀신도 나와주지 않지만, 낯익지 않은 남성들에 의한 공포는 신선한 육중함을 갖는다. 중간중간에 한방씩 터뜨리며 공포의 이완을 거듭하는 여타 공포영화의 행태와는 전혀 다르게 언제 죽을지 모르는 전장의 공포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조금씩 옥죄여오는 미치고 환장할 공포는 마지막 라스트 씬에 도달할 때까지 허기진 자의 밥공기 처럼 빼곡히 꾹꾹 눌러담긴다. 가장 용맹해야 할 전장의 군인들 일지라도 도대체 내가 왜 여기서 죽어야 하는지, 왜 미쳐가야 하는지 이유를 모르는 무한 '겁'의 상황이고 보면 이 공포의 안개는 스크린을 넘어 관객을 고스란히 엄습한다. 모든(?) 소대원을 죽음으로 이끄는 이 정체불명의 공포는 영화가 끝나는 순간까지도 밝혀지지 않는다. 영화내내 꺅꺅대다가 막판에 이르러 친절하게도 '넌 그래서 죽어도 싸' 다는 변명 조차 외면하는 이 뼈골 시린 전쟁 공포영화 [R-point] 는 그래서 더욱 멋지다. 인과관계가 밝혀지지 않음에도 관객 누구나 유추해 볼 수 있는 끄덕임을 끌어내고 완결되지는 않지만 깔끔한 여운으로 처리되기에, 그 불친절한 마무리 조차 매혹적이다. 긴장을 풀어줘야 마땅한 마지막 장면. 슬픔과 공포가 묻어나는 장병장의 독백씬에서 조차 또 한번의 반전은 끝까지 관객의 숨통을 놓아주지 않으며, 다시 이어지는 교신내용은 관객을 객석에서 일으켜 세우면서 또 한번 뒷골을 잡아 챈다. 영화찍는 과정이 너무 힘들어서 영화가 완성되지 못할까봐 너무 무서웠다는 공수창 감독 의 공포스런 제작노트를 대하고 나니, 이 영화야말로 결코 실종되어서는 않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Well-made 한국 영화를 보겠다는 사람을 위해서라면 이 한 몸 도시락을 싸갖고 다니면서라도 잘 생각했다고 말해주고 싶다. 아니, 필자가 도시락을 싸주는 한 이 있더라도.. [영화가 주는 재미 하나] 처음에 실종자를 찾으러 가는 소대원들의 얼굴들을 모두 기억하라. R-point 에 도착하면서 얼굴없는 또 한명의 소대원이 그들 안에 끼어 있다. Filmania Cropper
|
|
|
1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