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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 참을 수 있는 존재의 가벼움 시카고
unevie 2004-01-25 오후 11:54:41 1085   [5]


★ 『시카고』


감독 롭 마샬
출연 르네 젤위거(록시 하트) / 캐서린 제타 존스(벨마 켈리) / 리차드 기어(빌리 플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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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것은 다 서커스야. 아수라장 같은 서커스 말이야.
이 공판도, 아니 이 세상 전부가 다 연예계 같은 거라고."

감상문을 쓰기 위해 몇 개의 글들을 인터넷에서 검색하여 읽었다. 인터넷이라는 것이 없었던 시기에 감상문을 적기 위해 비디오 테입을 앞으로 감아가며 배우와 감독 이름을 노트에 적었던 때에 비하면 참 편리한 감상문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영화에는 영 젬병이라 생각나는 대로 쓴다.

1. 흔히들 <물랑루즈>와 비교하는 경향이 있던데...

 물랑루즈와 비교하는 이유는,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의 기억 속에 시간적으로 가장 가까이 자리잡고 있는 영화이기 때문인가? 잘 모르겠다. 왜냐하면 물랑루즈와 연관되는 점은 뮤지컬이라는 것 외에 언뜻 떠오르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 경우는 처음부분에 살인과 교수형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길래 <어둠속의 댄서>와 같은 영화는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록시하트가 살인을 저지르고 수감된 이후에도, 뮤지컬 배우가 되겠다는 자신의 꿈을 추구하기 위해 일상 생활 모두가 음악화되어가는 현상을 그린 영화가 아닐까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분위기가 무겁게 내리누르도록 놔두질 않았다. 뮤지컬 영화는 <물랑루즈>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간단하다. 사운드 오브 뮤직과 이 영화를 비교할 수 없듯이, 물랑루즈과도 비슷한 부등식이다.


2. 대중적인, 너무나 대중적인.
 
 "모든 것은 다 서커스야. 아수라장 같은 서커스 말이야. 이 공판도, 아니 이 세상 전부가 다 연예계같은 거라고."
 극 중에서 변호사 빌리 플린이 한 말이다. 극 중이라고는 하지만, 이 영화에서의 메시지를 아예 대놓고 퍼부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빌리 플린은 당시의 법률에 대해서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사람들의 심리에 대해서는 똑똑한 사람이다. 두꺼운 법률책에 얽매이는 지식인이 아니라, "사람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간파하는 면에서 똑똑한 사람이다. 그가 패소율 0%라는 것은 사람들의 마음을 제대로 읽어내기 때문이다. 정의는 반드시 이기는 식상한 논리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정의고 지랄이고 우리가 원하는 것은 "사건"이고 "흥미"라는 인간의 씁쓸한 본성을 그가 어떤 과정으로 이해했는지에 대해 추적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사실 그렇다. 대중들은 원한다. 진리가 아니라, 흥미를 원한다. 사건을 원하는 것이다. 성수대교가 부서지면 사람들은 일제히 그 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백화점이 무너져도, 미국의 쌍동이 빌딩이 무너져도 마찬가지다. 그만큼 사건이라는 것에 절실하다. 사건이 없으면 대중은 심심하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상징물이 필요하다. 그들을 매료시킬 수 있는 스타도 필요하다.

 영화 중 한 여자(캐더린인가? 기억은 잘.)가 몇 십 년만에 처음으로 교수형을 선고받는다. 세상에 드디어 교수형을 받는 사람이 나오는구나. 동시에 무대에서의 "인간 증발현상"도 연출된다. 무대에서 댄서가 밧줄을 몸에 걸고 추락했을 때, 사람들은 환호성을 지른다. 왜냐하면 환호성을 질러도 되는 분위기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교수형을 당한 여자와 오버랩되는데, 교수형을 당한 여자를 보기 위해서 대중들은 대중이 아닌 관중이 되어 몰려든다. 누가 사람을 죽이던지, 자살을 하던지, 처형을 당하든지, 무료한 그들에게는 안성마춤인 "관심거리"가 되는 것이다.

 이 심리를 지능적으로 잘 이용하는 변호사 빌리 플린. 그리고 처음엔 몰랐으나 본능적으로 기막히게 체득하게 되는 록시 하트가 이야기를 엮어낸다. 물론 스타에 대한 비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스타라는 것은 대중이 만들어내는 상징으로서 작용한다. 록시 하트는 그런 의미에서 대중들에 의해 자연스레 만들어진 상징이며, 변호사 빌리 플린은 그것을 관리하는 매니저의 역할로 보인다.

 짚고 넘어갈 것은 여기서의 윤리적 의식인데. 굉장히 고루한 이야기처럼 들릴 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윤리적인 것으로 시비를 붙일 수 없는 영화임에는 확실하다. 살인이 무죄로 될 때까지의 과정이 법과 정의로 해석될 수 없는 짜임이다. 살인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 중에서 가장 극단적인 죄악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대중의 "이야기거리"에 대한 갈증과 굶주림 앞에서는 살인마저도 무거운 표정을 짓지 못한다. 그렇다. 더 새로운 사건이 있으면 악마도 잊혀지기 마련이다. 악마가 직접점심나절의 도시에 나타나서 법이라는 저울대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으면 이슈가 되겠지만.

 여기서는 좋다, 나쁘다의 가치판단을 할 여지는 없다. 여러가지로 해석될 수 있는 것이다. 그 중에서 이 작품을 만든 이들이 보는 하나의 관점을 구체적으로, 감각적으로 제시한 것일 뿐이다.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잖아.' 하면 환영이다. 하지만 '어떻게 한 가지로만 생각할 수 있어!" 하고 따지면 곤란하다. 어느 누구도 대중적인 것이 나쁘다고 말한 적이 없는 것이다.
 


3. 쇼.쇼.쇼. - 보여지는 것과 보여주고 싶은 것.
 
 예술적인 것을 단순히 "쇼"라고 생각하자는 것이 아니다. 흔히들 쇼, 라고 하면 헤프닝이나 좋지 않은 의도로서 보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확실히 여기서는 뮤지컬이나 법정에서의 장면들이 쇼.로 나타난다. 심지어는 기절해서 쓰러지는 스스로 만들어낸 임산부의 록시도 잠시 고개를 들고 빌리를 보며 이야기하지 않는가. "이정도면 다들 넘어가겠죠?" 하고. 다분히 스스로도 만족스럽다는 목소리다.

 보여주고 싶은 것은 여러가지다. 본능적으로는 무엇을 보여주고 싶다, 보다 내가 타인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욕망이 우선적으로 작용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보여주고 싶은 것>과 <보여지는 것>이 일치한다면? 오케이. 그 날은 멋진 하루를 보낸 것. 하지만 그러기 위해선 자신의 정체성과 대중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직감해야 할 것이다. 여기서는 그 삼박자가 골고루 이루어진다. 대중들의 속성에 대해서 가장 기막히게 대변하는 인물도 있다. 그 여기자의 이름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그저 대중매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오히려 그녀는 익명으로서 자리잡는 편이 낫다.
 재판이 끝나는 직후의 신호를 기다려, 미리 <유죄>와 <무죄>의 헤드라인의 신문을 찍어놓고 <무죄>를 뿌리며 호의요! 하고 외치는 것도 적나라하다. 사실 이 영화는 여러가지로 치밀한 면을 보인다.

 

4. 재미있는 무대 연출들.

 뮤지컬 영화는 확실히 재미있다. 시종일관 춤과 노래만 나오면 곤란하겠지만, 극 중 상황, 상황과 적절히 매치되는 것은 재미있다. 재미있는 것 뿐만 아니라 꼭 필요하다. <시카고>에서는 스토리의 흐름과 뮤지컬이 분리되지 않고, 장면과 나란히 이어지는 구실을 하기도 하며, 어떤 부분은 좀 더 감각적이고 구체적인 해설의 역할을 겸하기도 한다. 물론 뮤지컬 자체에 매료되어도 좋다. 영화에서의 메시지가 이렇게 종합적 연출로 상징화되는 것을 개인적으로 좋아한다.
 메시지가 우선이냐, 감각적인 연출이 우선이냐, 고 묻는다면 나로서는 대답이 궁색하다. 흔히 영화는 메시지만을 위해 존재하지는 않듯, 뮤지컬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시를 읽으면서 주제만 파악하고 덮는 사람은 그닥 많지 않을 것이다.

 

5. 참을 수 있는 존재의 가벼움.
 
 진지한 이야기를 진지하지 않은 것처럼 꾸밀 수 있다는 것은 내가 가장 부러워하는 점이다. 진지하지 않은 것을 진지하게 꾸밀 수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자연스러운 능청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이것은 코미디라는 것과는 상당히 다르다. 목적이 단순한 웃음 유발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실제로 세상의 모습들이 어떻게 보면 유머스러울 수도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춤춘다. 물결처럼 흔들린다. 구두 소리를 내면서, 혹은 소리를 죽이며. 웃기도 하고, 더러는 흐느끼기도 하며.
 이러한 존재들은 가볍다. 참을만 하다. 참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참을 수 있다는 것쯤은 안다.

 


2004. 1. 25.  unev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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