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버리한 북한군 두 명을 내세워 관객들의 입꼬리를 들추려는 작전을 펼친 영화 <동해물과 백두산이>는 동장군이 휘몰아치는 이때에 따뜻한 여름을 그립게 만든다. 작년 여름을 생각나게 하며 혹은 다가올 내년 여름을 상상하게 하며 지금의 추위를 잠시 잊게 하는 마력(!)을 선보인다.
또 한편의 북한을 소재로 만든 영화, 올해도 이미 북한 소재로 만든 한편의 영화가 최악의 이름을 들먹거리며 추락했지만, 여전히 북한은 우리에겐 가까우면서도 너무나도 먼 그리고 익숙하면서도 생소한 영화적 소재임에는 틀림이 없었나보다.
킬링타임용 영화를 원하는 관객들에게 이 영화는 매우 적격일 것이다. 그만큼 영화는 생각할 필요 없이 그저 앉아서 즐기게 만든다. 지나친 생각 없이 영화를 본다는 것만큼 편안한 관람도 없겠지만, <동해물과 백두산이>는 딱 한 가지만을 가볍게 여겨 아쉽다. 허나 그 아쉬움보다 상대적으로 괜찮은 점도 눈에 많이 띈다.
좋게 말하면 북한 군인의 인간적인 면을 그린 것이요, 나쁘게 말하면 북한군을 물로 봐버린 영화는 신분만 북한군이고, 하는 행동은 빠질 대로 빠진 대한민국 군인의 모습 뺨치는 북한 해군 병사 림동해(공형진)와 외모로 보나 행동으로 보나 나름대로 한 몫(?) 하는 최백두(정준호) 해군함장을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물론 이 둘이 처음부터 사이가 좋았을 리 없다. 허나 그 둘은 같은 날, 같은 시각 모두 남한으로 넘어갔어야 할 운명적 태생인고로 그것이 우연이든 필연이든 한 배를 탄 채 태풍을 만나 남한으로 표류한다. 그것도 한 여름 뙤약볕이 하염없이 내리쬐는 강원도 동해안 (경포대로 보이는) 해수욕장으로.. 그리고 계속해서 벌어지는 기막힌 사건 사연들에 휘말리게 되는 우리의 순진한 북한 병사들...
영화는 이렇듯 뭣 모르고 남한으로 넘어온 북한 군인들이 겪게 되는 에피소드를 아주 유쾌하게 그렸다. 자칫 산만해질지도 모를 많은 출연자들이 걱정이었지만, 예상외로 잘 어울렸고, 곳곳에 감초 같은 까메오 덕에 또 한번 웃을 수 있었다. 중반 이후부터 서서히 드러나는 약간의 감동적인 장면도 눈에 띄는 별다른 군더더기 없이 잘 진행되었다고 보는데, 정말로 딱 한 가지는 짚고 넘어가고 싶다.
우연을 가장해 억지로 끼워 넣은 장면들이 너무 눈에 거슬린다. 그 두 형사는 왜 오징어 거취대를 들이받아야 했으며, 그 넓은 풀밭에서 림동해의 수첩은 어찌 나라의 발 바로 앞에 딱 떨어져 있어야 했을까.. 마지막 장면도 재미있긴 했지만, 어떻게 해서 그곳까지 당도했는지는 정말 풀 수 없는 의문이다.
그래도 영화는 마음에 든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우선 스크린에선 거의 볼 수 없었던 박철, 이재룡, 김원희 같은 배우들을 까메로 잠시만이라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박철과 박상욱 콤비는 출연할 때마다 배꼽을 잡으며 웃을 만큼 ‘리얼’ 그 자체였다.
그리고 왜곡의 눈초리가 있을 법도 하지만, 정겹게 그린 북한 병사들의 남한 표류기 그 자체가 마음에 든다. 이 상황이 실제로 일어났다면 영화상에서 그려진 것과는 차이가 많겠지만, 그들을 적으로 보지 않고 어쩔 수 없는 운명이 그렇게 만든 같은 한민족으로 그려내어 동포애도 살며시 일어난다.
부유한 아버지를 만나 돈 아까운줄 모르고 써대는 딸이 밉다기 보다 자리 지키기에만 능할 뿐, 딸을 그렇게 밖에 키우지 못하는 이기적인 요즘 부모의 모습도 살짝 꼬집고 간다.
단순히 킬링 타임용 영화로 봐도 무방하겠지만,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나만, 우리 식구만, 내 자식만 하는 생각들이 “원래부터 그랬어.”가 아니라 분단의 현실을 안고 살면서 입에 풀칠하기도 힘들었던 세월을 견디어 내며 그토록 가난을 벗어나려 했던 우리 부모 세대 생각의 부작용이 아닐까?!
<도망자>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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