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전반적인 문제점
옛날 속담에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말이 있다. 매트릭스에 이런 현상은 2편부터 나타났다. 1편의 모피어스, 네오, 트리니티, 요원들(그중에서도 스미스), 오라클에 이은 키메이커, 아키텍트, 프랑스인, 프랑스인 마누라, 시온의 의원들과 사령관, 오라클 부하, 모피어스 애인까지 이 영화에 중요하다면서 2편에 등장한 인물들이 대거 3편까지 등장한다. 거기에 시온에서의 마지막 전투에 혁혁한 공을 세우는 16세 소년과 바주카포 쏘는 여자 두명까지.. 이 영화는 등장인물수에 있어서는 적어도 풍요롭다. 하지만 그래서일까. 2편은 영화가 감당치 못할 정도로 인물들의 등장이 폭주하여 뭐가 어떻게 된 건지도 모르게 화면이 지나가버린다.
사실 등장인물수는 1편만으로도 충분히 많았다. 그 이상은 이미 영화나 보면서 즐기러온 사람들의 기억 용량을 뛰어넘어버리게 된다. 각 인물들이 어떤 역할을 하고 어떤 특징들을 가지고 있는지는 아마 웬만한 관객들은 거의 대부분 모르고 지나갔을 것이다. 다만 화면에 그렇게 나오니까 아, 그런가 보다할 뿐이지.. 그런 것까지 신경쓰며 영화볼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어쨌든 2편에서 등장인물수의 폭주에 따른 방황을 충분히 한 것인지 그나마 3편에서는 적절한 수만 나타나는 배려가 돋보였다. (그래도 많았다는 느낌이지만..) 이미 드라마적 구성은 2편에서 물건너간 만큼 3편에서는 전투씬에만 충실했다는 느낌도 든다. 이미 사랑 어쩌고하는 얘기는 포기한듯.. 애당초 워쇼스키 형제가 표현할 수 없는 주제였다.. 덕분에 트리니티가 꽤 빨리 죽어버린다. 그리고 네오도 약간은 허무하게 죽는다. 기계들을 모두 이길 수 있을 것 같던 네오가 겨우 스미스 하나 잡고 끝나버리다니.. 영화가 잘 가다가 허탈하게 되었다고나 할까. 아예 스미스 잡고 돌아가는 척 하면서 함선에 있던 emp한방 먹여서 기계 대장을 잡아버리면 어땠을까 하는 느낌도 든다. 모든 게 지나치게 계획된 대로 스토리 짜여진 대로만 흘러가서 뭘 예측할 수 없다거나 하는 건 거의 없었다.
마지막 장면에 오라클과 아키텍트가 뭐라뭐라 중얼거리면서 영화가 끝나는데 기계들이 약속 이행 안 하면 사실 그만이기도 하다. 골치아픈 스미스와 네오가 한꺼번에 죽었으니 기계들 입장에서는 전력을 재정비해 시온에 다시 들어가면 된다. 마지막 장면에 대한 논란도 상당한 편인데.. 사실 스미스를 그런 식으로 잡을 수 있다면 기계 입장에서는 스미스로 흡수된 인간중 한 명의 플러그를 뽑아버리면 그만인 것이다. 굳이 네오말 들어주고 자시고 할 필요도 없었다. 최소한 시나리오에 관한 한 2편까지는 모르겠지만 3편은 날림으로 만든 티가 역력히 난다. 엉성한 시나리오 덕에 이 영화에서 인간들이나 기계들이나 다 바보들이다. 쉽게 할 수 있는 일을 괜히 어렵게 만든다.
어찌 보면 영화가 2편에서 끝날 수도 있었다. 네오가 아키텍트 잡고 끝내버렸으면 영화가 3편까지 갈 일도 없었다고 본다. 그 고생과 희생을 치루고 아키텍트한테 가서 겨우 몇 마디 말이나 듣고 나와버리다니.. 아키텍트가 뭔 선택을 하라고 하건 무슨 말을 하든 일단 아키텍트 잡고 트리니티 살리러 가도 안 늦었지 않나? 왜 스미스는 오라클도 잡는데 네오는 아키텍트를 못 잡는가.. 답답한 일이다. 2편은 하도 이런 경향이 짙어서(스토리를 질질 끌려는 시도가 강해서) 소장하려는 마음도 안 들었다. 다른 웬만한 sf영화보다 못했다는 느낌이었다. 더구나 게임 운운한 것은 심각했다. 애니 메트릭스까지는 그나마 참을 만 했지만 도대체 영화 한 편 이해하는데 돈이 얼마나 들어야 한단 말인가.. 메트릭스 시리즈를 쭉 보고 있노라면 화면은 물론 각종 cg로 도배되어 리얼하긴 하지만 현실적이란 느낌은 그다지 들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의 끝을 네오가 꿈꾼 것이었을 거라고 예상했던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이 영화와 비교되는 것으로 이퀄리브리엄이 있는데 그 영화도 어느 정도는 유치하고 비현실적이긴 했지만 메트릭스 시리즈 전체의 완성도와 비교하자면 결코 낮지 않는 것 같다. 그리고 그 영화는 최소한 주제가 꽤 참신했다. 메트릭스가 말하는 주제는 오래 전부터 하도 많이 써먹은 얘기들이라 사람들이 수긍하기도 힘들다.. 더구나 제대로 설명되지도 않았다. 사랑이란 주제를 잡았으면서도 왜 트리니티가 네오를 사랑하는지 전혀 나오지 않는다. 최소한 트리니티 입으로 "난 영웅 스타일이 좋다"같은 낯뜨거운(?) 대사라도 늘어놓던지.. 아님 할리우드 식으로 이런저런 일 같이 겪다보니 정이 들었다든지.. 이 영화는 뭐든지 "그냥~"식이다보니 별로 와닿지 않는다.
2. 모방
조금 다른 관점에서 영화를 말하자면 일단 전투씬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웃음으로 몰고 갔던 인정사정~의 패러디 장면이나 드래곤볼을 연상시키는 부분에서 우리는 장엄하다거나 스펙타클하다거나 이런 생각보다는 살포시 웃기게 만든다. 최소한 한일의 관객들이라면 그랬을 것이다.
모방이든 패러디든 아니면 오마쥬든 어느 정도란 것이 있는 것이다. 매트릭스에 드래곤볼이 웬 말인가.(2편에서 강도높은 배드씬을 찍었다고 떠들던 그 매트릭스가..) 그 많은 애니메이션중에 하필... 공각기동대도 있고 카우보이 비밥도 있고 많은데..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성경 내용을 같이 들고 나왔던, 말하자면 경쟁작이나 다름없던 에반게리온을 모방한 듯한 장면을 볼 때쯤에는 당혹감을 감출 수가 없었다. (에반게리온 닮은 장면은 일부러라도 피했어야 했다) 워쇼스키 형제는 모든 자존심을 내팽겨친 것인가.. 그들은 배알도 없나..
과거에 미국의 스타워즈 시리즈를 일본의 많은 애니메이션들이 모방했던 것처럼 역으로 미국의 주류 영화가 일본 애니메이션이나 한국 영화를 따라하는 현상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왜 워쇼스키형제는 자기들의 잘난 sf적 토대나 뿌리를 제치고 동양의 전투씬들을 모방하려 했을까? 약간 이해가 안 간다.. 뭐 세계적 관점에서 그렇게 했다고도 볼 수 있겠지만 미국에 그런 토대가 전혀 없었던 것도 아니고.. 어쩌면 미국인들은 일본의 애니나 한국의 영화나 문화를 시기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남들것을 시기하다 보면 자기네 것이 아무리 잘나고 더 뛰어나도 그것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 이런 경우가 아니길 빈다. 그래서 그런지 외국에서 이 영화는 극악의 혹평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당연한 결과다. 누가 좋아라고 하겠는가. 메트릭스 시리즈가 3편에서 끝나길 필자도 빈다. 4편도 제작된다면 또 뭘 패러디하려들지 감당이 안 된다... 이 영화가 코메디인가?
이 영화에서 가장 가슴아픈 패러디가 네오가 눈멀었을 때 마치 '반지의 제왕'의 한 대목을 패러디한 듯한 부분이었다. (반지를 꼈을 때와 비슷한 장면이 나온다) 워쇼스키형제는 그야말로 닥치는 대로(장르 구분조차 없이) 베끼고 있는 것이다..
어쨌든 센티넬도 많고 등장인물들도 많고 화면은 거의 정신이 없다. 물방울까지.. 재미는 있었다. 2편이 1편을 완전히 잊게 했던 만큼 3편은 최소한 달라보였다. 우리는 네오가 된 것이다. 새롭게 변한 메트릭스 세계가 보이는가? 눈을 감아도 보일 것이다.
이 영화의 소제목인 revolution을 느끼게 해주는 장면이 전투 끝나고 사람들이 우르르 모여 마치 광장에 혁명군이 모여 연설을 듣는 것처럼 예~ 혹은 와~ 등의 감탄사를 남발해주는 부분들이었다. 팔 드는 것까지 한 손에 총든 혁명군을 빼닮았다. 아, 그래서 revolution이라고 했구나.. 이 정도만 하고 넘어가자. 전혀 혁명적이지도 회귀적이지도 않았던(뜬금없이 '네오=스미스' 공식이 왜 튀어나오나.. 어이가 없다. 인간의 마지막 희망이 고작 스미스 잡는 프로그램에 불과했단 말인가.) 이 영화를 그나마 이해하기 위해서는..
3. 인물
시리즈 전체 스토리를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알고 넘어가야할 부분으로 스미스에 관한 것이 있는데 2편 어디에 <한편, 에이전트 스미스는 네오에 대한 불타는 복수심으로 시스템에 불복종하게 되고, 그 결과 삭제될 위기에 처한다. 이제 그는 도망자의 신세가 되어, 계속 네오를 추적한다. 한때 자신이 그토록 경멸했던 인간성을 어느새 자기 자신도 갖게된 스미스는 복수를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데... >의 장면이 있는가.. 내가 잘못된 버전으로 2편을 본 것인가? 아니면 게임이나 애니 매트릭스에 있는 것인가? 왜 스미스가 네오와 계속 부딪히는지 2편내내 설명이 없어서 상당히 궁금해했는데 무비스트의 리로디드 영화 해설을 읽고서야 이해가 되었다. 도대체 감독들은 영화의 스토리를 뭐라고 생각하는 건지.. ㅉㅉ.. 설사 영화를 다 본 어느 관객이 매트릭스의 스토리를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그를 탓할 일이 아닌 셈이다. 절대적으로 빠져서는 안 되는 장면들이 무더기로 빠져있으니.. 2~3편을 잇는 네오가 중간세계로 들어가는 장면은 어디다 빼놓은 것인가..
스미스만큼이나 중요한 네오라는 존재의 정체성도 1,2,3편 모두 다 조금씩은 다르다. 가장 큰 주인공의 정체성이 흔들리니 다른 인물들은 오죽하겠는가. 1편에서 네오는 매트릭스를 만들 때부터 가장 내부에 있었던 원초적 에너지 어쩌고에서 나온 인물(he, the one, messiah)로 표현되지만 2편에서 네오는 아키텍트가 만든 6번째 메신저로 나온다. 그리고 3편에서 네오는 스미스와 대칭점이 되는 인물이란다...=.=;; 이 변화가 느껴지지 않는가.. (감독이 완전 멋대로 바꾸고 있다..) 갈수록 네오의 위상은 격하되고 있다. 대신 주변인물들이 갈수록 많아지고. 현실적으로 네오는 잊을 만 하면 슈퍼맨처럼 나타났다가 쌈 끝나고 잠시 뻗어있다가, 사람들 고생하면 또 함 나타나서 도와주는 존재인 것이고.. 단지 그가 기적을 만들어줄 것이란 것만 변하지 않을뿐. 시온이란 곳의 의미도 끊임없이 변한다. 처음엔 모피어스 등을 파견하여 기계 문명과 마지막까지 대치하고 있는 인류의 마지막 보루쯤으로 나오다가 갑자기 아키텍트가 심심풀이 땅콩처럼 재건과 파괴를 계속하는 별 대수롭지 않은 장소로 의미가 변질된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1편에서 요원들이 네오나 모피어스 붙잡고 시온 들어가는 코드 가르쳐달라고 야단떠는 장면도 웃기는 장면이 되버린다. 아키텍트가 시온도 재건했다면 코드 어쩌고를 모르겠는가.. 설마.. 그리고 어차피 부셔서 파괴할 거 물어봐서 뭐하는가.. 시온 들어가는 입구도 내부에서 알아보고 거의 수동으로 열어주는 형식이지 외부에서 코드 입력해 들어가는 형식도 아니었다.. 도대체 그 장면이 왜 나온 건지..
이 영화에서 의미가 변하지 않는 존재는 별로 없다. 도저히 연결된 시리즈라고 보기 힘들 정도로.. 의미 변화가 극심한 이런 영화에서 해석은 거의 무의미해지고 덧없어져버린다. 금새 또 바뀌는데..
이 영화의 논리적 오류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중 가장 극적인 오류들에 대해 알아보자. 매트릭스 영화의 시대적 배경은 2199년이란다. 그러면 매트릭스가 처음 생긴 것을 최소한 2050년 정도로 잡더라도 140년 정도의 시간이 매트릭스의 역사가 되는데 140년 동안 6번이나 네오가 나오자면 한 번에 23년 꼴이 된다. 시온이나 그 안의 사람들을 보고 있자면 도저히 20여년만에 모인 사람들 같지는 않다. 2400년 정도라면 또 모르겠지만..
결국 이런 문제점들을 억지로 끼워맞추자면 architect가 네오에게 구라쳤다고 봐야 된다. 그의 입장으로는 네오가 자기를 한 대 칠 거 같으니까 뭔 말도 안 되는 소리라도 해야했을 것이다. 아키텍트의 말을 100% 믿는 네오도 참 어이가 없지만.. 좌우간 the one이었던 네오가 아키텍트에게 몇 마디 말 들은 후 완전히 사람이 변해서 별 볼일 없는 인간으로 전락한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귀가 얇아도 정도가 있지.. 성경식대로 말하자면 예수님이 로마군에 끌려간 후 빌라도 총독이 "당신은 메시아가 아니야"하니까 예수님이 "아, 나는 메시아가 아니구나"하고 실망해서 돌아왔다는 정도가 될 것이다. 사실 2편의 이 때부터 이 영화가 은근히 코메디처럼 된 것 같기도 하다..
인물에 관한 얘기가 나온 김에 architect가 어떤 존재인지 알아보자. 영화내에서 그에 대해 언급하는 부분은 그가 매트릭스의 모든 것을 창조했다는 대사 정도가 전부이다. 그가 기계 대장(3편의 고슴도치 기계)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혹자는 아키텍트가 중간보스쯤일 거라고 보기도 한다. 또 혹자는 아키텍트는 고도의 상징적 존재로서 인도 철학이 어쩌고 해서 나온 인물이라고도 하고, 오라클이 불확실성 존재임에 비해 확실적 존재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 모두가 아키텍트를 명확히 정의내리지 않아서 발생한 사태이다. 필자도 이 자리에서 단언하기는 매우 힘들다. 내가 뭐라고 하든 감독이 나중에 아니라고 딴소리해버리면 그만이다. (나의 답이 실제 그들의 처음 의도에 근접했다 하더라도) 내가 보기에 아키텍트는 기계들의 중요 sw인 것은 사실인 것 같다. 그가 네오를 6번째 메신저라고 하니까 고슴도치를 방어하는 미사일들도 네오의 손놀림에 파괴되는 것을 보면 확실히 아키텍트가 고슴도치일 확률이 매우 높다. 아니라고 하면 골아파진다.. 그렇긴 해도 여운을 남기는 것이 고슴도치가 네오를 신뢰하지 못하는 부분이다. 편안하게 소파에 앉아 네오보고 선택이나 하라고 중얼거리던 아키텍트가 이렇게 불안해하다니.. 전쟁도 거의 다 이기고 있는 판국에.. 어쩌면 고슴도치가 전쟁을 총괄하는 중간보스이고 그보다 더 큰 존재가 아키텍트일지도 모른다.
2편부터 꽤 중요해진 트리니티에 관해서도 언급해보자. 혹자는 트리니티가 네오를 프로그래밍한 프로그래머라고 보기도 한다. 자기를 좋아하게끔 정신을 프로그래밍해놓고 네오 같은 잘생긴 외모의 육체에 넣어서 사귄다라.. 엽기녀라 불러도 될듯하다..=.=;; 결론은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 트리니티는 영화에서 보여주는 것이 다일 것으로 사료된다. 더불어 트리니티는 이제는 한물 간듯한 매트릭스 액션을 3편까지 구사하는 인물로 나온다. 다른 이들이 드래곤볼 액션과 전형적인 기관총 사격 액션에 심취해있을 때 오로지 트리니티만이 매트릭스 액션을 계속한다.
4. matrix
matrix란 무엇인가. 사전적 의미는 꽤 다양하다. 주형, 모형, 자궁, 모체, 도선의 회로망, 행렬... 영화의 매트릭스는 기계들에 잡혀있는 인간들을 위한 가상 세계이다. 이 가상 세계에 아키텍트, 오라클 같은 기계들의 중심 세력들은 나와도 그만 안 나와도 그만이다. 자신들의 보안이나 위험방지를 위해서는 안 나오는 것이 좋았을 것이다. 인간들 위해 만든 가상 세계에 굳이 자기들이 들어가고 말고 할 필요도 없었다. 특히 2편에서 감독이 쓸데없이 매트릭스와 네트웍의 성격을 부합시키려는 시도를 했는데, 감독은 가상 현실과 네트워크의 차이점을 다시 공부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어떻게 해서 매트릭스가 네트워크와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됐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쓸데없이 해커 타령해봐야 매트릭스가 네트워크적 특성을 가지게 되는 건 아니다. 네오가 슈퍼맨이 된 것이 해커기 때문이냐 the one이기 때문이냐를 놓고 논란이 일어날만 하지만.. 어쨌든 감독이 지나치게 의미 확대를 시키고 변화시키다보니 내용이 자꾸 엉뚱하게 꼬이고 엉망이 되버렸다는 느낌이다.
matrix에서는 어떤 일이 생기는가. 현실세계에서 전자 현미경으로 사물을 관찰하면 전자나 원자가 보이지만 매트릭스 안에서 사물을 관찰하면 가장 낮은 단위에 가서는 폴리곤이 보이게 된다. (3d에 관심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필자의 말이 이해가 될 것이다) 매트릭스에서는 숨이 막혀 죽는 일이 없다. 매트릭스는 어디까지나 가상 세계이기 때문에 굳이 공기가 필요없다. (1편에서 나온 설명임) 매트릭스 안에서는 뇌사 상태나 식물인간 상태가 존재하지 않는다. (뇌사되었다는 착각일 뿐 실제 육체도 뇌사된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매트릭스에서는 기본적으로 질병에 걸리지도 않는다.(병에 걸렸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5. 그밖에
군사적 관점에서 봤을 때 시온군은 무기 활용도가 지나치게 낮다. 거의 막판에 emp로 센티넬군을 대량으로 잡았을 때가 사실 호기였다. 이때 바닥에 떨어진 기계군들에게서 레이져 무기를 뜯어다 자기들이 썼으면 시온군에게도 꽤나 승산이 있게 된다. 사령관이 밑도 끝도 없이 모피어스 일행에게 잘못했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된 처사이다. 그리고 인간들쪽도 꽤나 진보된 기술이 있는 것 같은데 겨우 총탄이나 사용하다니.. 상대방이 레이져를 비롯한 온갖 무기로 대시하는데 너무 떨어지는 거 아닌가.. 아님 주워서라도 쓰든지.. 위에서 바주카포 얘기가 나왔는데 센티넬의 대형 굴착기는 유도 미사일 정도로 잡아줘야 하는 거 아닌가..
사람들이 약간 혼동하는 부분이 네오가 현실세계에서 기계들을 일정량 이상 컨트롤(부시거나 멈추게 함)할 수 있으니까 네오는 신의 영향하에 있다는 식의 엉뚱한 해석들을 하는 것 같은데.. 꼭 그렇지만은 않다. 기계 중심 세력이 네오에게 메신저 같은 꽤 큰 권력을 주었다면 조그만 기계들을 컨트롤할 수도 있는 일이다. 네오가 조그만 놈들은 잡으면서 큰 놈들은 못 잡는 장면을 보면 그것을 확실히 알 수 있다.
3편에서 갑자기 나온 '인간과 기계의 사랑'얘기는 기본적으로 성경 대목중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과 상통한다. 또한 예수님은 7번인가 용서하라신다. 그러면 기계들이 시온에 쳐들어왔을 때 그 기계군에 저항하지 말고 다 죽어야만 했을까? 이와 대비되는 것으로 기독교에서는 자살을 꽤나 싫어한다. 한마디로 자기를 죽이지 않는 범위 내에서 상대방을 용서하고 이해하라는 뜻이다. 기독교의 사랑은 이해나 배려란 뜻에 더 가깝다. 매트릭스의 기계들은 단순한 기계가 아닌 생존 의지가 있는 기계들이다. 즉 이해나 배려가 약간은 필요한 존재라는 뜻이다. 그래서 그런지 기계들을 다 때려부술 것 같았던 네오도 갈수록 순하디 순해진다.
매트릭스의 스토리중 가장 터무니없는 것중의 하나가 태양광선을 인간들이 막아버리자 기계들이 인간을 건전지로 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태양을 막아도 기계들이 우주로 인공위성을 쏴서 태양열을 얼마든지 활용할 수 있다. 더구나 단순히 전기만 얻자면 석유, 석탄, 원자력, 조수간만의 차(달에 의한 에너지)나 지열(지구내부 에너지) 등 태양에너지 이외의 에너지도 꽤 많은 편이다. 오히려 태양에 의해 직접적으로 에너지를 공급받는 전기 자원이 별로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태양에 의해 주요 에너지를 공급받는 것은 기계가 아닌 인간이다.(식물의 광합성을 통해 산소를 공급받는다) 기계들이 태양광선을 막아버렸다면 이해가 될 것이다..
6. 주제
매트릭스의 주제는 전체적으로는 기계 문명에 관한 고찰과 사랑이다. 사실 이런 식으로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 보면 하나도 못 잡는 경우가 많은데 매트릭스가 딱 그렇다. 거기다가 이런 주제뿐만 아니라 다른 주제들도 여기저기서 따와서 암시란 형식으로 덧붙이고 있다. 원래 암시란 주제가 잘 드러나지 않은 상황에서나 의미가 있는 것이지 매트릭스처럼 뻔히 주제가 다 나오는 영화에서는 별 쓸모가 없어진다. 그냥 지나가는 복잡한 얘기 정도로 끝나버리기 십상이다. 매트릭스에 집어넣은 암시가 무슨 우주론적 담론이든 동서양 철학이든 그것이 영화의 전반적 주제로 승화되지 않고 그냥 덧붙여진 에피소드에 불과하다면 사실상 큰 의미는 없다고 봐야 한다.
필자가 최근의 영화를 보는 관점중에 movie냐 clip(영화적 용어로는 scene이라고 볼 수도 있다)이냐를 자주 보곤 하는데, 무비는 클립들이 일관성있게 더해진 형태이다. 만일 클립들을 여기저기서 구해다가 그냥 합쳐놓으면 그것은 그냥 클립의 합일뿐 무비가 되지는 않는다. 그것이 철학적 clip이든 만화적 clip이든 합해서 movie가 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7. 어색해져버린 광고
어쩌면 주제보다 더 중요할지도 모르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매트릭스 시리즈는 과연 광고처럼 신세기의 새로운 복음서인가? 아니면 기존의 복음서를 패러디한 것인가.. 필자가 보기에는 매트릭스는 기존의 복음서를 현대적 스타일로 재구성한 것일 뿐이다. 네오의 죽음에 대해 사람들이 짜증내는 이유중 하나도 새로운 복음서라면서 왜 기존 복음서의 스토리를 그대로 차용하느냐는 의문 때문일 것이다.
뭐 세상에 광고대로 다 나오는 영화가 어디 있겠는가만은 그래도 몇몇 게시판의 글들을 읽어보면 (광고 때문에) 착각하는 사람들을 흔하게 발견할 수 있다. 사실 이 영화는 착각하기 딱 좋은 영화이기도 하다.. 우선 이 영화가 새로운 복음서이기 위해서는 성경의 스토리라인을 최대한 피했어야만 한다. 트리니티, 스미스요원의 등장은 그런 면에서 약간 신선했다. 예수님에게는 없던 애인이 등장하고, 예수님이 그냥 물러가라고만 했던 마귀들과 정면으로 싸우는 새로운 메시아의 모습은 자못 관객들의 마음을 부풀게 했다.
하지만 워쇼스키 형제가 몇 년 사이 무슨 생각을 한 건지 신복음서 내용은 거기서 stop시키고 2,3편에 이르러서는 되도 않은 네트웍 얘기, 프로그램 얘기, 철학 얘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신복음서를 갈망하던 사람들은 대실망을 했을 것이다.
그래도 1편의 황당한 오류는 어느 정도 해결했지 싶다.. 1편의 마지막 장면이 기억나는가.. 네오가 매트릭스에 뭐라뭐라 얘기하는 장면.. 매트릭스는 그냥 인간들의 가상현실일 뿐인데 거기다 대고 그런 얘기를 중얼거려본들 무엇이 달라지고 기계들이 어디 쫄기나 하겠는가.. 감독들이 이 문제를 눈치챈 건지 3편부터는 확실히 현실 세계를 중심으로 스토리가 진행된다.
8. 아직도 남아있는 황당함
수많은 사람들이 착각했을 법한 네오와 고슴도치 기계의 협상과 그 결과에 대해 아주 말이 많다. 몇몇 자료를 이용해 협상 내용을 소상히 알아보자.
<해야 할 말만 하겠습니다
그 다음엔 당신 원하는 데로 하시오 아무도 당신을 막지 않소
말해봐!
"스미스" 프로그램은 당신 통제 불능이오
곧 그는 이 도시와 매트릭스를 파괴할 거요
당신은 막을수 없소
-하지만 난 할 수 있소 -우린 네 도움 필요없어!
네 도움따윈 필요없다구!
그럼 내가 실수했나보군 그럼 지금 날 죽이시오
뭘 원하는가?
평화>
오오.. 이렇게 단순할 수가.. 이토록 복잡한 내용의 영화의 가장 중요한 협상 내용이 겨우 이 정도 대사에 불과하다니.. 놀랄 수밖에 없다. 어쨌든 여기서 우리는 평화란 것 이외의 어떤 정보도 얻을 수 없다. 그리고 네오가 말 꺼내지도 않은 내용을 기계쪽에서 넘겨 짚어서 마지막 오라클과 아키텍트의 대사에서는,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할꺼야?
누구?
갇혀있는 사람들
분명 이제 그들은 자유지
약속 하는거야?
내가 뭘로 보이나? 인간?>
라고 하여 알듯 모를듯하게 사육되는 인간들까지 풀어주려고 한다. (이 부분도 해석하기에 달려있다. 갇혀있는 사람이란 것이 매트릭스에 갇혀있는 사람들을 의미하는지, 아니면 센티넬군에 갇혀있는 시온군을 의미하는지 명확하지 않다. 필자는 처음에 시온군을 말하는 줄 알았다. 영화 맥락을 보더라도 도저히 매트릭스 사람들을 의미하는 것 같지는 않다..) 이게 어찌된 사연일까.. 아마도 기계들도 인간 사육하기가 귀찮아졌나보다.. 대사의 함축이 도를 넘어서 필요한 내용까지 모조리 잘라버리고 그저 관객들은 끼워맞추기만 해야하다니.. 필자가 보기에 아키텍트는 인간이 아니라 바보로 보인다.. 어쨌든 황당하다..
솔직히 이 영화는 짜증날 정도로 모든 대사와 의미가 불분명하고 애매모호한데 워쇼스키 형제들이 앞으로도 이런 식으로 영화를 찍는다면 계속 성공하리란 보장은 없다고 본다. 이런 애매모호함으로 인해 애써 집어넣은 철학적 날카로움도 무뎌져버리고 그저 그런 의미로 퇴색해버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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