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계인과 UFO등은 언제나 흥미를 이끌어내는 소재임에 틀림없다. [그것이 알고싶다]류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시청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재탕, 삼탕을 일삼는 것이 바로 외계인의 출현이라든지 외계인의 해부 장면같은 진부하고 해묵은 소재이다. 그러나 낯선 이방인의 모습에 항상 돌리던 채널을 멈추고 어느새 집중하는 것은 비단 나뿐만이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케이-펙스>는 주인공이 스스로를 외계인이라고 주장하는 설정을 통해 세인들이 쉽게 느끼는 이방인에 대한 호기심을 기저에 깔고 출발한다.
지구에서 1천 광년 떨어진 [리라 좌]에 속한 [케이-펙스]라는 행성에서 왔다는 한 남자가 정신병원에 들어온다. 지구의 빛은 너무도 밝다며 항상 선글라스를 쓰고 있는 이 남자의 이름은 [프롯(케빈 스페이시)]. 이 '환자'를 담당하게 된 정신과 전문의 [마크(제프 브리지스)]는 처음에는 그를 단순한 미치광이로 치부하지만 그의 논리적인 언변과 석연찮은 분위기에 생각이 바뀌게 된다. 갖가지 약물치료에 반응이 나타나지 않고 인간이 느낄 수 없는 자외선을 감지하는 [프롯]은 분명 보통 사람은 아닌 것. 점점 [프롯]의 매력에 빠져드는 [마크]는 [프롯]이 어떤 계기로 과대 망상을 하게 되었다고 생각하고 그를 돕기 위해 과거를 추적하기 시작하는데..
<케이-펙스>는 어찌 보면 1975년 작 <뻐꾸기 둥지위로 날아간 새>(이하 뻐꾸기..)와 닮아있다. 극중 정신병동이라는 소외되고 구속되어 있는 집단에 스며들어 활력소가 되는 주인공들이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는 점에서 통하는 점이 있다. <뻐꾸기..>에서 [맥머피(잭 니콜슨)]가 권위적인 수간호사에게 억눌려 있던 다른 환자들을 자유분방한 행동을 통해 변화시킨 반면 <케이-펙스>에서 [프롯]은 인간적인 따뜻함에서 우러나온 관심으로 다른 환자를 점점 변화시킨다. 또한 영화의 끝 부분에서 [맥 머피]의 평소 바람대로 정신병원을 탈출하는 [인디언 추장]이나 온데간데없이 사라지는 <케이-펙스>의 [베스] 또한 닮은 구석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두 영화에서 볼 수 있듯이 한자리에 고여있어 미래가 불투명한 사회에서 필요한 것은 외부로부터 오는 자극이란 생각을 해보았다. [프롯]은 모든 생물은 '자연 치유 능력'이 있다고 하면서 별도의 약물 치료 없이 몇 가지 조언으로 다른 환자들의 병세를 호전시킨다. 여기서 이안 소프틀리 감독이 말하고 싶었던 것은 외계인 [프롯]을 통한 우리 사회에 대한 자극이 아니었을까. [프롯]은 '이해 할 수 없을 정도로 잘 연명해 가는' 인간들을 지켜보기 위해 지구에 왔다고 한다. 그가 메모지에 연필로 끄적이는 '보고서'는 단순히 과일들의 이름과 맛같은 것들을 적은 낙서가 아닌 객관적인 시각으로 인간들을 바라보는 냉철한 시선이었을 것이다. 극중 [프롯]이 한 말은 아직도 뇌리에 남는다. '인간이 (멸종하지 않고) 이만큼까지 왔다는 것은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이 작품이 주는 또 하나의 메시지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 대한 것이다. 인류의 문명이 디지털 일변도로 흐르기 때문인지 사람들 사이에서도 '구분'이라는 것이 더 심해졌다. '나' 아니면 '너', 이것도 아니면 '다른 사람들'로 구분하는 것이 습관화된 것이다. <케이-펙스>에서 이상행동을 보이는 사람은 바로 정신병원으로 보내지고, 병원에서도 의사와 간호사들은 '저 사람은 정신병자'라는 안경을 쓰고 환자들을 바라본다. 이런 구분을 전복시키는 것이 [프롯]이다. 그에게는 오직 똑같은 인간이라는 사실, 각자 다른 개성이 있을 뿐 같은 종이라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다. 그가 말하는 '자연 치유 능력'이란 기적의 소생술도, 초능력도 아닌 사람들을 차별이 없는 관심 어린 시선이었던 것이다. 정확성을 위해 디지털로 치닫는 인류 문명도 결국엔 허점많은 아날로그 인간들이 만들어낸 것들이기에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서 만들어지는 이런 문제들을, [프롯]은 지적하고 있는 것이리라.
<케이-펙스>는 스스로 장르의 경계를 넘어섰다고 말한다. [프롯]의 정체에 대한 의구심은 스릴러의 성격을, [마크]의 가족사에서 엿볼 수 있는 아들과의 갈등은 휴먼 드라마의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별개의 이야기가 하나의 틀에 배열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틀 속에 여러 사람들이 각자의 이야기를 가지고 움직인다. 자칫 산만해질 수 있을 법한 이런 구성은 이안 소프틀리 감독의 짜임새 있는 연출로 극복된다. 새끼줄을 꼬아가듯 여러가닥의 이야기를 단단한 하나의 줄로 꼬아내는 솜씨는 분명 대단하다. 사이사이에서 드러나는 메시지는 더욱 이 영화에 집중하게 되는 요소다.
나는 <케이-펙스>를 보면서 한편의 동양화를 보는 느낌을 받았다. 할리우드 영화를 보면서 동양화라.. 분명 어울리지 않는 말이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느낄 수 있었던 생각할 빌미를 주는 여백이라든지, 영화의 종반부에서 사람들마다 다른 생각을 할 수 있게끔 내용을 설정한 것은 여운을 주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이 영화를 보면서 진한 감동을, 어떤 이는 허탈함 내지는 싱거움을 느낄 수도 있겠다. 하지만 할리우드에서도 명실공히 연기파 배우로 인정 받는 [케빈 스페이시(프롯 역)]와 [제프 브리지스(마크 역)]의 궁합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뿌듯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한 남자가 강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습니다.. 빠른 물살에 정신이 없는 그는 자신이 어디로 흘러갈지 알 수가 없습니다.. 자신이 닿게될 종착지에 무엇이 있을지 짐작도 할 수 없는 막연한 현실에 몸서리를 치며 그렇게 흘러갑니다.. 물에 맡긴 그는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그렇게 흘러갑니다..
하지만.. 강 어귀에 강줄기를 바라보는 또 한 명의 사람은 강이 흘러가는 너머의 끝을 볼 수 있습니다.. 강물에 휩슬려 떠내려가는 그에게 손을 내밀 수 있는 이 남자는 과연 누구일까요.. 그리고 강물 속 사람은 또 누구일까요.. 한번 생각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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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펙스(2001, K-Pax)
제작사 : Lawrence Gordon Productions, InterMedia Film Equities Ltd. / 배급사 : (주)시네마 서비스 공식홈페이지 : http://www.k-pax.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