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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ys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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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8-09 오후 2:13: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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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도 공포영화의 속편이 드디어 3편까지 제작이 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작품에 대한 흥행과 호평이 있었고, 또한 그런 기대에 부합하는 영화를 제작할수 있는 역량있는 감독들이 계속적으로 배출되고 있다는 반증이 아닐까 싶네요. 이런 전제하에서 여고괴담 3편-여우계단의 상영은 한국 영화사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에서 공포영화는 그 제작여건상에서도 그렇지만, 소재발굴의 실패, 천편일률적인 소재 및 주제의식의 구현등으로 찬밥신세를 면치 못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다가 공포영화 흥행의 기폭제가 된것이 바로 여괴괴담 1편이었죠. 부정한 교육현실과 그릇된 교우관계에서 비롯된 비극적인 내용을 성공적으로 표현했다고 평가를 내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5년여의 세월이 지났고, 이제 3편이 나왔습니다. 관객들의 기대와 안목은 높아졌고, 이것을 어떻게 수용하고 만족시키고자 노력했을까요? 한번 살펴보죠.
*여우계단-강요된 꿈과 좌절된 현실
이 영화는 1,2편과는 어느정도 차이가 있는 극적 전개를 해나가죠. 전 이것을 시간의 물리적 흐름에 따른 순차적 전개라고 부르고 싶습니다.(이것이 나중에 보면 이 영화의 발목을 잡게 됩니다) 초반부에서 결합된 인간관계가 누구이고(소희와 진성) 그 축이 무엇인지 보여주죠.
그리고 이것이 단지 우정에 의해 매개되는 공고한 인간 관계가 아니고 인생의 진로와 순위, 성공에 의해 붕괴될 수 있는 갈등의 관계이며 그것이 진행형임을 보여줍니다. 그렇기에 세계적인 발레리나라는 강요된 꿈보다 현재의 우정이 너무나 소중한 소희와 어떻게든 발레리나로서 성공하고 싶기에 소희를 이겨보고 싶은 진성의 관계가 파국에 치달을 것임은 누구나 예견하게 되죠. 그러나 결국 앞에 펼쳐지는 것은 좌절된 현실이죠. 진성에게는.... 이것을 바꿀수 있는(마치 인생역전처럼) 대안이 바로 여우계단이죠.
매우 자극적인, 그러면서도 매력적인 유혹이 아닐수 없는 여우계단. 마침내 딛고 올라선 계단 끝에서 소원을 빌면 그것이 이루어진다는 것. 그런데 그것이 다른 사람의 인생의 실패를 결과로 하는 것이라면? 더 나아가 그것이 한 친구의 인생의 파괴와 죽음을 요구하는 것이라면? 이처럼 여우 계단은 대안적 탈출구가 없는 세대들의(단지 청소년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꺾어진 꿈과 좌절된 현실을 은유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내가 잘되기 위해선 남의 인생이라도 망가뜨려야겠다고 소원을 빌게되는 것이겠죠. 자, 소원은 이루어졌을까요?
*전혀 새롭지 않은 귀신의 등장, 그리고 해원(?)
이 영화에서 귀신의 존재적 의미는 무엇일까요? 존재라고 하니 좀 그렇긴 하지만, 하지만 여고괴담에선 그렇습니다. 특히 1편에서 극명하게 드러나는 것인데, 마치 인간처럼 그 변화된 존재근거에도 불구하고 같이 실존합니다. 어떠한 인성을 가지고 그것을 관계속에 매개하고 투영하려는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죠. 즉 귀신은 Illusion(환영)이 아니고 실존이 되는 것이죠. 나에 대해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이 아니고, 전체 관계와 구조속에서 의미를 가진다는 것이죠.
이렇다 보니 귀신은 그 전형성에서 탈피하긴 했지만(한을 품고 죽으니 귀신이 되었더라는...), 그 속성은 매우 모호합니다. 이제 우리가 보게되는 귀신은 정말 원귀인지? 아니면 악귀인지? 무엇때문에 인간속에 있게되는 것인지가 모두 불분명합니다. 그러니 그 해원(원을 풀어서 귀신을 원래의 자리로 돌려보낸다는 것)의 대안은 있는지? 그리고 그렇게 된 것인지조차도 역시 불분명합니다. 영화가 내내 진행되는 속에도 이러한 성격과 존재에 대한 의문이 해소가 되지 않습니다. 혹자는 영원히 함께 있기 위해서 귀신으로 된것이라고 이야기 하겠지만, 그렇게 봤을 때는 역시나 그 성격이 모호합니다.
또한 그녀의 등장 또한 새롭지 않습니다. 이제는 여기저기서 하도 많이 써먹어서(주성치 영화에도 나옵니다) 식상한 약간 기듯이 스물스물 나타나는 것도 놀랍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 영화는 중반을 지나면서 약간 우왕좌왕하기 시작하는데 거듭 공포적 장치를 쓰면서 관객을 놀래키기위한 노력을 보여줍니다. 왜 이러는 걸까요?
*영화의 단절-극적 구성과 전개의 문제
사실 이 영화는 소희가 죽고 진성이 콩쿠르에서 수상했을 때 극적 전개의 대단원이 끝난 셈입니다. 하나의 단절이 생긴 셈이죠. 이 단절을 딛고 후반부의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바로 귀신의 등장과 함께 말이죠. 그러다 보니 극의 전개의 주요 구성원이 소희가 되고 소희에 의해 인간이 매개되는 현상이 일어나게 되고 여기서 해주의 빙의가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이죠. 2번이나 여우계단에 섰지만(전반에 1번, 후반에 1번), 그 댓가는 크죠. 즉 실제 현실의 문제는 원인 해소가 된 것이 아닌 내연하는 갈등의 증폭과 그것이 결국은 파국으로 가게되는 결말을 그리게 되는데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해주는 빙의가 된것이 아니고 다중인격의 장애를 보이면서 소희를 둘러싼(이미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애로사항을 해결하기 위해서 주력하였다는 것이죠.
이렇게 소희의 출몰과 실제 빙의가 아닌 해주의 인격 장애에 의한 파국이 두가지 축으로 자리잡게 되고, 여기서 진성은 어떠한 주체도 되지 못한채(당연합니다. 이야기는 전반부에서 이미 마무리가 되었고, 진성의 역할은 끝났기 때문이죠) 다가올 비극적 운명을 그냥 기다립니다. 그녀도 후반에 다시 여우계단에 서지만, 아무것도 이루어 지지 않죠. 정말로..... 즉 주체성이 탈각되었기 때문인데, 그녀는 이렇게 저렇게 나타나는 귀신에 놀라고 치이면서 계속 당하는 형국이 되고 주인공임에도 불구하고 해결의 실마리는 본인손에 없는 희한한 모습이 연출됩니다. 이렇게 극이 전개되다 보니 후반부에서 여러가지 무리수가 생기고 그것이 드라마와 괴담의 충돌로 나타나게 됩니다. 이렇듯 단절을 메우는 것이 여우계단과 극 후반부의 반전인데요.... 이 반전은 성공할까요?
*미흡한 작은 반전-악순환은 막을수 없다?
하지만 두사람의 관계가 결정적 파국을 맞게되는 계기가 됨을 보여주는 이 반전은 영화의 후반부의 극을 절정으로 끌어올리지 못하고 단지, 아... 그랬었구나 라는 하나의 소결론을 맺는 것으로 그치고 맙니다. 이렇게 되니 실제 단절이후 전개되어 오는 극적 구성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게 되고 이를 보는 관객은 맥이 빠지게 되는 것이죠.
그리고 그 종반에서 영화는 1편처럼 이 악순환이 계속될 것임을 암시하는 식으로 끝맺고 마는데요..... 이것은 소희의 우정이 사실은 집착에 다름아니었고 결코 건강하지 않았다는 것 이상의 극적 결론을 이끌어 내지 못하고.... 이로인해 인물 성격의 외견상 일관성은 사라지고 이제 학원을 떠도는 원귀와 같이 되면서 그 기운을 퍼뜨리면서 살아가게 될것임을 보여주네요. 결국 진부한 결론을 탈피하기 위해서 이끌어온 후반부의 전개는 이와 같이 또다른 무리수를 낳으면서 끝을 맺게되는 아쉬움을 남깁니다. 어떻게 보면 소희가 칠판에 그려대던 뫼비우스의 띠가 시작도 끝도 없는 영원할 것 같은 관계를 암시하면서도 실제로는 이 괴담의 귀신은 어떠한 시원도 종결도 없이 그렇게 모호하게 남을 것임을 나타내는 것 같아서 좀 찝찝합니다. 그리고 이 시리즈가 영원히 만들어 질거라는... 그런 암시와 함께 말이죠. 새로운 실험이 필요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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