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만이라도 널 이겨보고 싶어"
여우계단- 여고괴담 세번째 이야기
윤재연 감독
우리나라는 장르 시리즈물이 성공하기에는 척박한 토양을 가지고 있다.
일단 장르영화에 호응해줄수 있는 관객층이 얇고 한정되어 있으며, 더욱이 그것이 시리즈로 연장될 경우에는 기존의 지지자들 마저도 등을 돌릴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시리즈 물이 가지게 되는 이점또한 만만치 않다. 일단 무엇보다도 전작의 팬들이 그대로 잠재 관객으로 편입된다는 점이 그러하다. 이는 전작의 흥행이 있어야 가능한 것 이며, 결국 우리나라에서 호러장르의 시리즈 화는 요원한것으로만 보였다.
그런데 언제였던가. 여고괴담이 나타났다.
여고괴담은 여고라는 극도로 불안정한 공간 (그 안을 구성하고 있는 여학생들의 불안한 심리상태, 그리고 그것을 담고 있는 학교라는 시스템의 부당함) 을 배경으로 하여, 여느학교 나 가지고 있을 법한, 그래서 누구나 공감할만한 '괴담' 을 펼쳐놓았다. 결과는 대 성공이었고, 국내에서 호러장르가 돈벌이가 된다는 인식을 심어주었다. 결국 뒤따른 슬래셔 호러물들의 등장은 질적인 성장은 이뤄지지 못했을 망정, 일단은 호러장르 영화의 메이저화를 가능케 해주는 토양을 열심히 일구어 주었다.
그리고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가 있었다.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는 시리즈로 가는 첫번째 작품이었으며, 여고괴담이라는 텍스트가 얼마나 진취적이고 생동감넘치는 실험의 장으로 쓰일수 있는가에 대한 모범 답안이었다. 괴담이라기 보다는, 여학생들간에 펼쳐지는 '인간관계 사이의 아픔과 슬픔' 을 장르영화의 틀속에 담아, 효과적으로 전달해주었으며, 특히 '집단 패닉' 의 영상미는 당시 감탄을 금하 지 못하게 하였던 최고의 명장면이으로써, 지금 생각해보아도 등골이 오싹할정도의 아름 다운 작품이었다. 관계를 맺기도 어렵고, 상처가 필연적으로 따라오게 되는 '인간관계' 라는 태제를 가장 영화적으로 풀어낸 수작이었다고, 몇번이고 부언해서 칭찬하고픈 작품이다. (누구라도 좋으니 나에게 김태용과 민규동을 돌려달라! 이런 작품을 남기고 그들은 지금껏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그리고 지금 여기에 여고괴담 세번째 이야기 - 여우계단 이 왔다.
비가 축축하게 뿌려지는 가운데 서울극장에서의 기자시사회에 참석했다. 일단 결론부터 이야기 하자면 너무나도 안타까운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여고괴담의 시리즈로 편입되기에는 극도로 '평범하다' 그래서 당혹스럽다.
결국 캐릭터의 문제이다.
소희와 둘도 없는 단짝 친구이지만 소희를 한번만이라도 이겨보고픈 진성, 그리고 비만에다가 깔끔하지 못한 모양새로 놀림감의 대상인 혜주와, 혜주를 괴롭히는 윤지가 극의 중심에 서있는데....
일단 윤지란 인물의 필요성을 도무지 느낄수가 없다. 극 흐름상 분명 필요한 네거티브 캐릭터임에 틀림없지만, 뜸금없이 중간 중간 나타나 혜주를 괴롭히고, 죽는 것 역시 매우 급작스럽고 어이가 없으며, 가장 큰 문제는 동기부재이다. 혜주를 괴롭히는 뚜렷한 이유나 목적도 없으며, 윤지라는 캐릭터 스스로의 어떠한 존재에 대한 고민도 찾아볼수 없다. 그냥 단순히 '미운' 인물을 창조하고 싶었던 것일까?
또한 연출자가 그리고 싶었던 진성이라는 인물이 과연 어떤 것인지 알수는 없지만, 본인이 보기에는 상황상황에 따라 전혀 다른 인물로 비춰져버리는 캐릭터가 되어 버렸다. 이는 극중 인물의 다중적인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 앞에서 나온 진성과 뒤에서 나온 진성이 도무지 연결되지 않는, 개연성이라고는 찾아볼수 없는 인물이 되어버린다는 이야기이다. 상황의 반전이나 인간 심리의 이중성에 기대어 설득될수 있는 부분이 절대 아니다.
이는 꼭 진성에게만 국한되는 내용은 아니다.
소희는 진성에 대한 동성애적 사랑과, 발레에 대한 애착. 둘중에 어떤것이 진실인지 알수 없는 뒤죽박죽한 가장 최악의 인물이다. 물론 극의 흐름상이나, 귀신의 '변' 을 들어보면 그녀는 순수하게 진성을 사랑했던 것이지만, 그녀가 보이는 모습들은 결국 그렇지 아니하지 않는가? 단순히 진성에 대한 사랑과 그에따른 배신감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려 했다면 좀더 객관적으로 정면에서 바라보아야 했을 필요가 있다.
그나마 혜주는 극중 가장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물론 인물 자체는 가장 복합적이고 불안한 상태에 있으며, 소희에 대한 사랑과 여우계단의 저주로 인해, 사랑받고 싶다는 열정 하나로 파멸하는 캐릭터 이지만, 그 덕분에 가장 설득력 있는 인물이 될수 있었던 것이다. 솔직히 비만 상태의 그녀의 대사 기술은 스타일 과잉이라고 하기에 충분 하지만, 다소 희극적이면서 비극적이라는 이 설정에 가장 걸맞는 인물이었다.
문제는 혜주를 둘러싼 배경에 있다. 가장 경악스러운 점인데, 혜주가 거의 반쪽이라고 해도 될만큼 혁신적인 다이어트에 성공함에도, 주위 사람들중에서 놀라는 사람은 한명도 찾아 볼수 없다. 겨우 진성이가 '와 너도 이쁘구나' 라고 하는 한마디 대사 한마디가, 혜주의 변화가 단순히 관객의 착시현상이 아니라는 점을 대변해주는 유일무이한 것이다. 아니, 이 학교 전체가 이상하다. 사람들이 죽고, 수상한 일이 벌어져도 그다지 이상할 것이 없다. 어떤일이 벌어져도 이상할것이 없는 학교. 설득력을 잃으면, 그 순간부터 골수 판타지 로 가야 했을 것을, 오히려 이 영화는 꾸준히 '틀' 에만 끼워맞춰져가는 느낌이다.
관객을 깜짝 깜짝 놀라게 하는 호러 효과 역시, 그다지 발전을 느낄수 없는 대목이다. 진성이 피로 목욕을 하는 씬이 <캐리>를 모방했다거나, 옷장에서 진성이 혜주 (혹은 소희) 를 보는 장면이 <주온> 을 따라했다는 말은 정말 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진성의 방 창문을 통해 소희가 들어오는 장면은 너무 했다 싶을 정도로 <링> 의 혐의를 벗어날수 없다. 긴머리를 앞으로 뒤집어 썼다고 전부 사다코라는 것은 억지이지만, 이 장면은 사다코가 잠시 세트장을 잘못찾아 왔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복사판에 다름 아니다. 이제는 정말 사다코로 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은데 말이다.
여고생들의 불안한 심리상태를 담는다고 해서 영화 자체의 틀까지 불안할 필요는 없다. 본 작품은 앞뒤가 맞지 않는 내러티브의 불개연성과, 생동감없고 무게없는 캐릭터들의 남발 가운데에서 구석 구석 철지난 호러효과로 관객의 심리만을 자극하는, 시리즈 중에서 가장 뒤 떨어지고 불편한 '괴담' 이 되고 말았다.
결국, 시리즈의 지명도에 기대어 그냥저냥 안전하게 안착해보겠다는 심산의 작품이라는 혐의를 벗기가 힘들게 되어 버린것이다.
지금 마음이 굉장히 불편하다. 작품 자체에 대한 실망도 크지만, 신인 감독과 배우들이 이러한 비판에 직면했을때 혹시 좌절이라도 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 이다. 여고괴담 시리즈에 걸고 있는 본인의 애착은 엄청나게 크고 끈적끈적 하다. 혹평이라고 할수 있는 이야기를 늘어놓은 것이 사실이지만, 그래도 본인은 이 작품을 사랑할수 밖에 없다. 그것은 바로 '여고괴담'의 세번째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또한 여고괴담이라는 큰 멍에를 벗어나고 나면 본 작품도 썩 괜찮은 학원 공포물임에 틀림없다. 신선한 영상과 분위기 속에서 신인 감독과 배우들의 풋풋함을 충분히 느낄수있다.
본인은 여고괴담이 좀더 열려있고, 변화무쌍하며, 실험정신으로 점철된 시리즈가 되기를 강렬하게 소망한다. 또한, 여고괴담이라는 시리즈가 우리나라에서 찾아보기 힘든 장르 시리즈인 만큼, 개성 있고 자신감에 넘쳐있는 젊은 연출가들이 마음껏 많은 것들을 실험해볼수 있는, 그래서 젊은 감독과 배우들의 영향력있는 등용문으로써 정착해주길 바란다.
<ozzyz>
BOOT 영화비평단/기자 허지웅 (www.boot.p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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