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경택감독의 [똥개]를 본 후 나는, (이제서야!) 감독이 지향하는 영화세계의 투박함과 비시장성에 대한 확신이 선다. (물론, 비시장성에 대한 이야기는 조금더 지켜보아야 할 문제지만.) 영화 [똥개]는, 관객을 잡아두기 위해, 근간의 한국영화들처럼 [억척스러움]을 부리지 않는다. 철민(정우성)과 철민의 아버지(김갑수)의 사이에서 일어나는 에피소드나, 감정선에 대한 친절한 묘사, 철민이 살아가는 방법등은 낯익지만 인간냄새 풀풀나는 그런것이라, 밉지 않다.
키우던 똥개가 죽으며 자신의 학벌도 끝났다고 말하는 철민의 최종학력이 고2중퇴인것이나, 아버지의 호주머니에서 돈을 꺼내고, 용돈을 받아 김치를 담그는 모습등은 철민에게 인간적 설득력을 부여해준다. 감독은, 전작 [챔피언]에 이어 다시한번,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꺼내고 있다. 김득구의 일생을 담아낸 [챔피언]이 그랬듯, [똥개]역시 동네양아치로 비생산적인 생활로 하루하루를 보내는 철민의 모습을 통해 결국엔, 감독 자신의 근성과 닮은, 투박하고, 인간미 넘치는 한 남자의 삶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고자 하는 것이다. 그것은 자신의 부분이며, 반성이며, 잘못되고 아쉬운 삶의 허물을 재반복하고 싶지 않은 희망찬 미래에 대한 이야기로 보여진다. 그렇기 때문에 [똥개]는 일상적이다. 삶에 극적인 변형미를 가하지 않고 스크린으로 옮겨놓은 철민의 일상 - [똥개]는 극적인 이야기 구조나 흥미로운 에피소드, 부풀어져있는 캐릭터가 존재하지 않는 조미료를 찾아볼수 없는 소박한 밥상과 같다.(물론, 그 조미료의 부재원인이 심각한 가난(자원고갈)이라는 점이 문제지만 말이다.)
이 소박한 밥상은 많은 나래이션으로 극을 전개시키며 철민의 눈에 비친 세상을 들여다본다. 철민의 나래이션이 많은 이유는, 이 이야기가 철민의 외부에 존재하는 이들의 시선으로만 그려져서는 안된다는 감독의 뚝심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철민의 삶이 당신에게 한심해 보이든 그렇지 않든 그것은 관계없다. 왜냐하면, 철민의 삶은 온전한 철민의 것이고 철민이 옳다고 믿는 모든 것들은 영원히 옳기 때문이다.) 철민이 자신의 행동을 그른것이라고 깨닫는 순간이 비록 더디게 올지언정, 그것을 홀로 기다리게 만들도록 내버려 두는 감독의 의지는 그가 만든 [친구]의 존재를 의심케 만드는, 근래 보기 드문 영화의 진정성이다. (결국, 감독의 의지대로 철민은 의미있는 반성을 하게 되지만.)
그러나, 곽경택감독이 말하는 이 철없는 청년 철민의 성장드라마는 (위에서 언급한대로) 가난(재능의 고갈,)으로 뿌려지지 못한 조미료라는 의미에서 엄청난 안타까움이 느껴진다. 오로지, 철민의 일상만을 시종일관 들여다보고 있는 드라마의 이동공간은 기껏해야 마당과 집 그리고 폐차장 경찰소라는 점에서 심한 답답함이 느껴진다. 마치! 극도의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영화처럼 보이는 이영화의 끝없는 단조로움은 극의 초반부가 지나 중반을 향해 달려가는 지점이후부터 끝나는 순간까지 보는이를 맥빠지게 만든다. 철민의 일상을 들여다보는 카메라가 착하다는 것은 여기서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영화가 관객에게 던져야 할 파장과 여운을 도대체, 찾아낼 수 없는 , 철민의 캐릭터가 매력을 갖지 못하고 있다는데 그 문제의 사유는 존재한다. 밀양경찰서 수사과장인 아버지밑에서 우연한 계기로 집에 들어와 동거(!)를 시작하게 된 정애에게 매번 툭툭거리기만 하는 철민의 무뚝뚝함이나, 억울한 일을 당하고서도 최소한의 권리조차 찾을수 없는 친구 대덕이네를 위해 기공식장에서 상대편 깡패들과 싸움을 벌이는 철민의 모습에서 관객이 느껴야 하는(고작, 찾아낼수 있는 것들이기에,) 아직 남자가 되지 못한 순진함과 의협심은 우리들의 기대만큼 표현되지 못한다.
물론, [똥개]의 승부수를 오로지 원탑드라마. 주인공 철민에게만 온전히 걸었다는 것이 이 안타까움의 원흉은 아니다. 오히려, 그후의 문제. 주인공 철민의 역할을(대부분의 씬에 등장한다.) 배우 정우성이 했다는 것이 문제라고 보는 관점이, 정답에 가깝고 옳다. 주인공 철민의 게으름과 뻔뻔함(물론, 그 뻔뻔함이 사악함과 연결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무능력함을 나타내는 철민의 빨지 않은 츄리닝과 얼굴의 대부분을 가리는 머리카락이 연기를 대신 해줄수 는 없다는 사실을, 감독과 배우는 깨달아야 했다. 배우들의 연기지도에 혹독하다고 소문난 곽경택감독의 영화에서 하릴없는 양아치 철민을 연기한 정우성의 연기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시종일관 눈을 부릅뜨고 안면근육을 억누르는 그의 억양과 의도적인 제스츄어들은 단지 배우 정우성이 주인공 철민을 흉내내기 위한 도구의 차용이지, 완벽한 그것, 철민의 일부분이 되지 못하고 있다. 매번의 테이크마다, 같은 동작 같은 억양 같은 표정을 반복하기만 하는 정우성의 연기는 고통스러울정도의 부자연스러움을 동반한다. (진정, 쓸데없는 생각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끊임없이 곽경택의 전작들에 출연했던 배우 유오성을 그리워했다. 비록, 유오성 때문에 철민의 나이가 조금 늘어난다 하더라도 말이다.)
감정을 느끼기에 그의 안면은 지나치게 딱딱하며 그의 동공은 지나치게 긴장되어 있으며 그의 억양은 지나치게 힘이 들어가 있다. 감정을 싣지 못하는 배우의 연기는, 불행히도, 관객이 납득할만한 수준에 도달하지 못하기에 안타깝다. 정우성의 연기를 만족할만한 수준으로 끌어올리지 못한 책임은 배우 본인에게도 있지만, 물론, 감독에게도 있다. 감독 곽경택은 시종일관 [똥개] 철민의 삶을 들여다보며 소시민의 불온한 정체성과, 가지지 못한자들이 만나볼수 있는 따뜻한 세상을 그려내어 관객을 위로하려고 했지만 이야기는 그에 충분치가 못하다. 철민과 아버지사이에 일어나는 불협화음과 납득할수 없는 (물론, 그나이에 겪을만한 과도기라 할지라도, 영화라면 관객을 설득할만한 개연성이 필요하다.)철민의 싸움질은 그 횟수가 반복될수록, 그 싸움의 정도가 커질수록, 싸움에 소요되어야 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지루하며 그 설득력을 잃어간다.
과연 이영화가 폭력의 부정적인 측면에 대해 강조만 하려고 만들어진 영화인지 아니면 정말 근원적인 의도대로 철민의 매우 불완전한 성장기에 확대경을 들이대려고 만들어진 영화인지 그 본질을 의심케 할정도로 영화는 철민의 싸움에 집중해서 영화가 관객에게 건네주어야 할 감동의 소지를 점점 제거시켜나간다. 폭력의 공간에 대신, 철민의 인간적인 면모를 노출시켰어야 했다. 철민의 심리묘사가 대부분 제거된 자리가 이해할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보는이는, 철민의 게으른일상과 이유없는 싸움질에 동참할수 없다. 비록 그가 김치를 담그고 대떡이네 가족을 위해 몽둥이를 휘두른다 할지라도. 철민과 철민아버지와의 불협화음에서 느껴지는 공감대의 수준도 미약하다. 머리큰 자식의 이유없는 방황을 지켜보는 아버지의 고심을 영화가 들여다보지 않는 턱에, 쉽게 공감할수 없으며, 부자사이에서 존재하지 않는 어머니의 존재를 언급에 그치며 확대시키지 못한 영화의 부족한 자질 때문에 정작, 부자간이 눈물을 쏟는 결정적인 대면장면에서의 파장이 깊지 못하다.
영화 [똥개]는 많은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다. [친구]를 비난했지만, [챔피언] 때문에 울었고 곽경택감독의 (그간에 진정. 보기드문) 상업성이 의도되지 않는 진심을 좋아했는데, 지역을 밀양으로 옮기고 직업을 말안듣는 양아치로 설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 감동과 여운은 [챔피언]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챔피언]이 완벽한 영화라서가 아니다. 인간의 소박한 내면에 들이대는 카메라가 좋았기 때문이다. [똥개]의 밑바탕에 깔린 진심이 확장되지 못해서 안타깝다. 주저 앉아 울고싶을 만큼 안타깝다. 차라리 의도라도 사악했다면 이만큼 안타깝진 않을텐데 말이다.
중요하게 덧붙이기 : [똥개]에서 발견한 배우 김태욱과 엄지원의 또다른 시작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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