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그리 기대 하지 않았지만 정말로 재미있게 보았다. 이 영화의 감독인 곽경택 감독의 영화라 하면 항상 연상되는 몇가지 특징들이 있을 것이다. 남자들로만 채워진 스토리와 그 속에 내포된 의리와 우정,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바로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이다. 전작들에서도 자연스러운 사투리 대사로 그 재미를 더해주었듯이 이번 영화 [똥개] 역시 리얼한 사투리 대사로써 영화의 재미와 현실성을 높여주었다.
자칫 진부하고 지루해질 수 있는 스토리를 정우성의 몸을 사리지 않는 연기와 김갑수의 자연스러운 연기, 철민을 좋아하는 정애역을 연기한 엄지원이나 철민의 친구들, 그리고 많은 조연 연기자들의 감칠맛나는 연기가 더해져 관객에게 색다르게 다가오도록 해주었고 영화의 재미까지 더해주었다. 특히나 [똥개]에서는 정우성의 이미지 변신을 시도한 연기가 단연 돋보였다. 지저분한 외모로 껄렁거리며 걸어다니는 폼이며, 아버지 말이라면 꼼짝 못하지만 한번 뒤틀리면 폭발하는 다혈질의 건달 차철민을 그야말로 정우성만의 캐릭터로써 소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어색함 없이 자연스럽게 내뱉는 사투리 대사는 다시금 정우성의 연기에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지금까지 많은 영화에 출연하면서 연기 보다는 미남 배우로만 통했던 정우성 이기에 이번 영화 [똥개]는 연기자 정우성을 느끼게끔 해준다.
이 영화 <똥개>는 작은 도시를 배경으로 별다른 희망 없이 살아가는 동네 청년들의 이야기이다. 주인공 철민은 허우대는 멀쩡하지만 속은 싱거운 청년이고 그를 따르는 친구들 역시 가난하고 순박하지만 엉뚱한 야심을 품고 사는 그만그만한 청춘들이다. 이들에게 일어날 법한 일상사의 한 단면을 시나리오에 담았기에 극적인 긴장감이라든가 시각적인 화려함은 영화에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매력은 정우성을 비롯한 배우들의 천연덕스러운 연기와 경상도 사투리 특유의 함축성에서 나오는 썰렁하지만 웃음을 터트리게 하는 유머에 있다.
철민의 아버지는 항상 아들이 저지른 사고를 뒷수습 하기에 바쁜 경찰 수사반장이며, 겉으로는 무관심한 척해도 서로 속 깊은 정을 나누는 부자의 모습은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흐뭇한 미소를 띄우게 만든다. 영화는 그런 면에서 관객들을 편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주인공과 반대편에 있는 캐릭터들도 표독스럽다거나 치밀한 범죄자 수준은 되지 못한다. 지방 소읍에서 볼 수 있는 사기꾼과 동네 건달의 이미지 그대로를 보여준다. 따라서 그들과 철민 일행과의 갈등은 동네 패싸움 정도에서 머물 뿐 <친구>에서 처럼 빗속에서 칼부림이 난다든가 하는 식의 잔인함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런 영화는 관객들의 감정을 긴장시키고 푸는 맛은 없지만 푸근한 뒷맛을 남긴다.
영화를 보면서 그동안 정말로 소외되어 있던 지방 소도시 청춘들에 대한 감독의 따뜻한 시선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도시에서 자라 대학을 졸업하고 샐러리맨이 되는 것 만이 정상적인 삶으로 간주하는 것이 (나 조차도 말이다.ㅡㅡ) 요즘 세태지만 누구나 다 그렇게 사는 것은 아닐 터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에 만족하면서 혹은 절망하면서도 별다른 욕심 없이 순박한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는 청춘들 역시 아직은 우리 사회에 많이 존재한다.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지만 정작 사회의 여러 부분에서 소외되어 온 존재였던 것이다. 그들의 인생을 비정상적이라고 단정지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우리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는 그런 젊은이들에게 일찌감치 패배의식을 덧씌우고 그들에게 희망을 빼앗으려고 한다. 나아가 그들에게 도시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나 일확천금을 노리는 허황된 신분상승을 강요하곤 한다.
<똥개>의 주인공 철민에게는 도시에 대한 동경이나 허황된 욕망을 찾아 볼 수 없었다. 그의 친구들이라 할 수 있는 밀양주니어클럽 MJK파의 약간 어설퍼 보이는 동네 청춘들도 그저 자신의 일상에 충실하고 그 곳에서의 조그만 꿈들을 가꾸며 살아간다. 그들에게서는 친구를 이용하여 자신의 부를 이루거나 성공을 하겠다는 야멸찬 욕심은 보이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전작 <친구>와 이번 영화 <똥개>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 할수있다. 물론 <친구>에서처럼 <똥개>역시 경상도 사투리와 남성의 폭력성에 대한 감독의 성향에는 변함이 없었지만 곽경택 감독의 말처럼 이 영화는 자연스러운 흐름을 유지했고 기름기가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