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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미친 놈과 독한 놈이 만들어낸 지하철 지옥 (펀글) 튜브
nugu7942 2003-06-07 오후 8:23:32 460   [1]

<튜브> 미친 놈과 독한 놈이 만들어낸 지하철 지옥
 
2003.06.05
 
 
당신은 영화 <튜브>에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가? 김석훈과 배두나의 가슴 저린 멜로인가? 김석훈과 박상민의 상징적 대립구조인가? 화끈하게 우리를 속이는 반전인가? 만약 그런 것들을 기대한다면 당신은 <스피드>, <다이하드3>, <툼레이더>를 보고 실망했어야 옳다. 다시 말해 <튜브>에 그러한 것들을 바란다면 나이트클럽 갈 때마다 상대와 진지한 대화를 하고 싶다는 당신의 쓸데없는 고집 때문이겠으며 7,000원과 90여분을 짜증내는데 버려도 될 만큼 널널한 당신의 생활 때문이겠다. 안 그런가?

<튜브>에게 그 동안 소위 한국형 블록버스터라 불리던 졸작들의 회개를 바라는 것이라면 혹은 그런 이유로 낮은 점수를 주겠다면 더더욱 당신의 잘못이다. <튜브>는 어떤 이유에서건 블록버스터를 스스로 거부하고 수식어로 사용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스스로 블록버스터라 칭했기에 우리도 그렇게 그 영화들을 인정해줬다는 사실을 당신이 벌써 잊어버린 것이 아니라면, 한국형 블록버스터라 불리는 작품들의 계보에 <튜브>는 속하지 않는다는 것을 당신은 알 것이고 따라서 <튜브>에게 어떠한 짐도 지워지는 것은 부당하기 때문이다. 안 그런가?

그러나 숨 막히는 총격장면, 박진감 넘치는 주먹다짐, 쉴 새 없이 펼쳐지는 다양한 액션, 현실감 높은 CG와 세트,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지하철 질주, 무겁지 않은 캐릭터 설정, 만약 그런 것들을 당신이 <튜브>에 기대하고 있다면 망설일 이유가 없다. <튜브>는 그 모든 것들을 보여준다.
 
 
영화 <튜브>의 첫 번째 매력은 대립되는 두 캐릭터들이다. 영화에서 한 놈은 미쳤고 한 놈은 독기를 품었다. 김석훈, 박상민이 숨을 불어넣은 각각의 캐릭터는 구구절절한 이야기를 생략해도 좋을 만큼 그 자체만으로 한국적인 스토리가 내재되어 있다. 전혀 무관한 두 사람의 대결이 아니다. 장도준(김석훈)과 강기택(박상민)은 동일한 이유로 상처 입은, 그래서 서로의 상처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 이유에서일까? 강기택에게 미쳐버린 장도준과 그런 장도준을 어느 정도 품어주는 뉘앙스를 풍기는 강기택의 관계는 오히려 상당히 안정적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김석훈이 만들어낸 장도준 형사는 힘든 삶의 여정을 끝내려는 사람이다. 오히려 테러범 강기택보다 더욱 불안할 정도이다. 건드리면 꽝 하고 터질 것처럼 머리 속에 먹구름을 가득 담고 있다. 그런 그가 수많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아이러니는 묘한 감동을 준다. 다양한 액션장면을 소화하기 위해 성실하게 뛰고 달리고 맞고 싸우는 김석훈의 연기는 관객의 눈을 즐겁게 만들 수밖에 없다. 특히 지하철역을 오토바이로 질주하는 장면은 정말 볼만하다.

반면 박상민이 그려낸 강기택은 영화의 핵심갈등을 끌고 갈만한 무게감이 느껴지는 인물이다. 독기가 선명하게 설득되지는 않지만 그 무게감으로 우리는 고개를 끄덕여준다. 특히 박상민의 저음은 확실히 자신의 동안을 상쇄시켜 독기 품은 인물로 만든다. 강기택이라는 인물이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쉬리>를 연상케 하는 오프닝의 공항 총격씬이다. 강기택은 기동타격대와 대치상태에서 보란 듯 어깨와 가슴에 힘 빡 주고 그대로 밀고 나오는데 그 카리스마에 관객은 압도당할 수밖에 없다.
 
 
두 번째 매력은 지하철과 중앙통제실이다. 현실감을 느끼기에 충분한 지하철 세트와 통제실은 제4의 주연이라고 불러도 절대 과장이 아니다. 실은, 아무것도, 아닌, 장면일지도 모른다. 맞다, 입에 거품 물 일이 아닐 게 틀림없다. 왜냐하면 아무렇잖은 할리우드 영화에서조차 펜타곤을 그럴싸하게 그려내지 않던가. 하지만 ‘한국영화’에서 도심의 지하를 질주하는 지하철은 <머니 트레인>의 그것보다 더욱 현실감 있고 중앙통제실장(손병호)의 지휘하에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통제실은 어느 영화 못지않아 뿌듯함마저 느끼게 만든다. 한국영화라는 가산점을 주지 않을 이유가 하등 없다.

가산점은 더 있다. 세 번째 매력이기도 하다. 한국영화가 아니면, 그러니까 <튜브>가 아니면 우리에게 줄 수 없는 장면들이 있다. 하필이면(!) 아내가 사고 지하철에 타고 있는 선로담당 통제실 직원(정준)의 에피소드는 너무 억지스럽지만 그가 눈물을 흘리며 수화기에 “사랑한다” 말 할 때 “I Love You"와 확연히 다르다. 눈물난다. 수사대 반장으로 출연한 임현식의 후반부 절규장면은 숨이 막혀버릴 것처럼 감동은 진하게 다가온다. 여느 연인들의 애절한 세레나데보다 더 눈물난다.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다. 임현식이 사람을 울려? 그것도 액션영화에서? 그 아저씨, 정말 사람 울린다.
 
분명 <튜브>에 단점은 있다. 빠른 템포를 위해 잘라냈음에도 불구하고 김석훈의 옛 애인 부분은 감정이 과잉되어 있고, 배두나의 김석훈에 대한 감정은 생뚱맞다. 도리어 박상민의 독기를 풀어주는 설명은 부족하다. 지하철 속에서 김석훈의 드롭킥은 너무 만화 같다. 해결시점마다 관객이 박수를 보내기에는 너무 숨 가쁘게 다음으로 넘어가버리는 편집도 아쉽다.

그런데 그런 시각으로 <스피드>를 봤다면 박수를 쳤을까? <머니 트레인>은 어떤가? <다이하드3>는? 이제 외국영화처럼 우리도 우리 영화를 즐길 의무가 생겼다. <튜브>는 우리에게 ‘눈으로 보는 재미’를 주기에 충분한 영화이기 때문이다.
 
 
맥스무비 / 김형호 기자 dajoa@maxmovi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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