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부터 화끈하다. 강기택(박상민)과 그의 일당이 공항에서 삼엄한 경호를 뚫고 한 요인을 암살하고는 뭔가를 빼앗는다. 블럭버스터를 표방한 영화답게 '초반 5분 의 법칙'을 지키려는 듯 관객의 시선을 확실히 잡으려 엄청난 총격적을 선보인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강기택 일당은 단 세 명 뿐인 것이다. 그들의 총알은 대충 허공에 대고 갈겨도 정확히 경호원이나 경찰의 몸에 꽂힌다. 혹시 체온을 쫓아 날 아가는 열추적 총알이 개발된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게다가 경찰들은 대체 어디서 훈련을 받은건지 지형, 지물을 최대한 이용해 몸을 숨기기는 커녕 마빡에 '나 과녁' 이라고 써붙인거나 매한가지로 훤히 드러나는 곳에 서있기도 한다. 이때 홀연히 등 장하는 장도준 형사(김석훈)! 공항을 빠져나가는 강기택 일당 중 한 명을 그제서야 맞춘다. 실소를 금할 수 없는 이 오프닝의 5분에서 이 영화의 운명은 이미 끝장이 났다. 그래도 어쩌랴. 지하철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니 지하철이 등장할 때 까지는 참아보기로 했다.
공항 시퀀스를 통해 관객을 충분히 압도했다고 착각했는지 나름대로 걍약조절을 한 답시고 장도준의 애인이 강기택에게 죽는 과거를 보여주고, 장도준을 스토킹하는 소매치기 배두나를 등장시킨다. 장도준이 누군가를 경호하고 있었는데 그의 애인은 왜 대체 그 근처에서 깔짝대고 있다가 강기택의 총에 '우연히' 맞는 건지, 또 강기 택은 공항에서의 백발백중 솜씨는 어디가고 타겟이나 제대로 맞출 것이지 애꿏은 장도준 애인을 쏴 죽이는 건지 정도는 애교로 넘어가자. 이런 빙산의 일각을 붙들고 늘어지기엔 아직 진짜 할 말은 시작도 안했다.
드디어 지하철 등장! 강기택은 폭탄과 총으로 무장한채 지하철에 탑승하고 곧이어 장도준도 오토바이로 온갖 생쇼를 한 끝에 무임승차에 가까스로 성공한다. 그 이후 펼쳐지는 스토리 전개는 묘하게도 작년에 개봉한 코미디영화 <라이터를 켜라>를 연 상시켰다. 배경만 기차에서 지하철로 바뀌었을 뿐 인물설정은 거의 흡사하다. 우선 주인공 김석훈은 <라이터를 켜라>의 김승우 못지 않게 담뱃불을 붙이기 위해 라이터 가 절실히 필요한 인물이다. 참으로 '불 필요한' 존재라는 점에서 두 주인공은 일치 가 된다. 또 <라이터를 켜라>에서 차승원이 기차를 접수한 이유가 자신을 정치적 도 구로 이용하고 내버린 한 국회의원에게 댓가를 받기 위함이었던 것처럼 강기택도 국 회의원에게 볼 일이 있다. 하지만 스케일만 클 뿐 <튜브>는 <라이터를 켜라>만큼의 재미도 주지 못한다. 급박하게 이야기가 진행되지만 곳곳에서 눈에 확연히 드러나는 헛점들 때문에 도저히 영화에 몰입을 할 수가 없을 지경이다. 지금부터 그 '헛점'들 에 대해 하나하나 짚어 보도록 하겠다.
왜 지하철인가?
<라이터를 켜라>에서 차승원은 위에 말한 대로 국회의원에게 자신이 몸바쳐 충성한 댓가를 받기 위해 그가 타고 있는 기차에 따라 오른거다. 그렇다면 강기택은? 그 지 하철엔 개통식 테이프를 끊기 위해 서울시장이 타고 있었다. 서울시장이 그의 목적 인가? 아니다. 서울시장은 얼마 지나지 않아 쉽게 죽여버린다. 그의 목적은 자신을 내팽개친 국회의원에 대한 복수이며 그에 관련된 과거에 대해 폭로하는 것이다. 그 렇다면 차라리 왜 방송국을 장악하지 않았을까? 그 편이 '폭로'에는 더 빠를텐데 말 이다. 왜 테러 대상이 하필 '지하철'이었는지에 대해 영화는 납득할만한 이유를 보 여주지 않는다.
강기택의 지갑속엔 무엇이 들어있었나?
뭔가 거사를 치르려고 근엄한 표정으로 품 속에 손을 넣은 강기택은 이내 지갑이 없 어진 것을 깨닫는다. 배두나의 짓임을 눈치채고는 곧 잡아들이지만 그녀는 창밖으로 유유히 지갑을 던져버리고 강기택은 이에 분노한다. 그런데 지갑이 없어지므로 해서 강기택은 대체 어떤 피해를 입은 것인가? 지갑에 폭탄의 발화장치라든가 그와 관련된 것이 있었을까? 아니다. 그는 리모콘으로 아무 문제없이 폭탄을 터뜨려댄다. 언론에 공개하기 위한 자료가 담긴 칩도 별도로 보관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그는 지 갑에 있는 무엇이 필요했던 것인가? 지하철 패스라도 들어있던 걸까?
대책없는 승객들
중간에 외부에서 강제로 지하철을 세우는 부분이 있다. 이때 승객들이 모두 탈출을 하는데 탈출안하고 남아있는 승객들이 일부 있다. 스토리 상으로 아직 소수의 인질 이 필요하기에 자발적으로 남은 '볼룬티어'들이라도 되나? 남들 다 탈출한는데 왜 지하철에 남아있던 거였을까.
장도준은 강골인가, 약골인가?
강기택이 코앞에서 쏜 총에 맞아 달리는 열차 안에서 떨어져 나가도 멀쩡하다. 배두 나가 준 철제 트럼프 덕분에 총알이 박히지 않은건 좋은데 어디 한군데 안부러졌다 는게 가능한가? 또 시속 140km로 달리는 지하철 창에 한손으로 매달려있다가 '영차~' 하고 몸을 날려 창문을 깨부수고 내부로 들어오는게 가능한가? 그는 정녕 울버린이 라도 되는 건가? 그래, 울버린이라고 해두자. 그렇다면 지하철을 분리하기 위해 레 버를 당기는 부분에서 왜 그리 안간힘을 써서 겨우 해내는 것일까? 끝부분에 배두나 는 한 손으로 스윽 당기는데도 말이다.
이런 문제점들이 드러나는 이유는 스토리 진행상 필요한 사건을 발생시키기 위해 억 지로 이야기와 무관한 또다른 사건을 꾸며내려고 하기 때문이다. '강기택의 지갑' 부분을 예로 들자면, 배두나가 강기택의 인질로 잡혀 있어야만 영화 끝날때까지 배 두나의 존재 이유가 성립되므로 아무 쓸모없는 '지갑'을 등장시키는 식으로 말이다. 지갑은 그 자체로서 영화에 위기상황을 부여한게 아니라 배두나를 박상민에게 잡히 게 해주기 위한 존재였다는 거다. 시종일관 이런 식이다. 논리적으로 앞뒤 맞춰가며 이야기를 풀어나가는게 아니라 한가지 상황내에서의 위기 해결만 해내면 다음 상황 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어진다.
각각의 캐릭터 또한 하나같이 '전형성'의 틀에서 단 한순간도 벗어나지 않는다. 규 칙을 무시하고 자기멋대로인 주인공 경찰. < 더 록>의 에드 헤리스를 흉내내내보려 부단히 애를 쓰지만 에드 헤리스는 커녕 최민수 만큼도 안되는 악당. 게다가 조연들 은 어떤지.. 신혼 신랑으로 등장해 자신의 임무가 더 중요하다는 명목하에 부인을 사지로 밀어넣는 정신나간 설정의 정준이 최악의 캐릭터이며, 상황실에 있는 모든 이들과 경찰들, 국회의원 중에서 '그래도 괜찮았다'라고 한마디 해줄만한 인물이 단 한명도 없다.
이 영화의 문제점들에게는 흔히 쓰는 '옥의 티'라는 표현이 안어울린다. 그건 이미 한 작품을 '옥'이라고 반은 인정한 상태에서 쓰는 말이 아닌가. 관객의 지적 수준을 완전히 얕잡아본 채 앞뒤 연결에 상관없이 폭탄 몇 번 터뜨리고 총 몇 번 쏘고 속도감만 좀 살리면 된다는 식으로 안일하게 이런 영화를 만든 발상 자체에 문제가 있다. <튜 브>는 그 자체로서 하나의 거대한 '티' 덩어리다.
(총 0명 참여)
초반5분빼고 볼거리가 없다니.. 나는 초반께 볼께 없든데- -;; 중후반이 최고고..
2003-06-07
01:44
저랑 비슷한 생각을 하셨군요.. 제 생각을 좀 더 덧붙이자면 배경음악이 좀 거슬리더군요. 그리고 권오중(물론 웃기긴 했지만)이 왜 나왔는지 이해가 안가네요.
2003-06-05
02:19
테러 영화는 많소. 지하철 버스 공항 설정은 다 비스무리하지만 단순 헐리우드 지하철 나오는 영화랑 비교는 오류이오 그리고 사람마다 다른것 아닌가 꼭 자기주장 맞다는 식으로몰아부치네
2003-05-27
15:40
흐미..ggula이사람은 계속 그러네.. 딴글읽어봐도.. 자기가 재미없게 봤으면 봤지 계속 그렇다고 여기저기 덧글다네..
2003-05-27
15:33
보은님 말에 동감 근데 표정이모티콘 그림 정말 재미있게 잘만들었다..
2003-05-26
02:47
잘 지적하셨네여.. 제 생각과 비슷..^-^
2003-05-26
02:16
영화는 눈과 머리로 보는게 아니라 가슴으로 보고 평하는 거 아닌가요?...12815번 님의 글을 읽어보시길 권하고 싶군요,,,,아니면 다큐멘터리나 역사물만 보시길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