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이라면 엄청나게~ 좋아하는 제가 몇 년 전에 봤던 작품 중에 하나가 <시카고>였습니다. 처음에 내용을 듣고는 전체적으로 좀 무겁고 처지는 분이기가 아닐까 걱정했는데 경쾌한 재즈로 구성된 음악도 좋았고 내용도 꽤 의미심장한 뮤지컬이더군요. 그때 나온 배우들이 다 제가 좋아하는 배우들이라서 더 즐겁게 볼 수 있었습니다. 즐겁게 본 작품이 영화화된다는 말에 기다리지 않을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 당연히 영화 [시카고]를 보러 갔죠.
부적절한 관계였던 남편과 여동생을 죽인 쇼걸 벨마와 자신을 이용하기만 한 애인을 죽인 쇼걸지망생인 록시는 명백한 살인죄를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변호사인 빌리는 자신있게 말하죠. “당신을 무죄로 만들겠어. 수임료는 5천불!” 이런 명명백백한 살인죄를 어떻게 무죄로 만들 수 있는가에 대해 의문을 가질 순간도 없이 우리는 빌리의 현란한 언론 플레이 속으로 빠져 들어가게 됩니다. 잘 짜여진 각본에 따라 쓰러지고, 울고, 웃는 록시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세상을 속이는 게 이리도 쉬운 일인가? 이래서 비싼 변호사를 쓰는구나.’라는 씁쓸한 생각이 들기도 하죠. 그러나 그런 생각도 잠시 뿐. 미모와 돈 그리고 조작되는 정보에 따라 어느새 그들의 쇼에 넋을 읽고 맙니다.
벨마 켈리와 록시 하트 그리고 그들의 변호사인 빌리 플린은 마치 영화 속 장소인 ‘시카고’의 이미지를 형상화한 것 같은 모습이더군요. ‘시카고’라는 도시는 그동안 봐왔던 허리우드 영화들의 반복학습을 통해 주입된 지식에 따르면 재즈와 갱들의 천국이었죠. 지금은 옛날의 유명세가 퇴색하긴 했지만 그래도 [시카고]에서 그 건재함으로 확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시카고가 과거에 살인과 뒷거래라는 추한 모습을 쇼와 재즈라는 화려함으로 덮어버렸듯이 빌리는 자신의 의뢰인들이 아름다운 얼굴과 귀를 유혹하는 목소리를 이용해서 그들의 피 묻은 손을 숨겨버리죠. 결국 그러한 매력에 매혹된 대중은 그들에게 면죄부를 쥐어주고 더 크고 화려한 쇼를 보여 달라고 조르게 되는군요.
처음에 캐스팅 얘기를 들었을 때 빌리에 리차르 기어와 벨마에 캐서린 제타 존스는 이해가 됐지만 록시 역에 르네 젤위거는 좀 아니다 싶더군요. 제가 생각한 록시의 이미지는 삶에 대한 본능적인 감각, 백치미,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파워였는데... 그녀의 모습은 거기에 맞지 않았거든요. 브리짓 존스가 쇼걸을 한다? 영화 초반까지 지배하던 이런 이미지는 시간이 지나갈수록 어디론가 사라집니다. 뿐만 아니라 주역부터 조연들까지 모든 배우들의 연기가 쇼와 현실이라는 두 가지 세계를 잘 공존시키면서 그려내더군요. [시카고]는 배우들의 매혹적인 연기와 현란한 재즈 음악 그리고 극의 균형을 조절한 교묘한 편집감각이라는 삼박자가 정교하게 맞아떨어진 멋진 뮤지컬 영화였습니다.
물론 지은 죄를 교묘하게 지워버릴 뿐만 아니라 명성마저 얻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썩 시원한 기분이 들지는 않더군요. 어쩌면 이런 일을 현실에서도 종종 보고 있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현란한 조명과 카메라 플래쉬에 눈 뜬 장님이 된 사회가 어디 영화 속 시카고뿐일까요? 바로 그러한 점이 처음 책으로 시작해서 연극, 뮤지컬 그리고 영화로까지... 반세기가 넘는 세월을 변신과 진화를 거듭해 온 [시카고]라는 작품의 힘이겠죠. 인생이란 결코 쇼일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지만, 쇼로 만드는 사회, 쇼에 속는 대중에 의해 인생은 하나의 거대한 쇼라는 말이 더 설득력을 얻는 요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