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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이름값, 아직 부족해” <데드맨> 조진웅 배우
2024년 2월 20일 화요일 | 이금용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이금용 기자]
탁월한 계산 능력 하나로 ‘바지사장’ 세계에서 승승장구하던 ‘이만재’(조진웅)는 어느 날 횡령 누명을 쓰고 중국의 사설감옥에 끌려간다. 세간에는 ‘만재’가 죽었다고 알려졌지만 정치 컨설턴트 ‘심 여사’(김희애)는 ‘만재’를 찾아내 위험한 제안을 하는데. 봉준호 감독 <괴물>(2006)의 공동 각본을 맡으며 주목을 받았던 하준원 감독의 연출 데뷔작 <데드맨>에서?생과 사를 넘나들며 자신에게 누명을 씌운 배후를 추적하는 ‘이만재’로 분한 조진웅과 만나 나눈 다양한 이야기를 전한다.


바지사장과 명의 도용이라는 소재가 신선하다.
나도 이번 작품을 통해 제대로 공부하게 됐다. 알면 알수록 더 무서운 세계더라. 순식간에 빚이 산더미처럼 쌓여 인생을 삼켜버린다. 시나리오에 그 섬뜩함이 잘 녹여져 있었고 덕분에 빠르게 몰입할 수 있었다.

<데드맨>은 어떻게 보면 한 인간의 성장에 대한 이야기다. 정경유착, 횡령 등 영화 속 모든 이야기가 ‘만재’의 성장을 위한 거대한 소도구라는 생각이 들었다. 상황과 인물이 아주 절묘하게 맞물리는 매력적인 지점이 있다.

어떻게 준비했나.
새로운 캐릭터를 만나면 최대한 실제 그 직업을 가진 사람들을 인터뷰하며 DNA를 심기 위해 노력한다. 깡패 캐릭터를 맡으면 수소문해 직접 찾아가 만났다. 그런데 바지사장은 도무지 만날 길이 없더라. (웃음) 레퍼런스를 찾으려고 해도 비슷한 소재를 다룬 작품이 없어서 오로지 시나리오와 상상에 의존해 캐릭터를 만들어가야 했다. 그런데 이런 역할이 더 재밌는 거 같다. 정답이 없지 않나. (웃음) 주어진 상황 속에 나를 던져놓고 날 것 같은 리액션을 찾아가는 과정이 굉장히 흥미롭게 다가왔다.

‘만재’를 어떤 인간이라고 해석했나.
많은 사람들이 가정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삶, 목표를 희생하지만 ‘만재’는 잘못된 방법을 이용한다. 어떻게 보면 측은할 수 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모든 건 ‘만재’ 본인의 선택이다. 그를 악인이라고 할 수 없지만, 선한 인물이라고도 볼 수 없다. 그래서 ‘만재’를 연기하기가 더 까다로웠다. ‘만재’에게 이입해서 따라가게 만들되 그의 범죄를 옹호하게 만들어선 안 된다는 생각이었다. 이 지점에 있어 감독님과 굉장히 많은 대화를 나눴다. ‘만재’를 절대 미화하면 안 되고 철저히 나락까지 떨어뜨려서 영화의 메시지를 전해야 한다고 감독님께 당부했다. (웃음)

하준원 감독과 의견이 다른 부분은 없었나.
시나리오 자체가 잘 짜여있어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없었다. 다만 내가 가진 노하우를 보태 캐릭터를 좀 더 잘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을 함께 강구했다.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감독님과 모든 장면을 해체하고 분석하는 시간을 가진다. 내가 나오지 않는 장면까지 분석을 마쳐야 캐릭터가 완전히 내 DNA에 들어오고 톤 앤 매너를 잡을 수 있기 때문에 시간이 상당히 많이 걸리는 작업이다. 안 풀리는 게 있으면 술 한잔 하기도 하고, 산책하다가 생각나는 게 있으면 또 감독님을 찾아가 이야기하고 그런 시간을 오래 가졌다. 어떤 작품이든 이?과정을 꼭 거친다.

하준원 감독은 이번 작품이 연출 데뷔작인데 현장에선 어땠나.
촬영 내내 단 한 번도 화를 안 내더라. 배우가 놀 수 있는 판을 마련해줬고 디렉션도 많지 않았다. 감독님 본인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보기엔 여느 베테랑 감독보다 더 유능하고 논리적이었다. 데뷔작이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을 정도였다. 감독님이 연출은 처음이지만 현장 경험은 많지 않나. (웃음) 차기작이 기대된다.

‘만재’처럼 위기에 빠진 순간이 있었을까.
고점이 있어야 저점이 있는 건데, 아직 삶의 최고 지점도 찾지 못한 거 같다. 최고점을 향해 가고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럴 필요성을 못 느끼는 것 자체가 위기의 상황이지 않나 싶기도 하다. (웃음)

그렇다면 어떤 방향성을 두고 나아가고 있나.
그런 걸 딱 정해놓고 살지 않는다. 솔직히 배우의 길에 의구심이 들 때도 많다. 다만 평생 연기만 해와서 다른 분야에 뛰어들 엄두가 나지 않는다. 시나리오 개발이나 제작 등 여러 도전을 해보고 있긴 하지만 내가 무얼 제일 잘하는지, 무얼 제일 못하는지도 모르겠다. 가끔은 내가 내 연기 보는 게 힘들 정도로, 연기 못한다는 생각도 든다. (웃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이 일을 이어가게 만드는 건 사람이다. 사람이 좋고, 현장이 좋다. 같이 일하는 팀, 동료들이 굉장히 중요하게 느껴진다. 현장에서 세 번을 웃겨야 한다는 나만의 법칙이 있다. 박중훈 선배님이 그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배우가 연기 잘하는 건 당연한 거고, 현장에서 스태프들을 즐겁게 만드는 것까지도 배우의 역할이라고. 그 말이 가슴 깊이 와닿았고, 이후로는 항상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현장을 유하게 만들기 위해서도 있지만 작품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열정, 흥미는 사라지고 그저 일이 돼버리지 않나. 그게 싫어서 지친 스태프들을 보면 어떻게든 웃음을 주려고 한다.

극중 이름값이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본명 조원준이 아닌 아버지의 이름으로 활동하는 만큼 영화의 키워드가 더 각별하게 느껴졌겠다.
흔히 ‘이름값 하고 살자’고 이야기하는데 나는 이름값을 하고 살고 있는지 생각하게 되더라. 돌이켜 보면 내 인생에 있어 내 이름값은 순위에 없었다. 아버지 함자를 활동명으로 사용해서 그런지, 내 이름값보다 아버지의 이름값이 더 크게 다가오는 때가 있다. 아버지의 이름값을 하고 사느냐고 묻는다면 아직 부족하지 않나 싶다. 아버지의 이름으로 활동하면서 그 이름을 유명하게 만드는 것보다 진정성을 가지고 연기에 임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됐다.

지난해 공개된 <대외비>와 <독전2>가 다소 아쉬운 성적을 거뒀다. 흥행에 대한 부담감은 없을까.
흥행은 결국 관객의 손에 달린 거다. 내가 부담감을 느낀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웃음) 배우 입장에선 작품 하나하나가 다 어여쁘지 않겠나. 그래서 손익분기점이나 관객 수가 절대적인 평가 기준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흥행이 된다고 무조건 좋은 영화가 아니고, 관객이 안 든다고 나쁜 영화가 아니다. 모든 영화는 귀하고 가치 있다. <데드맨>도 마찬가지다. 관객 수는 중요하지 않다. 세상에 나와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면 제 소임을 다한 거다. 개봉하는 것 자체가 큰 의미고 큰 용기라고 생각한다.


사진제공_콘텐츠웨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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