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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의 역사처럼 보일까 고민” <서울의 봄> 김성수 감독
2023년 11월 22일 수요일 | 이금용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이금용 기자]
<비트>(1997), <태양은 없다>(1998), <감기>(2013), <아수라>(2016) 등 스타일리시하면서도 선 굵은 영화를 선보여온 충무로 베테랑 김성수 감독의 신작이 연일 화제다. <서울의 봄>은 1979년 12월 12일 수도 서울에서 일어난 신군부 세력의 반란을 막기 위한 일촉즉발의 9시간을 그린 작품. 한국영화 최초로 12.12 군사사변을 소재로 했을 뿐만 아니라 실화를 바탕으로 한 것도 김성수 감독 필모그래피에서 처음이다. “영화가 반란군이 승리하는 이야기로 비칠까 봐 걱정했다”며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 <서울의 봄>을 완성한 김성수 감독과 만나 나눈 다양한 이야기를 전한다.

언론시사회 직후 연이어 호평을 받고 있다.
영화계에 발 담근 지 오래지만, 이렇게 반응이 좋았던 적은 없었던 터라 얼떨떨하다. (웃음) 4~50대 관객에겐 흥미를 끌 수 있을 거 같은데 젊은 관객들의 반응이 어떨지가 궁금하다.

어디서 시작한 이야기일까.
79년 12월 12일 사건이 일어났을 당시 한남동에 살았다. 나는 19살이었고, 장갑차를 그렇게 가까이서 본 게 처음이었다. 한남초등학교 옆 도로가 통제됐고, 갑자기 총소리가 났다. 호기심이 많았던 터라 무슨 일인지도 모른 채 그 추운 날씨에 웅크리고 앉아 총소리를 들었던 기억이 난다. 오랫동안 선명하게 남아있는 기억이었고 뒤늦게 그날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게 됐다. 1995년도에 사건의 실체가 언론을 통해 공개됐는데 남들보다 더 유심히 뉴스와 신문을 살폈던 거 같다.

그토록 인상 깊은 기억이었는데 왜 지금에서야 영화로 찍게 됐나.
이 일이 언젠가 영화로 나올 수 있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워낙 냉혹한 시기여서 당시에는 감히 영화로 만들어볼 생각을 못했다. 하지만 계속해서 12.12에 대해 생각해왔고 그날 있었던 일에 대해 누구보다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2019년도에 <서울의 봄> 시나리오를 받고 운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웃음)

하지만 처음엔 연출을 고사했다고.
솔직히 자신이 없었다. 너무 잘 알려진 이야기이고 군사반란을 일으킨 사람들이 승리하는 이야기이지 않나. 이야기를 어느 정도 손 봐도 되는 건지 확신이 없었고 있는 그대로 영화에 담자니 반군의 승리를 기록하는 영화처럼 되지 않을까 걱정되더라. 그리고 시나리오의 완성도가 굉장히 높았는데 당시 기록을 거의 그대로 압축해 놓아서 감독으로서는 오히려 흥미롭지 않았다. 영화가 아니라 다큐멘터리처럼 느껴졌다고 할까. 고사는 했지만 그 시나리오가 계속해서 나를 움켜쥐고 있었다. 10개월 정도 고민했던 거 같다. 내 세계관, 내 해석을 어떻게 영화에 녹여낼지 고심한 끝에 제안을 수락했다.

고민 끝에 어떻게 연출하기로 노선을 정했나.
‘전두광’과 반란군에 맞서는 사람의 시선으로 영화를 그리면 이 이야기가 승리의 기록으로 보이지 않을 거 같더라. 처음엔 역사적 기록을 그대로 반영해야 한다는 생각에 발목이 잡혔던 거 같다. 나중엔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그 맥락을 설득력 있게 전달해야 한다고 생각이 바뀌었다. 원래 역사라는 건 사건이 일어나고 이후에 쓰여지는 것이기 때문에 서술자의 해석에 따라 어떠한 명확한 인과관계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12.12도 오랫동안 정교하게 짜여진 계획에 따른 게 아니라 우발적인 상황과 돌발적인 판단에 의해 일어난 거라고 생각했다. 야욕에 물든 자들의 순간적인 판단과 욕심이 뒤엉키면서 예측 불발의 상황이 벌어지고, 그 안에서 혼란과 욕망에 잠식된 인간 군상을 보여주면 재밌을 거 같더라.

전작 <아수라>에 이어 황정민, 정우성 배우와 연이어 호흡을 맞췄다.
황정민 배우를 제일 먼저 캐스팅했다. ‘전두광’이라는 인물은 강력한 반란군의 리더이자 무시무시한 야욕의 왕이다. 이걸 연기할 수 있는 사람은 황정민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민 씨 입장에서는 선뜻 결정하기 쉽지 않았을 거다. 정치적으로도, 연기적으로도 쉽지 않은 역할이다. 그런 면에서 정민 씨가 출연을 결정한 건 용감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그에게는 독보적인 천재성과 용기가 있다. 파격적인 분장도 마다 않고 멋진 연기를 보여줘서 감사할 따름이다.

우성 씨는 내가 제일 좋아하고 신뢰하는 배우다. ‘이태신’은 진압군 측에서 끝까지 항전하는 책임감 있는 사람이다. 내가 말하는 책임감이라는 게 대단한 게 아니라 자신의 위치에서 주어진 의무를 져버리지 않는 직업 의식, 소명 같은 걸 뜻하는 거다. 하지만 ‘이태신’에게 주어진 책임감은 일반인이 견딜 수 있는 무게를 넘어섰고, 그걸 감내해야 하는 ‘이태신’의 모습이 우성 씨 본연의 모습과 닮아 있더라. 내가 가까이서 본 우성 씨는 신념이 강하고 흔들림 없는 사람이라 ‘이태신’ 역에 적격이라 생각했다. 내가 출연을 부탁했을 때가 공교롭게도 <헌트> 촬영이 끝난 직후라 캐릭터가 겹치는 바람에 우성 씨 측에서는 고민이 있었던 거 같다. 계속해서 부탁드렸더니 마지못해 하겠다고 하더라. (웃음)

‘전두광’과 황정민 배우의 싱크로율이 화제가 됐다.
정민 씨가 처음에 실존 인물처럼 연기해야 하냐고 묻더라. 그래서 그런 건 꼭 아니라고 답했다. 다만 ‘전두광’이라는 인물은 좀 더 특별하긴 했다. 이 인물이 실제 역사와 영화 사이의 징검다리 역할을 해야하기 때문에, 연기는 정민 씨 해석대로 하되 비주얼적으로는 닮았으면 했다. 그랬더니 정민 씨가 ‘내 모습을 지우고 그 사람이 되겠다’고 답하더라.

말은 쉽지만 과정은 쉽지 않았다. 분장이 굉장히 어려웠다. 정민 씨가 <수리남> 로케이션을 떠나기 전에 머리 본을 뜨고 거기에 맞춰서 가발을 개발했다. 연구에 연구를 거듭해서 가발을 다섯 번이나 다시 만들었다. (웃음) 현장에서도 정민 씨 분장하는 데 4시간이나 걸렸다.

<수리남>, <아수라>에서 황정민 배우가 굉장히 매력적인 빌런으로 등장한다. 이번에도 ‘전두광’이 매력적으로 보이게 될까 우려되지는 않았나.
처음에 이 영화를 선뜻 수락하지 못한 이유 중에 그것도 있었다. 주변에서 내가 반란의 수괴를 매력적으로 그릴 거 같다고 걱정하더라. 그런 걱정을 듣다 보니 나도 저절로 고민이 됐다. 영화 들어가기 전에 정민 씨한테 ‘전두광’이 절대 매력적으로 보이면 안 된다고 강조했더니 정민 씨가 그런 걱정 하지 말라 호언장담하더라. 걱정이 무색하게도 ‘전두광’은 탐욕이라는 괴수에게 삼켜진 인간처럼 호흡에서까지 욕망이 새어 나오더라. 황정민이라는 배우가 우리나라 보물이라고 생각한다. (웃음)

두 주연뿐만 아니라 조연 배우들도 하나같이 명연기를 펼쳤다.
촬영보다 힘들었던 게 캐스팅이었다. 중요한 캐릭터만 60명에 달했다. 조감독이랑 프로듀서가 60명을 캐스팅하는 게 말이 되냐고 하더라. (웃음) 대부분 연극 배우 출신이거나 연극을 오랫동안 하고 계신 분들을 모셨다. 촬영지가 지방이었는데 감사하게도 배우 분들이 서울과 지방을 오가며 촬영했다. 그것만 해도 감사하고 죄송한데, 편집하면서 봤더니 화면에 걸리지도 않는데 뒤에서 지치지 않고 연기하고 계시더라. 그 분들의 마음 하나하나가 보태져 완성된 영화다.

마지막 ‘전두광’과 ‘이태신’이 세종로에서 대치하는 장면은 역사와 달리 새롭게 창조해낸 부분이다.
이야기를 어떻게 마무리 짓고, 사람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해야 할지 계속해서 고민했다. 주변에서 의견도 많이 구했다. 그 장면을 통해서 12.12 군사사변이 어떻게 평가되어야 할지 관객들에게 판단의 여지를 남기고 싶었다.

차기작 계획은 어떻게 되나.
제안 받은 시나리오도 있고 개인적으로 구상하는 작품도 있는데 당장 확정된 것은 없지만, 다음 작품 또한 권력 다툼이나 욕망을 가진 자들이 다투면서 생기는 관계의 드라마가 되지 않을까 한다. 그게 내가 가장 흥미로워하는 주제이고 가장 잘하는 장르라고 생각한다. (웃음)


사진제공_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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