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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얼굴에 내가 놀라” <콘크리트 유토피아> 이병헌 배우
2023년 8월 13일 일요일 | 이금용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이금용 기자]
대지진으로 폐허가 된 서울, 유일하게 살아남은 아파트 한 동에 생존자들이 모여든다. 얼떨결에 주민대표 자리를 맡게 된 ‘영탁’(이병헌)은 생애 처음 맛본 권력과 아파트를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에 잠식되어 간다. 2014년 연재된 김숭늉 작가의 웹툰 '유쾌한 왕따'의 2부 '유쾌한 이웃'을 원작으로 한 <콘크리트 유토피아>에서 ‘영탁’ 역을 맡아 어마무시한 존재감으로 영화를 장악한 이병헌과 나눈 다양한 이야기를 전한다.


작품의 어떤 점이 마음에 들어 수락하게 됐나.
대지진이 일어나고 아파트 하나만 덜렁 살아남았다는 만화 같은 설정에 ‘재밌겠다’ 싶더라. (웃음) 시나리오를 읽어보니 기대했던 만큼이나 인간성에 대해 깊은 이야기가 있었다. 절대 선도, 절대 악도 없고 보통 사람들이 극단적인 상황에서 벌이는 갈등이라서 더 마음에 들었다.

상황은 다소 만화적이지만, 영화가 전반적으로 현실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서 그 부분은 다른 문화권의 관객들에게도 소구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파트라는 소재에 영화의 차별점이 있다고 본다. 아파트라는 공간이, 내 집 마련의 꿈이 얼마나 소중하고 이루기 힘든 소망인지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 의미를 잘 아니까 더 특별하게 다가갈 거 같다. 또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긴장감이 커지는데 중간중간 이상하게 피식피식 웃게 되는 블랙코미디적 요소가 있다. 감정이 이입되는 인물도 사람마다 다 다를 거다.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이라 생각한다. 많은 분들이 보시고 다양한 의견을 내줬으면 한다.

엄태화 감독은 이번 작품이 <가려진 시간>(2016)에 이어 두 번째 장편인 신인 감독인데, 현장은 어땠나.
엄 감독과는 사실 꽤 오래 전에 만난 적이 있다. <쓰리 몬스터>(2004) 때 박찬욱 감독의 연출부 막내였다. (웃음) 당시 엄태화 감독이 영화에서도 스태프로 잠깐 등장했다. 테이크만 서른 몇 번 갔던 상당히 긴 장면으로 기억한다. 그렇게 고생해서 완성된 장면이었는데 모니터링하던 도중 엄 감독이 마이크를 반대로 든 게 잡혀서 결국 다시 찍어야 했다. (웃음) 엄 감독은 그게 자기 트라우마란다. 내 생각보다 엄청난 상처였던 거 같다. (웃음)

엄태화 감독은 디렉션을 거의 안 준다. 연기를 처음 시작하는 신인 배우 입장에선 힘들 수도 있는 감독이다. 경력이 있는 배우도 막막해 하기도 하고. 그래서 내가 일부러 말을 더 많이 걸었다. 자꾸 말을 걸면 아무리 말수가 없는 사람이라도 어쩔 수 없이 말을 하게 된다. (웃음) 그렇게 대화를 하다 보면, 감독이 생각 못한 새로운 장면이 나올 때도 있다. 그렇게 디테일을 같이 만들어 나갔다.

극중 황궁아파트의 새로운 대표로 발탁된 ‘영탁’을 연기했다. ‘영탁’을 어떤 인물로 이해하고 연기했나.
어떤 인물이든 보편적인 감정선으로 접근하고 상황에 몰입하려고 한다. 시나리오에 나와 있는 인물의 말과 행동을 이해하려고 애쓰고 ‘왜 이렇게 행동할까?’를 끊임없이 생각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 인물이 가진 복잡미묘한 감정이 이해가 된다. 그리고 촬영 내내 그 감정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조건반사처럼, 어떤 상황에서도 카메라가 켜지면 그 인물이 될 수 있게 말이다.

‘영탁’을 이해하기 위해 가장 먼저 대본에 집중했다. 대본에 담긴 인물을 진짜 살아있는 사람처럼 그려내는 게 첫 번째 단계였다. 이후 감독님과 대화하며 새로운 아이디어를 붙였고, ‘영탁’이 조금 더 입체적으로 보일 수 있도록 했다. 상황이 조금 더 재밌게 만들어질 수 있도록 대화와 회의를 반복했다.

‘영탁’은 여기저기에서 당하며 분노와 악만 남은, 우울하고 무기력한 소시민 가장에서 시작해 재난으로 리셋된 세상에서 변화를 맞이한다. 얼떨결에 리더가 되고, 주어진 환경에 최선을 다하며 권력을 갖게 된다. 그렇게 차곡차곡 쌓여가는 서사에 따라 자연스레 공감하며 몰입하고 연기했다.

‘영탁’의 외모에도 적극적으로 아이디어를 제안했다고.
대본을 읽고 제일 먼저 M자형 탈모 스타일이 떠올랐다. 영화를 자세히 보면 후반부로 갈수록 양 옆 헤어가 곤두선다. (웃음) 권력에 취해감에 따라 스타일도 좀 더 숫사자 같은 느낌을 주고 싶어서 계산한 거다. 눈도 나중에는 핏발이 서 있는데 주변에서 다들 무섭다고 그러더라. (웃음)

외적인 부분부터 감정 연기까지, 시사 직후 연기에 대한 호평이 끊이질 않고 있는데.
영화를 보다가 ‘나한테 이런 얼굴이 있었나?’ 놀란 장면이 있다. 내가 봐도 무섭더라. ‘이게 뭐야, CG야?’라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웃음) 무엇보다 나 스스로에게 놀랐던 경험이었다.

매번 본인 연기에 확신을 가지나.
내가 의도한, 혹은 내가 보여준 감정이 관객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지 않으면 어쩌지 걱정될 때도 있다. 보통은 스스로를 믿고 연기하면, 보는 분들도 내 이해와 연기가 맞다고 해주는 경우가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직전에는 불안감이 생긴다. 다행히 시사회 이후 좋은 평들이 많아 자신감을 갖게 됐다. (웃음)

스스로의 연기에 확신을 갖고 만족하기까지 그 과정이 어땠는지 궁금하다.
순수 예술을 하는 경우엔 진짜 천재성을 갖고 평범을 뛰어넘는 자기만의 특별한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고 본다. 하지만 대중 예술, 특히 배우는 삶을 보여줘야 하기에 보편적인 감정을 읽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늘 사람을 관찰하는 게 습관이 됐다. 의도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되는 거다. (웃음) ‘이 사람의 기분이 어떻구나’, ‘버릇은 저렇구나’ 관찰하며 내 판단이 틀릴지라도 나름대로 끝없이 질문하고 답을 던진다. 이렇게 하다 보면 시나리오를 읽을 때 이해도가 넓어지는 측면이 있다.

배우는 작품이 끝나기 전까지 자신이 맡은 인물에 완전히 젖어 있어야 한다. 캐릭터의 현재 상황, 사회적 신분, 감정 상태를 계속 생각하고 담아둬야 한다. 촬영하다 잠깐 쉴 수도 있고, 휴가를 받아 가까운 곳에 놀러 갈 수도 있다. 웃고 떠들더라도 감정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 한구석에는 작품과 인물을 두고 계속해서 생각한다. 배우가 갖는 기본적인 부담감이다

최근 많은 배우들이 연출에 도전하면서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 연출 욕심은 없을까.
두 가지 재능을 다 가진 동료 배우가 부러울 뿐이다. (웃음) 일단은 내가 잘하는 걸 하고 싶고, 해보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고 싶진 않다.

차기작 <오징어 게임2>에 대해서 살짝만 언급한다면.
자세한 건 이야기할 수 없지만, 시즌2 대본을 읽고 ‘황동혁 감독은 정말 이야기꾼이구나,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는 게 이런 거구나.' 감탄했다. 황 감독은 시즌1에서 너무 고생을 했던 터라 시즌 2까지 할 생각이 없었다고 하는데, 1편의 인기가 너무 커져서 결국 하게 된 거 같다. (웃음) 시즌 2의 내용에 대한 추측성 기사를 여럿 봤지만 맞는 건 하나도 없었던 거 같다.


사진제공_BH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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