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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을 이기는 건 작은 용기와 조금의 인간성” <비상선언> 한재림 감독
2022년 8월 5일 금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지난해 칸에서 공개했지만, 그때와는 비교도 안 되게 설레고 떨려요. 관객이 어떻게 볼지 궁금하고 초조한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습니다.” <비상선언> 한재림 감독이 개봉 소감을 전했다. 전반부의 호평과 후반부의 혹평이 공존하고, 영화가 품은 정서와 메시지에 호불호가 강하게 엇갈리는 가운데 ‘힐링과 희망’을 키워드로 꼽는 한 감독의 말을 들어본다.

10년 전에 제안받은 작품인데 메이드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 이유와 연출적으로 경계한 부분은.
10년도 더 전으로 큰 틀에서는 지금의 <비상선언>과 비슷한 이야기였다. 항공기 테러 사건이 발생하고, 비행기 안과 밖 그러니까 지상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동시에 그린다. 당시에 만들지 않은 이유는 뒷부분을 어떻게 해결할지,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그려지지 않아서였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에서 발생하는 재난 상황을 목도하면서, 비로소 어떤 의미를 전달할지 다가오기 시작했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면서는 영화적 상황이 현실에서 재현되는 듯해 가슴이 아팠지만, 한편으로는 보통 사람이 성실히 역할을 다해 재난을 의미있게 이겨내는 모습에 안심됐다. 연출하면서 재난영화는 어느 정도의 공포를 보여줘야 하는데 이를 어떻게 조성할지 고민했다. 그 결과 비주얼적인 면보다는 심리적으로, 두려움에 의해 인간성이 변해가는 상황에서 오는 공포로 가져갔다.

초반부 테러에 집중했다면, 이후에는 비행기 안과 밖의 상황을 대비하며 재난에 대처하는 사람들에 집중하는 모양새다. <비상선언>을 통해 전하고자 한 이야기 혹은 메시지는.
중요한 건 재난 이후의 삶이라고 생각했고 따라서 남은 사람들에 집중했다. 쓰나미 같은 자연재해는 왔다 가면 끝이지만, 비행기 안의 바이러스는 점차 확장되는 재난이다. 이 경우 핵심은 마음속에 있는 두려움이라고 생각한다. 두려움에 기인한 증오와 이기심이 발현하고, 이를 이겨내는 건 ‘인호’(송강호)를 비롯한 사람들이 꺼내드는 작은 용기와 조금의 인간성이라고 생각한다. 재난을 마주한 인간은 당연히 두렵고 고통스럽지만, 자기 자리를 성실하게 지키는 이들의 용기가 모인다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이야기하고자 했다.

영화의 반응 중 기억에 남는 피드백이 있다면.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모양새다.
기억에 남는 건 정말 다양한 피드백이 있다는 거다. 내 의도를 완벽하게 파악한 분도 있고, ‘왜 이렇게 생각하시지!’ 싶은 분도 있더라. 여러 의견이 있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코로나에 걸리고도 원하는 음식을 먹으러 식당에 가는 사람이 있는 반면, 걸린 것 같다는 불안감만으로도 타인에게 피해주기 싫어서 혹은 배려해서 집에서 홀로 밥을 먹는 사람도 있지 않나. 이렇듯 다양한 군상을 영화 속에서 보여주고 싶었다.

관객들에게 가장 듣고 싶은 말이나 반응은.
음… 마음이 따뜻해졌다, 혹은 어떤 힐링을 받은 것 같다는 말을 제일 듣고 싶다.

전반부는 대체로 호평인데, 후반부는 반전이 거듭되면서 불호의 의견이 많은 것 같다.
어떤 영화를 기대했느냐에 따라 반응에 차이가 있는 것 같다. 항공 바이러스 테러 영화를 기대한 분은 전반부는 대체로 좋게 보다가, 후반부로 갈수록 테러보다 재난으로 흘러 실망하는 게 아닐까 한다. 사실 재난 영화로 봐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반전이 많다고 느낄 수도 있으나 항로에 따라 운항하는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의도를 담아 반전을 마련한 게 아니고, 좀 더 사실적으로 접근하려고 노력한 결과다. 비행기 이륙과 착륙까지 다큐멘터리같이 사실적으로 보이기 위해 카메라 워킹, 연출 등을 가져갔기 때문에 반전 역시 자연스러운 일련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인천에서 호놀룰루를 왕복하는 시간 동안 너무 많은 사건이 지상에서 벌어지는 게 아닌가 한다. 특히 일본 나리타에서 서울까지 오는 동안 ‘인호’(송강호)가 바이러스를 직접 투여해 치료제의 효과를 몸으로 확인하는 부분은 그 가능성에 의구심이 크게 드는 지점이다. 판타지나 공상 과학 장르가 아닌 이상 어느 정도의 현실성은 담보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 장치나 설정을 더한 부분이 있다면.
비행기가 왕복하는 시간 동안 충분히 벌어질 수 있는 사건이라고 계산했다. 인호는 바이러스를 과도하게 투여해서 부작용이 일어났지만, 일본에서 한국으로 오는 동안 안정화가 이뤄질 수 있다고 봤다. 지난해 칸영화제에서 공개된 후 누군가 플래카드를 그렇게 빨리 만들 수 있냐고 의문을 제기해서, 실제로 제작 시간을 알아보기도 했다. 한 두 시간이면 제작하더라. (웃음) 말했듯이 공상과학 장르가 아니기 때문에 사실감이 중요했고, 이에 따른 준비를 많이 했다. 테러전담반에 수많은 문의를 거쳐 고증했고, 파일럿의 손동작과 행동 등은 옆에 탑승한 항공기 기장의 조언을 받으며 촬영했다.

비행기가 미국과 일본뿐 아니라 자국에서도 착륙을 거부당한다. 이에 따라 상황이 더욱 긴박하게 흐르는 효과도 있겠지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한 의도가 있을 것 같다. 국민들이 착륙을 놓고 찬성과 반대로 극렬하게 양분되는 모습을 매우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찬성하는 쪽이든 반대하는 쪽이든 인간이기에 두려운 감정이 드는 것은 당연하고, 이런 마음의 표현이 드러났다고 생각한다. 직접적인 묘사라기보다 은유적으로 보자면 인간이 지난 두려움과 무서움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 아닌가 한다.

칸영화제 남녀주연상 수상자(송강호, 전도연)에 이병헌, 김남길, 김소진 그리고 임시완 등 화려한 배우진으로 일찍이 주목받았다.
누구 하나 꼽을 수 없게 모두 잘 소화해 주셨다. 도연 선배는 분량이 그리 많지 않음에도 작품의 의미를 생각해 참여해 줬다. 강호 선배는 소시민 형사를 너무 잘 그렸다. 리얼한 재난의 한 면을 보여준 그가 나오는 마지막 장면을 좋아한다. 임시완 배우는 혐오스럽지 않으면서도 어딘가 실재할 것 같은 사람의 섬뜩한 면을 훌륭하게 보여줬다. 김소진 배우는 영화가 보여주고 싶었던, 제 역할에 성실한 이들이 내는 조금의 용기에 꼭 부합한 모습이다. 편집하면서 보니 더욱더 알겠더라. 그리고 비행기 안의 승객들 모두 오디션을 통해서 모신 분들이다. <비상선언>은 정말로 배우들의 노력이 빚어낸 영화라는 생각이다.

<우아한 세계>(2007), <관상>(2013)에 이어 송강호 배우와는 벌써 세 번째 호흡이다.
처음부터 송강호 선배가 안 하면 하지 않겠다고 생각했었다. 지상에서의 ‘인호’는 어떻게 보면 평범하고 단순한 역할이지만, 이를 단지 단순하게만 표현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예상되는 플롯을 따라가되 짧은 시간 안에 얼마나 호소력 있게, 땅에 발을 붙인 듯 표현하느냐에 따라서 영화의 향방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연기적으로 최고인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현장에서 심적으로 기댈 수 있는, 든든한 선배다.

바이러스 테러를 감행하는 ‘진석’은 영화에서 가장 두드러진 캐릭터로 평소 임시완 배우와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그의 어떤 면을 보고 캐스팅했는지. 또 디렉팅 방향은.
드라마 <미생>을 한동안 푹 빠져 봤는데 그때 ‘장그레’는 참 올바른 청년이다 싶었다. 진석의 캐스팅을 고민하다가 사이코패스 범죄자를 이런 올바른 청년이 연기하면 어떨까 싶은 생각이 들더라. 임시완 배우에게는 본인을 범죄자라고 생각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연기하라고 이야기했다. 과장하거나 힘주지 말고 일상적인, 최대한 자연스러운 모습이 좋겠다고 했다.

가장 고심한 캐스팅은 어느 분인가.
음, ‘인호’의 아내인 우미화 배우와 인호의 동료 후배 형사인 현봉식 배우다. 인호와 그 아내는 한 번도 같이 나오는 장면이 없지만, 그럼에도 사랑하고 서로에게 소중한 관계라는 걸 자연스럽게 알려야 했다. 동료 형사는 그 연기 톤을 어떻게 가져가야 송강호 선배와 합이 맞으면서 시너지가 날지 고민했다.

항공 재난 장르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시선도 있다. 기술적으로 호평이 많다.
기술적인 완성도가 높다는 평을 듣는 건 매우 기쁜 일이다. 나 혼자 할 수 있는 일도 아니고 그만큼 여러 요소가 어우러져야 받을 수 있는 평가이기 때문이다. 다만 내 눈에는 라이팅이나 CG 질감 등 아쉬운 부분이 보여 아주 흡족하다고 하기는 힘들다. (웃음) 이번처럼 CG를 많이 활용한 작품은 처음이라 배우들에게 시뮬레이션하는 게 힘들었다. 상상을 바탕으로 어떤 상황이고 어떻게 하면 좋겠다고 설명해야 해서… 어색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했다. 동시에 ‘아, 이렇게 하는 거군!’ 하며 많은 것을 배웠다.

기장이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쓰러진 후, 비행기가 360도 회전하면서 수직 낙하하는 장면은 정말 실감나더라. 촬영과 연출적인 면에서 중점을 둔 부분은.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사실감이었다. SF 영화라 하면, 아무도 우주선을 타 본 적이 없으니 그 세계관에서는 다 믿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비행기는 타 본 경험이 많으니 어설프면 안 됐다. 비행기 내부를 그대로 옮겨 촬영하는 데는 제약이 상당히 많다. 좁은 공간에서 찍는 것도 그렇고 여기에 사람들이 부딪치고 뒤집히면서 연기하는 데다 또 이런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야 하니 말이다. 보통은 카메라 감독이 직접 비행기에 타서 촬영하지 않지만, 우린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전달하기 위해 실제로 비행기에 올라타서 핸드헬드로 찍었다. 다큐멘터리 같은 사실감을 주기 위해서다.

지난해 칸영화제에서 상영 후 그 피드백을 반영한 부분은 있나. 편집을 거쳤다고 들었다.
지난해는 코로나 시국이라 시사회에 참석한 사람이 적었고, 그만큼 구체적인 코멘트가 많지는 않았다. 다만 우리가 생각한 보강할 부분, 그러니까 음악 CG 그리고 러닝타임을 다소 조정했다. 씬 자체는 가져가되, 긴 대사나 액션 등에서 약간씩 덜어내는 식으로 전체를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조정해서 약 6분 정도 줄였다.

어려운 시국에 촬영하고 현장을 이끌면서 지키고자 한 원칙이 있다면.
누구도 다치지 말고 안전하게 촬영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했다. 다행히 확진자 없이 무사히 촬영을 마쳤다. 또 하나는 지향점을 잊지 말자는 거였다. 다시 말해 위로와 희망의 전달이 목표였고 혹시라도 재미 혹은 자극을 높이기 위해 이를 놓치지 않도록 경계했다. 메시지를 지키면서 가능한 한 재미있게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가벼운 질문이다. 한재림은 어떤 감독인가.
가볍게 대답하자면 호기심이 많은, 재미있는 것을 하고 싶은 감독이다. 하나만 제대로 잘하면 좋겠는데 자꾸 이것저것 하게 된다. 이것을 했다면 다음에는 이것과 다른 저것을 하고 싶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웃음)

사진제공. ㈜쇼박스

2022년 8월 5일 금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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