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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답함에 눈물이 왈칵 <미드나이트> 배우 진기주
2021년 7월 6일 화요일 | 이금용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이금용 기자]
청각장애인인 ‘경미’. 회사에선 고객의 불평불만에 시달리거나 여자라는 이유로 접대 회식에 강제로 동원되고, 남자 상사들의 품평과 성희롱을 웃어 넘기고는 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경미’는 우연히 살해현장을 목격하고 위험에 빠지는데, 이번에도 장애가 그녀의 발목을 잡는다. 살인마가 다가와도 인기척을 느끼지 못하고, 비명을 질러 도움을 요청할 수도 없는 ‘경미’의 심정은 어떨까. ‘경미’를 연기한 배우 진기주는 줌 인터뷰를 통해 “답답해서 눈물이 왈칵 쏟아질 정도였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스크린에서 주연을 맡은 건 <미드나이트>가 처음이다.
영화에선 처음으로 주연을 맡았지만 촬영하는 동안에는 거기에 큰 의미 부여를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뛰고 구르느라 정신없이 촬영해서. (웃음) 하지만 이번 작품을 통해 눈에 띄게 확실한 변화가 생겼다. 사실 첫 주연작이었던 드라마 <이리와 안아줘>까지만 해도 연기자로서의 내가 어색했다. 그 다음 작품에선 덜했지만 그래도 아직 모자란 부분이 있었고 <미드나이트>를 찍으면서는 '그래도 내가 점점 연기를 하는 사람이 되고 있구나' 싶더라. 예전에는 현장에만 가면 긴장해서 잔뜩 얼어 있었다. (웃음) 대본을 읽으며 메모해둔 것들을 촬영 때 복기하며 그대로 하려고만 했다. 지금은 캐릭터에 대해 연구해볼 때도 시야가 넓어진 것 같고 현장에서도 좀 더 유연하게 대처한다. 주어진 상황에 몰입하면 자연스럽게 표현이 나올 수 있다는 걸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

앞서 말했듯 정말 영화 내내 쉬지 않고 뛰고 구르더라. (웃음)
말그대로 연골을 갈아 만들었다. (웃음) 뛰는 장면이 유독 많았다. 내가 과연 남자만큼 달려서 잡힐 듯 말 듯 아슬아슬한 장면을 보여줄 수 있을지 걱정도 많았는데 막상 그 상황이 되니 죽기살 기로 뛰게 되더라. 지금껏 내본 적 없는 속도였다. 다시는 그렇게 못 달릴 것 같다. 사실 뛸 때 허우적거리는 바람인형 같으면 어떡하지 고민돼서 달리기 영상도 참고로 봤다. 이제 컨디션이 안 좋으면 무릎부터 쑤시는 사람이 됐다. (웃음)

당신이 연기한 ‘경미’는 청각장애인이다. 육체적으로도 지쳤겠지만 대사 없이 극을 이끌어가야 하는 것 또한 만만찮게 어려웠을 것 같은데.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까지만 해도 소리를 못 듣는 연기가 그렇게 어려울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그런데 출연을 결정하고 뒤늦게 '내가 큰 일을 쳤구나!'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웃음) 소리에 예민한 편이라 크게 반응하는데 그 사실을 간과했던 거다. 현장에서는 큰 소리가 날 일이 잦을 텐데 거기에 자연스럽게 몸이 반응하지 않을까 걱정이 많았다. 그래서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내가 소리가 없는 세상에 살고 있다고 이미지 트레이닝을 했다. 나름대로 준비는 했지만 정말로 몸의 반응을 내 의지로 조절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의외로 촬영할 때는 괜찮더라. (웃음) 아무리 옆에서 큰 소리가 나도 전혀 놀라지 않고 덤덤하게 연기했는데, 지금 생각해도 신기하다.

특히 당신의 수어 연기에 대한 호평이 많은데 어떻게 준비했나.
처음엔 청각장애인 커뮤니티센터나 농인 특수학교 등을 찾아 청각장애인들의 표현 방법에 대해 직접 살펴보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알게 모르게 지닌 편견 같은 것들이 그분들에게 불편함을 줄 것 같아서 그 방법은 포기하고 대신 수어학원을 다녔다. 또 유튜브도 많이 참고했다. 수어는 손동작만으로 완성되는 게 아니라 표정과 동작이 다 어우러져서 만들어지는 언어다. 그래서 실제 농인들은 상대의 손이 아니라 눈과 얼굴을 보며 대화를 하는데, 현장에서의 나는 연기하면서 자꾸 엄마(길해연)의 손에 시선이 가더라. 내 시선을 손에서 얼굴로 올리는 데까지 꽤 시간이 걸렸다.

극중 엄마와 ‘경미’는 둘 다 청각장애인이지만 엄마와 달리 ‘경미’가 목소리를 내는 장면이 종종 나오더라.
엄마도 청각장애를 가지고 있지만 아마 제대로 된 특수교육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경미’보다 더 발음도 어눌하고 그 사실에 주눅들어 입을 열지 않는다. 실제로 농인 선생님께 대사를 읽어봐 달라고 하면 싫어했다. 본인이 말한 걸 듣지 못하니까 발음이나 목소리가 괜찮을지 알 수 없는 거다. 하지만 시대가 달라졌고, 엄마는 딸에게 자신이 받지 못했던 교육을 시켜주려고 했을 거다. ‘경미’ 나름대로도 사회생활을 하며 청인들과 소통하려고 노력한다.

아무도 가려 하지 않는 회식자리에 자원하는 것도 그 일환일까.
만약 ‘경미’가 청인이었다면 회식에 자진해서 가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경미’는 똑같은 사회 구성원으로서 차별 없이 일상을 공유하고 대화하며 지내고 싶어하는 의지가 강하지만, 그가 적극적으로 노력해야만 청인사회에 약간이나마 융화될 수 있다.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영화 속 사람들은 발음이 어눌하다는 이유로 ‘경미’의 말을 제대로 들으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고, 나아가 정신에 이상이 있는 사람 취급을 하기도 한다. 영화를 보면서 덩달아 울컥하더라.
그때는 나까지 답답해서 눈물이 왈칵 쏟아질 정도였다. ‘경미’는 평소에 수어와 필담을 주로 사용한다. 목소리는 최후의 수단이다. ‘경미’가 손짓 발짓은 물론 서툰 발음으로 최대한 열심히 표현하는데 청인들은 이 낯선 소통방식에 당황하고 자기도 모르게 피한다. 그런 장면을 연기할 때마다 답답함이 쌓이고 쌓여서 촬영 중에 소리를 막 지르거나 컷이 끝나고 길해연 선배에게 안겨 운 적도 많다. (웃음) 선배님 역시 그런 감정에 깊게 공감하시더라.

기자간담회에서도 길해연 배우에게 많이 의지했다고 밝혔는데.
아무래도 극중에서 우리 두 사람만 농인이라 연기하면서 서로에게 많이 공감했고 또 워낙 끈끈한 모녀관계 아닌가. (웃음) 엄마를 연기한 길해연 선배님에 비해 상대적으로 연기 경험이 많지 않기 때문에 가끔 촬영 중에 느끼는 감정들을 버거워했는데, 선배님이 멀찍이서 먼저 캐치하고 다가와 주셨고 의지를 많이 했다.

실제로는 어떤 딸인가.
부모님께 의존하기보다는 힘들어하는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은 딸이다. 부모는 자녀가 모든 걸 다 말해줬으면 하지만 자녀의 입장에선 좋은 것만 말하고 싶은? (웃음) 부모님께서는 내가 어떤 선택을 내리든지 항상 뒤에서 든든하게 뒷받침해주시고, 또 응원해주시지만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게 잘 안되더라.

최근 예능프로그램 <유퀴즈온더블럭>에 ‘프로 이직러’로 출연하며 당신의 독특한 이력이 다시 한번 화제를 모았다. (웃음) ‘엄친딸’(엄마 친구 딸)이라고 불리던데.
‘엄친딸’은 이제 그만! 그 호칭은 들을 때마다 너무 부담스럽다. (웃음) 지금으로선 이직할 마음이 전혀 없다. 그저 점점 더 노련하고 나은 배우가 되고 싶다. 그거 아마 현장에서 부딪히고 흔들리면서 세월이 쌓여가야 이룰 수 있을 거다. 지금은 좋은 작품을 많이 보거나 생활 속에서 내가 어떤 상황에 어떤 감정들을 느꼈는지, 내 몸이 어떻게 움직였는지,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 기억하려고 애쓰고 있다. 다만 굉장한 디즈니 덕후로서, 디즈니 실사 영화에 출연하고 싶은 욕심이 있다. 요즘 들어 다양한 인종이 프린세스를 맡고 있으니 내게도 언젠가 기회가 오지 않을까. (웃음)

어떤 역할로 출연하고 싶나.
배역은 상관없지만 최근에 가장 빠진 캐릭터를 고르자면 ‘신데렐라’다. 얼마전 고전 애니메이션 <신데렐라>를 봤는데 그동안 ‘신데렐라 콤플렉스’라는 단어 때문에 갖고 있던 편견이 완전히 깨졌다. 계모와 언니들이 시키면 맥없이 따르고 왕자와의 결혼으로 신분상승한 캐릭터로만 기억하고 있었는데 다시 보니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더라. (웃음) 나와 비슷한 오해를 갖고 있던 사람들이 있다면, 꼭 주의 깊게 감상해보기를 바란다.

사진제공_CJ E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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