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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 한 번째 영화도 코미디를 하고 싶다 <고산자, 대동여지도> 강우석 감독
2016년 9월 13일 화요일 | 류지연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류지연 기자]
1988년 데뷔 이후 스무 편의 영화 연출과 수많은 영화의 제작을 맡아온 강우석 감독. 그때와 지금의 영화계가 바뀌었냐는 질문에 그는 스타배우가 출연하는 느와르 장르, 돈 되는 영화 위주로 제작되는 편향된 세태를 걱정했다. 그러면서 <고산자, 대동여지도>가 착한 영화여서 흥행이 어렵진 않을지 우려했다. 그럼에도 강우석 감독은 아직도 착하고 재밌는 영화에 대한 갈망이 크다. 스물 한 번 째 영화도 꼭 코미디를 찍고 싶다고 말한다.

개봉 첫날 소감이 어떤가.
첫날 스코어가 좋은 편은 아니라 조금 다운돼있긴 하지만, 가족 영화이고 또 추석 연휴가 남아있기 때문에 시간이 해결해주지 않겠나 하는 기대를 갖고 있다.

예상했던 바에 못 미치는 성적인가?
그 동안 내 영화가 한 두 편을 빼고는 거의 흥행에 성공했던 편이라 그렇다. 차승원을 비롯해 배우의 이미지들도 좋은데. 예측컨대 영화 제목에서 오는 느낌 때문이 아닐까. 지도 그리는 영화라는 이미지 때문에 재미없다는 느낌을 준 것 같기도 하다.

흥행에 대한 압박은 심하지 않은가.
흥행보다는 평가에 대한 압박이 더 심했다. 강우석의 첫 사극에 대한 의구심이나, 원래 영상미를 추구하는 감독이 아니다 보니 팔도의 풍광을 잘 담아낼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 같은 것이 있었으니까. 또 관객의 입장에서 걱정했던 부분은 코미디를 조금 과하게 담아냈던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삼시세끼, 네비게이션 같은 대사라든지. 하지만 시사회 때 보니 관객들이 좋아하더라. 내가 웃음을 주려던 포인트에서 정확하게 웃었다.

기자시사회에서 이번 영화로 전작들이 다 잊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었는데.
전작들을 우습게 본다는 뜻이 아니고, 데뷔할 때로 다시 돌아간 것 같다는 뜻이었다. 데뷔 때의 마음가짐으로 앞으로도 영화를 많이 찍고 싶다는 취지에서.

앞으로도 영화를 많이 찍겠다는 뜻이었던 건가?
이번 영화로 오랜만에 코미디를 한 셈인데, 역시 나는 코미디를 찍을 때가 가장 신나고 관객을 만날 기대도 된다는 생각이 들더라. 내 코미디에 대해선 호불호가 나뉠 수도 있겠지만 나름대로의 확신을 가지고 찍었다. 오래전 작업했던 <투캅스>, <공공의 적> 찍을 때 생각이 났다. 하지만 그때는 되게 즐겁게 찍었었던 기억이 있는데 이번에는 굉장히 골몰하면서 찍어서, 현장에서 웃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앞으로는 재밌는 영화 찍고 싶다.

앞으로도 계속 코미디를 찍고 싶은 건가?
코미디에 대한 열망이 크다고 말하는 게 맞을 거다. 스물 한 번째 영화도 꼭 코미디를 하고 싶다.

고려항공을 타고 백두산에 다녀왔던 적이 있다. 그 때 전해들은 바로는 영화 속에 담긴 백두산의 경치를 자주 볼 수 있는 게 아니라고 하더라.
그렇다고 들었다. 그러니 우리는 찍을 때 어땠겠나. 차승원은 첫 커트를 찍고 엉엉 울었다. 울먹울먹하는 장면이었는데 눈물이 흘러서 다시 찍었다. 처음에 백두산을 마주하고 나서는 놀라서 서로 말이 없었다.

그런 풍경들이 담겨있기 때문인지, 이번 영화가 임권택 감독의 영화랑 비슷하다는 말들도 나오더라.
<서편제> 이후에, 우리나라의 풍광을 제대로 담은 영화가 처음이지 않나 싶다. 강우석이 이제 드디어 임권택 감독 따라가는 거냐 하는 말도 들었다.(웃음) 안 그래도 임권택 감독님처럼 나도 작품 편수가 많은 참이니까. 나에게는 듣기 좋은 얘기다.

차승원의 연기에 대해 호평이 있는 반면, 안 맞는 옷을 입은 것 같다는 의견도 있던데.
차승원의 연기에 대해서는 대부분 잘했다는 평가가 많지 않나? 원래 이렇게 연기를 잘했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연기에 대한 의심은 없지만, 키도 크고 현대적인 외모 때문에 사극에 어울리겠나 하는 우려는 있었다.

차승원은 어떻게 캐스팅하게 됐나.
이미 많이 알려진 이야기로, 김정호의 초상화와 차승원의 외모가 닮아 캐스팅 하게 됐다. 다음으로는 영화의 이야기 상, 희극과 비극을 모두 표현할 수 있는 배우가 필요했다. 영화 <아들>과 <선생 김봉두>를 통해 두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배우라는 확신이 있었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독도가 나온다. 아무래도 민감할 수 있었을 텐데.
대동여지도의 초벌지도를 보면 독도는 없고 울릉도만 있다. 그런데 독도가 없는 지도를 영화화 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답답했다. 그러다 대동여지도 이전에 만들어진 청구도에는 독도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또 여러 근거들을 토대로 대동여지도에 독도가 없는 이유는 실측을 못했기 때문이라고 판단했고, 독도 관련 이야기를 넣기로 했다.

이는 원작과 다른 부분인가?
원작에는 독도가 아니라 간도가 나온다. 박범신 선생 입장에서는 원작대로 간도를 넣길 원했을 거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독도 얘기를 안 하려니 마음이 답답하더라. 어떤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관련 장면을 넣은 건 아니었다. 그런데 영화를 찍다 보니 오히려 독도 사랑이 생겼다.

영화 속에는 김정호의 삶뿐만 아니라 천주교 박해와 김정호의 가족이야기도 담겼다.
천주교 박해와 관련된 이야기들은 원작에도 실려있는 부분이다. 대원군이 집권하는 동안 천주교를 박해하면서 외국 신부를 포함해 2만명을 죽였다고 한다. 그게 그때의 시대상이었다. 하지만 영화가 천주교 박해 자체를 보여주려 했던 게 아니다. 그렇게 끌려간 딸을 놓고도 지도를 내놓지 못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담아내기 위한 설정으로 이용했다고 보면 된다.

영화 속에 정작 지도를 그리는 김정호의 모습이 생각보다 많이 드러나지 않는다.
김정호가 팔도를 유랑하며 지도를 만드는 이야기를 기대한 분들도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김정호가 두 발로 전국을 돌아다니며 지도를 완성했다는 이야기는 식민사관과 연결돼 민감하다. 문헌을 찾아보면 김정호는 실학자이자 과학자이자 지리학자라고 나온다. 한 사람이 여러 지방을 돌아다니면서 지도를 그렸다는 것은 불가능 한 일이다. 대동여지도는 각종 지방의 군도와 현도를 모아서 조립해서 만들었고, 이후 특징적인 곳에 답사를 가는 형식이었을 거라는 학자들의 주장이 지배적이다. 나라도 답사는 갔을 것 같다. 대동여지도에 나온 곳 중 가장 섬세한 곳이 백두산인데 산맥과 봉우리의 정밀함이 기가 막히다. 금강산, 호미곶 등도 마찬가지다.

오랫동안 영화계에 몸 담아 오셨다. 예전과 많이 바뀐 점이 있는 것 같은가.
요즘은 독창적인 영화가 나오기 힘든 구조가 아닌가 생각한다. 예전에는 돈을 번 영화인들이 다시 다른 영화에 투자하는 방식으로 다양한 영화를 기획했다. 예를 들어 <취화선>같은 경우 투자 문제로 제작이 어려울 즈음, 우연히 촬영장에 놀러 갔다가 내가 제작비를 모두 대기로 결정했었다. 물론 손해는 봤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취화선>이 칸에서 감독상도 받았다. 그렇게 한국영화가 알려진 덕에 박찬욱 감독의 수상도 가능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앞으로는 박찬욱 같은 감독이 나오기 힘들 것 같다. 돈이 안 되는 영화는 투자가 불가능한 시대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또 만들어지는 영화의 장르가 매우 한정적이다. 스타 배우 여럿이 나오는 느와르 장르가 주로 제작되고 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엔 감정을 짠하게 건드리는 드라마나 로맨틱 코미디, 멜로 드라마도 필요하지 않나. 옛날엔 영화만 잘 만들면 흥행에 실패해도 두 번 째 기회가 주어지곤 했는데 지금은 흥행이 안되면 다음 작품 찍기 힘들다. 옛날에는 재능을 보여주면 됐는데 이제는 숫자로 증명해야 한다.

<고산자, 대동여지도>는 그런 면에서 요즘 흥행하는 스타일의 영화는 아닌 것 같다.
어쩌면 착한 영화라 스타트가 느린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풍광은 아름다운데 왜 <고산자, 대동여지도>에서는 사람이 안 죽냐고 하더라.(웃음) 어떤 기자는 나에게 왜 착한 영화만 만드냐고 질문했다. 이번 작품을 통해서는 아이와 어른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많은 사람들이 대동여지도가 무엇인지 알 수 있는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영화를 만들고 소재를 선택할 때, 시대가 보이는 이야기가 좋다고 말한 적이 있다.
나는 소재 속에 사회성이 안보이면 잘 못 찍겠더라.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는 성적 때문에 자살하는 얘기였고. <투캅스>도 형사 비리를 고발하는 이야기, <공공의 적>은 돈 때문에 존속살인 하는 이야기였다. 이번 영화에서도 지도를 두고 흥선대원군과 권력이 충돌하는 부분이 없었다면 영화화하지 못했을 것 같다. 또 단순히 김정호를 예술가로 보고, 그의 인생을 조명하는 영화를 만들어야 했다면 한 했을 것 같다. 하지만 김정호의 삶에 여러 드라마를 덧붙일 수 있었고 더불어 사회의 충돌도 보여줄 수 있었기 때문에 이 작품을 선택했던 것 같다.

요즘 흥행하는 영화들 또한 대부분 사회고발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 <부산행>에서부터 <터널>까지 무능한 공권력이나 정부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그런 이야기가 관객의 호응을 얻는 지점이 분명 있는 것 같다.
영화 안에 사회가 담겨야 보는 사람이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방식은 피하려고 한다. <한반도>때 내가 했던 이야기는 사실 판타지였는데 대통령을 미화한다는 근거로 심하게 비아냥을 당한 적이 있었다. 그 동안 영화 속에서 어떤 정치적인 입장을 채택해 흥행에 이용하려고 한 적은 없었다. 너무 직접적인 방식보다는 이야기에 몇 겹을 두르는 방식으로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이번 영화를 찍으면서 가장 마음에 들거나 의미 있었던 장면이 있을까.
영화의 마지막 쯤, 광화문에 지도를 펼치는 장면과 대동여지도 원판이 담긴 엔딩 장면이 마음에 든다. 김정호라는 사람이 실제로 저런 걸 만들었다는 걸 두 눈으로 보게 되는 장면이라 감동적이기도 하고 의미 있다.

최근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있다면.
영화를 찍으면서 찍기 힘든 장면 찍을 때 느꼈던 행복이 가장 크다. 백두산을 촬영했을 때나 광화문에 지도 원판 까는 중요한 장면을 찍었을 때. 그럴 때 느끼는 쾌감이 일상을 살면서 느끼는 쾌감보다 더 크다.

2016년 9월 13일 화요일 | 글_류지연 기자 (jiyeon88@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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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_김재윤 실장(Z 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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