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은영 기자]
분량은 많지 않으나 (쿠키 영상을 포함한다면) <신과함께- 죄와 벌>(이하 1부)의 시작과 <신과함께- 인과 연>(이하 2부)의 마지막을 책임지는 인물인 ‘염라대왕’을 연기했다. 분장 포함 역할에 대한 첫 느낌은.
처음에 분장하면서 별 걸 다하는구나 싶었는데 하다 보니 나름 재미있더라. 원래 내 사진을 바탕으로 ‘염라대왕’의 외형을 12가지 버전을 만들어 왔었다. 모두 해볼 수 없으니 그중 고르고 골라 4가지를 선택, 직접 분장해 테스트해 봤었다. 한 번 분장만 해도 4시간이 걸렸으니.... 결국 최종 후보 2개를 골랐는데, 둘 다 마음에 무척 든다고 해서 결국 머리는 푸는 것과 머리를 올려 통감을 쓰는 버전 모두 하기로 했다. 딴에는 재판 시 판사도 의복을 따로 갖춰 입지 않냐고 이유를 붙이며 말이다. (웃음)
역할을 맡으며 가장 신경 쓴 부분은.
분장 테스트하며 고려했던 게 일단 나와 어울려야 하고 영화 속 ‘염라대왕’의 모습이 신선했으면 했다. 사실 나를 포함해서 염라대왕의 모습을 본 사람은 없다. 다만 상상할 뿐인데, 상상과 어느 정도 씽크로되면서 참신한....아주, 어렵겠지? 그래서 고민이 컸다. 너무 안 어울리면 흑역사로 남을 테니 말이다.
그 찰랑찰랑 힘 있는 웨이브가 참.... 아름답더라. (웃음) 한편에선 ‘염라언니’라고 부르기도 한다.
하하, 그게 촬영 안 하고 쉴 때 긴 머리가 거추장스러우니 스태프가 집게로 머리를 올려 줬었는데, 그 모습을 보고 ‘강림’(하정우)이 ‘염라 언니’라고 부르기 시작, 이후 별명으로 정착? 됐다.
극 중 ‘염라 언니’의 걸쭉하게 굵은 목소리 또한 인상적이다.
감독님께서 굵은 톤의 소리를 원하셨고 나 역시 캐릭터에 어울린다고 생각해서 걸쭉한 음색을 내려고 노력했다. 보통 안성에 있는 기마 세트에서 촬영했었는데 그곳까지 집에서 한 시간 반 정도 걸린다. 가는 도중 계속 목을 풀면서 갔다. 다행히 톤이 적절했던 것 같다.
원래는 ‘염라대왕’ 역이 아니라 소방관으로 카메오 출연하기로 했었다고?
시나리오를 보기 전이었는데, 소방관 역이 있으니 카메오로 한 번 출연해 달라고 연락 왔더라. 그래서 알겠다고 했지. 그런데 며칠 지나 다시 연락이 왔는데 이왕 해줄 거 염라대왕을 해달라는 거였다. 당시는 시나리오를 보기도 전이니까, “아니, 염라는 또 뭔데?”라고 물으니 염라 역시 많이 안 나온다고 하더라. 막상 시나리오 보니 생각보다 중요한 인물로 가벼운 마음으로 잠깐 현장에 나가서 연기할 역할이 아니었다. 요즘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 <신과함께>에 어떻게 참여하게 됐냐 와 어쩌다가 이렇게 인터뷰까지 하게 됐냐는 거다.
아마 1부에서 인터뷰를 안 했기에 반가운 마음과 카메오라고 하기엔 너무나 존재감이 크기에 그런 질문이 쏟아지나 보다. 생각해보면 이번 ‘염라대왕’은 분량 대비 고효율? 배역이 아닌가 한다. 당신에게 이색적인 필모로 남을 것 같다.
맞다! 진심으로 고마워하고 있다.
스포일러 문제로 자세히 질문하기 어려운데, ‘강림’(하정우)에게 느끼는 감정을 은연중에 드러내는 연기가 쉽지 않았겠더라.
환생을 위해 삼차사(하정우, 주지훈, 김향기)가 천년의 시간을 보냈듯, 염라 역시 천년을 기다려 온 인물이다. 시나리오를 읽은 후 감독님과 그 부분에 대해 가장 많은 이야기를 나눴었다. 염라 캐릭터 구축 시 가장 기본이 되는 요소로 알 듯 모를 듯 미묘하게 그 차이를 표현하려 했다.
<신과함께>는 당신의 판타지 첫 도전작이기도 하다.
좀 전에 (당신이) 말했듯, 내 필모에 중요한 작품이 될 것 같다. 더욱이 ‘염라’는 판타지 극에서도 가장 판타지스러운 인물 아닌가. 이런 기회를 줘서 고맙다. 또, 작년 연말 영화 개봉 후 캐릭터 덕분에 관객들과 더 가까워진 느낌이 많이 든다. 예전보다 나를 향한 친근감이 커진 것 같아 더욱 감사한다.
영화의 원작이 많은 독자를 거느린, 주호민 작가의 동명의 웹툰이다. 원작을 읽었는지.
당시 <대립군> 촬영 중이라 내가 좀 늦게 합류했었는데, 그 직전에 원작을 읽었다. 다행히 영화가 원작을 해치지 않았구나 싶었다. 주호민 작가가 이야기하려고 했던 여러 감성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김용화 감독 스타일로 잘 녹여냈다고 생각한다.
1부와 2부를 동시 촬영했지만, 2부 완성본은 이번에 처음 봤을 텐데 개인적인 감상은.
시사 때 처음 봤는데, 옆에 김용화 감독님도 같이 봤었다. 영화 끝나고 감독님께 정말 정성을 다한 것 같다고 말했다. 1부를 찾아 주셨던 1,400만 관객에게 감사의 의미를 담아 만든 게 아닌가 할 정도로 한컷 한컷에 들인 수고가 느껴졌다.
1부가 너무 잘 됐기에 한편으론 부담감 혹은 책임감이 클 것 같다.
2부의 경우 비주얼이 세심해졌고 사운드 디자인이 월등하게 좋아졌다. 배우들의 대사와 음악과 효과음이 아주 조화로웠고, 그 점이 영상을 더 살려주더라. 2부의 흥행이 어떻게 되든 전편에서 받은 사랑에 대해 고마움을 담아 공을 많이 들였으니, 그 부분을 알아주신다면 충분하다.
VFX(Visual FX) 기술 면에서 덱스터의 자신감이 느껴지더라. 1부와 2부를 동시 제작하여 시차를 두고 개봉한 점은 정말 모험이라 할 수 있다. 지금이야 웃으면서 얘기하지만, 1부가 흥행에 실패했다면 아마도....(웃음)
그런 시도를 했다는 것 자체가 매우 큰 용기를 낸 거라고 본다. 영화에 참여한 많은 분이 뜻을 모아주었기에 가능했겠지. 연출을 맡은 감독 입장에서는 함께 해준 배우와 스태프들에게 고맙고 책임감이 남달랐을 거다. 감독님이 1부 개봉을 목전에 두고 잠도 못 자고 밥도 잘 못 먹는 초긴장 상태였던 거로 알고 있다. 당시 개봉 전에 감독님과 만나서 함께 식사했었는데, 본인은 최선을 다한 거 같다고 겸허? 하게 얘기하는데 그 말을 듣고 갑자기 짠해지며 눈물이 핑 도는 거다. 밥 먹다 말고 눈물이 나는데.... 참, 옆에 있던 정우는 재미있다고 사진 찍고 있고! 흥행에 대해 기대보다 마음을 내려놓고 지켜보자고 했는데, 그렇게까지 많이 사랑받을 줄은 몰랐다. 지금 생각하면 즐거운 추억이다.
1부 개봉 때 많이 했던 질문인데, 당시는 인터뷰를 안 했기에 늦게나마 물어본다. 가장 두려운 혹은 무서운 지옥은?
음, 나태 지옥? 왠지 저기는 가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름 열심히 살았다고 해도 항상 좀 더 열심히 할 걸 하는 아쉬움이 있어서인 거 같다.
<신과함께>에 카메오가 아니라 정식 출연했다면, 해보고 싶은 역할은.
이리저리 뛰며 고생한 삼차사야 말할 것도 없고 각 역할과 배우가 너무 잘 어울려서 이번에는 내가 다른 역할을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조차 안 든다. 특히 2부에서 ‘성주신’으로 처음 등장한 마동석 배우의 경우 연기 스펙트럼이 그렇게 넓은지 몰랐다. 정말 감탄했다.
‘염라 언니’가 추천하는 2부 관람 포인트는.
삼차사의 천년 전 과거와 현재 캐릭터 사이에 간극이 큰데, 그 연기 보는 게 가장 큰 재미일 거다. 아, 또 마블리 ‘성주신’을 빼놓을 수 없다.
개인적인 얘기로 들어가 보자. 이정재에게 연기란.
배우가 직업이라면 연기는 일인데, 예전에는 언제쯤 잘하게 될까 이런 생각을 많이 했었다. 그런데 잘하고 싶다는 생각은 끝이 없더라. 이제는 현장에서 재미를 느끼는 게 좋다. 다행히 일을 계속할 수 있게 동료 영화인이 찾아 주고, 관객분도 긍정적으로 봐주시니 여러모로 다 감사하다.
배역의 크기에 관계없이 기꺼이 작품에 참여하는 이유는.
연기자에게 중요한 건 캐릭터지 분량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주·조연 가리지 않고 일하게 된다.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 혹은 가장 애착이 가는 캐릭터를 꼽는다면.
음, 여러 인물을 연기했지만 누가 뭐래도 데뷔작 <젊은 남자>(연출 배창호, 1994)의 ‘이한’이다. 데뷔작에는 뭐라고 표현하기 힘든 애틋함이 있다.
데뷔작인 데다 당신에게 대종상 신인남우상을 안겨준 작품이니 그럴 것 같다. 판타지 이후 다음 도전은.
장재현 감독의 <사바하>로 약간 껄렁한 ‘박목사’를 연기한다. 개인적으로 오컬트 장르는 처음이고 흥미로운 캐릭터라 새롭게 느껴졌었다. 현재 촬영을 끝내고 후반 작업 중이다.
‘염라대왕’의 이미지가 워낙 시각적으로 강렬해서, 이후 다음 캐릭터 연기에 걱정되지 않던가.
개인적으로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캐릭터를 다른 작품에서 새로운 캐릭터로 덮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염라대왕’이 기억나겠지만, 만약 <사바하>가 개봉한다면 주인공인 ‘박목사’를 기억에 남도록 해야 한다.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연기하는 건 내 몫, 평가는 관객의 몫이다. 연말에 가보면 알게 되겠지.(웃음)
얘기 하다 보니 개봉을 앞둔 초조함과 긴장감 등을 초월한 느낌이 든다. 25년 연기 경력에서 오는 연륜인가 보다.(웃음)
완전히 초탈할 수 있을까! 대중의 사랑 받는 게 내 힘으로 되는 게 아님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열심히 준비해서 최선을 다해 연기하는 것일 뿐. 다만 스스로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를 자문하고 놓치는 부분이 있었다면 (관객에게) 죄송한 마음이 들 수 있다. 하지만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면 그 이후에는 관객의 냉정한 평가를 겸허히 받아들이려 한다.
차기작과 향후 활동 계획은.
아마 <사바하>로 연말에 인사드릴 것 같다. 그 후 작품은 아직 결정을 못 했다. 일단 제안 들어오는 시나리오를 검토 중이다.
그간 연기하며 슬럼프가 있었을 텐데, 그 시기를 보내는 노하우가 있다면.
일을 하면서 슬럼프도 극복한다. 일을 많이 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게 그런 시기를 거치면서부터인 거 같다. 내 상황이 좋을 때도 안 좋을 때도 있었는데, 있는 그대로 상황을 받아들이고 작품과 캐릭터에 충실하다 보면 어느덧 힘든 시기가 지나가 있더라.
여담이다. 일을 열심히 하는데 주로 영화 쪽에 편중된 것 같다. 다른 분야로 대중과 인사드릴 생각은 없는지. 가령, 중년? 여행 프로그램이라든지...
사실 비슷한 섭외가 꽤 들어온다. 계속 정중히 거절했었는데, 혹시 (하)정우가 잘 기획해 본다면 또, 모르겠다.
오, 그렇다면 하정우 배우가 하자고 하면 하는 건가? 마지막 질문! 최근 행복했던 순간이나 인상 깊은 일이 있다면.
음... 딱히 생각나는 게 없는데, 아 얼마 전에 집에 수국이 활짝 하얗게 꽃이 폈는데 너무 예쁘더라.
2018년 8월 1일 수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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