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연애행각] 다시 보고 싶지는 않은 울버린판 보디가드
2013년 8월 7일 수요일 | 앨리스 이메일


확실히 이제껏 알고있던 울버린은 아니었다. 무려 13년이나 만나왔던 울버린이지만, 폭발적인 에너지를 거칠게 내뿜던 울버린은 어디로 가고 노숙자처럼 산야에 묻혀 야생 곰과 친구하며 무기력한 날들을 보낸다. 그도 그럴 것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는 하지만 사랑했던 여인을 자신의 손으로 보내버렸으니 매일 밤 악몽에 시달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겠지.

이런 울버린 앞에 묘하게 생긴 동양여인이 나타난다. 어찌나 묘하던지 측면은 제법 매력적이고 정면은 도저히 적응 안되는 얼굴을 하고 있다. 하여간에 칼 솜씨만큼은 예술인 이 여전사는 늙지도 죽지도 않는 울버린이 세계 제2차 대전 당시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됐을 때 구해줬던 일본인 병사가 이제는 검버섯이 뒤덮인 노인이 되어 죽기 전에 울버린을 꼭 한번 만나보고 싶다며 보낸 전령이었다. 이렇게 일본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울버린판 보디가드 로맨스 스토리가 시작된다.

<더울버린>이 왜색이 짙다는 평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 배경이 일본인데 어쩌라는 말인지. 진짜 문제는 영화의 배경이 미국에서 일본으로 옮겨진 뒤 점점 더 전편에 비해 저예산일 것이라는 확신이 강해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액션히어로무비를 보러 극장을 찾았을 때 당연하게 기대하는 것들이 있지 않은가. 일단은 스펙터클한 스케일, 숨쉴 틈조차 주지 않는 화려한 액션으로 가득한 화면, 빠르게 전개되는 스토리에 흥분을 더해주는 빵빵한 사운드일 텐데, 여기에 일본이라는 동양적 분위기가 특색있게 가미되면 그야말로 금상첨화일 텐데, <더울버린>이 보여주는 것은 솔직히 말해서 서울이든 홍콩이든 상관 없었을 거 같은 도쿄의 거리, 어느 유흥가 뒷골목의 러브호텔, 한적한 시골 바닷가 마을 뿐이다. 다 떠나서 맙소사 러브호텔이라니. 그러니까 김이 빠졌다.

이렇게 된 데에는 나름 이유가 있긴 하다. 울버린은 자신을 일본으로 부른 야시다의 손녀딸과 사랑에 빠진다. 왜 빠지게 되는지는 알 수 없다. 단지 그 둘이 멋지고 아름답기 때문이라고 생각해두는 것이 속편하다. 막강한 부와 명예를 갖고 있는 야시다 가문의 수장이 임종을 앞두고 후계자로 지목한 것이 이 어리고 어여쁜 손녀딸이다. 우리나라의 재벌 일가가 흔히 그러듯, 손녀딸 마리코의 아버지 신겐은 딸의 안녕보다는 자신이 딸에게 밀려났다는 분노에 급기야 딸을 없애려고까지 하고, 마리코 역시 원치 않는 가문 승계에 대한 부담과 두려움에 더해 사랑하는 연인 하라다와도 집안의 뜻에 따라 억지로 헤어질 수 밖에 없었던 아픔까지 간직하고 있다. 누가봐도 딱 짜여진 비운의 여주인공이다. 이런 마리코를 눈여겨 보던 울버린은 한바탕 요란 뻑적지근한 야시다 장례식에서의 위험천만한 결투 끝에 납치당할 뻔한 그녀를 구해내고 입을 맞춘다. 왜 입을 맞추는진 알 수 없다. 그 둘이 멋지고 아름답기 때문에 서로에게 반했다고 생각해두는 것이 속편하다.

울버린이 로맨스를 보여준다는 것 외에 <더울버린>에서 가장 특징적인 설정은 울버린이 치유능력을 상실했다는 점이다. 날고 긴다는 엑스맨들 중에서도 가장 강력했던 울버린도 13년쯤 흘렀으면 이쯤에서 한번은 위기가 올거란 예상을 하게 되지만, 무려 치유능력 상실이라니 충격이 크다. 흐르는 피가 멈추지 않고 총에 맞은 다리를 절룩거리며 아파하는 울버린을 보는 것은 어색하고 슬픈 일이다. 하지만 갑자기 인간에 가깝게 변화된 울버린이기에 마리코와의 로맨스가 조금은 설득력있게 그려진 건 아닌지 싶다. 애초에 치유능력을 상실하지 않았다면 부상당한 울버린이 마리코와 함께 도망다니며 로맨스를 싹틔우지 않았을 것만 같달까. 시골마을 은신처에서 유카타를 입고 젓가락으로 밥을 먹으며 짧지만 달콤했던 애정행각을 벌이는 울버린. 그는 난생 처음 상처 부위에 붕대를 대고 지치고 불안한 표정을 하고는 있지만 도로를 막고 쓰러진 나무에 도끼질을 하며 마을 사람들을 돕고 연인과 함께 바닷가를 산책하며 평범한 미국인 남자처럼 지낸다. 다행히도 이 평온하고 아름다운 일상이 보는 이들로 하여금 지루함을 느끼게할 때쯤 마리코는 납치되고, 울버린은 다시 분노에 차오른다.

다행이면서 당연하게 치유능력을 되찾은 울버린은 기대보다 디테일이 떨어져서 실망감을 안겨주는 닌자들과의 격투 끝에 결국 마리코를 구해내긴 한다. 어쨌거나 <더울버린>을 통해 확인한 것은, 울버린의 로맨스는 앞으로도 별로 보고 싶지 않다는 점이라 하겠다. 액션히어로가 아름다운 여인과 사랑에 빠지고 그 여인으로 인해 위기의 상황에 직면하게 되지만 결국엔 극적으로 승리해서 사랑과 평화를 동시에 지켜낸다는 스토리는 충분히 흥미진진하게 반복되어온 클리셰지만, 맨중맨 휴잭맨의 미친 매력은 아릿다운 여인을 옆에 세워두고 함께 만드는 그림이 아니라 오직 터프한 몸과 섹시한 수염이었다는 걸 분명하게 해주는 영화 <더울버린>이었다.

2013년 8월 7일 수요일 | 글_앨리스(무비스트)

(총 3명 참여)
cherain
내 돈 내고 전범기를 봐야하는 기분이란...   
2013-08-14 14:22
hot07
원작의 설정에 따르기 위해 러브라인이나 배경은 어쩔수 없는 부분이라고 해도
울버린을 어이없이 괴롭히는 쇼맨십 충만한 닌자들이나 실속없는 바이퍼, 심경의 변화를 전혀 따라갈수 없는 하라다, 은혜를 원수로 갚는 실버사무라이 등 아쉬움이 많이 남는건 어쩔수 없더라구요..
여자주인공의 집안도 참;; 울버린1을 기대했다간 안되고 그냥 기대없이 봐야 하는 작품이었어요   
2013-08-08 20:19
kshwing
울버린 특유의 섹시함으로 충분한데,, 로맨스 따위 필요없어요!!!ㅎㅎ   
2013-08-08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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