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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회고하는 완곡한 비판, 미야자키 하야오의 <바람이 분다>
2013년 8월 13일 화요일 | 최지나 기자 이메일

지금 일본은 뜨거운 논란 속에서 무더운 여름을 보내고 있다. 일본의 우익 관료들은 그들만의 논리로 과거의 오명을 정당화하고 있으며, 재선에 성공한 아베 총리는 헌법 9조 개정안을 굽히지 않으며 전 세계적 눈총을 사고 있다. 협력이 요구되는 국제화 시대에 더 이상 우익화될 수 없어 보이는 일본은 위태위태한 독자 노선을 택하는 듯하다. 그리고 논란이 종국에 달한 이 시점, 애니메이션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5년간의 침묵을 깨고 신작 <바람이 분다>로 새로운 이야기를 선보인다. 지난 50년 간 우리에게 꿈과 모험의 세계를 안겨준 그가 이번에는 어떤 이야기를 가지고 왔을까.

영화는 개봉직후부터 일본 국내외로 핏발 선 양날의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일본 안에서는 일제의 상징 히노마루(일장기)가 반복적으로 일그러지는 장면들이 조국에 대한 모독이라고, 일본 밖에서는 군국주의의 상징 제로센을 만든 인물에 대한 미화라며 몰아치는 양쪽의 비난을 동시에 감내하고 있다. 이를 위한 해명 작업이 필요했던 것일까. 지브리 스튜디오에서는 7월 26일 한국의 기자들을 초청하여 <바람이 분다> 시사회를 가진 후 도쿄도 코가네이시에 위치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개인 아뜰리에 ‘니바리키’에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과 스즈키 토시오 프로듀서의 기자회견을 열었다.
<바람이 분다>는 분명 미야자키 하야오의 기존 애니메이션과 다른 노선을 취한다. 걸어 다니는 거대 저택도, 숲 속의 고양이 버스도, 하늘을 날아다니는 돼지도 종적을 감추고 그 공백을 창공으로 채우고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을 꿈과 모험의 판타지로 기억하는 이에게 이번 신작은 분명 낯선 새로움일 것이다. 하지만 꿈과 열정을 말하는 감독의 주제의식은 여전히 원로의 지혜와 함께 오롯이 빛을 발하고 있다. 비극을 자아낸 제 2차 세계대전의 전범 국가, 그리고 함께 전쟁을 일으킨 전범 국가들 중 뚜렷한 열등 국가였던 1920년대의 일본. 당대 일본은 불경기, 가난, 병, 대지진 등 끊임없는 재앙 속에서 전쟁을 이끌어나가야 했던 딜레마와 아이러니를 함축하고 있다. 일제의 횡포 속 통탄의 근현대사를 보낸 우리나라로서는 이런 일본의 시대배경이 불편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군국주의의 핵심인 비행기, 제국주의의 상징인 제로센을 설계한 인물을 소재로 잡았다는 점은 우리에게 수많은 물음표와 느낌표를 안겨준다. 따라서 이번 기자회견의 현장은 전범국이란 일본의 역사, 그에 대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인식, 그리고 과거를 망각한 현 일본 정부의 태도 모두에 대해 끊이지 않는 질문들로 민감하고도 뜨거운 기류를 감내해야만 했다.

분명 영화와 사회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에 놓여있다. 영화가 사회의 변혁을 이끌어내기도 하지만 때로는 사회적 흐름이 영화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물론 예술지상주의를 표방하며 예술의 독립적 힘을 말하는 영화들도 종종 있다. 또 영화가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매개체로 전락하는 건 목적과 수단의 병리현상이라는 문제제기도 몇 십 년 간 회자되던 화두이다. 하지만 <바람이 분다>는 이러한 안전지역으로 치부되기에는 너무나도 민감한 소재를 다루고 있다.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 역시 이를 감지하고 있다. 그가 성실하게 고뇌하며 제작한 이번 결과물을 내놓음과 동시에 날카로운 질문으로 공격할 한국의 기자들을 일부러 일본까지 초청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는 증명된다. 영화는 분명 전범 기업의 인물을 다루고 있다. 하지만 그런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았다는 것만으로 영화가 부끄러운 역사를 미화시킨다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다. 문제는 그 주인공을 ‘어떻게’ 그리고 있느냐다. 그러나 이 관점에서도 <바람이 분다>는 여전히 논란의 여지를 피할 수 없다. 영화의 주제는 수치스러운 역사를 바로잡는 것보다 수치스러운 역사 속 투쟁하는 개인의 치열한 삶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난이 점철된 시대에서 무리한 전쟁을 주도하는 일본의 모습과 사랑하는 이의 병환을 알고도 모른 척하며 비행기 설계에 매진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어쩐지 겹친다. 은유보다 직유에 익숙한 관객들은 제로센을 만드는 주인공의 모습에 집착할 것이다. 하지만 거친 표면 속에 내포된 의미에 주목하는 관객들은 계속해서 떨어지는 일장기와 기약 없이 돌아오지 않는 제로센으로부터 세련되고도 완곡한 비판을 읽을 것이다. 영화를 보고 보지 않는 문제는 개인의 자유다. 영화를 어떻게 볼지도 개인의 자유다. ‘바람이 분다, 그래도 살아야겠다’라는 표어 아래 인물의 치열한 삶을 그리고 싶었다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주제 의식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관객의 몫으로 남겨져 심판을 기다리고 있다.

●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인터뷰

<바람이 분다>에 대한 간략한 소개 부탁한다.
<바람이 분다>는 1903년에 태어난 실제 비행 설계사 호리코시 지로의 체험기에 소설가이자 시인 호리 타츠오의 자전적 소설 ‘바람이 분다’의 로맨스를 섞은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소설 ‘바람이 분다’는 폴 발레리의 시 중 ‘바람이 분다, 그래도 살아야겠다’라는 구절에서 영감을 받은 이야기로, 영화의 주제의식과 궤를 같이 하는 소설이다.

<바람이 분다>는 당신의 작품 중 처음으로 역사적 배경 속 실존 인물을 다루고 있다. 아이들을 위한 애니메이션을 꾸준히 작업해온 이전의 노선과 달리 이번 영화는 어른들을 위한 영화란 생각도 든다. 이와 같은 변화를 시도하게 된 계기 혹은 이유가 있나?
어린이들을 위해 영화를 제작하는 일은 상업주의와 타협해서는 안 되는 신성한 영역이라 생각하고 있다. 이 일을 하기 위해서는 이에 동요하지 않는 어른으로 있어야만 한다. 현재 시대의 톱니바퀴가 돌아가며 세계는 대변동기에 접어들고 있다. 내가 이 시대 속에서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보고, 어떻게 느끼는지 지독히도 많은 질문을 받고 있다. 아이들은 잠깐 기다리게 하더라도, 한 소년으로 돌아와 어려웠던 진심의 시대를 회고한 것이 <바람이 분다>이다.

영화 속에서 ‘바람이 분다, 살아야 한다. 살아있는 것이 멋지다’는 이야기를 한다.
바람은 산뜻한 바람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시대의 거친 바람, 방사선이 포함된 독이 든 바람도 분다. 동시에 바람이 분다는 것은 생명이 빛나는 증거이기도 하다. 바람은 세계이며 생명이자 시대다. 따라서 ‘세계는 있다. 세계는 살아 있다. 나도 너도 살아있다. 아무리 힘들어도 살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이해하고 있다.

이번 작품은 전작들에 비해 현실감과 역사성이 엿보인다. 영화 속 전쟁과 일본의 군국주의에 대한 우회적 비판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나 왜 하필 제로센 비행 설계사를 주인공으로 설정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무기를 사용한 인간을 주인공으로 영화를 만들자’에 대한 의문은 나와 스탭들에게도 있었다. 하지만 ‘정의가 보증되지 않는 왜곡된 시대 속에서 꿈은 변형되고 고뇌는 해결되지 않은 채 살아가야 한다’는 운명은 사실 현대에 살고 있는 우리 자신들이 아닐까라는 생각으로 이 영화를 제작했다. 또한 호리코시 지로와 호리 타츠오는 20세기 모더니즘의 시대에 일본에서 매우 특출한 인물이었다는 점 역시 제작의 또 다른 이유였다. 두 인물은 비행기 설계와 문학이라는 전혀 다른 분야에 몸담았지만, 이 둘이 동일 인물처럼 생각됐다. 세월이 흘러 이런 화학반응이 발생했으리라 생각하지만, 내 영감을 바탕으로 솔직하게 영화를 제작했다.

주인공은 군국주의 제국의 비행기를 만든다는 점에 있어서 어떤 고민을 하는지 잘 보이지 않는다. 주인공은 전쟁에 대해 어떤 관점을 취하고 있는 건가?
자신이 만든 비행기가 태평양 전쟁에 사용되는 것을 보면서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어떤 생각을 했으리라 생각한다. 단지 열심히 살았다고 해서 면죄가 되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례로 아이들이 뛰어 놀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이웃집 토토로>를 만들었지만 내 바람과 달리 <이웃집 토토로>를 보며 아이들이 더욱 더 방 안에서 TV만 보는 결과를 초래했다. 분명 열심히 한다고 해서 좋은 결과만 나오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주인공 지로 역시 꿈을 향해 열심히 달려왔지만 단지 열심히 살았다고 해서 면죄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도 전쟁 관련 인물을 주인공으로 영화를 제작한 것에 대해 여전히 의문이 든다.
호리 타츠오는 소설에 전쟁의 내용을 전혀 담지 않고 이야기를 써낸 작가다. 호리 타츠오 역시 역사 인식이 부재하다고 욕을 먹었지만 이에 대항하며 작업한 인물이다. 그는 죄로 점철된 시대를 살아왔기에 죄는 지워질 수 없고 같이 업고 가야 함은 명백하다. 하지만 이와는 별개로 그는 좋은 소설가였다. 일례로 내 아버지 역시 그 시대에 태어나 전쟁에 가담한 참전 군인으로 죄를 업은 인물이었지만, 아버지로서는 좋은 아버지였다고 생각한다. 그 시대에 태어났던 호리코시 지로 역시 분명 그 시대와 같이 살아갈 수밖에 없었을 거다. 그 시대의 그림자를 업고 가야 하지만 그보다는 살아가는 순간 순간을 짚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호리코시 지로가 옳은 삶을 살았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열심히 살아왔지만 그런 이유로 비참하다고도 스스로 얘기하곤 했다.

전쟁 물자를 만든 인물에 대한 미화라는 의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미화하지 않았다. 혹시라도 그런 사람을 만나게 된다면, 그 사람은 영화를 보기 전부터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사람일 것이다. 내 신념은 흔들리지 않는다.

최근 헌법 개정에 관해 소신 있는 의견을 개진해서 한국에서도 많은 회자가 되었다. 아베 정권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는지 궁금하다.
‘열풍’이라는 잡지에 헌법 개정에 대한 글을 실었는데 현재 온라인상에서 많은 논란이 되고 있다고 들었다. 헌법 개정에 대해서는 내 생각을 솔직히 개진했을 뿐이고 그 생각에 대해서는 여전히 변함없다. 우선 동아시아 지역은 전부 사이가 좋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중국, 한국, 일본은 서로 싸우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1989년에 일본 경제의 버블이 붕괴되고 같은 시기에 소련 붕괴도 있었다. 바로 그 시기에 일본인은 역사 감각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한다. 그 때 잃어버린 일본인의 역사 감각을 가져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그동안 일본은 역사 얘기를 해왔어야 했지만 경제 얘기만 해왔던 것 같다. 그렇게 경제적으로 악화되면 마치 모두 다 잃어버리는 것처럼 치부되어온 것 같다. 영화도 흥행 수익이 얼마인가에만 관심을 가지고 스포츠 선수의 상금에만 관심을 가진다. 사람들이 얼마를 버는지도 요즘은 쉽게 물어본다. 예전에는 그런 질문은 하지 않는 게 예의였던 것 같은데 말이다. 사실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 중요한데 지금 이 시대는 돈에만 관심을 가진다. 그런 경제에만 몰두하는 아베 총리는 곧 무너질 것이다. 이제 경제에 대한 관심은 그만 접고 제대로 된 역사 인식을 되찾아 동아시아의 평화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관객들이 <바람이 분다>의 어떤 부분에 초점을 두고 봤으면 하나? 그리고 관객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이번 영화 마지막 신으로부터 약 10여 년 전의 시간은 생략되어있다. 그 십 년 정도의 기간이 전쟁이 가장 많았던 시기인데, 그 시기를 영화에서 다루지 않았고 궁금하다면 자료를 따로 찾아봐야 할 거다. 일본의 상징인 히노마루를 이렇게 많이 그려본 작품이 없다. 하지만 히노마루가 붙어있는 비행기들은 전부 다 떨어진다. 이걸 보고 여러 가지 생각이 있을 것이라 예상된다. 반일감정은 반한감정도 발생시킨다. 나는 동아시아가 평화롭기를 마음속 깊이 바라고 있다.

2013년 8월 13일 화요일 | 도쿄=글_최지나 기자(무비스트)
사진제공_대원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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