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하지 않은 영화, 그래서 특별한 영화
마들렌 | 2003년 1월 8일 수요일 | 서대원 이메일

마들렌은 달걀의 부드러움과 바닐라향이 녹아나 있는 조가비 모양의 미니컵 케이크 빵이다. 또한 마들렌은 마르쉘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소설의 주인공이 유년시절을 되새기게 할 수 있게끔 도와주는, 신통함을 지닌, 타임머신이다. 영화 <마들렌>은 고스란히 화면에 담는다. 마들렌의 이러한 속성과 의미를.

<마들렌>은 생물학적인 나이와 동창이라는 것 외에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비슷한 구석이 없는 청춘남녀의 연애과정을 특별하지 않게 그린 잔잔한 영화이다. 물론, 한 순간이라도 대중의 여린 심성을 포획하고자 정서적 파장이 큰 영화적 장치를 능수능란하게 요리하여 돌발적으로 스크린에 내미는 현재의 주류적 방식을 생각해보자면, 역으로 <마들렌>은 특별한 청춘멜로물이기도 하다. 전혀 스페셜하게 생기지 않은 설경구가 초 스페셜 배우이듯.

이제 스물 살을 갓 넘긴 희진(신민아)과 지석(조인성)은 중학교 동창이다. 이들은 우연하게 서로 알게 되고, 요즘 세대답게 자시들의 여물지 못한 감정을 필설로써 형상화시킬 수 있는 여지를 만들기 위해 한 달 동안 교제하기로 한다. 남자는 말이 80년대 생이지, 소설가를 꿈꾸는 그는, 386세대만큼이나 진지하고 고루하고 아날로그하다. 여자는 또래의 얘들과 마찬가지로 당차면서 핸드폰과 PC게임을 자신의 몸 다루듯 매만진다. 지석과 희진은 이토록 다름의 차이가 너무나도 크다. 그러기에 그들에게는 그만큼 또 틈의 여백을 메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 있다.

보기 만해도 회춘할 것 같은 파릇파릇한 희진과 지석이 어떻게 자신들의 정서 안으로 상대방을 끌어들이고 받아들이며 닮아가는지 <마들렌>은 세세하고 차분하게 잘 보여준다. 푸석하지 않고 부드러운 마들렌의 맛처럼. 공유할 수 있는 생활의 코드가 전무한 그들을 멋들어진 화음으로 영글게 하는 매개체는 전언했듯 마들렌 빵이며, 그들은 이 자그마한 밀가루 덩어리에 몸을 실은 채 중학교로 백 투 더 과거한다.

지석과 희진의 시작은 이렇듯 소꿉장난의 그것처럼 가볍고 장난스럽다. 하지만 그들의 생각과 행동방식이 차츰 포개지는 순간과 과정은 매우 사려 깊게 영화를 통해 그려진다. 상큼한 젊음이 모든 것인 양, 한 없이 관객의 질투심을 자극하던 준비된 연인, 지석과 희진은 전 남자친구와의 몸 섞임에 의한 희진의 임신으로 인해 파열음을 내기 시작한다. 이들과 더불어 영화 역시 비틀거리기 시작하고.

<하얀방>, <색즉시공>, <마들렌>은 공교롭게도 모두 임신과 낙태에 관한 소재를 나름대로 비중있게 다룬다. 하지만 이 영화들은 민감한 사회적 아젠다를 끌어들여와 어떠한 대안적 활로도 찾지 못하고 주저앉고 만다. 남자는 쳐 죽일 나쁜 놈으로 묘사되고, 가련한 여인은 모든 역경을 혼자서 해결하려 한다. 고난의 십자가를 짊어 매고 홀로 힘겹게 진군하는 성녀처럼 말이다. 그러다 영화들은 마무리를 짓지 못해 갈팡질팡하다가 갑작스레 언제 그랬냐는 듯 모든 것을 조기 종결한다. 이에 반응하는 지석의 모습 역시 제대로 묘사가 안 돼, 중반까지의 바닐라 향과 같은 은은함은 영화 속에 오래 머물지 못한다. 그 외에도 지석의 문어체적 대사와 성혜(박정아)의 국어책 낭독 스타일의 어투는 영화의 흐름에 부자연스러움으로 복무한다. 이러한 미진함은 남녀의 대화를 중심으로 극이 이끌려 나감에도 불구하고 <해리와 샐리를 만났을 때>처럼 치고받는 대화의 리듬을 <마들렌>으로부터 기대하기 어렵게 만든다.

한 가지 재미난 사실은 <마들렌>를 통해 우리는 근래의 한국영화들을 떠 올릴 수 있다는 것. 지석과 희진이 문자 메시지를 형상화시켜 스크린에 띄우는 것은 <고양이를 부탁해>와 거의 똑같고, 아파트 현관문에, 사랑의 감정을 대일밴드를 이용해 드러낸 설정은 <와니와 준하>에서 준하가 와니를 위해 냉장고에 붙여 놓았던 메모지를 연상시키며, 남녀가 비 쫄딱 맞고 여관방에 들어가 어색해하는 장면은 <번지 점프를 하다>를 겹치게 한다.

<퇴마록>이후 4년 만에 다시 돌아온 박광춘 감독은 “자극적이지 않은 따뜻한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그의 말마따나 영화는 순간적으로 감성을 자극시키는 요란한 상황도 드물고, 억지춘향이 식의 과장된 코믹묘사도 없다. 그렇지만, 혈기 넘치는 청춘 배우들의 설익은 연기 호흡과 영화의 뒷심 부족으로 인해 따뜻함이 보는 이들의 가슴으로까지 전달되기에는 다소 버겁다. 대신, 마들렌 빵이 그러하듯 영화 <마들렌>도 먹을 만한 맛이 분명 있다는 점, <마들렌>를 먹어보면 안다.

(총 3명 참여)
gaeddorai
그림은 확실히 이쁘다   
2009-02-22 21:52
ejin4rang
좋은 내용이군요   
2008-10-16 15:16
kangwondo77
리뷰 잘 봤어요..좋은 글 감사해요..   
2007-04-27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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