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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행간과 영화의 사이, 그 모퉁이
파이란 | 2001년 5월 2일 수요일 | 모니터 2기 기자 - 강영훈 이메일

파이란 3류 건달인 강재(최민식)는 깡도 끈질김도 없는, 도무지 건달에는 어울리지 않는 사내다. 미성년자들에게 포르노 비디오 테이프를 팔다 구류를 살고 나오고 깡패 조직의 후배들에게까지 무시를 당하며 상황은 그를 참담하게 만든다. 그나마 유일한 희망인 배 한 척을 사서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꿈조차 요원하기만 하다. 그런 상황에서 옛친구이자 조직의 보스인 친구를 대신해 살인죄를 뒤집어 쓰는 것과 배 한 척을 살 수 있는 돈의 교환은 뿌리치기 힘든 제의일 것이다. 이미 그는 헤어나오기 힘든 절망의 수렁에 한 발쯤 빠져 있으므로. 그 어름에서 예전 자신이 돈을 위해 위장 결혼을 해 주었던 중국인 아내 '파이란'(장백지)의 죽음 소식을 맞는다. 그리고 그는 서류상 남편이라는 이유로 그녀의 죽음을 수습하러 간다. 그가 처한 상황을 고려할 때 그 여정은 자신의 어긋난 이전 삶을 버리러 가는 과정이다.

영화 [파이란]은 전반부에서 강재라는 밑바닥 인생을 중심으로 욕지거리가 난무하고 약육강식의 원칙이 너무나 뚜렷한 깡패 세계 속에서 구차하게 살아가는 한 사내를 냉철하게 포착한다. 참담하고 절망적이기까지 한 그의 삶에 어쩌면 아내 '파이란'의 죽음이란 빨리 처리해 버려야 할, 꼬인 그의 삶을 더욱 꼬이게 만드는 귀찮은 일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예기치 못한 순간에 찾아온 '파이란'은 편지를 통해 그에게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붓는다. (한용운, '님의 침묵')

"바닷소리 들립니다. 비 옵니다. 아주 캄캄합니다. 누운 채, 손 한 쪽으로만, 서투른 글씨 미안합니다./ 고로 씨가 정말 좋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누구보다 고로 씨가 좋습니다. 아픈 거 괴로운 거 무서운 거가 아니라 고로 씨를 생각해서 울고 있습니다. 매일 밤 잠들 때 꼭 그랬던 것처럼 고로 씨 사진 보면서 울고 있습니다. 항상 그랬지만, 친절한 고로 씨 사진 보면 눈물이 나옵니다. 슬픈 거 괴로운 거가 아니고 고맙다로 눈물 나옵니다."

비록 골격만 가져 왔지만, [파이란]의 원작인 아사다 지로의 소설 <러브 레터>는 그 자체로 맛깔스런 소설이다. 소설 속 죽음을 앞둔 '칸 파이란(姜白蘭)'이 말단 야쿠자 조직원 고로(영화 속의 강재)에게 보내는 '러브 레터'의 이 구절쯤에서 읽는 이는 망연해진다. 편지의 사이 사이에 드리워진, 이국땅에서 사형 선고를 받은 한 외로운 여인의 실루엣은 그대로 읽는 이의 삶을 돌아 보게 만드는 것이다. 그렇다면 영화 [파이란]에서는? 영화 속에서 그 메시지는 강재를 통해 반사된다. 소설의 미세한 감정 흐름의 전달이 행간의 의미를 들이미는 직접적인 것이라면, 영화 속에서는 강재라는 인물을 통해 그 감정선을 간접적으로 건드리는 것이다. 영화 속 강재는 파이란의 편지를 읽으며, 그녀의 메시지를 관객에게 실어나르는 매개자인 동시에 그것을 통해 변화하는 당사자이기도 한 것이다.

그렇듯, 만일 영화 [파이란]이 주는 감동은 다분히 강재 역을 맡은 최민식의 몫이다. 이 영화를 최민식의 영화라 해도 과장이 아일 정도로 그의 연기는 소설 속 행간을 메꿔, 원작의 감동을 오롯이, 아니 어쩌면 더큰 파장으로 관객들에게 전해준다. 영화 후반부 '파이란'의 유해를 품에 안고 담배로도 막지 못하는 격한 감정에 흐느끼는 강재의 모습만으로 그건 충분히 대변된다.

그 모습은 무언가 보는 이들의 삶을 되돌이키게 하는 힘이 있다. 하긴 강재의 삶이란 조금 극단적일 뿐,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습가 어딘가 닮아 있다. 살면서 한번쯤 참담함에 빠지지 않는 사람 그 뉘 있으랴. 그 참담함에 몸서리쳐 보지 않은 이, 또한 앞으로 그러지 않을 이 몇이나 되겠는가. 또한 그 참담함의 결과가 강재처럼 얼굴의 상처로 외형화하진 않았더라도 많은 사람들의 마음 속 생채기로는 남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강재가 생각치 못한 것에서 진실로 자신을 친절한 사람이라 생각해 주었던 이를 통해 자신을 되돌아 보았듯, 영화를 통해 그러한 계기를 마련했던 우리들은 그 되돌아봄의 끝, 길거리 어느 모퉁이에선가 작지만 큰 깨달음 하나 떠올리며 슬며시 미소짓지 않을까. 일찍이 한 시인이 설파했던 것처럼. ―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안도현, '너에게 묻는다')

3 )
ejin4rang
그래도 원작이   
2008-10-17 08:43
ldk209
아무리 보잘 것 없는 사람에게도 소중한 사람은 있다...   
2008-10-04 19:52
rudesunny
기대됩니다~   
2008-01-14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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