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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색 고향(2000, Sky Blue Hometown)
제작사 : 씨네마야 / 배급사 : 씨네마야
공식홈페이지 : http://www.sky-blu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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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급
  • 12세 이상 관람가
  • 시간
  • 93 분
  • 개봉
  • 2003-03-21
  • 전문가영화평

[뉴스종합] 다큐멘터리 ‘하늘색 고향’ 극장 상영 03.03.04
하늘색고향을보고... jiuuu9 03.03.14
<헤르마프로디토스> 삶과 예술 사이의 외줄타기 leepd09 03.03.12
이주자의 삶과 애완을 그려냈다 ★☆  chati 06.11.23
보고싶은데 구할 수가 없네 ★★★★☆  xcv0448 05.07.28
sadmovie78님 저의 20자평을 도배하셨군요.. 이유가 뭔지.. ★★★★  tillus 03.03.24



영화를 마치고 나서...

[하늘색 고향]이 처음 기획된 1997년 1월, 그로부터 어언 6년이란 세월이 흘러가고 있다. 그 시간에 배인 수많은 난관과 많은 이들의 꺾이지 않은 열정이 결국 이 영화를 완성하게 했다. 조국, 그리고 역사라는 무거운 명제를 떠나 누구나 그리워할 마음의 고향을 찾아 지난 150여 년의 세월을 차근차근 훑어보았다. 황무지에서 새로 시작한 우리 동포들처럼 [하늘색 고향]의 운명도 그들과 같았다. 그리고 지난 2001년 이 영화가 촬영된 지 만 4년 만에 난 다시 우즈베키스탄을 찾았다.
이 영화를 위해 혼신을 다해준 현지 스텝들과 인터뷰에 응해주신 증언자 분들, 그리고 완성된 영화를 채 보시지도 못하고 이미 세상을 떠나신 고령의 출연자 분들과 함께 한 자리에 모이는 시간인 만큼 내겐 그 감회가 더욱 깊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그간의 세월에 묻혀진 뭔지 모를 감정이 주마등처럼 흘러가는 것을 느끼며 조용히 극장 안에 불이 켜졌다. 여전히 자리에 앉아 스크린을 응시하고 있는 물기어린 눈의 관객들과, 그들에게서 들려오는 희미한 흐느낌, 그리고 서로의 존재를 느끼고 있는 우리들의 깊은 침묵만이 남았다. 그래도 난 돌아갈 내 나라가 있구나... 이 생각이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내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누구라도 데려가주면 고향땅에 가고 싶다고 허탈하게 웃으셨던 한 할아버지의 모습 역시 눈앞에 아른거렸다. 그리고 어느덧 어언 6년이란 세월을 난 이 영화와 함께 살아왔다. 이제는 일반관객들 품으로 이 영화는 어렵게 조심스러운 한 발을 떼려고 한다. 비록 작은 한 걸음이지만 이 한 걸음이 뜻있는 작업을 하고자하는 모든 후배들에게는 작은 용기가, 그리고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겐 역사 속에 담긴 진정한 우리들의 참모습을 찾아가는 작은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간 고생해주신 모든 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리며...
끝으로 영화의 완성을 위해 정신적인 지주가 되어주셨던 아버지 영전에도 깊은 감사를 드린다.

영화 [하늘색 고향]의 역사적 배경은...

19세기 조선은 당시 정치혼란과 서구열강의 개항요구로 극심한 어려움을 겪게 된다. 러시아 국립문서 보관소의 자료에 따르면 러시아 국경지대로의 첫 이주가 1850년대로 기록되어 있는데, 당시 조선의 사회, 경제적 혼란으로 새 삶의 터전을 찾아 연해주와 블라디보스톡 등지로 떠난 농민들이 대부분이었다. 그 후 1910년 한일합방으로 그 숫자는 점차 늘어가면서 연해주 일대는 독립운동의 거점이 되고, 수많은 탄압과 저항의 증거지가 된다.
그러던 1937년 9월, 스탈린은 일본과의 대접전을 예견하고 러시아 국경지대의 한인들을 대대적으로 이동시킨다. 이른바 강제이주라는 대참사가 발생하는데, 그 실험대상 1호가 바로 한인이었다. 한인들은 일본의 스파이라는 명목으로 가축 운반용 화물열차에 실려 중앙아시아의 황량한 벌판으로 쫓겨난다. 이주 전과 이주 도중, 그리고 이주 후에도 약 3,000명의 많은 한인 민족 지도자들을 포함해 수많은 한인들이 체포되어 하바롭스크 감옥 등지로 유형에 처해지거나 처형되기에 이르고, 전염병이 창궐하여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는 또 하나의 비극을 겪는다.
그 후 소연방이 붕괴된 1991년 이후 독립국가연합이라는 새로운 국가체계가 형성되면서 새롭게 대두된 민족주의로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으려는 한인들을 포함한 수많은 소수민족들의 또다른 이주가 진행되고 있다.

이 영화의 모티브인 신순남은...

21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등진 무심한 아버지, 그 후 어머니의 재가로 홀로 남겨진 그에게 있어 부모란 할머니 외에 아무도 없었다. 그늘진 유년시절이 흘러가던 1937년 가을 어느 날, 그는 선생님으로부터 이제 더 이상 학교에 나오지 말라는 어이없는 말을 듣는다.
곧 시작된 강제이주... 이주 명령이 떨어지자 마을의 수많은 남자들은 어디론가 끌려가고, 어린 아이들과 노약자, 그리고 부녀자들이 화물열차에 몸을 싣는다. 목적지도 모르는 그들에게 기차 안에서의 체포는 이어지고, 기본적인 생활 여건조차 갖춰지지 않은 기차의 열악한 환경에 많은 노약자들이 숨졌다. 남겨진 가족이라곤 할머니와 여동생... 그는 강제이주 직후 전염병으로 꽃다운 열여섯에 세상을 뜬 여동생의 봉분도 없는 묘지를 오랫동안 가슴속에 묻어두어야만 했다. 그를 친자식처럼 돌봐주던 할머니는 어려운 살림살이로 인해 카쟈흐스탄의 친척에게 보내지고, 언젠간 할머니를 다시 모셔오겠다는 또 하나의 상처로 이어진다.
이 아픔은 당시 신순남 뿐만 아니라 대다수 고려인들의 비극이었다. 강제이주 당시 수많은 고려인들은 카쟈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으로 나뉘어져 정착되었고, 거주이전의 자유가 없어 옆 나라의 피붙이들도 제대로 만나러 가지 못했다. 모국어와 풍습을 박탈당한 그들은 서서히 러시아인으로 동화되어 갈 수밖에 없었고, 모스크바나 키예프 같은 대도시로의 유학은 꿈도 꾸기 어려웠다. 아스트롭스키 미술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한 그에게 모스크바 유학이라는 천금같은 기회가 주어지지만...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그에겐 이룰 수 없는 꿈이었다.
그는 협동농장으로 돌아와 [레퀴엠] 연작을 위해 다시 붓을 든다. 예술에 대한 믿음과 미래에 대한 희망, 시대와 타협하지 않는 자신과의 싸움 속에서 그는 [레퀴엠] 연작을 그려나간다. 이렇게 그의 필생의 대작 [레퀴엠]은 마침내 1990년, 만 33년 만에 완성되기에 이른다. 그는 영화의 서두에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노예였습니다. 노예에겐 이름도, 민족도 없습니다. 그래서 난 [레퀴엠]에 얼굴을 그려 넣지 않았습니다..." 세로 3미터, 가로 44미터의 대형화폭 속에 형상화된 그들의 어제와 오늘은 눈, 코, 입이 없는 민자의 얼굴에서부터 시작해 서서히 제 모습을 찾아가는 무수한 인간 군상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레퀴엠]은 1997년, 한국에서 개최된 [신순남 한국특별전]을 끝으로 조국, 대한민국에 무상 기증되어 현재 국립현대미술관에 소장되었고 그 해 한국정부로부터 금관문화훈장을 수여 받았다.

정명화의 첼로곡이 헌정된 영화음악

영화 [하늘색 고향]에는 우리 민요인 '엄마야 누나야'를 기본 모티브로 한 정명화의 첼로곡이 깊은 음색의 현악 4중주로 연주, 녹음되었다. 특히 한국 예술종합학교의 이영조 교수는 그가 작곡한 음악 두 곡, '엄마야 누나야'와 '겨울나무'를, 세계적인 첼리스트 정명화 교수는 그의 음반 중 두 곡, '엄마야 누나야(이영조 작곡)'와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중 3악장 안단테(라흐마니노프 작곡)'를 각각 이 영화를 위해 헌정했다. 또한 젊은 신예 작곡가 김준성과 현덕이 직접 작곡한 음악들은 생과 사의 기로에 섰던 사람들의 애끓는 한을 담담하면서도 애잔하게 담아내고 있다.

O.S.T 대표곡 소개

엄마야 누나야 (작곡: 이영조, 첼로: 정명화)

이 영화의 메인테마 곡으로 사용된 이 곡은 우리에겐 김소월의 시로도 너무나 잘 알려진 민요풍의 곡으로 아름답고 단아한 멜로디의 첼로를 위해 이영조 교수가 편곡한 것이다. 또 다른 버전의 '엄마야 누나야'는 김준성의 작곡으로 이영조 교수의 곡을 피아노와 바이올린 곡으로 재해석하고 있다.

레퀴엠 (작곡: 김준성)

신화백의 대표적인 작품명이자 이 영화의 테마인 이 곡은 글자 그대로라면 죽은 자의 넋을 위로하는 의미인 진혼이겠으나, 작곡가는 이 음악에서 살아있는 자들의 삶 속에 드리워진 죽음을 음악으로 위로하고 있다.

키리에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작곡: 현덕)

이 곡은 서양의 레퀴엠에서 크게 4가지 성부로 이뤄진 Kyrie(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Sanctus(거룩하시다), Benedictus(축복), Agnus Dei(주의 어린양) 중 첫 성부를 현덕이 새롭게 작곡한 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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