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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주체적 자리잡기 부메랑
kharismania 2006-12-15 오전 3:51:11 883   [2]
우리는 잘못했을 때 상대방에게 사과를 한다. 그것은 상대방과의 어긋난 관계회복을 위해서이다. 하지만 그것이 반대로 관계의 결말을 위해 사용되는 경우가 있다. 그 관계에 대한 종착의 선고는 지속되던 관계에 간격을 만들고 그 간격을 통해 서로의 연결을 끊고자 함이다. 사과는 때론 그렇게 관계의 변화를 각자 다른 방향으로 밀고 나가기 위한 방편으로 활용되곤 한다.

 

 애인을 만나기 위해 회사를 나서는 현정(문소리 역)에게 한 남자가 관심을 보인다. 상훈(김태우 역)은 현정에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지만 현정은 남자친구가 있다며 거절한다. 그녀는 이미 7년이나 교제한 애인 민석(이선균 역)이 있고 그녀는 그와 결혼할 것이라는 확신을 지니고 있다. 제주도로 현정과 민석은 여행을 떠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중 현정은 갑작스럽게 민석에게 이별을 통고받는다. 미안하다는 사과와 함께 7년의 인연은 갑작스럽게 종착역에 들어선다.

 

 긴 연애끝에 갑작스런 이별을 겪게 된 현정에게 상훈의 존재감은 갑작스럽게 다가선다. 그녀에게 말없이 명함만을 내밀고 가버리던 상훈은 어느날 그녀에게 꽃을 내민다. 잠깐의 갈등이 존재하지만 상훈의 한결같은 애정은 실연의 상처로 채워져있던 현정의 마음을 어루만져준다. 그리고 남녀는 결국 결혼에 이른다.

 

 영화는 두 남자보다는 한 여자에게 포커스를 맞춘다. 한 여자가 두 남자를 차례로 겪으며 그 관계는 연애와 결혼이라는 방점으로 이어진다. 긴 연애는 실연이 되었고 갑작스러운 로맨스는 결혼으로 이어졌다. 현정은 마치 실연의 상처에서 달아나듯 상훈의 마음으로 도피했고 그로부터 안식을 얻었다고 위안을 삼지만 그 일시적인 눈가림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아웅으로 돌변한다. 상훈과의 결혼생활안에서 스스로 헌신하지만 처음의 애틋한 마음은 변하지 않는 지속적 권태감안에서 서서히 희석되고 그 안에서 점점 피해의식이 자리잡기 시작한다. 그 타이밍에서 갑작스럽게 민석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 치유되지 못한채 묻어두었던 상처, 혹은 그리움이 불쑥 자라난다. 미처 지우지 못한채 시간으로 덮어두었던 과거의 연애담은 점점 지긋지긋해지는 현실을 더욱 각인시킨다.

 

 현정은 극중 두번의 사과를 한다. 민석에게 한번, 상훈에게 한번. 그 사과의 어휘는 같지만 의미는 반대다. 민석에게 하는 사과는 자신의 부적절한 관계, 즉 불륜으로 정의될 법한 행위에 대한 단절을 표방하는 의미를 지닌다. 그리고 그와 반대로 상훈에게는 자신이 종결지으려 했던 상대와의 재결합의 의지라는 의미를 지닌다. 이는 그보다도 먼저 자신이 들어야 했던 사과에 대한 스스로의 대답과도 같고 하지 못했던 대답의 뒤늦은 완결과도 같다. 민석의 갑작스러운 이별통고를 담은 사과에 아무말도 하지 못했던 그 시절의 상처로부터 완벽하게 탈피하고 자신의 현재에 충실하고자 하는 거듭남의 의미를 지닌다. 무엇보다도 민석과의 관계에 끝을 맺고자하는것은 자신이 지녔던 과거에 대한 탈피에 가깝다. 그것은 단순히 불륜에 대한 죄책감이라기보다는 자신이 미련을 지녔던 과거로의 회귀에 대한 시대착오적 욕망으로부터 벗어나고 있음을 의미한다. 또한 상훈에게 그것을 고백하며 사과하는 행위는 그런 심리변화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상징적 행위이다. 결국 도피했던 감정이 정리되는 순간에 지어지는 매듭의 행위로써 활용되는 사과라는 것이다.

 

 영화는 단순하게 현정과 상훈, 민석의 삼각구도만을 들여다보지 않는다. 현정의 가족을 통해서 그안에서 위치한 여성이라는 방점을 통해 현정이 자리잡고 있는 지점을 살피기도 한다. 한 가정의 맏딸인 현정의 집은 아버지(주진모 역)를 제외하면 어머니(최형인 역)와 여동생 선영(박미현 역), 즉 여성으로 이뤄진 집안이다. 아버지는 명예퇴직으로 돈벌이가 없고 어머니와 자신이 그 경제적 축을 맡고 있다. 현정이 회사를 그만 두고 상훈을 따라 구미로 내려가겠다고 할 때도 후에 서울로 올라와 출산을 하고 회사를 다니는 중 상훈과 이혼하겠다고 할 떄도 그에 눈물로 호소하는며 반대하는 것은 어머니인데 그녀는 딸에게 집안사정을 들먹인다. 재미있는 것은 가정의 1세대가 겪는 내부적 진통이 2세대로 옮겨가는 구도인데 실직된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회사를 그만두고 실직의 형태가 되는 상훈의 모습은 유사하고 집안의 경제력을 책임지는 어머니의 모습은 현정과 유사하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계승으로부터 탈피를 꿈꾸는 현정을 막고자하는 것은 어머니인데 이는 단순히 개인의 피해의식을 뛰어넘어 가족이라는 울타리의 지속성을 유지하고자 하는 구성원으로써의 의도로 여겨진다. 후에 그녀가 아버지가 안경을 찾으며 어머니를 책망하는 장면에서 눈물을 흘리는 것 역시 그런 아이러니한 모순이 당연스러울 수 밖에 없는, 혹은 어쩔 수 없는 방편이라는 것을 깨닫기 때문이다.

 

 물론 현정이 갑작스럽게 결혼을 이루었던 것은 실연이 만들어낸 상처로부터의 도피욕구이기도 했고 충만되던 애정의 빈자리를 메꾸고자 하는 결핍의 심리도 한몫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 순간의 욕구로 메꾼 욕망의 유효기간은 길지 않았고 그찰나에 마무리짓지 못한 감정의 정리는 지속되는 시간의 풍화작용에 의해 벗겨지는 위장같은 일시적 행복의 밑천이 떨어질 때쯤 드러난다. 그리고 그녀는 타성적으로 감정에 이끌리던 과거를 청산하기 위해 능동적인 태도를 구사한다. 이별하게 된 것도 민석의 통고에 의한 것이었고 결혼하게 된 것도 상훈의 구애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스스로 이별을 고하고 이혼을 결심한다. 그리고 다시 결합을 결심하는 것도 그녀다. 한 여자가 스스로 자신의 내면적 변화를 겪어가며 능동적인 삶을 추구하는 것은 현정이 단순히 그녀 개인만이 아닌 현대의 여성상을 대변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과거에 비해 능동적인 삶을 추구하는 현대의 여성들의 변화는 그녀로부터 드러나고 이것이 당연하고 지속되어야 할 것임을 촉구한다. 그것은 단순히 자신이 타인의 삶에 소비되는 대상이 아닌 누군가와 함께 소비하는 삶을 살아가는 대상으로써의 자리매김을 위한 각성과도 같다. 결혼이라는 행위가 여성으로써 의무적인 통과의례가 아닌 삶의 수단이 되는 행위이자 중요한 방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 그것은 여자가 오늘날을 살아가는 방식이 얼마나 다양한 스펙트럼을 지닐 수 있는가에 대한 사유와도 맞닿는다. 단순히 여권의 신장을 통해서가 아닌 자신들 스스로의 고민을 통해 꺠우쳐야 할 위치의 확장을 말이다.

 

 이 영화는 사과라는 행위를 통해 한 여성의 삶이 변해가는 양상을 살피고 그안에서 함께 변모해가는 인식의 모습을 발견하고 관찰한다. 그 짧막한 한마디로 인해 달라져 버린 여인의 삶은 여자라는 하나의 성역할을 고민하게 한다. 남성이라는 성적권위안에서 주변부를 지키던 여성이 주체적인 자리로 들어서는 오늘날의 변화를 묘사하고 그 안에서 그녀들이 고민해야 할 하나의 과제를 부여한다. 자신들의 넓어진 삶의 기회를 통해 얻어야 할 것과 간과해서는 안되는 것에 대한 사유. 이 영화의 사과를 통해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들은 바로 이것이다. 상훈이 결국 현정의 품안에서 잠이 드는 것처럼 결국 과거로부터 이어져오던 여성의 성역할은 관계의 단절보다는 회유적 용서로 지속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다만 그 행위가 능동적인 성향을 띠고 있음은 분명 커다란 변화임에 틀림없다. 자신의 행위가 의무가 아닌 권리임을 깨닫는 것. 그 주체로써의 의식의 성장을 말이다. 

                        -written by kharisma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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