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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격랑에 휩쓸려가는 개인의 무력감... 관상
ldk209 2013-09-13 오후 4:15:18 675   [1]

 

역사의 격랑에 휩쓸려가는 개인의 무력감... ★★★☆

 

역적의 자손으로 깊은 산 속에 칩거하고 있던 천재 관상가 내경(송강호), 처남 팽헌(조정석), 아들 진형(이종석)은 관상 보는 기생 연홍(김혜수)의 제안으로 한양으로 올라와 술집에 머물며 사람들의 관상을 봐주게 되는데, 그러던 어느 날, 좌상 김종서(백윤식) 쪽 사람으로부터 살인 사건의 범인을 봐달라는 부탁을 받고 관상만으로 범인을 알아낸 후, 김종서와 수양대군(이정재)의 주목을 받게 된다. 김종서의 신임을 얻게 된 내경은 문종(김태우)의 지시에 따라 어린 왕자(단종)의 자리를 위협할 수 있는 인물의 관상을 보게 되고, 수양대군이 역모를 꾀하고 있음을 직감한다.

 

<관상>은 1453년 단종이 즉위하던 해, 숙부인 수양대군이 왕위를 빼앗기 위해 일으킨 난, 계유정란을 다루고 있다. 당시 수양대군은 한명회, 정인지 등과 일부 무인들을 동원, 단종을 보좌하던 김종서, 황보인 등을 살해하고 안평대군을 축출한 후 정권을 장악했으며, 그로부터 2년 후 단종으로부터 왕위를 물려받게 된다. 영화 <관상>은 이 과정에 사실은 천재 관상가가 수양대군의 역모를 알아내고, 김종서와 함께 어린 단종을 보호하고 역모를 막기 위해 동분서주했었다는 것이다.

 

<관상>은 좀 생뚱맞아 보이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갑자기 등장한 저 노인네는 누굴까? 역사를, 아니 역사 드라마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마 저 노인네가 한명회일 거라고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즉, <관상>은 노년이 된 한명회가 계유정란을 회상하는 일종의 액자 형식을 띄고 있다. 이 액자 형식이 영화의 진행에 개입해 들어오지는 않지만, 뜬금없어 보이는 프롤로그는 에필로그와 연결되면서 나름 영화 전체에 탄탄한 짜임새와 묘한 감상적 분위기를 부여한다. 게다가 수양대군의 책사를 감춰둔 채 스릴러 영화처럼 활용한 부분은 영화에 극적 긴장감을 높여준다.

 

142분이라는 꽤 긴 상영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기본적인 재미를 부여한다. 숙부가 어린 조카를 내쫓고 많은 사람을 죽이며 왕위를 차지한다는 계유정란은 그 자체로 너무 흥미진진한 이야기 아닌가 말이다. 여기에 배우들의 연기와 앙상블은 시종일관 극에 활력을 불어 넣는다. 송강호는 두 말할 나위 없고, 이 영화의 코믹한 부분을 담당하는 조정석의 활약도 만만치 않으며, 김혜수의 감칠 맛 나는 연기도 좋다. 특히 이정재는 아마 주연은 아니지만 자신의 최고작으로 삼아도 좋을 그런 연기를 보여준다. 배우로서의 이정재는 <하녀> 이전과 이후로 나눠질 것 같은데, 자신을 억누르던 뭔가를 벗어던진 듯한 느낌이며, 이번 <관상>에서 그런 자세와 배역이 아주 절묘하게 어우러진 결과를 보여준다.

 

<관상>은 기본적으로 역사의 격랑에 휩쓸려 가는 개인이 느끼는 무력감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무력감이 영화 전반에 짙게 내려 앉아 있다. 초반 꽤 코믹한 분위기로 시작한 영화는 계유정란, 쿠데타, 역모가 본격적으로 시도되는 지점부터 아주 어두워지며 급속도로 긴장감이 높아진다. 그런데 이 긴장감은 묘한 느낌을 준다. 왜냐면 우리는 이 영화가, 아니 주인공의 시도가 결국 실패로 돌아갈 것이라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뭐랄까? 일종의 허탈함이라고나 할까. 아무리 역사적 사건을 예측할 수 있어도, 개인의 능력으로 그 물꼬를 바꾸는 게 불가능하다는 건 자칫 운명론이나 체념으로 나아갈 여지가 있기도 하지만 또 반대로 역사는 한 두 사람의 힘이 아니라 그 자체로 집단적, 민중적 의미가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관상>이 기본적으로 대중적 재미를 안겨준다고는 해도 여러모로 아쉬운 점이 눈에 띈다. 특히 그 중에서 개연성이 부족하다는 점이 가장 크게 다가온다. <왕의 남자> <광해> 역시 개연성이 부족하지 않냐고 말할 수 있다. 광대가 연산군의 작전에 동원되고, 가짜가 광해 노릇을 하고, 천재 관상가가 수양대군의 역모를 저지하려 한다는 의미에서의 개연성이 아니라, 영화에서 관상가의 역할에 개연성이 부족하다는 얘기다. <왕의 남자>에서 광대는 아무리 연산군의 주목을 받았어도, 연산군이 원한 건 광대로서 자신을 도와주는 것이었기 때문에 이들은 영화 내내 광대였다. <광해>는 아무리 가짜라고는 해도 왕의 신분이었기 때문에 여러 가지 행정에 개입하고 결정할 수 있었다.

 

그러나 <관상>의 관상가는 관상가의 역할을 넘어서서 온갖 일을 도맡아 한다. 굳이 그래야 할 필요가 있었을까 싶다. 관상가로서 신임 관료의 얼굴을 보고 평가하는 정도는 가능하다. 그러나 수양대군의 암술을 의심해 직접 독침을 발견하고, 의사로 위장해 수양대군의 이마에 점을 놓는 작전까지 모두 관상가의 역할이다.(특히 수양대군 진영에 관상가의 얼굴을 아는 사람들이 있다는 점에서 이건 정말 무리한 작전(대본)이다) 김종서 옆엔 그렇게 사람이 없나 싶다. 하긴 왕이 관료도 아닌 일개 관상가에게 직접 어린 왕의 안위를 부탁한다는 편지를 남겼을 정도니 오죽하랴. 또 하나 아쉬운 건 리듬감, 완급 조절이다. 초반부를 지나 중반부가 되면서 영화는 달리기 시작한다. 내내 사건의 연속이고, 도대체 쉴 틈이 없다. 쉬지 않고 빠른 스피드로 내달리는 영화가 재미있을 거라 생각할 수 있지만, 완급 조절이 없이 내달리는 영화는 오히려 관객을 지치게 하고 지루하게 만든다. 더군다나 이 영화의 상영시간은 무려 142분. 후반부를 조금 쳐내고 리듬감을 살렸다면 지금보다 더 좋았을 것이다.

 

※ 팩션 말고  타란티노의 <바스터즈>처럼 아예 역사 자체를 바꿔 버리든가 아니면 대체 역사 장르로 풀어내는 것도 재밌을 거 같다. 팩션은 어짜피 역사 자체를 바꾸진 못하는 한계가 있으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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