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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회에 결코 자비란 없다.. 피에타
ldk209 2012-09-11 오후 2:15:16 633   [0]

 

이 사회에 결코 자비란 없다.. ★★★★

 

※ 영화의 결말 등 주요한 설정이 담겨 있습니다.

 

한 남자가 쇠사슬에 목을 매 자살을 한다.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장면일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영화는 이 장면에서 시작해 이 장면의 설정으로 되돌아온다. 자살 장면 이후 영화는 시종일관 폐소공포증이 일어날 만큼 갑갑한 청계천 공구상가를 맴돈다. 채무자들에게 끔찍한 방법으로 원금과 10배에 달하는 이자를 받아내는 강도(이정진)는 채무자들 - 청계천 공구상가의 세입자 또는 노동자 - 에게는 악마와도 같은 존재다. 태어나자마자 버려진 그에게 어느 날 자신을 엄마라고 말하는 미선(조민수)이 찾아와 용서를 구한다. 바로 자신이 너를 버렸기 때문에 너가 그렇게 잔혹해진 것이라고, 모든 게 자기 잘못이라고 자비를 구한다. 강도는 여자를 내치지만 미선은 온갖 형벌을 감내하면서도 계속 강도 주위를 맴돌고, 강도는 결국 미선을 엄마로 받아들인다. 태어나 처음으로 자신에게 소중한 사람이 생긴 강도, 그러나 잠깐의 행복감을 느끼자마자 엄마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둘 사이의 끔찍한 비밀이 공개된다.

 

<피에타>는 국내에선 정식 개봉하지 않고 특별 상영한 <아멘> <아리랑>을 포함해 김기덕 감독의 18번째 영화다. 별로 중요해 보이진 않지만, 18번째 작품을 만들면서도 여전히 문제적 작품을 내놨다는 것, 그리고 이 작품으로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는 점에서 <피에타>가 김기덕의 18번째 작품이라는 건 대단히 중요한 지점이다. 무엇보다 일련의 고통스런 경험을 한 후 <아리랑>과 <아멘>이라는 자서전에 가까운 작품을 내 놓은 후의 첫 작품이라는 점에서 그의 달라진 지형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한 것이다.

 

김기덕의 많은 영화가 기독교적 메시지를 담고 있으며, <피에타> 역시 마찬가지다. 제목부터 그러하니깐. <피에타>는 성모 마리아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예수를 안고 있는 형상, ‘자비를 베푸소서’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피에타>는 예수와 마리아의 관계가 아니라 예수 옆에서 죽은 강도와 마리아의 관계를 생각해 내어 만든 영화라고 보인다. ‘강도’라는 이름은 그만큼 직접적이다. 그러나 제목과 달리 이 영화에 자비란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두 가지 점에서 그러하다. 하나는 사회 시스템에서의 자비, 또 하나는 가해자와 피해자와의 관계에서의 자비다.

 

강도는 자본주의 시스템의 말단을 차지하는 존재다. 그에겐 어떠한 경우라도 유예와 자비란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스마트폰으로 전달된 정보에 따라 채무자의 손을 자르고, 다리를 부러뜨려 보험금으로 빚을 대신 받아내는 업무(?)에 충실한 강도는 어쩌면 기계에 불과한 존재다. 채무자들도 기계를 다루고 자본도 강도와 같은 기계를 동원해 채무자들(노동자들)의 고혈을 짜낸다. 이야기의 배경이 청계천이고 철거로 인해 쫓겨날 세입자들이 있으며, 자본은 이들을 무자비하게 죽음으로 몰아넣는다. 어디에서 많이 본 풍경이다. 바로 <피에타>는 지금 현실 대한민국 자본주의의 가장 피비린내 나는 풍경을 다루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엔 현재 자비란 존재하지 않는다. 이 점에서 <피에타>는 김기덕 영화 중 가장 정치적이고 가장 직접적인 메시지를 다룬 영화라고 할 수 있다. (미선은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인격체에게 무자비한 물리적 복수를 행한다)

 

사실 영화를 보는 관객은 미선이 강도의 엄마가 아님을(아닐 수도 있음을) 알아챌 수 있다. 강도에게 칼을 건네주는 장면에서, 음식을 차려주는 장면에서, 엄마의 품으로 찾아든 아들을 내쫓는 장면에서, 미선의 흔들리는 눈빛과 뭔가를 감내하는 눈빛, 떨리는 손은 둘의 관계가 결국 파국으로 치달을 것임을 예상하게 한다. 평생 누군가의 보살핌 없이 어떠한 소중한 것도 가져본 적이 없는 강도에게 소중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게 한 후 그의 눈앞에서 그 상대를 죽이겠다는 복수는 실로 가장 잔인한 형벌이다. <악마를 보았다>에서의 복수가 가족 앞에서 악마를 죽이는 것이라면, <피에타>의 그것은 악마 앞에서 악마가 가장 사랑하는 존재를 죽이는 것이다. 더 잔인한 복수이고 형벌이지만 도덕적 딜레마는 더 적다. 왜냐면 그건 바로 자기 자신을 해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미선이란 존재로 인해 강도가 변화되고 있음을 바라보게 된다. 그 동안 해왔던 악마와도 같은 자신의 역할을 깨닫게 되고, 뒤로 물러선다.(만약 강도에게 이런 변화가 없었다면 이런 결말도 없었을 것이다) 자본은 그러한 강도를 무자비하게 내치며 그 자리를 다른 이로, 다른 기계로 대치한다. 마치 현실에서의 용역을 다루듯이. 오히려 도덕적 딜레마에 빠지는 건 영화를 보는, 그래서 강도에게 감정을 이입한 관객일 것이다. 그가 엄마를 살려달라고, 대신 자기를 죽여 달라고 무릎을 꿇고 울부짖을 때, 미선이 ‘강도가 불쌍하다’며 눈물을 흘릴 때, 관객은 형벌의 유예를 기대하게 된다. 그러나 대속엔 예외가 없다. 누군가는 강도의 악행에 대한 죄로 벌을 받아야 한다. 바로 미선의 죽음은 강도에겐 형벌이자 대속이 되지만, 그것만으로 구원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 기존 김기덕 영화와 비교해 볼 때, 시각적 잔인함으로 인한 불편함은 적다. 이전 같으면 생생하게 표현했을 장면들을 영화는 대신 사운드로 대체한다. 그리고 의외로 시종일관 흥미를 끄는 요소들로 인해 대중적 재미란 면에서도 좋다. 김기덕 감독이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한 모습을 보고 좀 놀랐는데, 영화에서 이미 그 변화가 보이고 있었던 것이다.

 

※ 이전 영화가 모호한 대사와 모호한 이미지로 주제를 전달하려 했다면, <피에타>는 모호함 대신 직접적인 언급을 통해 주제를 부각시킨다. 가끔은 인물들의 대사가 너무 직접적이라 어색한 장면이 연출되기도 하고 좀 과도하다 싶은 장면들도 있다.

 

※ 조민수 연기는 말 그대로 정말 대단하다.

 

※ 김기덕의 거의 모든 영화를 극장에서 봤는데, 매진되는 걸 처음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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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타(2012, Pieta)
제작사 : 김기덕 필름 / 배급사 : (주)NEW
공식홈페이지 : http://piet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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