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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을 더듬어 가는 멋진 하루... 멋진 하루
ldk209 2008-09-30 오후 1:04:45 23064   [13]
흔적을 더듬어 가는 멋진 하루...★★★★

 

이윤기 감독의 전작들이 그러하듯 이 영화 역시 스토리는 지극히 단순하다. 1년 전에 연인이었던 희수(전도연)와 병운(하정우)은 채권자-채무자로 다시 만났다. 무작정 350만원을 갚으라는 희수의 고집에 병운은 소위 ‘빚으로 빚갚기’ 전략을 동원한다. 자신이 아는 사람들, 주로는 여자들에게 연락해 십시일반 돈을 모아 희수의 빚을 갚아 나간다. 영화는 일종의 로드 무비 형식으로 병운이 지인들을 만나 돈을 빌리는 하루 동안의 에피소드를 잔잔한 웃음과 애잔한 추억을 동반하며 펼쳐 놓는다.

 

얼핏 단순해 보이는 <멋진 하루>는 일단 배우들의 연기, 그 자체만으로 충분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확실히 <비스티 보이즈>를 연상시키기도 하지만 그 때보다 좀 더 표정이 풍부해진 듯한 하정우의 액션은 극장 내에 시종일관 웃음 바이러스를 뿌려댄다. 어쩌면 저렇게까지 능청스러울 수가. 한 대 콕 쥐어박고 싶을 만큼 얄밉게 그려지는 병운은 영화가 진행되면 될수록 그렇게까지 시답잖은 놈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 왜냐면 그가 자주 입에 올리는 “내가 있을 땐 없는 사람 돕고, 내가 없을 땐 있는 사람 도움 받고”라는 말은 당연하게 들리지만 실제로는 실천하기 어려운 고난이도의 미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절대로 상처 따위는 입지 않을 것 같은 병운의 말과 표정에 언뜻 상처의 흔적들이 보이면서 병운의 캐릭터는 조금씩 깊어져 간다. 상처 없는 사람이 있을 수 없겠지만, 상처를 잘 드러내지 않는 사람의 상처는 보는 사람을 더욱 애달프게 하는 무엇인가가 있다.

 

이창동 감독의 인터뷰에 보면 연기의 핵심은 리액션이라는 얘기가 많이 나온다. 리액션을 잘하는 배우가 진정 배우라고. 그런 차원에서 보면 <멋진 하루>의 전도연은 정말 최고의 연기를 펼친 셈이 된다. 그녀가 이 영화에서 보여준 것은 상대방인 하정우의 연기(액션)에 반응하는 리액션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전도연은 연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원래 희수인 것만 같다. 촬영이 영화 시간대별로 진행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초반에 좀 더 까칠하고 냉정했던 희수가 서울의 거리, 과거의 연애 흔적들을 돌아다니고, 병운의 상처를 보면서, 조금씩 변해가는 표정과 말투는 새삼 곱씹을수록 정말 대단하다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전도연의 연기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이 영화가 ‘희수의 영화’인 건 확실하다. 왜냐면 희수의 시선을 제외한 장면은 전혀 없기 때문이다. 관객은 희수의 눈과 귀를 통해서만 영화를 보고 들을 수 있게 되어 있다. 그래서 관객이 시간이 지날수록 병운에 대한 감정이 변하는 것은 곧 희수의 감정이 변했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사람에 대한 판단은 어쩔 수 없이 주관적일 수밖에 없는가란 생각이 떠올랐다. 희수=관객이 병운에 대해 동정심을 가지게 되는 건 어쩌면 희수가 보고 들을 수 없는 상황에서의 병운의 말과 행동을 전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희수가 또는 관객이 병운이 한 여사(김혜옥)을 만나 온갖 거짓말과 아부를 하는 모습을 봤다면, 호스티스인 세미(오지은)에게 사정하는 모습을 봤다면 우리의 판단은 180도 달라졌을 지도 모르며, 이건 영화가 감춰 둔 또 하나의 숙제라는 생각도 든다.

 

이 영화의 또 다른 볼거리는 풍경 그 자체다. 최근 한국 영화 중에 서울을 이렇게까지 친근하면서도 아름답게 잡아낸 영화가 있었을까 싶다. 서울이 그렇게 아름답다거나 멋진 도시라는 생각은 없다. 어쩌면 그건 익숙한 공간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멋진 하루>에서 잡아낸 서울의 하루는 참 근사하며 매력적인 공간으로서의 서울을 보여준다. 그래서 희수와 병운의 추억이 서린 흔적들이 더욱 애잔하게 다가오는 것일까?

 

※ <멋진 하루>와 <인 블룸>을 하루에 연속해서 보았다. 하나하나 일일이 체크한 건 아니지만, 2008년 들어와 가장 흥미진진하게 본 영화를 두 편 꼽는다면 <멋진 하루>와 <인 블룸>이었다. 나에겐 두 영화를 연속해서 본 날이 <멋진 하루>였던 셈이다.

 

※ 여성의 이야기를 주로 다루고 있는 이윤기 감독은 <아주 특별한 손님>에서부터 대중과의 거리를 좁히더니 <멋진 하루>에선 착근에 성공하는 듯 보인다. 물론 전도연과 하정우라는 걸출한 두 배우의 역할에 힘입은 것이기도 하겠지만, 영화가 감독의 예술이라는 건 분명하다.

 

※ 이윤기 감독 영화를 보다보면 전작에 출연했던 배우들이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자주 있다. 한 여사 역을 맡은 김혜옥은 <여자, 정혜>에서 김지수의 어머니 역으로 출연하더니, <아주 특별한 손님>에선 탁자 위에 놓여 있는 사진으로 모습을 보였고, 오토바이를 타는 병운의 사촌으로 나오는 김중기는 이윤기 감독의 모든 작품에 출연 중이다. <멋진 하루>에서 가장 불필요한 에피소드로 보이는 대학 후배 홍주와 남편을 만나는 장면에서 남편으로 등장한 김영민은 <아주 특별한 손님>에서 한효주를 데려가는 청년이었으며, <아주 특별한 손님>에서 죽어가는 아저씨 역으로 내내 누워있던 기주봉은 <멋진 하루>에서 멋진 가죽 잠바를 입은 오토바이족으로 출연한다.

 

※ 전작의 주인공이 신작에 출연하는 전통이 있는 이윤기 감독 작품인지라 한효주가 어디 나오는지가 관심사였다. 희수와 병운이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릴 때 서 있던 여인이 한효주였으며, 희수가 햄버거 가게 화장실에서 우연히 듣게 되는 남자 친구에게 이별을 통보하는 여자의 목소리도 한효주라고 한다.

 


(총 0명 참여)
ldk209
지금도 일부에선 하고 있는 거 같든데요...   
2008-11-29 11:30
egmunina
보고싶었는..막내렸네요 ㅠㅠ   
2008-10-18 21:45
jbp0809
영화에 더욱더 관심이 가네요~ 하정우 전도연...ㅋ 한번 보고싶은 맘이 드네용~~ㅎ   
2008-10-17 15:49
jbp0809
와~후기 정말 잘쓰셨네요^^   
2008-10-17 15:48
shelby8318
진짜 글 잘 쓰십니다.
잘 읽었습니다   
2008-09-30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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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하루(2008, My Dear Enemy)
제작사 : 영화사 봄, 스폰지 / 배급사 : 롯데쇼핑(주)롯데엔터테인먼트
공식홈페이지 : http://www.haru2008.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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