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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식 세상보기 괴물
peacenet 2006-12-02 오전 4:10:45 886   [1]

봉준호 감독의 이전 작품, 실인의 추억을 본 경험으로 미루어 괴물에서도 카리스마 넘치는 주인공이 나올꺼란 기대는 처음부터 안했었다.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수사가 있을꺼라든지, 군경의 막강한 위력이라든지 내지는 주도면밀한 두뇌플레이라든지. 화려한 액션? 긴장감 넘치는 스릴? 벅찬 감동? 글쎄.. 너무 일찍 김새버리지나 않으면 다행이겠지..

화성살인사건을 소제로 하는 봉준호 감독의 관점에서도 그랬다. 수사는 미궁에서 빠져나올 기미를 보이지 않은 채, 그렇게 영화는 두시간을 집어삼켜 버렸다. 내내 같은 자리만 빙빙 돌다가 상황이 종료되고 나면, 남는 건 그 안에서 티격태격하던 박두만과 서태윤의 안타까움 뿐이었다. 희대의 연쇄살인사건을 소재로 하였을 지언정 그의 중심엔 언제나 사람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네들의 일상, 비록 설정상 무지 특수한 상황에 놓여있을지라도 삶은 그것이 본성적으로 지향하는 평범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애매한 사람을 데려와선 범인을 만들어 버리고 수사끝, 을 선언하고 싶어하는 박두만이 밉지 않은 이유였다. 이렇듯 봉준호 감독은, 특수한 상황을 소재로 하여 카메라의 포커스를 맞출지언정 그 상황을 감내하여야 하는 주인공들에게 비범함을 강요하는 대신 다 제각각의 깜냥으로 그 상황을 바라보고 또 대응하기를 희망한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열에 아홉은 다 그렇게 한다. 사건과 상황에 스스로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일상과 수준에 상황을 재단하고 해석한다는 얘기다. 하여, 봉준하 감독의 영화는 극적이지가 않다. 주인공들은 극단적인 상황에서 초인적인 기지를 발휘하는 대신 절망을 한다. 이렇듯 좌절을 하고 자기파괴를 한다 하여 상황이 전혀 개선되지 않을 것임에도, 오히려 이런 힘빠지는 모습들이 더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이유는 바로 그것이, 또한 나의 모습이기도 한 때문이다.

평범한 사람들이 그려 나가는 전혀 평범하지 않은 이야기. 미안한 얘기지만, 한강에 괴물이 출현하였다 하여 어느 한순간 얘네들이 비범하고 영웅적인 활약상을 그려낸다면 그것이야말로 비현실적인 얘기가 될테고, 그럼 관심은 자연히 괴물과, 이 과물을 둘려싸고 벌어지는 사건과, 또 그 사건 속에서의 주인공들의 활약상에 집중을 하겠지만. 무척 아쉽게도, 정작 감독의 관심은 다른데 있다. 괴물을 얘기하지 말고, 하루 왼죙일을 좁아터진 매점 안에서 생활해야 하던 어느 매점상과 그의 가족에 대해 얘기해 보자. 이 전혀 흥미롭다 말할 수 없는 이들의 삶이 졸지에 괴물의 출현으로 영화의 중심에 위치하게 된 것 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드라마틱하다, 고 감독은 판단했던 것 같다. 얘네들이 주인공인 만큼, 영화도 순전히 얘네들의 깜냥과 수준에 맞춰서 전개가 된다. 영화 괴물에서, 시궁창의 악취와 피비린내 대신 사람의 숨냄새로 가득한 이유이기도 하다.

영화에서 처음으로 괴물이 출연하던 장면을 잊을 수가 없다. 괴물이 살짝 꼬리를 들어냈던 물가로 맥주캔을 집어 던지는 강두, 그리고 이에 호응을 하는 주변 시민들. 먹을 것, 못먹을 것 가리지 않고 온갖 잡동사니들이 물 위로 던져지는 광경이 한편 진풍경이었고, 이렇듯 괴물과의 최초의 조우에 대한 일반의 반응이 호기심이었다는 것도 상당히 공감이 갔다. 이게 너무도 공감이 가버린 나머지, 그 바로 다음 장면에서 괴물이 똑바로 강두를 향해 달려올 때 조차도, 어쩌면 그것이 멀리서 다가오고 있다는 걸 강두의 눈을 통해서 바라본 때문에 위기나 공포, 긴장, 이런 감정으로 보는 대신 어 뭐야 이거, 하는 망설임이 되어버렸던 것도.. 곧이어 사람들이 쫒겨 달아나고, 그 속에서 괴물이 종횡무진으로 누벼댈 때 조차도 막연히 무슨 일인가 벌어지고 있다, 는 느낌 정도였지 딱히 손에 땀을 쥐는 스릴이나 공포.. 는 도무지가 아니었다.

차라리 황소만한 개가 한마리 미쳐 날뛰는 것만 못한 느낌이었다. 왜? 개는 물면 아프니까. 그 상처가 끔찍하니까. 괴물은? 태어나서 생전 처음 보는 놈이니, 그 존재에 대한 사전지식이나 인식이 있을 리 없고. 그 전무한 개념속에 공포가 자리를 잡는다는 것 자체가 비현실이다. 컴컴한 오밤중도 아니고, 음향효과도 없고 연출도 깜짝깜짝 놀래키는 대신 지극히 원거리에서 내려다 보듯 찍은 것이고 보면, 이 백주대낮에 갈팡질팡하는 사람들 사이를 괴물이 누벼대는 광경을, 도대체 어떤 감정을 머금고 봐줘야 할지 애매한 게 당연할는지도 모른다.

하고많은 영화를 봐왔지만 여지껏 이런 경우는 한번도 없었다. 행여 거기 있던 목격자들이 싹다 끔찍하게 난도질 되어 죽어나갔더라면 모를까. 그랬다면 공포영화라는 얘기를 들었을 수도..

이 장면이 지나고 나서야 안거지만, 이 영화.. 공포영화 아니다. 그럼 공상과학? 하긴 괴물이 나오긴 하니까..

괴물은 드라마다. 봉준호 감독의 예전 영화에서 그래왔듯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평범한 이야기다. 매점 주인 강두도, 경찰도, 의사도 다 그런 사람들이다. 바이러스를 뽑아낸다고 강두를 감금하고, 그를 살짝 돌아버린 놈 취급하고 무시하지만 그러는 걔네들도 정작 강두보다 별반 나아 보이지는 않는다. 다 제 깜냥대로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이고 보면, 그것이 평범한 범주 내에선 서로 비교해 봤댔자 도토리 키재기지. 이렇듯, 봉준호 영화엔 더 나은 놈도 없고, 더 못한 놈도 없다. 대신, 스스로는 더 낫다고 생각하는 속알딱지들은 많고 그래서 한편으론 피곤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얘네들의 지지고 볶는 것만으로도 금새 두시간이 지나가 버린다.

송강호, 변희봉, 박해일, 심지어는 박노식 까지, 모두 살인의 추억에서도 열연한 바 있는 배우들이고 보면 가히 봉준호 팀이라 불러 손색이 없을 출연진의 무척이나 아기자기했던 영화 (극중에서 현서의 고모 역으로 열연하던 배두나는? 영화 "플란다스의 개" 가 봉준호 감독과의 쳣 인연이다), 애 써 출연시킨 괴물이 너무 "티났던" 게 불만스러웠다던 영화. 상황을 리드해 나가지 못하고 오히려 상황전개에 한박자 뒤떨어지는 등장인물들과, 또 그바람에 덩달아 뒤떨어져여먄 했던 관객의 안타까운 속내를 아는지 모르는지.. 오로지 크나큰 스케일과 눈부신 액션만으로 채워지지는 않았던, 그래서 오히려 한번 더 보고 싶어지는 영화.

왠지 여운이 남으니까. 근데 무슨 여운? 왜 그런거 있지 않나.. 누군가가 자꾸만 궁금해 지는 거..

- 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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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2006, The Host)
제작사 : 영화사청어람 / 배급사 : (주)쇼박스
공식홈페이지 : http://www.theh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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