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상치 않은 영화 한 편이 11월 26일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초자배기 감독의 입봉작이라 하기에는 만만치 않은 내공이 느껴지는 <귀여워>를 두고 하는 말이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 여신 하나가 있다.
호들갑스럽게 까르르 웃어대며 도로에서 뻥튀기를 팔고, 난간을 거닐며 “모든 남자가 날 좋아했으면 좋겠어”라며 태연스럽게 말 하는 여신답지 않은 행보를 일삼지만, 네 사내의, 게다 부자(父子)라니 이런!, 마음을 일거에 뒤흔들어 놓을 만큼 기묘한 귀여움과 낙천성을 지녔다.
당최 종잡을 수 없는 캐릭터이자 동시에 네 사내의 삶에 충만한 기운을 불어놓은 기이한 에너지가 흘러넘치는 이 낯선 여신의 이름은 뚱딴지 같이 교과서를 통해 낯익은 순이다. 우아함과 저돌적인 엉뚱함의 불협화음 속에서 자신의 매혹을 흘리는 예지원은, 뭐라 딱 정의할 수 없는 이 무정형의 캐릭터 순이와 여러 모로 붕어빵이다. 그러니까 접점하기 힘든 두 이름 ‘여신’과 ‘순이’가 포개질 때 내뿜는 생명력이 바로 <생활을 발견>을 통해 발견한 배우 예지원과 <귀여워>를 통해 새롭게 솟구친 캐릭터 순이의 힘이다.
지금 예지원씨 인터뷰 하러 왔다가 무지 오래 기다렸다. 타매체 사진촬영땀시, 듣자하니 화보촬영을 상당히 좋아한다 하더라
예!, 사진 찍는 걸 너무 좋아해요. 오래 만에 찍어서 그런지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그나저나 우리 무비스트를 아시는가?
예....................(알 수 없는 긴장감 그리고 침묵)
정말 아시는가?
그럼요.................(또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고...)
어제랑 오늘이랑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술을 좋아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김치전과 쇠주 혹은 막걸리 생각이 나지 않던가?
음.......술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사람을 좋아해서 그런 말이 나온 거 같아요. 그러니까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하는 그런 분위기를 즐기고 선호하는 편이에요.
이미 소문 자자하다시피 당 영화 <귀여워>는 지지지난 2002년 9월 촬영에 들어갔다 2003년 4월쯤에 촬영이 끝났다. 그렇다면 1년 반 동안 뭘 하고 지내셨나?
다음 작품 뭐 할까 이것저것 보면서 준비하고 있었어요. 또 요가도 하고 현대무용도 하고 영화도 보고 뭐 그랬어요. 이렇게 쉬는 기회도 없으니 잘 됐다 싶어 이것저것 했죠. 지금 돌이켜봐도 잘 했다 싶어요.
<귀여워>는 전이 모자라 중단되는 등 여러 가지 지난한 이유로 개봉되기까지 고생이 많은 작품이었다. 낼 시사를 앞두고 있는데 감회가 남다를 거 같다. 뭐 인내력 테스트 하는 것도 아니니 성질이 날 수도 있고 말이다.
글쎄요, 편집도 많이 하고 그랬는데, 저보다는 감독이나 스텝들이 많이 힘들었을 거예요.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지금 개봉하는 게 좋다고 봐요. 왜냐면 우리 영화가 모스크바랑 부산이랑 두 국제영화제에 나갔잖아요. 근데 반응이 생각보다 너무 열광적인 거 있죠. 그래서 감동을 적잖이 받았는데, 국제영화제 가서 좋은 평을 받고 개봉을 하면 좀 더 많은 분들이 보지 않을까 생각을 해요.
관객과의 대화를 두 번 했는데 반응이 너무 열광적이었어요. 외국 분들도 좋은 말씀 많이 해주시고. 어쨌든, 놀랄 정도였어요. 영화를 한번 보셨는데도 다들 질문의 강도가 보통이 아니더라고요. 물론, 영화제를 찾는 관객들이 영화를 잘 아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말이에요.
영화의 내용을 보니까 아부지와 세 아들이 동시에 한 여자를 사랑하며 집적대는 뭐 이런 콩가루 집안도 없겠다 싶은 생각이 절로 들더라. 그렇다면 예지원씨는 <귀여워>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귀여워>에 나오는 인물들은 사실 하나도 안 귀여워요. 그리고 즐겁지도 않고 소외계층이죠. 아버지는 한물간 박수무당이고 집도 철거되기 직전의 황학동에 위치해 있고 아들들은 깡패에 퀵서비스맨에..... 다들 옛날 일에 집착해서 사는 인물이에요. 그러다 자기 주민번호도 모르는 순이가 나타나요. 순이가 유일하게 이들을 이해하는 인물이죠. 그러니까 <귀여워>는 소외돼 있는 그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재밌고 좋은 영화라고 전 생각해요.
솔직히 이런 되먹지 못한 부자관계의 집안이 현실에 존재한다면 지원씨는 그네들과 함께 기거를 할 수 있겠는가?
저요???. 음, 잘 상상이 안 가지만 그건 둘째 치고 일단 뻥튀기 장사라도 해봐야 될 거 같아요. 그게 당장은 도전해볼 만한 일이니까요. (이 대목은 영화를 보시면 이해되신다)
부산에서 <귀여워>를 본 사람들 왈 “대형 신인감독이 출현했다”고 할 만큼 어디로 튈지 모르는 캐릭터와 내용으로 박력 넘치는 에너지가 영화에 충만하다고 하더라. 당신도 이러한 평에 동의하는가?
글쎄요. 그건 보시는 분들이 평가하면 될 거 같고,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가 저에게 선물을 줬다 생각해요. 찍는 동안 한 번도 일을 하러 간다고 생각한 적이 없어요. 놀러 간다고 생각했죠. 촬영 1년 전부터 감독과 배우 스탭들을 자주 만나다보니 친구사이가 됐어요. 그리고 감독님의 독특한 사유세계가 참 맘에 들었고. 늘 “순이는 세 남자에게 여신적인 존재이어야 한다”고 했었죠.
영화는 주로 황학동과 청계천에서 이뤄졌다 들었다. 이 영화를 시작하기 전 그곳에 가본 적이 있나. 이를테면 황학동에 위치한 도깨비 시장이라든가 말이다
물론, 전에 구경하러 가본 적은 있어요. 철거된다는 말도 들은 적 있고. 그 정도로만 알고 있다가 막상 이곳에서 작업을 하니까 말로 표현하기 힘든 또 다른 기분이 들더라고요.
시나리오를 읽을 때나 촬영할 때 나름의 상상으로 그린 영화와 달리 막상 결과물을 보니까 허걱스러운 측면이 있던가?
<귀여워>는 리허설을 그리 많이 안한 영화예요. 김수현 감독님이 현장성을 많이 중시하는 스타일이거든요. 바로 슈팅 들어간 거 경우도 많았고요. 생각한 그림과 너무 달라 당황한 적은 없고, 영화를 보면서 현장성이 느껴지는 그런 대사들을 볼 때 뭐랄까 참 느낌이 남달랐어요. 계산적이지 않은 장면이 나오면 그 장면 촬영할 때가 떠올라서 감회가 새로웠다는 말이죠.
음.................생명력, 그러니까. <길>의 젤 소미나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같은 느낌이 묻어나 있는 캐릭터라 볼 수 있죠.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자기가 가지고 있는 힘과 활기를 전염 시키는 특이한 여자. 작품 속에서는 네 부자에게 주었지만 예지원 내 자신에게도 많은 것을 전해줬죠.
구속을 박차며 거침없는 행동을 일삼는 순이와 실제 당신의 모습 중 포개지는 측면이 있을 거 같다.
원래 제 스타일이 할 얘기는 다 하고 그러는 편인데 순이 역할을 하면서 가만 생각해보니까 저도 모르게 억압된 그 무엇이 있는 거 같더라고요. 그러니까 사회적 관습이나 규율에 얽매여 있는 뭐 그런 거 말이에요. 그걸 벗어나고자 하는 욕망, 과도하게 그 경계를 벗어나 남한테 피해를 주는 정도는 아니고 타인들이 이해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자유를 꿈꾸는 면에서 순이와 제가 비슷한 거 같아요.
역할이 결정됐을 때 어떤 방식으로 캐릭터에 몰입해 갔나?
즐겁게 살자! 이 말에 철저히 맞추려고 했어요. 감독님이 늘 말했듯 첫째, 순이는 즐거움이다, 둘째, 여신이다. 이걸 염두에 두고 행동했다는 말이죠.
근데 여신이라는 말만큼은 솔직히 잘 와 닿지 않았어요. 어떻게 신처럼 보이고 해야 하나? 그래서 그냥 즐거움에다 초점을 맞춰 많이 웃고 얘기하고 떠들고 그랬어요. 처음엔 스탭들이 혼자 노래 부르고 다니고 막 그러니까 이상하게 보면서 웃더니, 차츰 저의 그런 모습에 익숙해지는지 신경을 별로 안 쓰더라고요.
혹, 평상시에도 그러지 않나?
친한 사람들과 같이 있으면 그럴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그렇지 않죠~~~~~~~~~오.!
순이 캐릭터를 해나가면서 무엇이 가장 버겁고 힘들게 느껴지던가?
그리 버거웠던 거는 없었고요. 추웠다는 거. 워낙이 황학동 근처가 춥더라고요. 미니스커트까지 입고 왔다갔다해야하니까 더 쌀쌀하게 느껴진 거 같아요. 또, 초반 순이가 도로에서 뻥튀기 장사하는 장면이 있는데 카메라가 멀찌감치 있어서 그런지 운전하시는 분들이 모르는 거예요. 그런 상황에서 뻥튀기 파는 애가 담배도 피고 아줌마랑 싸우고 그러니 아저씨들이 삿대질 하며 욕을 하시더라고요. ㅎㅎㅎ 그게 첫 촬영이었는데....
그렇죠. 당연. 하지만 아까도 말했듯이 재밌고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작업을 해서 그런지 그리 버겁다고 느낀 적은 별로 없는 거 같아요.
영화 출연을 결정함에 있어 무엇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가?
어느 하나를 딱 고를 수는 없고요. 작품도 중요하고 같이 작업하는 사람과의 신뢰도 중요하고 저 같은 경우는 많은 게 작용한다고 볼 수 있죠. <귀여워>를 보자면 사람에 대한 믿음이 컸던 게 아닌가 싶어요. 김수현 감독님이 배우들에게 200%의 신뢰를 갖고 있어 배우들이 저마다의 에너지를 편하고 세게 발산할 수 있었다는 거죠.
개인적으로 골 때리는 네 남자의 캐릭터 중 누가 가장 그런대로 마음에 와 닿던가?
다 마음이 아픈 인물이에요. 좀 허황돼 보이고 웃기고 그렇게 보이지만 상처를 가지고 있는 남자들이죠. 가장 순수할 때라 할 수 있는 15세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 세상에 찌든 피터팬. 그러다보니 네 부자가 순이에게는 다 애인 같기도 하고 친구, 동생 같기도 한 거죠. 그들의 억눌린 마음을 뻥! 뚫어주는 여자이니까요. 어쨌든, 네 남자 누구하나 밉지 않고 다 예쁘고 좋아요.
아시다시피 장선우 감독은 당 영화의 감독인 김수현 감독의 스승이라 할 수 있다. 어떻던가? 별 소동 없이 제자의 말을 잘 따르시던가?
예, 최선을 다 하시던데요. 처음엔 굉장히 쑥스러워하고 긴장도 하고 그랬는데 하나하나 해나가면서 자신감이 붙었는지 아주 능숙하게 잘 하셨어요.
사내들의 마음을 훔치는 아낙네 <'96 뽕>, 순애보적인 미모의 나이트클럽 가수(<아나키스트>), 황당무계한 무용선생 (<생활의 발견>), 조폭의 정부(<2424>), 당돌하게도 국회의원을 꿈꾸는 윤락녀(<대한민국 헌법 제1조>) 등등. 당신의 캐릭터 측면을 보자면 분명 도발적인 관능미가 흘러넘친다. 그런데 그것까지는 몇몇 여배우에게도 해당되는 면이다. 문제는 그러한 가운데 당신에게는 낯익으면서도 낯선 저돌성 시쳇말로 깨는 측면이 있다. 이거 어떻게 보면 와인잔에 소주를 따라 마시는 격이다. 여튼, 아주 독보적인 캐릭터 상이다.
........................................좋은거죠. 그렇죠!
그렇다고 볼 수 있을 거 같다.
그럼 저로서야 너무 감사할 뿐이죠. 그동안 역할이 고맙게도 저한테 많이 맞춰졌던 게 아닌가 싶어요. <생활의 발견>도 그랬고 <귀여워>도 그렇고. 좋은 감독과 배우를 만났기에 가능했던 일인 거 같아요. 그분들에게 감사하고 앞으로도 그런 좋은 분들과 만나 작업을 했으면 해요.
<대한민국 헌법 제1조> 때 국회 월담 사건으로 화제가 됐었다. 평상시에도 불의를 보거나 뚜껑열릴 만한 일이 발발하면 그런 분기탱천적 행동을 번번이 드러내는지.
글쎄요, 어릴 때는 그런 경우가 많았던 거 같은데 지금은 나이도 있고 그래서 그런지 덜한 편이에요.
“그 역할 이미지가 컸구나!” 그런 생각 저도 많이 해요. 줄리엣에서는 도도하고 순애보적이고 지적인 여성으로 나왔는데 그때보다는 <여고시절>과 <생활의 발견>의 모습이 대중에게는 더 좋았던 모양이에요. 솔직하고 당찬 모습, 그게 나름대로 주효했던 거라 봐요.
그런 면 때문에 남자나 여자나 다들 좋아하는 거 같다.
아마 그게 대리만족이지 않을까 싶어요. 평상시 하고 싶었는데 하지 못하고 꾹꾹 눌러왔던 말들이나 행동 같은 거요.
펄떡펄떡 거리는 싱싱한 횟감처럼 당신은 늘 도전적이고 생의 에너지로 충만해 보인다. 그래도 속상한 경우에는 그렇지 못할 것이다. 배우생활을 하며 어떨 때 버거움을 느끼는가.
어 그러니까, 촬영과 겹쳐 가끔 몸이 아플 때. 예전엔 잘 몰랐는데 갈수록 건강이 정말 중요한 거 같더라고요. 몸이 안 좋으면 나 자신한테도 그렇고 영화에도 그렇고요. 또 사람이 힘든 만큼 사람과의 소통, 그게 안 될 때도 힘들어요.
다리가 하염없이 쭉쭉 올라가는 <여고시절>과 춤추다 마룻바닥에 흐드러지게 착지하는 <생활의 발견>을 통해 당신의 무용과 춤 실력을 익히 알고 있다. 배우생활에 있어 무용이 어떠한 측면에 도움이 되던가?
얼굴이 알려지기 전에 오디션을 정말 많이 봤는데, 그때 내세울 수 있는 게 유일하게 무용이었어요. 모든 게 초짜이다 보니까 카메라나 사람이나 모든 게 어색하더라고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무용을 보여주며 가끔 오바도 하고 그랬더니 가산점이 붙고 그러더라고요. <아나키스트> 같은 경우는 5차까지 갔다가 붙은 영화였어요. 참 각별한 거 같아요. 저한테 춤은.........좀 더 잘하면 공연도 하고 싶긴 해요.
평상시 영화를 즐겨보는지 그렇다면 유독 선호하는 장르가 있나?
장르를 편애하진 않아요. 모든 장르의 영화를 고루고루 보고 좋아하는 편이에요. <영웅본색>과 같은 액션도 너무 재밌게 봤고요. 요즘 본 영화중에는 페드로 알바도바르 감독의 <그녀에게>가 무척 인상 깊었어요. 그 감독의 영화를 다 좋아해요.
앞으로 어떤 배우로 만큼은 대중에게 남기 싫은가?
연기 못 하는 배우, 그 말만큼은 너무 싫어요. 그런 말 듣는다는 자체가..........
기존의 관습적 영화와는 달리 기이한 박력과 에너지가 넘치는 수작이라 전해지고 있지만 한편으론 그러한 이유로 대중적으로는 좀 거리가 있지 않겠냐는 조심스런 의견도 개진되고 있다. 네티즌들에게 그 부분을 만회할 수 있는 <귀여워>가 귀여운 영화일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 한 멘트 날려주시길 바란다.
제가 순이 역할을 하면서 너무 많이 웃었는데요. 더 정확히 말하면 웃을 수밖에 없었죠. 너무 즐거운 작업이었어요. 얼마 전에 저한테 메시지가 왔었는데 거기에 이런 말이 있더라고요. “행복한 사람한테 웃음이 찾아오는 게 아니라 웃는 사람한테 행복이 찾아온다.” 그만큼 저희 영화에는 웃음이 많다는 거죠. 어거지가 아닌 자연스런 웃음요. 여러분에게도 그 웃음이 잘 전달됐으면 해요.
아 잠시 깜박했다. 지원씨가 생각하는 기억에 남는 장면, 더도 말고 하나만 말해 달라!
“모든 남자가 날 좋아했으면 좋겠어!”
순이가 난간을 팔짝팔짝 걸어가면서 저 대사를 치는 장면. 개인적으로 너무 귀엽고 인상에 남는 장면이에요. 사실, 닭살스런 말이긴 하지만 그 장면 보면 가끔 혼자 그런 생각 할 때가 생각나기도 해요. ㅎㅎㅎ
인터뷰: 서대원 기자
사 진: 이영선
동영상: 이한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