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를 불러들여 한적한 마을과 그 곳에 위치한 여고를 사악한 기운으로 휘감으며 몰아치는 귀기 서린 원혼의 숙주에 다름 아닌 이세은은, 머리 풀어헤친 원귀들이 잠시 기거하기에 딱이다 싶을 만큼 남루한 세상의 이물스러움이 섞이지 않은 동심의 그것을 간직한 배우였다. 잔잔한 일렁임이 일고 있는 거 같은 그녀의 큰 눈은 공포를 관장하는 영화 속의 살기 충만한 눈보다 훨씬 안정되고 심지어는 다소 쳐진 듯한 인상을 줄 만큼 순하고 장난기로 가득했다.
영화의 주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의외의 비중 높은 역할로 많은 이들의 시신경을 교란시키며 뇌리에 남을 <분신사바>의 유진 역은 분명 이세은에겐 경사스런 캐릭터임에 틀림없다. 영화에로까지 그 경사가 이어질지는 뚜껑을 열어봐야 알겠지만 영화배우로서의 옹알이를 인상 깊게 치러낸 그녀의 앞날을 지켜보는 것은 분신사바의 주문만큼이나 꽤나 흥미로울 듯하다.
저의 이름을 제대로 올리고 처음 개봉하는 영화라 그런지 계속 떨려요. 좀 있다 일반 시사도 가야 되고, 관객들의 반응도 너무 궁금하고 모든 게 처음이다 보니 떨리고, 떨리고 계속 떨려요.
솔직히 의외였다. 이세은 씨가 그리도 비중이 높은 캐릭터인지 몰랐다. 초 중반 아니 <분신사바>의 주인공이라 해도 큰 무리가 없을 정도였다. 캐스팅되는 순간부터 이러한 경사스런 분위기의 캐릭터인지 알고 있었나?
물론 저야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죠. 촬영하기 전부터 감독님도 그런 말씀을 하셨고요.
“<폰>에서의 하지원 역할이라 할 수 있다. 너가 정말 중요하고 잘 해야 한다.”
하지만 촬영 들어가서 긴장됨과 동시에 또 다른 걱정거리가 생기더라고요. 감독님이 몇몇 캐릭터 중 장면이 잘 나온 걸 골라서 쓰겠다고 해서리ㅜㅜㅜ 그러다 이렇게 막상 보니 정말 비중이 크더라고요.
시사회 끝난 후 지금까지 영화관계자나 측근으로부터 이런저런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거다. 가장 많이 접수된 내용은 뭐였나?
제일 많이들은 게 방금 서 기자님이 말씀하신 내용이죠, 뭐! 사실, 그 부분은 말하고 싶어도 그러지 못한 이유가 있어요. 홍보상의 문제도 있었고. 저희 연기자들 서로의 욕심 부분도 있었고.....또 한 가지는 그거 아시죠. 무서운 학교 언니들이 저를 보고 했던 대사 “제 눈 봤냐! 뒤통수 쳤다간 쏟아지겠다.” 많은 분들이 그 대사가 정말 가슴에 팍팍 와 닿더라고 하더라고요.
필자가 보기에 아마도 주연배우들의 다라이만한 눈 크기가 역대 호러 영화 중 최고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여배우들의 눈이 죄다 장난이 아니었다. 거기다. 일명 도끼눈으로 불리는 눈 추켜 부릅뜨기가 워낙이 많이 나온 터라 더더욱 그러한 거 같다. 그러한 현상에 지대한 공헌을 한 사람은 다름 아닌 이세은씨다.
영화 시작하자 그 큰 스크린에 제 얼굴과 눈이 나오는데 저 자신도 무척 놀랬어요. 저렇게 크게 나올 줄은 몰랐거든요. 솔직히 캐스팅될 때까지 제 얼굴이 공포에 적합한 캐릭터인지도 정말 몰랐어요. 그냥 감독님이 어딘가 마음에 드니까 날 선택했겠구나 싶었을 뿐이죠. 어쨌든, 그런 점들이 관객에게 만족을 줄 수 있다면 저로서는 너무 행복할 뿐이에요.
그래도 막상 이렇게 실제로 보니 눈이 스크린보다는 훨씬 순하고 안정적으로 보인다.
생각보다 쳐졌죠. 그죠 ㅋㅋ...어렸을 때부터 어른들이 절 보면 눈밖에 안 보인다고 할 정도로 정말 눈이 붕어만큼 무척 크긴 했어요. 그리고 영화상의 모습은 감독님이 그렇게 보일 수 있도록 촬영 전부터 알려주신 대로 한 덕이 크죠. 모니터 연결해서 직접 보며 연습을 많이 했어요. 집에 가서도 그렇게 늘 연습했고요.
안약은 몸에 해롭다고 해 눈에 별 지장이 없다는 인공 눈물을 끼고 살며 많이 사용했어요. 물론, 처음부터 시작해 촬영 마치는 순간까지 눈이 편할 날이 없었죠. 게다가, 감독님이 늘 김기영 감독이나 해외 명감독 공포영화를 보면 여주인공이 절대 눈을 깜빡거리지 않는다 걸 늘상 강조했기에 눈이 고생을 안 할 수가 없었어요.
<분신사바>에 캐스팅 된 경위를 알고 싶다.
안병기 감독님과 일단 작업을 같이하고 싶었어요. 사실, <폰> 때도 오디션을 받았는데...ㅜㅜㅜ 무작정 그냥 똑 떨어졌어요. 조감독님 선에서 단칼에 잘려 감독님은 보시지도 못했고, 뒤늦게야 오디션 테입을 보셨다고 하시더라고요.
<분신사바>를 한다는 이야기는 1년 전부터 들었어요. 굉장히 욕심이 났죠. 꼭 참가할 수 있도록 기도까지 하고 잘 정도였으니까요. 그런데 연락이 통 없더라고요. 나중에 알고 보니 제 외모는 도시에서 온 아이 같고, 부잣집 딸래미 같고, 왕따 당할 거 같고, 눈 크고 얼굴 희고......장점이 많은데. 영화를 이끌어 수 있는 무게감이나 신뢰감이 와 닿지 않았대요. 그러다. <대장금>에 출연한 저의 모습을 눈여겨보시고 캐스팅하게 된 거죠.
개인적인 생각에 양면성 가진 사이코 역이 꽤나 잘 어울릴 거 같다.
맞어요. 맞어! 감독님도 그런 말씀 저한테 많이 했어요. 그런 종류의 영화를 보시면서 “너 저런 연기 잘 할 거 같다” 고요.
방송 영화를 통틀어 가장 비중이 높은 배역이다. 그러다보니 당근 힘들었던 장면이 있을 게다.
엄청 많았어요. 크랭크인 하는 날부터 거의 매순간 순간이 다 그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뭐. 처음엔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는 게 거의 저의 일이었어요. 원래 활달한 성격인데 캐릭터 분위기상 그런 모습을 보이면 안 되니까 우울해지기까지 하고....
여자 셋이 모이면 장독대가 깨진다는 말이 있다. 호러 영화지만 수많은 여자 캐릭터가 등장하니 촬영장 분위기가 왁자했을 것 같은데...
또래 얘들과 촬영하니까 저 역시 기대가 당연 컸죠. 근데 첫날부터 감독님이 이빨도 보이지 말고, 스탭들과 이야기도 하지 말고, 다 아는 내용이니 현장에서 시나리오도 많이 보지 말고 그냥 그 아이로 살라고 주문하시더라고요.
솔직히, 처음엔 너무 야단치는 거 아닌가? 야속하게 생각할 정도였어요. 그러다 감독님이 많은 힘을 실어주시고, 또 나중에 영화 보니 충분히 이해됐죠. 결국, 생각보다 그렇게 왁자하지 않았다는 거죠, 뭐!
영혼을 불러낸다는 이 분신사바는 실제 유행했던 주문이다. 촬영하면서 실제로 무섭지는 않았는지...
세 여배우 중에서 겁이 가장 많은 편이에요. 규리언니는 겁이 너무 없고, 유리씨는 자신이 자신을 보고 놀라는 스타일이고. 한번은 그런 적이 있었어요. 저와 같이 왕따를 당하는 언니들과 함께 분신사바 주문을 외우는 장면이 있었는데 묘하면서도 이상한 기운이 드는 거 있죠.. 그때는 정말 무서웠어요.
고딩 때 실제로 해본 적이 있는지...
굉장히 잘 되는 스타일의 애였어요. 그래서 친구들이 많이 와서 해달라고 조르기도 하고.
촬영 전에 봤을 때는 얼굴도 잘 생기고 자상하고 정말 좋으신 삼촌 같이 편하게 해주셔서 현장에서도 별 어려움 없이 잘 될 거라 생각했는데...글쎄, 처음부터 많이 혼내시는 거 있죠. 얼굴표정까지 변하면서. “감독님 왜 저한테만 그러세요?” 말하고 뛰쳐나가고 싶을 정도였으니 솔직히 말 다했죠. 그래도 그게 다 영화와 저를 위해 그러신 거니 지금은 이해되고도 남아요. 정리해서 말씀드리면 일할 땐 너무 무섭고 평상시에는 천진난만 한 남자.
완성된 영화를 보니 생각했던 거랑 다른 점이 있던가?
크게 달라진 건 없고 뒷부분이 예상보다 드라마가 강했다는 정도. 나름대로 감독님이 후반부에 욕심을 내신 거 같아요.
자신의 영화를 이야기할 땐 어쩔 수 없이 장점만 나열하게 돼 있다. 그러니까 장.단점 하나씩만 말해 달라!
장점은요. 우선, 우리 영화는 처음부터 무조건 무섭다는 거죠. 무대인사 때도 얘기했지만 안병기 감독님은 한국에서 영화를 가장 무섭게 잘 만드는 감독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지금도 변함이 없어요.
아쉬운 점은 음.......내가 좀만 잘했으면 하는 아쉬움. 그리고 많은 분들이 뒷부분에 내가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 약간 헷갈려 하던데, 좀더 그 부분이 명확했으면 어땠을까 싶어요. 오히려 그렇게 처리한 게 더 나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요.
근래에 봤던 호러 영화 중 기억에 남는 작품
정말 많이 봤는데 그 중에서 해리슨 포드 미셀 파이퍼 주연의 <왓 라이즈 비니스>. 귀신이 막 나와서 무서운 게 아니라 배우들의 연기가 정말 대단해서 기억에 남아요. 별 거 아닌 거 같은데 가만 보면 크게 와 닿는 그런 느낌.
죽었다 깨놔도 이 캐릭터만큼은 도전해보고 싶다.
진짜 있어요. 여배우니까 물론 <러브레터>의 여주인공 같은 예쁜 역도 해보고 싶죠. 하지만 그보다는 <디 아워스>의 니콜 키드먼 역, 너무 하고 싶어요. 잊을 수 없을 만큼 강렬하게 와 닿아서....죽기 전에 늙기 전에 저런 역 한번 해봤으면 원이 없겠어요. 그 정도의 배역을 감당해낼 역량을 빨리 키우는 게 급선무겠지만.
이런 배우로는 대중들에게 인식되긴 싫다 하는 부분이 있다면...
변하지 않는, 달라지지 않는, 발전이 없는 배우는 되기 싫어요. 서 기자님 말대로 연기 생활 10년 짬밥에 한결 같은 연기패턴을 고수하며 보여주는 그런 배우로는 남기 싫다는 거죠.
뜬금없는 질문되겠다. 혹 극중에서 담탱이로 나온 최성민 씨가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 라는 농촌 드라마를 통해 알려진 배우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
할머니랑 살아서 그 드라마를 알긴 아는데 성민 오빠가 거기 나왔어요? 정말 몰랐어요. 나중에 한번 꼭 물어봐야겠네요.
마지막으로 <분신사바>를 기다리고 있는 네티즌 제위들께 한 말씀 부탁드린다.
저희 영화를 오매불망 기다리신 여러분! 드디어 <분신사바>가 8월 5일 .개봉하게 됐습니다. 공포영화를 잘 만들기로 소문난 안병기 감독님의 작품이고 굉장히 무서운 영화인 건 확실하니까 좀만 참으시고 꼭 극장에 와 봐 주시길 바랍니다.
취재: 서대원 기자
촬영: 이기성 피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