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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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시리즈 <맨 끝줄 소년>은 스페인 극작가 후안 마요르가의 동명 희곡을 원작으로 하며, 프랑수아 오종 감독의 영화 <인 더 하우스>(2012)로도 잘 알려진 작품이다. 학생들의 과제물에 점수 대신 ‘쓰레기’라고 휘갈겨 쓰며 문장의 진정성을 강조하는 꼰대 교수 '허문오'(최민식)와, 그의 강의에서 오류를 지적하며 신경을 긁지만 미치도록 궁금증을 유발하는 천재적 글쓰기 실력을 지닌 맨 끝줄의 공대생 '이강'(최현욱)을 주축으로 한 매혹적인 치정·심리 스릴러를 써내려 간다.
원작 고유의 철학적 밀도를 덜어낸 대신 한국적인 스릴러와 통속적인 갈등을 가미해 대중성을 확보한 이번 작품에서 최민식은 열패감과 굴절된 욕망에 사로잡혀 자멸해 가는 지식인 허문오를 완벽히 소화해냈다. "남과 비교하며 외부의 기준에 나를 맞추기 시작하면 허문오처럼 된다"고 말하는 최민식. 스스로 중심을 지키는 삶의 태도를 강조하는 그를 만나 작품과 연기, 그리고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작품에 대한 반응이 매우 뜨겁다. 소감이 어떤가.
사실 별 기대하지 않았다. 요즘처럼 빠른 전개와 스피디한 미디어에 익숙한 시대에, 주로 젊은 층이 소비하는 매체 환경에서 이렇게 진지하고 어두운 문학적인 이야기를 좋아할까 싶었다. 그래도 뭐, 그러거나 말거나 내 갈 길 간다는 마음으로 촬영했다. 그런데 의외로 많은 분들이 주제의식에 공감해 주시고, 작품을 두고 토론까지 벌이시는 걸 보니 기분이 정말 좋다. 허문오와 이강이라는 두 인물을 정육점에 고기 걸어놓듯 홀딱 벗겨서, 굴절된 욕망에 사로잡힌 인간의 진짜 민낯을 보여주고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었던 우리의 의도가 통한 것 같아 참 다행이다.
원작 희곡이나 영화 <인 더 하우스>를 봤는지. <맨 끝줄 소년>과는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
일부러 원작을 보지 않았다. 미리 보면 연기하는 데 영향을 받고 독창성도 사라지기 때문이다. 대충 들어보니 원작이나 프랑수아 오종 감독의 영화는 훨씬 진지하고 문학적인 색채가 짙다고 하더라. 우리 작품은 대중적인 한국형 스릴러와 서스펜스적인 요소를 가미했다. 무심코 뱉은 말 한마디로 구업의 대가를 받는 모습 등 원작을 한국적으로 각색한 방향에 동의했기에 출연을 결정했다.
‘허문오’라는 인물을 어떻게 해석하고 접근했나.
20년 전 사랑하는 여자에 대한 소설을 한 편 내놓은 뒤 후속작이 없는 사람이지만, 글쓰기를 결코 포기하지 않은 작가다. 그런데 창작자로서 갖춰야 할 근본적인 덕목은 도외시하고 외형적인 출세와 명예에 너무 집착한다. 그게 비극의 단초가 된 거지. 과거 친구 ‘김수훈’(허준호)이 내뱉은 독설, 이를테면 ‘쓰고 싶은 얘기가 없으면 아예 안 쓰는 게 낫지 않냐’, ‘문장 공부 다시 해야겠다’ 같은 말이 트라우마가 되어 지금도 온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만약 내면이 단단하고 자존감이 있는 창작자라면 ‘별 미친놈 다 보겠네’ 하고 넘겼을 텐데, 허문오는 그 독설에 오랜 시간 함몰돼 괴로워했다. 그럼에도 글과 이야기에 대한 욕망만큼은 정말 절절한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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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하면서 허문오의 찌질함이나 열등감이 납득하기 어렵지는 않았나. (웃음)
인간이 이렇게까지 추접스러울 수 있나 싶을 정도였다. (웃음) 가정도 잃고 대학에서도 쫓겨나 쓰레기가 됐는데도 엔딩에서 소주에 통조림을 먹으며 글을 쓰고 있지 않나. 남의 눈에는 미친놈이지만, 그 인물 안으로 들어가 보면 본인은 얼마나 아프고 괴로웠을까 싶어 오히려 안쓰럽기도 하더라. 사실 세상에 이해 못 할 일은 없다. 예전에 내가 연기한, 영화 <악마를 보았다>의 장경철 같은 악인도 실제로 존재하지 않나. 남 대가리 깨진 것보다 내 손톱 밑 가시가 더 아픈 법이다. 인간이 가진 나약함과 찌질함의 집합체 같은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교수로서 겪는 창작자로서의 열패감 외에, 남편으로서 보여준 찌질함은 또 다른 감정이었던 것 같다.
그 남편으로서의 모습 역시 참 미친놈이다. (웃음) 그럴 거면 와이프 ‘현숙’(진경)하고 아예 이혼을 하든가 정리를 하든가 해야 하는데, 마지막에 아내가 가방을 들고 떠난다고 하니까 그건 또 싫어한다. 아주 종합선물세트 같은 인물이다. 그런데 내가 이 인물이 돼서 해보니까, ‘본인은 얼마나 아팠을까, 얼마나 괴로웠을까’ 싶어서 그 찌질함을 오히려 감싸주고 싶어지더라. 타인이 객관적으로 떨어져서 보면 미친놈이지만, 허문오 본인은 지가 미친 줄도 모른다. 그래서 작품이 끝날 때쯤 되니까 이놈이 너무 안쓰러웠다.
모든 걸 다 잃고 추락한 허문오를 찾아와 새로운 글쓰기를 제안하는 ‘이강’(최현욱)의 투샷으로 끝나는 엔딩은 어떻게 해석했나.
이강은 진짜 나쁜 놈이다. (웃음) 허문오는 가정도 잃고 학교에서도 쫓겨난 데다 대외적으로 쓰레기가 되어 매스컴에도 다 나오고, 모든 걸 다 잃은 상태다. 그런데도 멸치 몇 마리와 참치 캔을 놓고 소주를 마시면서 타자기를 두드리고 있다. 이야기에 대한 갈망만큼은 무지하게 있는 사람인 거다. 이강이 오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을 거다. 죽이고 싶을 정도로 화가 나겠지만, “교수님, 진짜 새로운 이야기가 쓰고 싶습니다. 수업을 다시 받고 싶어요”라고 하니까 “무슨 이야기냐” 하면서 또 받아들이지 않나. 그 지점이 참 매력적이었다.
호흡을 맞춘 신예 최현욱 배우와의 연기는 어땠나.
보셨다시피 너무 잘했다. 내가 저 나이에 저렇게 했나 싶을 정도로 깜짝 놀랐다. 연기할 때는 내가 이 대사를 어떤 느낌으로 하는지 정확히 알고 하는 게 정말 중요하다. 그런데 현욱이는 그걸 정확히 알고 하더라. 처음 만남에서 허문오가 “너 김세윤이 부럽지?”라고 이강을 나무랄 때 “교수님도 아세요?” 하고 찌르는 대사가 있다. 그 미세한 심리 차이와 대사의 의미를 정확히 알고 치더라. 그만큼 고민을 많이 하고 캐릭터를 파악해서 왔다는 뜻이니 얼마나 든든하고 예쁜가. (웃음) 잘했다고 들뜨지 말고 지금처럼 성실하게 잘 성장해 나갔으면 좋겠다.
허문오가 보이는 괴팍한 행동, 아내를 향한 무관심, 교수이자 작가로서의 도덕적 해이 등 그 근원에는 열패감이 있다고 느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맞다. <맨 끝줄 소년>에서 폭력의 수단은 바로 글과 말이다. 허문오를 보고 영화 <올드보이>를 떠올리는 분들이 꽤 있더라. (웃음) 허문오가 내뱉은 세치 혀 때문에 이런 결과가 초래됐고, 반대로 이강은 글이라는 폭력의 수단으로 허문오를 침몰시킨다. 이강은 허문오를 ‘그야말로 열패감에 사로잡힌 인간’이라고 파악하고 공격한 거다. 김수훈과의 관계, 수훈의 아내이자 허문오의 첫사랑인 ‘안은주’(김윤진)와의 관계까지 전부 서치하고 작전을 짠 거지. 원작이 관음이나 예술과 윤리성을 화두로 삼았다면, 우리 작품은 좀 더 대중적으로 열패감에 사로잡힌 인간을 통해 욕망의 허망함을 이야기하려고 한 거다. 일반적인 사람이 쉽게 납득하기 어려울 정도의 콤플렉스와 열패감에 사로잡힌 인물로 허문오를 표현하려 했다.
배우라는 창작자로서, 타인에 대해 열등감을 느껴본 적이 있나.
타인과 비교해서 열등감을 가져본 적은 별로 기억에 없다. 어릴 때부터 다른 사람 때문에 스트레스받는 일은 별로 없었다. 다만 스스로의 한계에 부딪혀 괴로웠던 적은 수도 없이 많다. 한계를 깨고 계속 업데이트해 나가는 게 배우이자 창작자의 숙명이라고 생각한다. 남들의 평가에 민감해지고 외부 기준에 나를 맞추기 시작하면 허문오처럼 된다고 생각한다. 내가 <올드보이>를 하고 또 <명량>을 해서 인정받았다고 해도 그건 영원한 게 아니다. 그래서 스스로 허세를 덜어내려고 노력한다. 내가 행복해지고 내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연기하는 거기 때문이다. 외부 평가에 연연하지 않으려 하고, 실제로 많이 자유롭다.
스스로 낙천적이라고 표현했는데,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연기를 했을 때는 어떻게 극복하나. (웃음)
내가 봤을 때 ‘이건 아니야, 내가 왜 저렇게 표현했지?’ 싶을 때는 못 견딘다. 미치도록 후회가 된다. 그럴 때는 술을 잔뜩 먹고 자버린다. 술 먹고 “와, 미친놈아. 너 여태까지 뭐 한 거야!” 이러다가도 자고 일어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해해거린다. 짚고는 넘어가지만 그걸 끙끙 안고 오래 남겨놓지는 않는다. 그래서 사나 보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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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OTT 시리즈 등 플랫폼을 넘나들며 매체를 확장하고 있는데, 릴스나 쇼츠 같은 매체에도 열려 있나.
거기까지는 아니다. 숏폼이나 숏드라마처럼 전화기(휴대폰) 화면으로 <맨 끝줄 소년> 같은 작품을 소비하는 건 아니라고 본다. 오늘 인터뷰 장소로 오면서 문득 옛 스승님의 말씀이 생각나더라. 운현궁 인근에 ‘실험극장’이라는 극단이 있었다. 거기서 연극할 때인데, 왜 공연이 끝나면 꽃다발 들고 온 부모님이나 친구들과 사진을 같이 찍지 않나. 그런데 분장을 지우지도 않은 채 그대로 나가서 사진을 찍으면 스승님께 정말 크게 혼이 났었다. “니네가 리어왕을 하든 햄릿을 하든, 주연이든 아니든, 거울 앞에 앉아서 파운데이션을 얼굴에 딱 바르는 순간 그 인물로, 또 다른 세상으로 들어가는 거다. 그게 얼마나 경건한 일인지 아느냐”라고 하셨다. 남들이 인기 배우로 인정해 주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공연이 끝난 뒤 기다리는 분들에게 조금 기다려 달라고 하고 분장을 다 지울 때까지 그 경건함과 자부심을 가지라는 거였다.
한 번은 밤늦게 세트를 세우고 조명을 달다가 힘들어서 무대에서 떡볶이에 오뎅, 소주를 먹고 담배를 피우다 걸려서 심하게 맞은 적도 있다. (웃음) 스승님은 항상 무대는 우주이고 성전이라고 말씀하셨다. 요즘은 그런 선생님이 안 계신다. 그건 허세가 아니라 직업에 대한 자존감이자 철학이었다. 또 다른 우주를 표현하는 일이기에 영화든 드라마든 연극이든 만드는 데 정성과 치열함이 들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유튜브나 숏폼은 내가 하는 일의 표현 수단으로는 맞지 않는 것 같다.
현장에서 스태프들을 챙기는 미담이 많다. 촬영 현장이 여전히 즐거운가.
쑥스러운데 그냥 즐거워서 한 일이다. 한국 나이로 60대 중반인데 지금까지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게 가만히 생각해보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현장에서 자기 일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스태프들을 보면 감동적이다. 누가 등 떠밀어서 나온 사람 하나 없이 좋아서 나와서 개고생을 하고 있는 거다. 그 모습을 보면 내가 이 친구들과 한 작품을 위해 살아 숨 쉬고 있구나 싶어서 즐겁다. 주 52시간이고 뭐고 현장이 힘든 건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인상 쓰고 있다고 힘든 게 없어지는 것도 아니라서, 가급적이면 신나고 재미있게 작업하자는 생각이다.
마지막으로, 오랜 시간 연기를 해오면서도 식지 않는 뜨거운 열정의 원동력은 무엇인가.
작업할 때가 제일 행복하다. 이렇게 말하면 우리 집사람한테 “나는?” 하는 소리를 들으며 혼나곤 하지만. (웃음) 고등학교 3학년 때 연기를 시작한 이후 이 일 외에는 마음먹고 사업을 해본 적도, 직장 생활을 해본 적도 없다. 온리 이 일만 하고 살아왔다. 부부 관계에 비유하자면, 그동안 스스로 내 연기와 복잡하게 싸우고 갈등은 많이 했지만 이혼은 안 하고 살아온 셈이다. 지금도 행복하고, 앞으로 더 하고 싶고, 표현하고 싶은 것도 많다.
사진제공. 넷플릭스
2026년 8월 1일 토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