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은영 기자]
|
"10년 만에 하는 작품인데 왜 저한테 이러시는 거죠." 한국 영화 최고 수준의 제작비와 흥행 부담에 대한 질문에 나홍진 감독은 웃으며 이렇게 답했다. 물론 농담처럼 던진 말 뒤에는 "굉장히 부담된다. 하나라도 더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해봐야겠다는 생각뿐"이라는 진심이 이어졌다.
<호프>는 15일 개봉과 동시에 올해 최단 기간 2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압도적인 흥행력을 입증했다. 반면 작품을 향한 평가는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장르 영화의 쾌감을 극한까지 밀어붙인 압도적인 연출이라는 호평과, 무엇을 이야기하려는 작품인지 끝내 파악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팽팽히 맞선다. 그러나 정작 나홍진 감독은 <호프>를 "끝내 포지티브한 동화 같은 이야기"라고 정의한다.
외계 생명체와 인간의 충돌, 거대한 비극과 죄의식, 그리고 열린 결말까지. 수많은 해석을 낳고 있는 <호프>를 통해 감독이 끝내 말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일까. 나홍진 감독은 영화의 제목이 왜 '호프(Hope)'가 되었는지, 인간의 시선을 끝까지 고수한 이유는 무엇인지, 그리고 자신이 생각하는 희망과 믿음의 의미를 직접 들려주었다.
(*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 156분의 집념, 나홍진이 설계한 <호프>의 세계
<곡성>(2016) 이후 정확히 10년. 하지만 정작 본인은 "그간 계속해서 작업해 와서 오랜만이라는 체감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2018년부터 스태프들과 함께 새로운 기술을 하나씩 익히고, 장비를 마련하고, 시행착오를 반복하며 완성한 작품이 바로 <호프>다. 촬영보다 프리 프로덕션과 후반 작업이 훨씬 길었던 영화. 칸영화제 경쟁부문 초청 당시에도 CG와 컬러, 사운드 작업은 끝나지 않은 상태였고, 귀국하자마자 다시 편집실로 향해야 했다. 언론시사회를 마친 뒤 라운드 인터뷰를 진행하는 이날도 여전히 후반 작업이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내일 미국에 갔다 사흘 만에 돌아와 또 작업해야 영화가 완성된다. 잠이나 원 없이 자봤으면 소원이 없겠다"는 말이 절로 나올 만큼 가장 고된 작업이었다.
한편 나홍진 감독은 최근 관객들이 선호하는 짧은 러닝타임 흐름에도 다른 생각을 내놓았다. "개인적으로 영화가 짧으면 돈이 아깝다"고 웃은 그는 "같은 이야기를 반복할 수 없기 때문에 결국 플롯은 점점 길어질 수밖에 없다. 영화만의 완성된 구조와 차별화된 이야기, 그리고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까지 담으려면 그 정도 시간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번 영화는 외계 생명체를 내세운 SF처럼 보이지만, 나홍진 감독은 끝까지 '외계인'이라는 규정을 경계했다. 오히려 관객이 "정체불명의 존재"로 받아들이길 원했다. 실제로 영화 속 존재들은 각기 다른 외형을 하고 있는데, 이는 하나의 종족이 아니라 거대한 함선 안에서 서로 다른 신분과 역할을 지녔던 개체들이라는 설정에서 출발했다. 모두가 죽더라도 반드시 아이만은 살려야 한다는 하나의 목적 아래 불시착한 존재들이라는 것이다.
<호프>에서 눈에 띄는 지점은 환한 대낮을 배경으로 한 인간과 크리처 간의 쫓고 쫓기는 추격 시퀀스다. 이때 감독은 추격 같은 티피컬한(전형적인) 설정을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나 이런 영화인데, 티피컬한 상황을 이렇게 시작할게. 잘 봐봐"라는 마음으로 정면 승부를 걸었다. 그 대신 장면 하나하나는 "정말 죽여주게 만들어보자"는 생각으로 임했다. 텍스트로 쓰면 '범석(황정민)이 괴물을 찾아 동네를 헤맨다' 정도로 끝나는 내용이지만, 장르영화는 그 과정을 비주얼과 사운드, 여러 영화적 장치를 통해 얼마나 밀도 있게 구현하느냐가 중요하다. 그 시퀀스가 가진 목표를 최대한 극대화하는 데 집중했다는 설명이다.
무엇보다 <호프>는 마지막까지 관객에게 답을 강요하지 않는다. 외계인의 언어가 에필로그에서야 처음 번역되고, 이후의 이야기도 대부분 생략된다. 나홍진 감독은 "관객마다 이해가 모두 다를 수 있다"며 각자가 영화를 완성할 권한을 남겨두고 싶었다고 말했다.
|
◆ 나홍진이 직접 밝힌 '호프'의 의미
<호프>는 어떤 질문에서 출발한 영화인가.
영화를 만들 때는 늘 밝고 아름다운 선함보다 우리가 살아가며 마주하는 부정적인 면에 더 시선이 간다. 이번에도 처음에는 사이코패스라는 존재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서 출발했다. 그러다 <곡성>보다 더 확장된 초자연적인 존재를 이야기하고 싶어졌고, 공간은 우주지만 의미적으로는 종교적일 수도 있는 더 큰 존재의 관점으로 영화를 풀어보고 싶었다.
그래서 영화는 약 2시간 20분 동안 관객이 특정 인물만 따라가는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의 '존재의 관점'을 경험하도록 구성했다. 처음 한 시간 정도는 범석과 같은 시선에서 아무런 정보도 없이 사건을 따라간다. 범석이 보고 듣는 것만 함께 겪으며 관객 역시 무엇이 벌어지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한 채 인물을 따라가게 된다. 이후 노인의 이야기를 통해 관객을 조금씩 워밍업시킨다. 그 말을 믿어야 하는지, 왜곡된 것인지, 일부만 진실인지조차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조금씩 다른 관점에 노출된다. 이어 양배가 등장하면서 창고 속 죽은 아이의 존재가 드러나고, 우주선과 정체불명의 존재들도 모습을 드러낸다. 영화적인 정보만 놓고 보면 이 시점쯤에는 그 존재들의 정체를 어느 정도 짐작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하지만 양배의 등장 전 약 10분 동안 관객에게는 이미 죄의식을 심어놓았다고 생각했다. 정체를 알지 못하는 존재를 부검 전문가(황석정)가 범석과 동행해 톱으로 자르고 그 사체를 마구 훼손하는 과정을 먼저 경험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후 같은 존재를 다시 마주하게 될 때 관객이 처음과는 어떤 시선의 차이를 갖게 되는지, 인간의 시선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보고 싶었다
외계인(정체불명의 존재)이라는 존재들을 통해 어디까지 시선을 확장하고 싶었나.
말했듯이 <곡성>에서는 초자연적인 존재를 다뤘다면, 이번에는 그보다 더 확장된 존재를 바라보고 싶었다. 공간은 우주지만 단순히 SF를 만들고 싶었던 것은 아니다. 인간보다 더 큰 존재의 시선에서 인간을 바라보는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 사실 영화 안에서는 누구도 그 존재를 외계인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영화적인 정보만 놓고 보면 관객은 '정체불명의 존재'로 받아들였으면 했다. 딱 외계인처럼 보이지 않기를 바랐고 '도대체 저게 무엇일까'라는 감정이 들도록 디자인했다.
외형이 모두 다른 것도 같은 이유다. 거대한 함선 안에는 서로 절대 마주칠 일이 없던 다양한 신분과 역할의 존재들이 있었고, 그들이 탈출선을 타고 시공간조차 알 수 없는 곳에 불시착한 것이다. 모두가 죽더라도 반드시 아이만은 살려야 한다는 하나의 목적 아래 각자의 역할과 출신에 맞게 디자인했다.
영화 속 거대한 비극의 출발점인 '양배’라는 인물은 어떤 의미를 지닌 존재인가.
후반부에 이르면 관객은 지금까지 봐온 충돌과 비극의 원인을 마주하게 된다. 그 모든 사달을 일으킨 장본인이 바로 양배다. 양배는 두 가지 역할을 한다. 하나는 그 존재들에게 공간을 제공한 인물이고, 다른 하나는 모든 비극의 원흉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큰 악행을 저질렀다고 해서 반드시 거대한 악의를 가진 사람일 필요는 없다는 점이다. 악행은 꼭 악의를 가져야만 성립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여러 사건과 범죄도 그런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었으면 했다. 이 영화 역시 그런 생각으로 디자인했다.
에필로그에서만 외계인의 언어를 자막으로 번역하고, 이후의 이야기는 대부분 설명하지 않는다. 열린 결말을 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에필로그에서 처음 외계인의 대사를 자막으로 넣은 것은 그때부터는 관객이 지금까지 마주한 충돌과 비극을 다시 바라보는 단계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실 자막은 없어도 괜찮았다. 하지만 그들의 언어를 처음 이해하는 순간부터 영화가 다른 층위로 들어간다고 생각했다.
그 이후의 이야기는 굳이 더 설명하지 않았다. 영화가 끝나고 나면 이후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관객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사람마다 결은 조금씩 다를 것이다. 영화를 만들 때는 관객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다르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곡성>을 만들 때도 객석을 채운 사람들의 종교와 가치관은 모두 다를 것이라 봤다. 내가 하나의 정답을 명확하게 제시하면 누군가에게는 오히려 오해가 되거나 거부감이 생길 수도 있다. 그래서 관객 각자가 자신만의 이해를 가지고 영화를 끝낼 권한을 드리고 싶었다.
그렇다면 결국 영화가 말하는 '호프(Hope)'는 어디에서 찾아야 하나. 제목을 그렇게 정한 이유도 궁금하다.
마지막에는 오래된 전함이 침몰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것은 지금까지 이어져 온 세상의 비극을 은유한다. 그 비극이 과거가 된 뒤 우리에게 무엇이 남는가를 생각했고, 결국 희망이라는 단어에 닿았다.
성경에서는 믿음이 희망보다 한 단계 위의 개념이다. 간절한 희망이 믿음이 되고, 그 믿음이 결국 확신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영화 속 아이 역시 우리가 반드시 되살려야 한다고 믿고, 끝내 확신해야 하는 존재다. 원래는 성경 구절 속 '믿음'을 'Hope'로 바꿀까도 생각했지만 그대로 두었다. 결국 이 영화는 거대한 비극과 충돌을 이야기하지만, 끝내는 희망을 말하는 영화다. 개인적으로는 포지티브한 동화 같은 이야기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제목을 <호프>라고 지었다.
사진제공.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2026년 7월 23일 목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무비스트 페이스북(www.facebook.com/imovis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