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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유통기한을 잊고 사는 우리에게' <넘버원> 최우식 배우
2026년 2월 10일 화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영화 <거인>(2014)으로 최우식이라는 배우의 가능성을 세상에 알렸던 김태용 감독과 최우식이 10여 년 만에 영화 <넘버원>으로 다시 손을 잡았다. <넘버원>은 엄마 ‘은실(장혜진)’의 음식을 먹을 때마다 머리 위에 줄어드는 숫자가 보이기 시작한 아들 ‘하민(최우식)’의 이야기를 그린다. 그 숫자가 '0'이 되면 엄마와 영원히 이별해야 한다는 판타지적 설정은, 역설적으로 우리 곁에 있는 부모님과의 시간이 영원하지 않음을 뼈아프게 상기시킨다. 최우식은 이 작품에서 상실을 예견한 아들의 불안과 절박함, 그리고 서툰 성장을 특유의 맑고 섬세한 결로 그려냈다. 설 연휴 극장가에서 쟁쟁한 작품들과 “박치기하게 됐다”며 웃는 최우식을 만났다. 극장이 다시 활기를 찾길 바라는 진심 어린 마음을 전하는 최우식, 오랜만에 스크린으로 돌아온 소감부터 하민이 되어 마주했던 시간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영화 <거인> 이후 김태용 감독과 두 번째 만남이다. 오랜만에 극장에서 관객과 만나게 되어 기분이 남다를 것 같다.
솔직히 많이 떨리지만, 그만큼 관객을 만나는 게 오랜만이라 설레기도 한다. 감독님과 두 번째 작업이라 사실 부담감이 컸다. <거인>으로 생각지도 못한 큰 사랑을 받았기에 그보다 더 좋은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어느 정도의 압박감이 들었던 것 같다. 요즘 극장 상황이 좋지 않아 걱정도 되더라. 게다가 설 연휴 상대작이 너무 쟁쟁해서… (웃음) <왕과 사는 남자>, <휴민트>가 한꺼번에 개봉해 ‘박치기’를 하게 됐는데, 경쟁이라기보다 다 잘됐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국내 극장이 잘 됐으면 한다. 선택은 관객의 몫이지만, 이번 주는 이 영화, 다음 주는 저 영화, 이런 식으로 잘 봐주셨으면 한다.

설정은 다소 판타지적이나, 매우 현실감 짙은 휴먼 드라마인데 <넘버원>의 어느 면에 끌렸나. 김태용 감독에 대한 믿음이 컸던 걸까.
사실 <거인> 때도 그렇고 이번에도 두세 번 거절했었다. <거인> 때는 글을 보니, 내가 잘 못 할 것 같았다. 그런데 정말 즐겁게 촬영했었다. 당시에는 주 52시간 룰도 없어서 촉박한 기일에 늦게까지 촬영했는데, 마음에 맞는 사람과 함께하면 고됨도 즐거움이 될 수 있다는 걸 배웠었다. 이번에는 또 다른 느낌이었는데, (말했듯이) 전작이 너무 좋았기에 괜히 다시 만났다가 결과가 안 나오면 속상할 것 같았다. 또 감정선이 힘들었다. 한편으로는, 이 영화를 찍을 무렵 마침 마음이 힘들었던 시기라 내심 밝고 유쾌한 작품을 하고 싶은 바람이 있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작품을 선택하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장르를 찍든,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라면 충분히 행복하게 작업할 수 있다는 걸 이번에 다시 한번 확인했기 때문이다. 일에 치여 바쁘게 지내다 보면 정작 가족을 향한 소중함의 유통기한은 잊고 살 때가 많다. 작품을 찍는 내내, 그리고 촬영을 마친 지금도 이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를 마음 깊이 되새기고 있다

엄마의 남은 날이 카운트되는 걸 지켜봐야 하는 ‘하민’을 연기하는 게 쉽지 않았겠더라. 톤은 어떻게 잡아 나갔나.
감독님께서 너무 슬프기만 한 영화가 아니라 유쾌하고 통통 튀는 면을 살리고 싶어 하셨고, 나 역시 영화의 이런 톤앤 매너가 좋았다. 감독님이 말장난을 좋아하고 잘하시는데, 덕분에 너무 무겁지 않게 잘 살아난 것 같다. 나 혼자였다면, 이렇게는 못 했을 거다. 무엇보다 엄마로 분한 장혜진 선배님이 귀엽고 통통 튀게 딱 잡아주시니까, 덕분에 너무 슬프기만 한 아들이 아니라 다양한 감정의 변주가 더 잘 살아난 것 같다. 우리 모두 감정에 솔직하지 못한 채 그 마음을 숨기며 살 때가 많은데, 하민이도 그렇지 않았나 싶다. 처음에는 회피했다면 결국에는 직면하고 그로부터 해법을 얻지 않았나 싶다.

하민은 상실의 아픔을 트라우마처럼 간직한 인물이기도 하다. 태어나자마자 아빠를 잃었고, 고등학생 때는 하나밖에 없는 형, 그다음에는 시한부 엄마까지. 캐릭터적인 고민은 없었나.
나 역시 청소년기를 거쳐 성인이 되었다 보니, 그 마음이 이해가 갔다. 가끔은 내 실제 성격이 투영될 때도 있고. 집에서 막둥이라, 어릴 때 친구들 부모님과 비교하면 우리 부모님의 나이가 많은 편이셨다. 어린 마음에 내가 나중에 몇 살이 되면 우리 부모님은 벌써 이만큼 나이가 드시겠구나 하고 걱정했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하민이 처한 상황에 공감이 더 갔던 부분도 있다. 이건 좀 다른 얘긴데, (웃음) 교복 입은 ‘고등학생 연기는 이번이 마지막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보통 고등학생 시기를 찍는 경우, 주변에 친구들을 또래로 그러니까 실제 고등학생 친구들이 주변에 배치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엔 몰입이 좀 깨진다고 느꼈다. 이젠 그만할 때가 됐다 싶더라!

영화 <기생충>(2019) 이후 장혜진과는 7년 만에 다시 모자 호흡을 맞췄다. 현장에서 실제 엄마처럼 느낀 순간이 있을까. (웃음)
<기생충>이 앙상블이 중요한 작품이었다면 이번에는 일대일로 대화를 주고받는 핑퐁이 많았다. 선배님은 늘 밝고 엄마 같으시다. 워낙 주변을 잘 챙기시는 분이라 내가 인복을 타고났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실제로 선배님 아드님과 내가 정말 닮았다고 하시더라. (웃음) 또 우리 엄마와 보이스 톤이 비슷한 부분이 있는데, 경상도 출신들이시라 그런 것 같다. 성격적으로나 연기적으로 너무 잘 맞아서 운명 같았다.

20여 편의 영화와 30여 편의 드라마에 참여하며 데뷔 후 15년 동안 가열차게 활동해 왔지 싶다. ‘최우식’ 하면 제일 먼저 따라붙는 <거인>과 <기생충> 같은 수식어는 스스로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가는지.
같이 언급된다는 게 너무 좋다. 두 영화 덕분에 내 필모그래피에 흔치 않은 수식어가 따라붙은 것 같다. <기생충>을 하게 된 것도 <거인>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거인>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지도. (웃음) 내게는 두 작품이 마치 창과 방패 같은 느낌이다. 주연을 맡은 드라마를 한참 소개해도 잘 모르다가도 <기생충> 하면, 아! 이러신다. 또 시네필이나 영화를 좋아하는 분들은 <거인>부터 이야기 꺼내기도 한다. 이 두 영화가 있어서 지금의 내가 있는 것 같다.

김태용이라는 이름과 궁합이 잘 맞는 것 같다.
두 분(<거인>의 김태용, <원더랜드>(2024)의 김태용) 다 너무 좋은 감독님이다. <원더랜드>도 너무 재미있게 했다. 두 분 다 이름이 같아서인지 희한하게 배우와 소통을 그 누구보다 잘하시는 분들이다. 소통을 제일 우선시 여기는 것 같고, 항상 현장이 재미로 가득하다.

부산 사투리 연기가 어렵지는 않았나. 경상도 출신인 어머니 덕분에 익숙했는지.
사실 어머니가 평소 사투리를 사용하지 않으셔서, 제일 큰 걱정 중 하나가 사투리였다. 거절했던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안전하게 내가 할 수 있는 걸 택하고 싶은 마음이 있지 않나. 사투리는 말의 정서나 뉘앙스가 담겨야 하고 조금만 잘못해도 어색하게 느껴져서, 도전에 큰 용기가 필요했다. (웃음) 네이티브가 아니다 보니, 대구와 부산 사투리가 잘 구분 안 되더라. 그래서, 대사로 안 되면 추임새로 ‘잘하는 척’을 했던 것 같기도 한다. 영화 들어가기 몇 달 전부터 친구들과 선생님을 만나 연습하긴 했지만, 현장에서 잡아나간 것이 더 컸다. 감독님을 비롯해서 현장에 부산 사투리를 쓰는 분들이 많아 큰 도움을 받았다. 감독님은 사투리에 대해 괜찮다고 오케이 하셨지만, 내가 봤을 때는 10점 만점에 4.5점 정도인 것 같다. 너그럽게 봐주셨으면 한다.

실제로는 어떤 아들인가. 부모님께 요리를 해드린 적은 있는지.
나는 딸 같은 아들인 것 같다. 엄마 아빠한테 사랑한다는 말도 자주 하고 감정 표현을 서슴없이 한다. 늦둥이라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다. <넘버원>을 찍으면서 밥을 해드려야지 생각했는데 아직이다. 예전에 예능 <윤스테이> 할 때, 떡갈비를 배워해드린 적이 있는데 그렇게 막 좋아하시진 않았던 기억이 있다(웃음). 우리 가족이 그런 것 같다. 애정 표현은 잘 하지만, 무언가 오버해서 칭찬하거나 이런 건 좀 어색해하는 부분이 있다. 이번에 잊어버리기 전에 꼭 밥을 해드려야겠다.

하민을 얘기하는데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여자친구인 ‘려은’(공승연)이다. 끝까지 하민을 격려하는데 이에 반해 하민은 좀 무책임한 면이 있는 것 같기도. (웃음) 두 사람의 관계는 어떻게 풀어나갔나.
음… 가끔 하민의 행동이 이해 안 되는 부분이 있긴 했고, 이런 부분은 감독님과 얘기하면서 풀어갔던 것 같다. 려은은 이 작품의 척추 같은 캐릭터다. 하민과 엄마 사이를 단단히 접착하는 역할인데 (공) 승연이가 너무 잘 해줬다. 승연이가 매 횟차 마다 있는 극과 극의 감정 씬을 소화하는 게 놀라웠다. 지난 횟차의 감정을 고스란히 가져와 이어서 연기하더라. 내 앞에 승연이가 없었다면, 하민의 연기가 안 나왔을 것 같다. 하민이 하는 어설픈 행동들이 려은이라는 캐릭터로 인해 잘 봉합됐다고 생각한다.

스크린 속 아들을 보면 실제 부모님은 뭐라고 하시는지 궁금하다. 또 엔딩 크레딧에 여러 가족의 단란한 순간을 담은 사진이 계속 올라가서, 이 또한 하나의 관람포인트더라.
그 여러 가족의 사진 중 유독 우리 엄마 사진이 젤 오래돼 보여서 나 역시 여운이 남더라. 아버지까지 함께한 사진이 아니라서 안타깝지만, 이 역시 영화가 주는 선물인 것 같다. 나와 엄마가 나란히 엔딩크레딧에 잡힐 일이, 그러니까 영화의 한 화면에 함께 담길 일이 또 있을까 싶다. 사실 부모님은 내가 스크린에서 아프고 슬프거나 쫓기는 모습을 보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으신다. 영화 <마녀> 때는 아들이 언제 죽을지 모르니까 힘들어하셨고, <기생충>에서도 돌을 맞았을 때 무척 가슴 아파하셨다. 아들이 불쌍하게 나오는 걸 보기 힘들어하셔서 주로 내가 웃고 방방 거리는 예능 프로그램을 챙겨 보시는 편이다.

캐릭터에서 잘 빠져나오는 편인가. 걱정이 많은 편인 것 같은데 해소는 어떻게 하는지. 또 일하지 않을 때는 주로 어떻게 시간을 보내나.
원래 배역에서 잘 못 나오는 편이었는데 이제는 좀 터득했는지 이전에 비해 잘 빠져나오게 된 것 같다. 배우 일을 하면서 걱정의 완전 해소는 힘든 것 같다. 일하지 않을 때는 최대한 걱정이나 고민 없이 아예 떨어져 지나거나, 아니면 동료 배우한테 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고! (웃음) 그냥 인터넷과 핸드폰을 끄고 자연으로 돌아간다. 해외 시골 같은 곳에 가서 아무것도 안 하는 식이다. 그런데 말은 이렇게 해도 막상 현장에 들어가면 또 즐기면서 한다. 어떻게 보면 워커홀릭 같기도 하고, 일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것 같기도 하다. 누구와 만나서 일을 하든, 사람 대 사람이다 보니까, 맞지 않는 사람도 있고 또 내가 원하지 않은 모습을 보여야 할 때도 있지만, 그 와중에도 사소한 행복을 찾다 보면 또 밝은 날이 찾아오는 것 같다.

최근 느낀 사소한 행복은 무엇인지 문득 궁금해진다. (웃음)
사실 요즘 사소한 행복을 좀 자주 느끼고 있다. (웃음) 얼마 전에 팬미팅을 했는데, 그 전날 <넘버원> 홍보로 몸살감기가 걸려 버렸다. 감기 걸린 채 노래 세 곡을 했는데, 그중 두 곡은 망했지만, 첫 곡은 정말 괜찮았어서 너무 행복하더라.

<넘버원>은 당신에게 무슨 의미로 남을까. 또 관객에게 어떻게 다가갔으면 하나.
요즘 1년에 많이 해도 두 작품 정도인데, 부모님은 기다려 주지 않고 시간은 계속 흐르니 시간을 어떻게 소용 있게 쓸지 고민하게 된다. 영화 <넘버원> 역시 그런 지점을 고민하게 하는 영화다. 우리가 성인이 되고 사회에 내몰리다 보면 너무 당연한 것들을 잊어버리고 살게 되지 않나. <넘버원>은 이런 부분을 영화적으로 품지 않았나 싶다. 언젠가는 마주해야 할 부모님의 부재를 준비해야 한다는 것, 사실 너무 당연하기 때문에 우리가 잊고 사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영화를 보고 이런 당연한 소중함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그리고 당연히 강요는 아니지만, (웃음) 극장이라는 공간은 사랑하는 사람과 영화를 함께 보기에 정말 최적의 공간인 것 같다. 가족들 혹은 연인과 같이 보기에도 좋은 영화이니, 극장에서 소중한 한때를 보내셨으면 한다. 극장에 가기 위해 예쁜 옷을 입고, 같이 이동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또 팝콘 등을 먹으면서 콩닥콩닥한 마음을 나누고. 소중한 사람과 함께 소중한 시간을 알차게 보내셨으면 한다.



사진제공. ㈜바이포엠스튜디오


2026년 2월 10일 화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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