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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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명 ‘연기 흑역사’가 없는 가수 출신 배우를 꼽는다면, 아마도 ‘임시완’을 가장 먼저 떠올릴 것이다. 영화 <변호인>(2013)과 드라마 <미생>(2014)을 통해 이미 완성형 신인의 면모로 대중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그는, 이후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으로 불한당원의 마음에 불을 지폈고, 영화 <비상선언>과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에서는 악의 끝을 보여주며 스스로의 한계를 돌파했다.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에서는 비정한 아빠로 한숨을 자아내고, 쿠팡플레이 <소년시대>에서는 능청스러운 사투리로 시청자를 울리고 웃겼다.
임시완에게 물었다. 그는 타고난 연기 천재일까, 아니면 노력형 배우일까. “첫 영화 <변호인>을 송강호 선배와 함께할 수 있었던 건 행운이었어요.”라며 스타트가 좋았다고 겸손함을 표한다. 임시완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은 바로 ‘이과 성향의 분석력’. 이해될 때까지 파고들고, 납득해야만 다음으로 나아가는 배우다. 변성현 감독이 기획하고 각본을 쓴 넷플릭스 영화 <사마귀>에서 타고난 재능러로 분한 그를 만났다. 주인공 사마귀를 ‘천박하고 양스러운 끼가 있는 캐릭터’라고 소개한다.
<사마귀> 공개 후 어떻게 봤는지. 감상이 궁금하다. (웃음)
직업병인 것 같다. 늘 그렇듯 내가 나온 작품을 볼 때면 ‘왜 저렇게 했을까, 더 잘할 수 있었을텐데’ 하는 생각이 먼저 든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액션 부분에서 이런 생각을 많이 했다. 촬영에 들어가기 전 킥복싱도 배우도 액션스쿨도 열심이 다녔지만, 그래도 조금 더 잘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더라.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2017)으로 변성현 감독과 인연이 깊은데, <사마귀> 출연에도 영향이 있을까.
<사마귀>의 모든 시작은 변성현 감독님이였다. <길복순> 촬영 당시 ‘사마귀’라는 인물이 있으니 목소리로 특별 출연을 부탁하셨었다. 그 장면은 편집되고 없지만, (웃음) ‘언젠가 사마귀를 주인공으로 한 스핀오프가 있다면 그건 임시완 당신이다’라고 하셨거든. 마치 점지된 운명 같았고, 그 운명을 기다렸던 것 같다.
화끈한 킬러 액션을 예상했는데 그보다는 인물 간의 관계와 감정에 초점을 맞춘 것 같더라. 생각보다 액션이 많지 않았지만, 양손에 낫을 들고 하는 색다른 액션을 펼치지 않나. 액션 컨셉트와 준비는 어떻게 했나.
액션의 방향이 만화 같다고 느꼈다. 춤 동작이 들어가기도 하고, 와이어를 타고 날아다니기도 하는 걸 보고 감독님이 이런 만화적인 액션을 원하셨구나 싶었다. 언젠가 있을 액션을 위해 킥복싱을 배우고 몸을 만들고 있었는데, 두 개의 낫을 쓰는 건 또 다른 문제였다. 새롭게 배우는 데 시간이 걸렸지만, 결국 답은 연습이었다. 낫을 들고 다니면서 계속 연습했다. <사마귀> 출연이 확정되자마자 서울액션스쿨에 등록해서 2~3개월 동안 다녔다. 한 친구가 나를 밀착 마크하면서 도와줬는데, 그 친구 덕분에 정말 많이 배울 수 있었다.
액션을 미리 준비하고 있었다고 했는데, 액션 외에도 평소 꾸준히 준비하는 것이 있다면.
일단 몸 관리는 기본이다. 가령 상의 노출씬 등이 있다면, (촬영이) 잡히고 나서 준비하는 건 늦다고 생각해서 늘 신경 쓰고 있다. 더불어 영어는 기본값으로 항상 일상에 붙여 놓으려고 한다. 꼭 영어 연기를 위해서가 아니라 한국인이 아닌 스탭들과 영어로 소통할 일이 있을 수 있어서 그렇다. 영어는 옵션이 아니라 필수가 된 것 같아, 꾸준히 공부해 오고 있다. 전역 후부터 시작해서 시간 날때마다 계속 한 선생님과 맞추고 있다. 영어를 안 하던 사람이라 쉬기 시작하면 퇴화하는 속도가 엄청 빠르더라. 그래서 쉬지 않고 하려 한다.
누아르보다는 오히려 러브스토리에 가까운데, 감정선은 어떻게 잡아나갔나.
충분히 그렇게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재이’(박규영)와 ‘한율’(임시완)이 그런 감정을 갖고 있기 때문에 표출될 수밖에 없었다. 또 이태성 감독님이 감정에 굉장히 섬세한 분이셨다. 재이와 한율이 감정적인 대사를 주고받을 때 테이크마다 미묘하게 다른 감정을 표현하면 그 차이까지 세심하게 캐치하셔서 크게 도움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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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귀는 어떤 인물이라고 생각하고 접근했는지. 거친 대사도 꽤 있는데 소화하기 힘들진 않았나.
대본을 보고 사마귀라는 캐릭터를 구체화해 나갔다. 붕붕 뜨고 설레발치는 인물, 개인적으로 ‘천박하고 양스러운 끼가 있는 캐릭터’로 묘사하려 했다. 실제 내 정서보다 텐션이 훨씬 높은 인물이라 쉽지는 않았다. 대사도 많고 액션까지 겹치는 날은 진이 다 빠지더라. 평소보다 몇 배의 에너지를 끌어 다 써야 했다. 특히 창업하고 작품을 브리핑하는 한율의 모습은 자신만만해야 했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에너지를 끌어올렸다. 평상시 이런 (높은) 텐션으로 사는 분들은 에너지가 어마어마하겠구나 싶었다.
한율과 임시완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꼽는다면.
솔직히 공통점을 찾고 싶지 않다. (웃음) 한율은 실력에 비해 자만하고 경거망동한데 실제의 나와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한다. 냉정히 말해, 그는 ‘천재’라고 불리기엔 패배가 많은 인물이다.
‘연기 흑역사 없는 아이돌 출신 배우’라는 평이 있다. 혹시 타고난 천재일까? (웃음) 영화 속 ‘한율’처럼?
전혀. 물론 아예 재능이 없었다면 지금처럼 평가받지 못했을 거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좋은 시작’이었다고 생각한다. 나만의 나쁜 습관이 잡히기 전에 처음부터 좋은 작품, 좋은 현장, 좋은 선배님을 만나서 길을 잘 잡아주었다. 또 연기 선생님을 잘 만났다. 내 경우, 운이 좋게 연기 기회가 주어져서 연기를 배운 케이스인데 이때 함께한 선생님이 연기라는 것의 가치를 잘 알려주셨다. 또 처음 한 영화가 <변호인>으로 송강호 선배와 함께였다. 선배님은 적어도 연기에 있어서는 앞으로 최종 목표로서 지향해야 할, 목표점 같은 연기를 하고 계신 분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분의 연기를 눈 앞에서 봤으니… 이런 경험이 쌓여 연기에 있어서 올바른 방향성을 잘 잡아 나갈 수 있었다.
노력형 재능러인 ‘재이’(박규영)는 타고난 재능러 ‘한율’에서 부러움과 열등감을 동시에 갖고 있다. 실제로 누군가에게 부러움의 감정이 생길 때 어떻게 대처하는지 궁금하다.
그런 감정은 내 부족함에서 온다고 생각해서 오히려 그런 부족한 면을 메우려고 한다. 생각해 보면 부러움의 감정을 자주 느끼는 편은 아니다. 그런데 한율은 (말했듯이) 실력에 비해 자만한 인물이다. 재이와의 대결에서도 압도적이지 않은데, 이런 자만심이 한율의 특징이자 약점이다. 한율 입장에서 재이는 라이벌이라기보다 자신에게 손을 내밀어준 소중한 존재라고 생각했다.
잠깐이지만, 설경구와 전도연과 호흡을 맞췄는데 어땠나.
경구 선배님은 예전에 함께한 적이 있어서 심적으로 안정됐었다. 전도연 선배님과는 두 번째지만 대사를 맞춘 건 처음이라 굉장히 영광이었다.
함께한 박규영, 조우진과의 호흡도 궁금하다. 곁에서 지켜보니 어떤 배우든가.
규영이는 정말 근면 성실함에 있어서는 최고점을 주고 싶다. 함께 액션 스쿨에 가거나 피티를 받곤 했다. 우진 선배는 다작하시면서도 자기 복제를 하지 않아서, 꼭 한 번 호흡을 맞춰보고 싶다고 생각한 선배님이다. 이번에 하면서 은연중에 그 원동력은 뭘지 관찰하게 되더라. 마치 ‘교과서 보고 서울대 갔어요’ 하는, 전형적인 모범생 같은 분인 것 같았다. 대본에 충실하고, 작품이 잘되기 위한 정답을 알고 있고 그 정답에 충실하는 분. 집중할 때는 집중하고 필요하면 분위기도 띄우고 그러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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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룡영화제 당시 무대 공연으로 신선한 충격을 안겨줬다. 그런 끼는 타고난 것 아닌가. (웃음) 한마디로 시선 강탈이었다.
내 인생에서 가장 긴장했던 순간이었다. 끝나고 나서 병헌 선배님과의 인연이 끝나는 건 아닐지 걱정했을 정도였다. 다행히 좋은 반응이 많아서 안도했고 스스로에게도 큰 응원이 됐다. ‘특별한 재능이 없으면 노력으로 메워야 한다’는 걸 다시 느끼기도. 이후엔 준비되지 않은 말(수상소감)을 함부로 할 게 아니라 SNS를 통해 더 신중하게 소통하자는 다짐을 하게 됐다. (웃음)
스스로 텐션이 높지 않다고 했는데, 청룡영화상 무대 공연도 그렇고 또 주변에서 회자되는 에피소드를 들어보면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지금 같은 이미지 변화의 8할은 병헌 선배님의 인터뷰와 (내가) 예능에서 보인 모습 덕분이다. 실제로는 그렇게 텐션이 높지 않다. 딱히 없는 이야기는 아닌데 병헌 선배가 진지하면서도 유머러스하게 나에 대해 언급해서 그렇게 된 것 같다.
선역과 악역을 오가며 다양한 역할을 소화하고 있는데 작품 선택 기준이 있다면.
여러가지 기준이 있는데 이는 명확한 하나의 기준이 없다고도 하겠다. 다만, 그간의 선택을 돌아보면 아직 해보지 않은 장르를 선택해 온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사마귀>의 액션도 이런 도전 중 하나였다. 아직까지 본격적인 액션 장르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언젠가는 꼭 해보고 싶었고, 이런 기회를 잡을 수 있어서 감사했다.
임시완의 연기 원동력은 뭘까. 문득 궁금하다.
음… 이과 성향의 분석력 같다. 마음속 깊이 이해될 때까지 파고들고 분석해서 납득하려고 한다. 한편으로는 이해가 안 되면 원동력을 잃을 수 있어, 장점이자 단점인 것 같기도 하다.
그간 꾸준히 OST 작업을 해왔는데, 이번에 새 앨범을 준비 중이라고.
사실 이제껏 가수를 포기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만약 포기한다면 내가 활동했던 20대를 스스로 부정하는 느낌이 들어서 가수 활동을 계속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OST만으로는 무대를 꾸리고 팬들과 소통하기에 그 소스가 많지 않아서, 시간이 날 때 앨범을 제대로 만들려 했다. 다음 작품이 결정되지 않은 지금이 적기인 것 같더라. 앨범을 통해서 팬들과 조금 더 가깝게 만나려 한다. 소통할 기회를 넓히고자 음반 활동 계약도 따로 했다. 지금은 전문가의 의견을 따르고, 언젠가는 내 음악관을 담을 생각이다. 이번 노래는 마냥 댄스곡도 아니고 그렇다고 발라드도 아닌, 미디어 템포 팝 정도로 정의할 수 있을 것 같다.
팬미팅이나 소통앱을 시작할 계획이 있는지.
소통앱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지 못했고, 팬미팅은 이번 앨범을 계기로 꼭 하고 싶다. 2~3년 전에 한 팬미팅 때 정말 좋았거든. 현실적으로 매년 하는 건 어렵지만, 올해 말 앨범 발매 시기에 맞춰 계획 중이다.
차기작 계획은.
아직까지 정해진 건 없다. 다만 <오징어 게임>의 내 이미지를 씻어 내고자 하는 목표는 명확하다. (웃음) 악역은 <오징어 게임>의 트라우마로 한동안 못할 것 같다. 밝고 명랑한 로맨틱 코미디를 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열어놓고 보고 있는 중이다.
사진제공. 넷플릭스
2025년 10월 22일 수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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