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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작품을 향해 열심히 달릴 시기” <어쩔수가없다> 손예진 배우
2025년 10월 13일 월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손예진이 영화 <협상>(2018) 이후 7년 만에 스크린으로 돌아왔다. 결혼과 출산, 그리고 육아의 시간을 지나 한층 성숙해진 얼굴로, 동시에 영화에 대한 열정은 더 깊어진 모습이다. 박찬욱 감독과의 첫 만남으로 화제를 모은 <어쩔수가없다>에서 손예진은 스스로 존재의 결을 만들어냈다. 변화무쌍한 ‘만수’(이병헌)와 달리, 집이라는 한정된 공간 속에서 리액션으로 극을 끌고 가는 ‘미리’는 쉽지 않은 캐릭터였다. 손예진은 그 안에 스릴러적 긴장감과 엄마, 아내로서의 다채로운 얼굴을 불어넣으며 자신만의 색깔을 입혔다. 성큼 다가온 계절처럼, 변화의 시기라 말하는 손예진. 지금은 작품을 향해 “열심히 달릴 시기”라며 환하게 웃는다.

대본을 읽은 첫 느낌은 어땠나. ‘미리’는 분량이 많지 않지만 존재감 있는 캐릭터로 다가왔다.
대본을 받기 전, 박찬욱 감독님이 나에게 대본을 주려 한다는 이야기를 민정 씨를 통해 처음 들었다. 원작에서는 분량도 거의 없고, 존재감도 크지 않았다. 때문에 책(대본)의 서사와 이야기가 워낙 강렬했지만, ‘내가 굳이 이 캐릭터를 해야 할까’라는 고민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합류하면서 감독님이 분량을 늘리고 ‘미리’의 서사를 만들어 주셨다. 솔직히 처음에는 ‘작은 역할인데 왜 했을까’라는 말을 듣지 않을까 걱정되기도 했거든. (웃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찬욱 감독님과 작업한다는 것 자체가 큰 기회라서 참여했고, 결과적으로 영화가 너무 잘 나와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왜 이 역할을 내게 맡겼을까?’라는 질문을 스스로 해 본 적이 있나.
그럼! 처음 만났을 때 감독님께서 “이건 만수(이병헌)의 이야기이고, 미리는 현실감을 지닌 캐릭터다. 작게 나오더라도 존재감이 없으면 안 된다. 손예진이 아니면 안 된다”라고 말씀해 주셨다. 그 말에 결국 마음이 움직였던 것 같다. 결국 모든 캐릭터가 각자의 역할이 있는 것 같다.

극 중 ‘미리’에게 스릴러적인 얼굴이 보이더라.
원래 대본에 있던 게 아니라 내가 만든 부분이다. ‘미리’라는 역할은 만족의 여부를 떠나, 배우로서 쉽지 않은 캐릭터였다. ‘만수’는 1부터 10까지 레이어가 다양하게 변주되는 인물인데, 미리는 집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극적인 감정을 드러낼 기회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카메라가 가까이 잡아주지도 않으니, 어떻게 하면 캐릭터를 풍성하게 보여드릴 수 있을지 고민해야 했다. 그래서 만수와 싸우는 장면에서 손짓, 발짓을 의도적으로 더 사용하기도 했었다. 또 절제된 톤을 유지해야 했기 때문에 오히려 연기의 수위 조절이 힘들었다.

현실적 캐릭터인 ‘미리’를 표현할 때 고민은 없었나.
있었다. 배우는 결국 작품의 색깔과 감독님의 의도에 따라 색이 입혀지기 마련이다. 감독님이 ‘현실적인 캐릭터’라고 말씀하셨고, 내가 예상했던 톤보다 훨씬 더 일상적인 톤을 원하셨다. 그래서 억양과 리액션을 최대한 현실감 있게 가져가려 노력했다. 미리는 '고추잠자리' 장면처럼 극적인 표현이 드러나는 순간이 거의 없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생활 연기를 고민했다.

초반에는 속물적인 인상도 있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만수에 대한 사랑이 깊게 느껴졌다.
맞다, 대본이 계속 수정되면서 미리 캐릭터도 조금씩 변화했었다. 미리가 만수의 비밀을 알게 되면서 감정이 더 깊어졌고, 사실 결말 부분도 의견이 분분했다. 감독님과도 ‘미리가 행복할 수 있을까’라는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편집된 장면 중에 아들에게 “지금 아빠가 친아빠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대목도 있었다. 만약 그 장면이 그대로 들어갔다면 관객이 더 혼란스러웠을 것 같아, 삭제된 부분이다. 개인적으로는 미리가 결국 행복하게 살 거라고 믿고 싶다.

‘미리’가 만수에게 품은 감정은 무엇알까.
여러 감정이 교차했을 거다. 남편을 몰아세운 죄책감, 과거 싱글맘으로서의 미안함, 그럼에도 가족을 지키려는 애틋함 등등. 그래서 미리라는 인물이 안타깝게 다가왔다.

아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수의 친구를 찾아간 장면도 인상 깊더라.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미리의 신념을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윤리적으로 옳지 않을 수 있지만, 미리에게는 가족을 지키기 위한 선택이었을 거다. 아들의 잘못이 도둑질이 아니라, 심각한 범죄였다면 어떤 행동을 보였을지 스스로 궁금하기도 했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뭐든 하는 게 엄마이지 않나.

미리와 만수의 관계는 ‘범모’(이성민)?‘아라’(염혜란) 부부와 닮은 듯 다르다. 워낙 쟁쟁한 선배 배우들과 함께했는데 이들의 연기를 곁에서 지켜본 소감은.
다른 배우들의 연기를 모니터를 통해 잠깐씩만 봤는데도 감탄했었다. 성민 선배, 혜란 언니, 희순 선배 모두 예상을 뛰어넘는 연기를 보여주었다. 특히 범모 캐릭터가 잡은 높은 톤이 처음엔 낯설었는데, 완성된 장면을 보니 ‘다 이유가 있었구나’ 싶었다. 함께한 배우들 모두의 팬이 됐다. (웃음)

박찬욱 감독님과의 작업은 어땠나.
감독님은 정말 고요하시다. 큰소리를 내거나 감정 기복을 드러내지 않으신다. 항상 차분한 톤으로 디렉션을 주셨고, 차가운 관찰자 같은 시선이 느껴졌었다. 칭찬도 “좋았어, 좋았어” 정도로 간단히 하신다. (웃음) 첫 촬영 때 짧은 대사 하나를 여러 번 반복했는데, 제가 ‘장어’를 강조하는 식으로 말하자 “그게(장어가) 중요한 게 아니다”라고 하셔서 웃기도 했었다. 나는 그 단어가 중요하다고 생각했었거든. (웃음)

이병헌 배우와의 호흡은.
정말 자연스러웠다. 특히 부부 싸움 장면은 너무 유치해서 오히려 현실적으로 다가올 정도였다. 팬티를 던지며 “너 술 먹었지?” 하는 장면에서는 감독님이 머리를 흔드는 동작을 제안하셨는데 잘 어울렸던 것 같다. “너도 잘생겼잖아”라는 대사는 (미리에게 있어) 유일하게 코미디적인 장면이라 부담이 컸는데, 테이크를 여러 번 가면서 잘 맞춰갔다. 서로 크게 맞추지 않았는데도 호흡이 척척이라 감독님도 신기해하시기도 했다.

미리가 근무하는 치과 원장 ‘오진호’ 역에 유연석이 출연했다. 만수의 열등감을 자극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사실 유연석 씨 장면은 많이 편집됐다. 둘이 바람을 피우는 건 아니었지만, 미리와 오진호 사이에 미묘한 기류가 있었다. 만수 입장에서는 자격지심을 느끼고 ‘저 남자가 아내를 빼앗을 수도 있겠다’라는 불안이 있었을 거다.

평소 자신의 연주를 절대 보여주지 않던 자폐 스펙트럼인 딸 ‘리원’(최소율)이 마지막에 첼로 연주를 하는 건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그렇잖아도 많이 질문들 하시더라. 원래 각본에는 문을 열지 못하는 설정이었다. 결국 문을 열지만 들어가지는 못하고, 아이의 연주를 듣는 장면으로 바뀌었다. 감독님은 “반려견인 개들이(리투, 시투) 돌아와서 축하하는 의미일 수 있잖아”하면서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고 하셨지만, 우리끼리는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눴다. 개인적으로는 그 장면이 여러 감정을 소용돌이치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이번 미리 캐릭터가 영화 <비밀은 없다> 속 ‘연홍’이 떠오른다는 반응도 있다. <어쩔수가없다>의 각본가인 이경미 작가가 연출한 영화 아닌가.
<어쩔수가없다>를 먼저 쓰셨던 거로 알고 있다. 그러다 보니 미리 캐릭터가 연홍에 일부 묻어나지 않았나 싶다. 둘 다 가정을 지키는 엄마라는 점은 유사하지만, 결말에서 선택의 방식은 서로 다르다. 미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아이를 지키겠다는 다짐이 있었다.

제작보고회에서 있었던 이병헌 배우의 ‘아역 배우를 챙기지 않았다’는 농담이 왜곡되어 오해를 사기도 했다.
사실 현장에서의 농담은 우리끼리 쌓아온 관계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거다. 그런데 대중은 그 맥락을 모르다 보니 오해가 생긴 것 같다. 병헌 선배가 많이 미안해하셨고, 이후에는 우리끼리 “개그 욕심 금지”라는 농담을 주고받기도 했다. (웃음)

차기작은 어떻게 되는지. 소개를 부탁한다.
넷플릭스 사극 <스캔들>의 촬영을 끝냈다. 다음 달부터는 역시 넷플릭스 시리즈인 <버라이어티> 촬영에 들어간다.

지금 이 가을을 어떻게 보내고 있는지, 문득 궁금하다. (웃음)
일과 육아를 병행하며 지내고 있다. 여름에는 아이가 더울까 봐 놀이터도 자주 못 갔는데, 요즘은 많이 데려가려고 한다. 나이가 들수록 계절의 변화를 더 크게 느낀다. 여름 냄새, 가을 햇볕과 바람 속에서 ‘이제 겨울이 오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나에게 변화의 시기이고, 작품을 향해 열심히 달려야 할 때라고 생각하고 있다.



사진제공. 엠에스팀엔터테인먼트


2025년 10월 13일 월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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