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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적 격렬함만큼은 IMAX 급’ <히든페이스> 김대우 감독
2024년 12월 12일 목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무언가 예뻐야 해요, 제 특질이자 콤플렉스 중 하나예요” 언젠가 추하거나 험블한 아름다움을 해보고 싶다는 김대우 감독이지만, 감독의 아름다운 미장센은 관객에게 비주얼적인 즐거움을 선사하는 건 틀림없다. 영화 <인간중독>(2014) 이후 송승헌, 조여정과 다시 의기투합한 <히든페이스>로 오랜만에 대중을 찾은 김대우 감독이다. 이 영화는 약혼녀(조여정)가 사라진 직후 남자(송승헌) 앞에 나타난 약혼녀의 후배(박지현)라는 두 여자와 한 남자의 삼각 구도 안에서, 상투적인 치정 멜로와는 궤를 달리한 성인 스릴러. 때론 은밀하고 품격있게 때론 과감하고 거침없이, 관찰하고 관찰당하는 세 남녀를 감각적으로 그린다. “관음성의 역방향, 관음의 리버스”라고 할까요. 관찰당하는 자는 쾌감을, 관찰하는 자는 고통을 느끼는 이 묘한 관계 속으로 관객을 끌어들인 김대우 감독을 만났다. 내적 격렬함만큼은 IMAX 급이라고 영화를 소개한다.

<인간중독>(2014) 보다 한층 더 성숙해졌다는 평이다. 동명의 콜롬비아.스페인 영화를 리메이크했는데, 원작에서 끌린 점은.
어느 것 하나도 우연이 있으면 안 되게끔 변주하면 폭발력을 가질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출발은 ‘수연’(조여정)의 무성의에서 시작한다. 이별을 대하는 무성의한 자세, 여기에 반응하는 ‘미주’(박지현)의 복수심, 중간에 낀 ‘성진’(송승헌)의 애매모호함. 그리고 밀실에 갇히고 풀려나는 행위의 뒤바뀜이 인화성이 있겠다 싶었다. <히든페이스>를 제안받은 당시, 추진 중인 작품이 있었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바로 하지 않으면 마음의 역동성이 약해질 것 같아서 우선적으로 하게 됐다. 이제 끝냈으니, 당시에 하려던 작품을 다시 추진 중이다. 6부작 정도의 사극이 될 것 같다.

원작과 뼈대만 같고 완전히 달리 갔는데 각색하면서 중점을 둔 부분은. 또 원제목을 그대로 가져간 이유가 있을까.
뭐랄까, 약간 올림픽 같은 느낌이랄지. (웃음) 외국작품을 한국에서 리메이크하는 거니 왠지 이기고 싶은, 잘 만들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다. 뼈대만을 가져왔으니 제목을 달리가자는 의견도 있었는데 작가로서의 자존심이 발동해서… 제목을 바꾸면 자신감이 없어 보이는 것 같아서 그냥 그대로 갔다. 원작자를 실망시키지 않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족쇄, 노예 같은 소재나 표현은 원작에는 전혀 없는 설정인데, 새롭게 도입한 의도가 무얼까
사랑에는 여러 형태가 있다고 생각한다. (상징적으로) 노예로 만들고 노예가 되고 이런 관계를 선호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그 또한 사랑의 한 형태일 수 있다는 생각이다. 만약 나쁜 사랑이 있다면, 반대로 좋은 사랑도 있어야 하는데, 그렇다면 좋은 사랑은 무언가. 현실에 충실하되 너무 처절하게 그리는 것이 아니라 예쁘장하게 그려보려 했다.

<인간중독>의 송승헌, 조여정 배우와 다시 의기투합했다.
<인간중독>이 끝난 이후 제일 자주 만난 영화인이었다. 배우와 감독을 떠나 친구로, 운동도 같이 하며 만남을 가졌는데 점차 배우들이 진화하고 있더라. 여정 씨는 말할 것도 없고 승헌 씨도 멋있어야 한다 혹은 예뻐야 한다 같은 한류스타로서의 짐을 내려놓고 있었다. <인간중독> 때는 내려놓으려 했으나 완전히 내려놓지는 못 했었거든. 두 배우의 발전을 보면서 이번에도 같이 해 보고 싶었다. 여기에 박지현이라는 신인배우까지 라인업이 완성되고 나니, ‘나만 잘하면 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웃음)

박지현 배우는 어떻게 캐스팅하게 된 건가.
캐스팅 동기는 반반이었다. 개인적으로 지현 배우가 소속된 회사의 매니저를 신뢰하는 편이다. 배우, 특히 여배우를 보는 눈이 뛰어나서 그가 일단 권하면 사려 깊게 지켜보곤 했었다. 이런 마음으로 만났는데, 나머지 반은 배우가 꽉 채워주었다. 누드라는 것이 하나밖에 없는 의상인데, 지현 씨는 이 의상을 입었을 때 매우 당당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꼭 몸매가 휘황찬란해서의 문제가 아닌, 어떤 긍지의 문제였다. 우리가 준비한 성의에 걸맞은 긍지를 지닌 배우라고 생각했다.

신인 여배우만 노출한다는 일각의 시선도 있다.
신인이라고 해서 노출한다는 건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의견이라고 생각한다. 기존 여배우 중에서도 노출을 감당하겠다는 분이 없는 것이 아님에도 신인으로 가는 이유는 그들 만의 패기가 있기 때문이다. 격렬한 투쟁심, 앞뒤 가리지 않는 헌신 같은 신인의 패기는 누구도 못 따라간다. 개인적으로 주연의 노출 없이 조연만 노출시키는 일은 절대 없다. 한때 신인만 소비하고 있는 건 아닌지 고민한 적이 없지 않다. 이런 면에서 조여정, 임지연 배우가 잘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너무 뭉클하면서 대견하고 한편으론 고맙다. <히든페이스> 시사 때도 지연 씨가 왔는데 그 존재감이 대단하더라.

수연이 밀실에서 미주와 성진의 베드씬을 지켜보고 있지 않나. 이때 미주의 시선은 밀실로 향해 있는데, 이 장면의 포인트는 뭘까.
관음적이라는 말은 훔쳐보는 자가 쾌감을 갖는다는 걸 전제로 한다. 한데 여기서는 보여주는 자가 쾌감을 느끼고, 관음하는 자가 고통을 느낀다. 밀실의 수연이 느낄 고통을 생각하며 쾌감을 느끼는 미주의 관계는 관음의 역방향, 다시 말해 관음의 리버스라 하겠다. 성진 역시 마찬가지다. 그 역시 단순히 섹스에 의한 쾌락만이 아니라, 복수감에서 오는 쾌감을 보여주고 싶었다.

베드씬을 두 번씩 촬영했다고.
수연이 밀실에서 미주와 성진의 섹스를 보는 장면을 블루스크린에서 촬영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건 여정 씨에게 너무 가혹한 것 같았다. 딱히 다른 소품도 없이 밀실 안에서 혼자 소리지르고 창문을 두드리며 연기하게 하는 건 아닌 것 같더라. 그래서 지현 씨, 승헌 씨와 같이 의논해서 여정 씨가 실제로 보면서 연기하는 방향으로 결정했다. 섹스씬이 부담가는 건 맞지만, 그래도 동료로서 이 정도는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투샷을 찍을 때 자기 얼굴이 잡히지 않아도 상대를 위해 최선을 다해 연기해주는 것과 같은 이치라 하겠다. 조금 미안한 생각이 들었지만, (웃음) 공평한 기회를 준 것이니 잘했다는 생각이다.

성진의 등에 송골송골 맺힌 땀까지, 베드씬이 매우 디테일하다는 평인데 나중에 CG 작업을 거친 것인가.
전혀 아니다. 베드씬이지만, 촬영 면에서는 액션씬과 다름없어서 합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이 합이 무용이랑 비슷해서, 돌아눕거나 방향을 바꿀 때도 누가 옆에서 밀어주면 편하기 때문에, 이런 방향 같은 걸 사전에 다 지정하고 들어갔다. 그렇지 않으면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겪어야 합이 맞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열 몇 번 찍었다고 자랑하는데 그건, 특히 베드씬에서는 잔인한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발레처럼 동작이 우아하도록, 한쪽이 표나지 않게 도와줄 수 있는 몸동작을 내가 조감독과 먼저 합을 맞춰 본 후 배우가 하게끔 했었다. 덕분에 리허설 없이 바로 슛 들어가서 한 테이크에 끝낼 수 있었다. 정면 촬영 하루, 반대 방향 촬영 하루 해서 이틀 동안 끝냈다.

송승헌 배우는 조여정 배우가 중심을 딱 잡아줘서 너무 안정적인 현장이었다고 하던데, 감독 입장에서는 어땠나.
여정 씨는 어떻게 보면 자기 역할에만 집중하는 데도 불구하고 현장을 묘하게 안정감 있게 만드는 힘이 있다. 집중력의 전염력이 강하다고 할지, 여정 씨가 집중하기 시작하면 주변도 같이 집중하기 시작한다. 내가 실없이 건드렸다가 대답도 못 받고 눈치 없다고 취급받기도! (웃음) 또 캐릭터에 동화되는 스위치가 굉장히 뛰어난 배우다. 스위치가 ‘딸칵’ 하고 커지는 순간은 그 인물 자체가 되고, 꺼지면 바로 자기로 돌아오곤 한다. 작은 체구임에도 장군 같은 포스를 지녔고, 무엇보다 군더더기 소리를 하지 않는다.

엔딩이 충격적이라는 의견이 많다. 해피엔딩인지 모호하기도 한데 의도는 무언가.
각자의 욕망을 달성했다는 점에서 해피엔딩이라 하겠다. 그런데 이를 대놓고 표현할 수 없어서, 상징적으로 대사로 드러냈다. 수연이 엔딩 무렵 하는 ‘너무 행복을 주는 집이에요’라는 대사에 메타포가 있다고 생각한다. 기이하고 납득이 되지 않을 수 있지만, 각자에게는 행복한 공간이라고 할지. 개인적인 생각인데, 지금의 행복이 영원할 거라는 믿음은 없기 때문에, 나중에는 그 관계 역시 균열이 생길 거라고 본다.

밀실을 비롯한 공간 설계와 미술이 특히 뛰어나더라. 추구한 미가 있을까.
미술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점은 영화를 보고 나서 ‘미술이 좋았어’ 정도의 느낌이어야지, 미술이 전면에 나서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방자전> (2010)의 미술감독과 함께했는데 독창적인 면이 뛰어난 분이다. 미술은 미술감독의 예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대체로 따라가는 편이다. 밀실의 경우, 개인의식의 밑바닥에 있는 복도 같다고 생각했다. 남들과 공유하지 않은 절대적이고 안정적인 무의식의 공간이 있지 않을까. 미술 감독에게 의식 밑바닥에 있는 아지트랄지, 벙커 같은 느낌으로 만들어 달라고 했는데 지금 같은 공간을 보여주더라.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공간적으로 또 촬영 동선상으로 훨씬 뛰어나서 깜짝 놀랐었다. 특히 밀실에 있는 좌변식 변기 아이디어는 너무 좋았다. (섹스를) 보는 자와 하는 자, 배설의 공간이 뒤섞여서 솔직해지는 공간이라고 할지, 미술 감독의 은유와 상징이 가득 담긴 밀실이라 하겠다.

피아노 선율과 아름다운 미장센이 어우러져 한 편의 화보 같은 느낌이다.
사실 내 특질이고 한번 변화하고 싶은 부분인데, 무언가 미술이 예쁘지 않거나 썰렁한 걸 참기 힘들어하는 경향이 있다. 왜 영화 <곡성> 같은 경우는 꾸미지 않은 아름다움이 있지 않나, 이런 미를 한번 추구해보고 싶은데, 내가 하면 이상하게 썰렁한 느낌이 드는 듯해서… 앞으로 추하거나 험블한 아름다움을 표현해 보고 싶은 마음이 있다. 이번에도 미술팀이 내 평소 성향을 알아서, 아름답게 꾸며준 것 같다. (웃음)

관객에게 어떻게 다가갔으면 하는지
무성의함이 나은 질투가 얼마나 무서운지, 그것이 서로 격리된 채 발휘되면 얼마나 파괴력이 있는지, 또 인간의 잠재된 소유욕이 얼마나 크고 깊은지. <히든페이스>는 내적 격렬함이 큰 영화라고 생각한다. 여러 인물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사람과 사람 간의 감정이 얼마나 격렬한 씬을 만들 수 있는지 보여주고 싶었다. 어떤 블록버스터의 스케일 큰 씬보다 더욱더 역동적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감정의 IMAX적인 경험을 선사하지 않을까 한다. (웃음)



사진제공. 스튜디오앤뉴, 쏠레어파트너스(유), NEW

2024년 12월 12일 목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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