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은영 기자]
시즌1로부터 78년이 지난 2024년 현재를 배경으로 한 <경성크리처2>. 혼자만의 지옥에 살고 있는 ‘윤채옥’(한소희)은 실종자를 찾던 중 ‘장태상’(박서준)을 꼭 닮은 ‘장호재’(박서준)를 만난다. 한편, 폐허가 된 옹성병원의 옛터에는 전승제약이 들어섰고, 그 지하에서는 여전히 비밀스러운 실험이 진행 중이다. 더욱더 확장된 세계관으로 시청자를 찾은 이번 시즌에서 이무생은 미스터리한 인물 ‘쿠로코 대장’ 역으로 분해서 극도로 절제된 연기를 선보인다. TV, OTT, 극장 등 종횡무진하며 멋진 슈트핏으로 ‘이무생로랑’이란 애칭으로 불리는 이무생을 만났다. ‘기억하라’는 메시지와 이러한 주제와 맞닿은 캐릭터인 ‘쿠로코 대장’에 무엇보다 끌렸다고 말한다.
파트2에서 드디어 ‘쿠로코 대장’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공개 소감은.
시즌1이 오픈 됐을 때, 기쁜 동시에 확장될 세계관을 보여줄 시즌2를 빨리 보여드리고 싶었다. 이렇게 공개되고 나니까 설레기도 하고, 다행히 글로벌 반응이 좋다고 해서 한시름 놨다. 완성본을 보니 개인적으로 휘몰아치는 전개와 캐릭터 별로 차별화한 액션이 흥미로웠다. 무술감독님이 정말 공을 많이 들였다는 게 느껴지더라. 또 멜로는 정점을 찍었고, (웃음) 액션과 멜로의 절묘한 조화가 좋았다.
<경성크리처2> 관련 재미있는 댓글을 봤는데, 8화는 언제 나오는지 묻더라. (시즌2는 총 7부작임) 쿠로코 대장의 뒷이야기가 더 있을 것 같은데, 언질 받은 바는 없는지. 또 캐릭터를 간단히 소개한다면.
하하, 전혀 없다. 쿠로코 대장의 서사가 자세하게 나오는 것도 좋겠지만, 개인적으로 지금처럼 은은하게 시청자의 상상을 자극하는 부분이 매력적이라고 느꼈다. 그는 시즌1에 등장한 가토 중좌의 아들로 시즌2의 전승제약 ‘신지오 회장’(박성근)과는 의붓형제 사이다. 형은 양지에서, 쿠로코 대장은 음지에서 아버지의 뜻을 계승해 실험을 이어 나갈 임무를 부여받은 인물이다. ‘기억하라’는 작품 주제와 맞닿은 캐릭터라 무엇보다 끌렸다.
주제와 맞닿은 캐릭터라는 의미는.
채옥이나 태상과 달리 쿠로코 대장은 1945년을 경험하지 못한, 현재를 사는 후손일 뿐이다. 전승제약의 안녕을 위해 살아가는 인물이다. 태상이 쿠로코 대장에게 하는 ‘기억하게 하겠다’는 대사처럼, 우리가 경험하지 못했다고 그 시대(일제강점기)를 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 작품의 메시지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감독님과 작가님에게 명확히 듣고 들어갔던 부분이다. 후손인 우리는 일제강점기의 기억을 망각했거나 혹은 이미 다 끝난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걸, 또 잊지 말고 기억하자는 점이 <경성크리처>를 관통하는 주제라 하겠다.
전사가 거의 없기 때문에 더더욱 궁금해지는 캐릭터가 아닌가 한다. 정동윤 감독이 특별히 주문한 톤앤 무드가 있을까.
감독님께서 쿠키영상에 은은하게 포인트를 담아줬다고 생각한다. 서사 외적으로 쿠로코 대장이라는 캐릭터를 표현하는 수단이라고 느꼈다. 이런 직접이지 않은 표현이 오히려 좋았던 것 같다. 감독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중 가장 큰 부분이 ‘절제’였다. 태생적 어둠을 짊어진 인물이라, 예민하고 더욱더 철저해지려 하는데 이런 바탕에는 완벽에 가까운 절제의 태도가 깔려 있다. 이런 절제의 끝판왕이라는 점이 그간 해온 악역과 차별화되는 지점이라 새로웠다.
그는 영생하는 인물이니, 훗날 복수하려 할 수도 있을 테이고 아니면 평범한 인간 인양 살아갈 수도 있겠지만, 아마도 행복할 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바로 그 점이 쿠로코 대장의 디폴트 값인 것 같다. 아, 그리고 좀 더 나른한 느낌이 나도록 톤을 맞추었다. 큰 사건이 일어나도 ‘그럴 수 있지, 또 해결할 문제가 생겼구나’ 하는 느낌 정도? 여하튼 좀처럼 동요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려 했다.
그런 인물인데 사랑하는 여자를 위하는 듯한 행동은, 사실 선뜻 납득되지 않더라. 무언가 이면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그 부분에 대해 다들 여러 상상을 하시더라. (웃음) 다양한 생각을 하도록 의도한 설정이 아닌가 한다. 왜냐하면 쿠로코 대장의 의도가 무엇인지 특정되려면 좀 더 서사가 더해져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으니, 호기심을 조성하는 측면이 크다.
판타지 크리처물은 거의 처음 아닌가. 액션도 그간의 작품 중 가장 많이 했다. 새로운 영역인데 어땠나.
다른 모습을 많이 보여줄 수 있는 장르라 기대가 컸었다. 원래 합기도, 태권도 같은 격투기를 해왔고 액션을 좋아하는데 이번에 굵고 짧게 선보일 수 있어 기뻤다. 기회가 된다면 더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이 크다.
후반부 장태상과 맞붙는 검술 액션은 극의 하이라이트인데, 호흡은 어땠나. ‘나진’이 심어진 인간들이라 초인간적인 액션, 그러니까 고강도의 액션을 선보이는데.
장태상과 쿠로코 대장이 자주 부닥치지는 않지만, (웃음) 만날 때마다 텐션이 높고, 그 장면의 텐션은 최고치가 아닌가 한다. 서준 씨는 1년 넘게 <경성크리처> 촬영을 해와서 피로가 많이 누적된 상태일 텐데도 전혀 힘든 내색을 하지 않았다. 오롯하게 인물에 빙의되어 연기하더라. 덕분에 무한 신뢰의 마음으로 마음껏 칼을 휘두를 수 있었던 것 같다. 무술 감독님이 워낙 합을 정교하게 짜주었고, 맨몸 액션 또 검술 액션 등 태상과 만날 때마다 액션의 색감이 달라서 그 대비되는 느낌이 좋았다.
힘들지는 않았나.
육체적으로 힘든 것보다는 당시 한여름에 촬영해서 더위 때문에 고생했던 기억이 난다. 아주 외진 곳이었는데 감독님이 아이스크림을 공수해 와서 다들 환호하기도. 또 쿠로코 대장이 ‘승조’(배현성)의 뺨을 연속으로 때리는 씬을 찍을 때, 현성 씨가 너무 잘 맞추어져서 고맙다. 합을 맞추고 들어가도 때리는 것보다 맞는 것이 어렵거든. 원씬 원컷으로 잘 끝낼 수 있었다.
빈틈없는 쓰리피스 셋업, 한 올도 흐트러지지 않은 헤어에 힘준 눈빛까지 외적으로 신경 쓴 부분은.
말했듯이 ‘절제’가 키워드라, 흐트러짐 없는 스타일이되 한편으로는 나른한 느낌이 들도록 했다. 일부러 눈에 힘을 준 건 아니고 어쩌다 하다 보니…(웃음) 검은 재규어가 먹이를 노리는 순간, 그 절체절명의 순간에 눈 한 번 깜박이지 않고 먹이를 주시하는 재규어 같다고 할지, 이런 느낌을 주고자 했다. 특히 ‘채옥’을 처음 대면하는 장면이 그랬다. 쿠로코 대장 입장에서는 말로만 들었던 존재가 실존한다는 걸 눈앞에서 확인하는 순간이라, 한순간도 놓치지 않으려 했던 것 같다.
정동윤 감독과의 호흡은 어땠나.
감독님 스타일이 배우를 되게 편하게 해 주신다. 일단 배우가 원하는 방향으로 연기하면 거기에서 좀 더 덜어내거나 더하는 방식이다. 덕분에 가감없이 생각하는 대로 시도할 수 있었다. 고정관념에 사로잡히지 않는 매우 스마트한 작업이었다.
그간 다양한 역할을 소화했는데 작품 선택 기준은.
악역이나 선역 혹은 특정한 역할을 정하는 것 역시 편견이라고 생각해서 최대한 작품 안에 녹아들려고 한다. 일단 작품과 메시지가 좋고, 캐릭터와 메시지가 유기적으로 잘 얽혀 있으면, 그러니까 덜커덕거리지 않는다면 베스트인 것 같다. 이런 면에서 이번 쿠로코 대장은 메시지와 맞닿은 인물이라 특히 좋았다.
올해만 해도 영화 <시민덕희> <설계자>, OTT 시리즈 <지배종> <경성크리처2>, 드라마 <하이드>까지 끊이지 않고 관객과 시청자와 만나고 있다. 쉼 없이 작업하는 원동력은 무얼까.
음… 원동력은 작품인 것 같다. 사실 이렇게 열일하게 될 줄 몰랐는데 좋은 사람과 좋은 기회를 만나서 작품할 수 있다는 데 무엇보다 감사하다. 좋은 작품이 좋은 반응으로 이어진다고 할지, 그래서 기본적으로 작품을 보는 눈을 키우려 하고, 무엇보다 진심으로 작품을 대하려 한다. 내 마음가짐부터 잘 잡아야 좋은 작품을 만나게 되는 것 같다.
요즘 캐스팅에 있어서 빈익빈 부익부라는 말이 나올 만큼 배우업계도 사정이 썩 좋지 않은데, 끊임없이 콜을 받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솔직히 명확한 이유는 모르겠다. (웃음) 일단 참여한 작품에 대해 다른 무엇보다도 사랑하는 마음이 중요한 것 같다. 열심히 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라고 생각하거든. 사랑하는 만큼 좀 더 많이 보이고, 그만큼 표현법도 다양해지지 않을까 한다. 감독님, 작가님과 미팅할 때도 기회가 되면 작품을 깊게 사랑하고 싶다고 말씀드린다. 또 내 역할만이 아니라, 작품 전체에 관해 먼저 이야기를 꺼내기도 하곤 한다. 이번 쿠로코 대장은 피한방울 안 나올 것 같은 냉혈한이지만, 그런 냉혈한을 나라도 사랑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작품 전체 분위기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다양하게 변주하려 했었다.
완벽한 슈트핏으로 ‘이무생로랑’ 이라는 애칭이 있을 정도인데, 앞으론 새로운 별칭은 뭐가 좋을까. (웃음)
들을 때마다 쑥스럽고 마치 내 이름이 바뀐 것 같기도 하지만, 그만큼 좋게 봐주신다는 증거라 감사할 뿐이다. 사실 평소에 정장 슈트를 거의 입지 않는 편이고, 몇 벌 갖고 있지도 않다. 새로운 별명은… 순간 ‘이무생이랑’ 이 떠올랐다! 시청자와 관객과 더불어 가는 이무생, 괜찮지 않나. (웃음)
내 인생의 명장면을 꼽는다면.
지금, 이 순간이다. 항상 지금, 현재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작품도 마지막 작품이 가장 소중하다. <경성크리처2>의 반응이 좋건 좋지 않건, 그건 내 컨트롤의 영역이 아니지 않나. 내가 작품을 보며 웃을 수 있고, 잘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지금 이 장면이 명장면 맞다.
사진제공. 넷플릭스
2024년 10월 2일 수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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