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은영 기자]
<마녀>로 대표되는 박훈정 유니버스의 새 작품인 디즈니+ 시리즈 <폭군>에서 단연코 눈에 띄는 캐릭터는 1인 2인격의 암살자 ‘채자경’이다. 다중인격의 타고난 킬러라는 매력적인 캐릭터를 꿰찬 이는 신인 배우 조윤수다. 고강도의 액션과 디테일한 표정과 눈빛연기로 인물에 생명력을 부여하며, 김다미와 신시아의 계보를 성공적으로 이어갔다. 촬영이 끝난 지 1년이 훌쩍 지났지만, 아직도 <폭군>과 ‘채자경’을 떠나보내지 못한 것 같다는 조윤수를 만났다. 스스로의 강인함을 깨닫게 해 준 <폭군>과 함께한 감독, 선배, 스탭들 모두에게 감사함을 표한다. 더불어 액션 칭찬이 많아서 기쁘고 뿌듯하다는 조윤수, 앞으로 행보가 기대되는 배우다.
<폭군>이 디즈니+ 오픈 후 관심을 많이 받고 있다. 반응을 좀 살펴보고 있는지. 기억에 남는 반응이 있다면.
재미있게 보셨다는 평이 많아서 기분 좋다.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몰라서 불안했는데 안심했고, 참여한 배우로서 뿌듯함을 느꼈다. 가장 기억에 남는 평은…. (자랑 같은데 말해도 될까?) (웃음) ‘<폭군>이 10점 만점에 10점이면, ‘채자경’ 캐스팅은 20점’이라는 댓글이다. 배우로서 역할에 잘 어울린다, 감독님의 (캐스팅) 선택이 옳았다 같은 평을 받고 싶은 바람이 있었다.
국정원 내 비밀 조직을 이끄는 ‘최 국장’(김선호), 은퇴한 후 청소부로 활동하는 ‘임 과장’(차승원) 그리고 미국이라는 든든한 뒷배를 가진 ‘폴’(김강우)까지. 세 선배와 함께했다. 후배 사랑이 자자했다고.
사실 선배님 이야기가 (내) 눈물 버튼이다. <폭군>이라는 작품 자체가 내게 큰 선물이고 하느님이 주신 기회라고 생각한다. 좋은 작품과 캐릭터, 존경하는 감독님 그리고 평소 너무 좋아했던 선배님들과 함께해서다. 촬영하면서 너무 잘 챙겨 주셨고, 정말 많은 걸 배웠다. 홍보나 프로모션 자리에서는 기회 될 때마다 ‘윤수가 어떻게 연기했고, 정말 고생 많이 했다”고 언급해 주셔서 그때마다 눈물 나기도.
‘자경’과 붙는 액션 씬이 많은 차승원 선배는 연기적으로 많은 도움을 주셨다. 체격 차이가 크다 보니 매번 다치지 않았냐고 배려하면서 여러 번 합을 맞추고 기다려 주셨다. 선호 선배는 항상 친절하게 웃는 얼굴로 격려를, 강우 선배님은 뒤에서 묵묵히 보고 있다가 위로와 격려를 보내셨다. 홍보할 때도 내가 당황하면 뒤에서 ‘이렇게 하면 된다’고 가이드 해주셨다. 어떻게 이런 선배님을 세 분이나 만났는지 진심으로 감사할 뿐이다.
<폭군> 속 ‘채자경’은 다중인격에 타고난 킬러다. 드라마 <사랑의 이해>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라 못 알아본 시청자도 많을 것 같다. 촬영 시기는 언제인가.
<사랑의 이해>는 2022년 말부터 2023년 초까지, <폭군>은 2023년 1월부터 4월까지로 비슷한 시기에 촬영했다. 그런데 <사랑의 이해>의 ‘차선재’는 아주 밝은 인물이고, ‘자경’은 터프하고 거친, 완전히 상반된 인물이라 힘들기보다 오히려 재미있었다.
박훈정 감독은 영화 <마녀> 1편과 2편에 완전 신인인 김다미, 신시아 배우를 발굴하며 탁월한 안목을 입증한 바 있다. 오디션을 통해 박훈정 사단에 합류했는데 그 과정을 좀 풀어놔 달라. (웃음)
감독님이 (내) 프로필을 보고 회사를 통해 오디션 보러 오라고 연락 주셨다. 아마도 ‘자경’ 이미지와 어울리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신 것 같다. 대본 리딩을 포함해 약 한달 반 동안 세 차례에 걸쳐 오디션을 봤다. 감독님이 ‘몸을 잘 쓰냐’고 질문하시길래 ‘무용과 출신이라 잘 쓴다’고 대답했지만, 사실 운전 면허도 없었다. 극 중 자경은 운전을 프로급으로 잘하는데 말이지. (웃음) 오디션 본 후 격투기 학원에 등록해서 킥복싱을 배우는 동시에 부랴부랴 트럭을 몰아야 해서 운전면허 1종을 취득했었다. 연기 영상을 보고 싶다고 하셔서 급하게 3박 4일 동안 단편영화를 찍기까지 했다. 이걸 보여 드리지는 못했지만, 그만큼 나를 어필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발표를 기다리면서 애가 탔겠다. (웃음)
오디션을 2022년 9월에 봤고, 합격 연락을 받은 건 11월 초였다. 원래 10월 말까지 알려주신다고 해서 거의 포기 상태였다. 아쉽고 속상한 마음으로 학원 갔다가 집에 오는 길에 회사로부터 합격 전화를 받았다. 길거리에서 펑펑 울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박훈정 감독은 캐스팅 이유를 밝히던가. 데뷔작인데 부담감은 없었나.
감독님께 캐스팅한 이유를 여쭤봤었다. 감독님의 의도에 맞게 좋은 부분은 살리고, 아쉬운 부분은 개선하려는 생각에서였다. 말씀하길 ‘자경의 모습을 봤다’고, ‘어떤 캐릭터를 입혀도 어울릴 이미지’라고 하셨다. 캐스팅이 확정된 후에는 부담감보다는 책임감을 더 느꼈던 것 같다. 감독님의 명성에 누가 되면 안 된다, 작품을 기대하는 분들을 실망시키면 안 된다는 생각이 강했다. 영화 <마녀> 팬으로서 그 주인공들과 나란히 이름을 거론해 주는 것만으로도 영광이었다 한편으로는 <폭군>은 <마녀>와 별개의 작품이니, <폭군>의 ‘채자경’을 잘 살리고 싶었다.
‘자경과 오빠’라는 1인 2인격을 지닌 캐릭터에 어떻게 접근했나.
기본적으로 자경은 두려움이 없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서도 담담하고 심지어 죽음에도 동요하지 않는 인물이다. 속이 텅 빈 사람, 마치 쇠파이프 같은 느낌이다. 겉으로는 단단하지만, 감정적으로는 빈공간인 그래서 더욱더 무자비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닐까 한다. 또 자경과 오빠는 한 몸을 공유하고 있고 성격이 비슷해 보이지만, 차이가 있다고 생각했다.
자경과 오빠의 차이를 어떤 식으로 표현하고자 했나. 자경이 몸의 반쪽에만 문신하고 있는 것도 그 연장선이겠다.
제일 많이 고민한 지점이다. 자경과 그 오빠는 성격은 대동소이하지만, 디테일에 있어서 차이가 있다. 감독님께서 움직임이 많아질수록 약해 보이기 때문에 최대한 움직임을 절제하라고 디렉팅하셨다. 심지어 동공의 흔들림까지 절제해야 했다. 그래서 눈빛과 표정의 차이로 두 인격을 표현해야 했는데, 자경의 경우 매사에 심드렁한 눈빛과 표정을 보인다면, 오빠는 살육할 때(싸울 때) 의욕적이고 신나 한다. 둘을 비교해 보면 자경은 기본적인 온도 자체가 낮은 좀 더 차가운 사람이라면, 오빠는 좀 더 다혈질이고 그 근본은 사이코패스에 가깝다 하겠다.
<폭군>을 보면서 자경이 소화한 고강도 액션에 감탄했다. 캐스팅되고 얼마 안 되어 촬영에 들어갔는데 언제 어떻게 준비한 건가.
무용전공이지만, 액션과는 상관없었고(웃음) 촬영 들어가기 한 달 반 동안 매일 체력과 액션 트레이닝을 받았다. 자경이 소화할 액션씬과 이때 맞춰야 할 합이 많다 보니, 촬영하면서 다음 씬을 준비해 나갔다. 주변에서 도와준 덕분에 스턴트 분이 한 연기를 나도 전부 소화할 수 있었고, 장면에 따라 감독님께서 마음에 드신 그림을 쓰신 것 같다. 자경의 액션은 주변 도구를 마구잡이로 이용해서 싸우는 생계형 액션이고, 그래서 훈련받은 절제된 동작보다 살기 위해 짐승같이 버둥거리는 모습을 보이려 했다. 뭐든 당장 물어뜯을 것 같은 움직임을 위해 액션 감독님과 합을 많이 연습했었다. 또 총과 칼 같은 무기도 다뤄야 해서, 촬영팀이 준 모형총을 침대맡에 두고 수시로 만지작거리며 손에 감각을 익혔다. 자경이 총을 점검해 보는 씬이 있어서 이때 전문가처럼 보이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어색해 보이지 않는 게 목표였다.
그렇게 짧은 시간에 가능하다니! 타고난 건가. (웃음) 액션 관련 에피소드가 있다면.
솔직히 너무너무 걱정했었다. 액션씬은 처음인 데다 그 분량도 많고 또 (몸을 잘 쓴다고) 큰소리 쳤는데 말이다! 완성본을 보고 기대보다 너무 잘 나와서 살짝 감탄하기도. (웃음) 첫 촬영이 부산에 내려간 자경이, 수건 안에 칼을 넣고 남자의 안면을 가격하는 장면이었다. 전날 잠도 설치고 너무 긴장한 상태로 찍었는데 ‘컷’ 소리가 난 후 웅성웅성하는 거다. ‘큰일 났다, 뭘 잘못했나 보다’ 속으로 생각하며 걱정했는데, 감독님이 ‘너 많이 때려봤지? 한두 번 때린 솜씨가 아닌데, 과거 조사해 볼 거야’ 하며 웃길래, 그제야 한시름 놨었다. 또 <폭군> 촬영이 모두 끝난 후 아쉬운 마음에 다시 찍으면 더 잘할 것 같다고 감독님께 이야기하자, ‘너 혼자 핸드폰으로 찍어라’하고 쿨하게 말씀한 기억이 문득 떠오른다.
액션 연기에 있어서 물리적 트레이닝뿐만 아니라 정서적(감정적) 준비도 필요했을 것 같다. 치고받고 난도질하고, 피가 튀기는 장면의 연속이라 촬영하면서 심적으로 힘들진 않았나.
처음에는 ‘컷’하고 나면 (맞은) 상대역이 아플 것 같아서 미안하고 죄송한 마음에 어쩔 줄 모르겠더라. 그런데 점차 익숙해지더라. 개인적으로 자경이라는 캐릭터에 착 달라붙었다고 생각하는 장면이 있다. 후반부, 여러 명을 해치우는 시퀀스인데 주변에 뻗어 있는 사람들을 보며 ‘내가 해치웠다’는 뿌듯함이 드는 거다! 그만큼 몰입했던 것 같다. 또 마지막에 자경이 싸우는 장면에서는 상대분이 가짜처럼 보이지 않게 정말로 때리라고 하시더라. 그 순간 내가 너무 과몰입한 나머지 자경이만큼 힘이 세다고 생각했는지 ‘오빠, 아프실 텐데 괜찮으시겠어요’하고 나보다 덩치가 거의 두 배나 큰 분을 걱정한 기억이 있다. 그렇게 주먹을 날렸는데 바로 내 손목이 꺾이는 걸 보고 ‘아, 난 자경이가 아니지!’ 하면서 몰입이 확 깨지며 현실로 돌아왔다 (웃음)
숏컷을 선보였는데, 짧은 머리는 처음이라고.
한국무용을 전공했어서 평생 긴머리였다. 원래는 단발 길이 정도로 하려 했는데, 좀 더 짧게 짧게 하다가 숏컷이 당첨됐다. 생소한 모습에 눈물이 찔끔 날 정도로 어색해하던 중 마침 감독님이 카톡을 주신 거다. ‘머리가 짧아져서 춥냐고, 숏컷을 하니 자경이가 보여서 너무 깜짝 놀랐다’고 하셨다. 급 기분이 좋아지면서 매니저님한테 머리 잘라서 너무 뿌듯하다고 전화 드린 기억이 난다.
<폭군>에서 해장국, 짜장면, 토스트 등 캐릭터에 따른 먹방도 눈에 띄는데, 자경이는 짜장면을 담당했다. 먹방계의 기대주라고 해도 되겠더라. (웃음)
감독님의 정확한 의도는 모르겠지만, 모든 먹는 씬에는 의미가 있다고 하셨다. 해장국집에서 모두가 해장국을 먹고 있는데 자경이 굳이 짜장면을 시켜 먹는 건 그들과 겸상하지 않겠다는, 니들의 음식은 먹지 않겠다는 무언의 거부와 같다. 그 장면을 찍으면서, 한 씬을 이렇게 다양한 각도에서 여러 컷으로 찍을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짜장면도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많이 먹어서, 그 후 한달 정도는 짜장면을 보고 싶지도 않더라. (웃음) 사실 평소에 깨작깨작하며 조금씩 숟가락에 얹어서 먹는 스타일인데 그때는 아귀아귀 먹어야 상대방의 심기를 건드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후루룩 쩝쩝하며 먹었다.
무용 전공인데 연기에 원래부터 뜻이 있었던 건가. 또 해보니 자신과 맞다고 생각하는지.
처음부터 연기를 하고 싶은 건 아니었다. 대학 입학 후 드라마 < 손 the guest >를 보면서 주인공 캐릭터와 그들의 서사에 매료됐었다. 내가 직접 표현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때부터 연기할 수 있는 경로를 찾아 프로필을 등록해 놓고 연락을 기다렸다. 그런데 전공도 아니고 경력도 없으니 처음 8~9개월은 아무 역도 맡지 못했다. 오디션 기회는 있었는데 그게 출연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웹 드라마로 데뷔하게 됐고, 주로 학원 로맨스를 하다가 점차 기회를 넓혀 갔다. 어느 순간부터 연기가 천직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 내게 잘 맞고 맞지 않고를 떠나서 연기를 안 했으면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을지 전혀 상상이 되지 않는다. 연기하기 전에 무슨 생각하며 살았는지, 연기 이전의 내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웃음)
사진제공.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2024년 9월 2일 월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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