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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 미화 우려, 최대한 조심스럽게 접근해” <하이재킹> 여진구 배우
2024년 7월 20일 토요일 | 이금용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이금용 기자]
이념과 사상의 대립이 최고조에 이르렀던 1971년, 대한민국 상공에서 여객기를 납치해 납북하려는 시도가 벌어진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하이재킹>에서 ‘빨갱이’로 낙인 찍혀 비운의 삶을 살던 중 극단적인 범죄를 계획하는 ‘용대’ 역을 맡아 생애 첫 악역에 도전한 여진구는 “범죄가 정당화되거나 미화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접근했다”고 말한다.

<하이재킹>에는 어떤 과정을 통해 합류했나.
(하)정우 형과는 <두발로 티켓팅>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만났다. 정우 형과 직접 만난 건 그때가 처음이었는데 형이 내 덩치에 놀랐던 게 기억난다. 작품에 들어갈 땐 보통 다이어트를 해서 몸을 만든 상태로 들어가는 거라, 내 덩치가 생각했던 거보다 커서 당황한 거 같았다. (웃음)

당시 촬영을 위해 뉴질랜드행 비행기를 같이 탔는데, 그때 형이 <하이재킹>에 대해 얘기를 꺼내시더라. 김성한 감독님이라는 분이 계신데 이번 작품이 연출 데뷔작이지만 조연출을 오래하셔서 믿음직스럽고, 본인도 기획이 마음에 들어서 주연뿐만 아니라 제작에도 참여하게 됐다고. (웃음) 그것부터 시작해서 이 영화가 어떤 스토리인지, 또 나에게 맡기고 싶은 배역이 어떤 인물인지 차근차근 설명해주셨고, 추후에 정식으로 시나리오가 가면 편하게 읽고 얘기해달라고 하셨다. 그 자리에서 확답을 드린 건 아니다. 스토리도 좋았고 형이 내게 먼저 제안해주신 것도 감사하지만 바로 결정하기엔 두려움이 컸다.

어떤 두려움이었을까.
‘용대’라는 인물이 폭발적인 에너지를 보여줘야 하는데 이걸 내가 할 수 있을지가 가장 먼저 든 의문이었다. 그런 불안감에도 불구하고 마음은 이미 어느 정도 정해졌던 거 같다. 마음에 드는 작품을 만나면 자연스럽게 그 작품 속에 있는 내가 상상이 된다. <하이재킹>이 딱 그랬다. 한국에 와서 시나리오를 제대로 읽어본 다음 이건 내가 꼭 해야한다는 확신이 들었다.

‘용대’는 악역이지만 북에 있는 형으로 인해 ‘빨갱이’로 낙인 찍혀 핍박받은 안타까운 전사를 가졌다.
그런 과거사로 인해 ‘용대’의 범죄가 정당화되거나 미화되지 않을까 해서 염려됐다. 때문에 더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감독님께서는 ‘용대’의 설정이 많은 부분 사실에 기반했다고 하시더라. 그래서 전사가 너무 극적인 거 아닌가 하는 의문은 내려놓고 ‘용대’의 감정선과 그걸 표현하는 방식에 대해 더 고민했다.

‘용대’가 안타까운 과거사를 지녔다 보니 악역인데도 어쩔 수 없이 정이 가더라. 그 마음이 깊어지다가 도중에 ‘아차’ 싶었다. (웃음) 사람들이 영화를 보며 ‘용대’가 시대를 잘못 만나 안타깝다고 여기는 정도에서 그치길 바랐는데, 내가 먼저 ‘용대’에 너무 깊게 이입하면 관객 입장에서도 영화를 따라가는데 도움이 안 될 거 같더라. ‘용대’에 대한 연민을 끌어내는 듯한 분위기는 최대한 지양했다. 많이 조심스러웠던 만큼 연기하면서 리허설도 많이 했고 여러 감정의 농도로 시도해 봤다. 대사 한 줄만 치더라도 여러 버전으로 찍어서 한 테이크만에 끝난 장면이 없다. 배우 입장에선 다양한 촬영을 시도할 수 있다는 자체가 힘들었지만 감사하기도 했다.

완성된 최종본은 어느 정도의 감정선인가.
많이 걷어내고 정제된 버전이다. (웃음) 예를 들어 ‘용대’와 옆자리 할머니의 대화 장면이 편집됐는데 ‘용대’의 이야기가 필요 이상으로 길어질 만한 부분은 거의 덜어냈다. 우리끼리 영화가 잘 되면 3시간 짜리 감독판을 만들자는 얘기를 했을 정도로 못 담은 부분이 많다.

‘용대’와 부기장 ‘태인’(하정우)이 주축이 되어 극을 이끌어간다. 하정우와의 호흡은 어땠나.
우선 현장이 너무 유쾌했다. 내가 했던 작품 중 가장 웃음이 많았던 현장이 아닌가 싶다. 촬영 기간 동안 대전에서 배우들이 다 함께 지냈다. 현장에서는 좁은 세트 안에서 계속 부대끼고 촬영이 끝나고는 영화에 대한 심도 깊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시간을 보내다 보니 자연스럽게 가까워졌던 거 같다. 특히 정우 형한테 배운 게 많다. 사실 ‘용대’의 에너지가 무지막지하다 보니 나도 덩달아 흥분했을 때가 좀 있었다. 언젠가는 내가 정우 형 멱살을 잡는데 너무 흥분해서 거리 조절을 못하고 얼굴을 때렸다. 정우 형이 그때 화 한 번 안 내시고 ‘이번 현장이 배우로서 스스로를 컨트롤하는 법을 배울 수 있는 좋은 경험이 될 거다’라는 말을 해주셨는데, 죄송하면서도 감사했다. 이 작품을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30대에 어떤 배우가 돼야할지 고민이 많았는데, 정우 형을 보고 목표가 생겼다.

어떤 목표인가.
배우면 배우, 제작이면 제작 이런 식으로 경계를 두지 않고, 정우 형처럼 영화 안에서 다양한 시도를 해보고 싶다. 다만 연출이 얼마나 고된지는 익히 봐왔던 터라 거기까지는?엄두가?나지 않는다. (웃음) 대신 시나리오와 제작 쪽에 관심이 크다. 언젠가는 당연히 해야하는 일처럼 느껴진다. 지금으로선 차차 배우는 중이고 시나리오는 직접 써보고도 있다.

사실 연기 경력에 있어선 하정우와도 크게 차이나지 않는다. (웃음) 2005년 <새드무비>로 데뷔해 어느덧 20년차인데.
연기를 시작한 건 초등학생 때지만 배우의 꿈을 제대로 꾼 건 드라마 <자이언트>를 찍었던 14살 무렵이었다. 그 작품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고 그 1~2년 만에 내 인생이 바뀌었다. 그런데 작품 안에서 내 비중이 커질수록 내가 느끼는 책임감, 무게감도 커지더라. 그 전까지만 해도 나에게 있어 연기란 노는 것과 다름 없었는데, 그때부터 스스로 옥죄고 채찍질하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부턴 현장에 가는 게 부담으로 다가오더라. 내가 원하는 걸 연기로 제대로 표현할 수 있을까, 계속해서 사랑받기 위해서 내가 무엇을 해야할까, 머리가 아득해질 정도로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런 맥락에서 고등학교 시기가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거 같다. 성인이 되면 더 이상 아역 배우가 아닌 성인 배우로서 많은 분들 앞에 서야 하는데 그런 불안한 마음 상태로 얼마나 더 연기할 수 있을지 모르겠더라. 그런데 그렇게 힘들어 하면서도 연기가 너무 좋아서, 결국에는 이 일을 계속해서 하고 있는 거 같다. (웃음)

지금은 어떤가.
함께하는 동료 배우들은 훌륭한 배우라고 생각하면서 왜 나는 좋은 배우라 생각하지 못했는지, 돌이켜 보면 너무 자책하면서 살았던 거 같다. 모든 순간이 의미 있는 시간이고 경험이었는데 사랑받고 싶은 욕심이 커서 스스로에게 너무 박했던 게 아닌가 싶다. 지금은 욕심을 조금 내려놨다. 이번 작품을 통해 ‘여진구에게 이런 모습이 있었어?’ 정도의 반응만 안겨 드릴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거 같다. (웃음)

군 입대를 앞두고 있는데.
대한민국 남자는 당연히 가야 하는 곳이다. (웃음) 입대 전까지의 계획은 구체적으로 정해지지 않았지만 그 사이에 보다 다양한 작품으로 팬들과 만나고 싶다.


사진제공_키다리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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