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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태 연기를 통해 변태한 듯” <그녀가 죽었다> 변요한 배우
2024년 5월 14일 화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구성과 캐릭터가 재미있어서 합류했어요. 변태 연기를 통해 ‘변요한이 변태했다’고 할지 어떤 껍데기가 벗겨진 듯합니다.” 영화 <한산: 용의 출현>에서 왜군 장수 ‘와키자카’로 분해 일본어 대사로 강렬한 연기를 선사했던 변요한이 능청능청한 얼굴로 돌아왔다. 바로 신혜선과 호흡을 맞춘 영화 <그녀가 죽었다> 속 관음이 취미인 공인중개사 ‘구정태’! 타인의 사생활 염탐을 즐기는 정상적이지 않은 캐릭터를 연기하며 호감과 비호감의 균형을 맞추는 게 관건이었다는 변요한을 만났다. 독립영화부터 차곡차곡 필모를 쌓아온 그는, ‘독립영화는 마치 영화계의 힙합씬 같다’며 무모하지만 재미있는 것에 끌린다고 털어놓는다.

관음 ‘구정태’(변요한)와 관종 ‘한소라’(신혜선), 비정상인 두 인물이 주인공인 영화인데 어떻게 합류하게 됐나.
영화 <자산어보>를 함께했던 분이 책을 주며 한번 읽어보라고 하더라. 내가 흥미로워할 걸 알았던 거지. 힙합씬의 일원으로서(개인적으로 독립영화를 영화계의 힙합씬이라 부른다!) 무모하지만, 재미있는 작품에 끌린다. 변태를 연기하면서 ‘변요한’을 변태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껍데기를 벗는다고 할지.

작품에서 끌린 점은. 또 어느 면에서 껍데기를 벗었다고 생각하는지.
신뢰가 생명인 공인중개사가 직업적인 이점을 활용해 자기 호기심을 채운다는 점, 또 내레이션을 통한 전개 방식이 흥미로웠다. 세간의 시선에 신경 쓰며 사는 구정태와 한소라를 보며 직업상 스스로를 비춰보게 되더라.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한 궁극적인 메시지는 세상에 나를 맞추고 싶은지 아니면 내게 세상을 맞추고 싶은지의 딜레마라고 본다. 이런 부분을 잘 표현한다면 관객에게 조금의 생각할 여지를 줄 것 같았고, 개인적으로 작업 전후로 스스로 어떤 변화를 겪을지 궁금했었다.

오랜 기간 배우일을 하며 아팠던 순간도 있고 잠깐 쉰 적도 있지만, 지금 조금이나마 알겠는 건 ‘시선을 어느 정도 끊을 줄 알아야 한다’는 점이다. 내가 사랑하는 건 작품이고, 팬들도 (나보다) 내 작품을 더 사랑해줬으면 싶다. 작품이 남아야 아티스트라고 생각하고, 이런 면에서 난 아티스트를 꿈꾼다. (웃음) 엔터테이너를 존중하지만, 나는 못될 것 같고 작품으로 사람들에 닿고 작품으로 남기를 바란다.

배우는 어떤 면에서 관찰하는 직업이기도 하다. 구정태와 공통점이 있을까. (웃음)
공통점은 있지만… 방향의 문제인 것 같다. 또 관찰보다 중요한 건 관심이고, 어느 정도 거리를 둔 관심이 필요하다. 그래야 더 세심하게 살필 수 있으니… 요즘에는 ‘변요한’을, 그러니까 스스로를 관찰하는 중이다. (웃음) 무슨 일을 했고, 어떤 생각으로 임했고 또 거기에서 무엇을 얻었는지 등에 대해 말이다.

지금까지 맡은 역할 중 가장 비호감 캐릭터인데, 변요한이라는 배우 자체가 가진 본연의 호감도 덕분에 구정태가 그리 비호감으로 보이진 않더라.
사실 구정태를 보고 사람들이 어떻게 느낄지, 평소 지닌 가치관에 질문을 던지지 않나 싶다. 무슨 말이냐면, 도덕적으로 그릇된 인물이지만 그래도 매력적으로 느끼는 분이 있는가 하면 완전히 쓰레기로 바라보는 분도 있을 텐데, 이런 논란이 촉발되는 영화가 흥미롭다고 생각한다. 또 이번 ‘구정태’ 역은 나라는 배우 자체를 확장해 보고 싶은 마음에 선택한 면도 있다. 보통 빌런이라 하면 강력한 힘이나 악한 행동이 떠오르는데 구정태는 나름의 정직함도 있고 또 일회성이나마 휴머니즘을 가진, 자기가 나쁘다는 생각은 하지 못하는 인물이다. 이건 그의 내레이션에도 잘 드러나서 너무 변태 같은 행동은 자제한 면도 있다. 내레이션만 부각되면 자칫 정직하고 좋은 사람으로 보일 수 있고, 반대로 변태적인 액팅이 강조되면 내레이션의 내용과 매칭되지 않아 둘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는 게 관건이었다. 물론 일부러 엇박자로 가져가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김세휘 감독은 찌질한 쌍꺼풀이 나와서 너무 좋았다던데, ‘찌질한 쌍꺼풀’이 의미하는 바는 무얼까. (웃음)
그게 감독님마다 선호하는 눈이 있더라. (웃음) <자산어보>(2021) 이준익 감독님은 건조한 눈, <한산: 용의 출현>(2022) 김한민 감독님은 진한 두 줄 쌍꺼풀의 굳고 흔들리지 않는 눈, 이번 김세휘 감독님은 쌍꺼풀이 아닌 매우 피곤한 상태의 삼꺼풀을 포착하신 듯. 이 상태로 아주 억울한 듯이 얘기하는 연기를 굉장히 좋아하시더라!

‘눈빛’하면 빼놓을 수 없는 배우 중 한 명인데, 자평한다면.
이제는 어느 정도 활용법을 알게 된 것 같다. 글에 나온 배경과 캐릭터를 파고, 마음이 차다 보면 눈빛은 저절로 표현되는 것 같다. 더욱이 이번에는 시나리오에 원체 잘 표현되어 있었다. 사실 매우 수학적으로 연기에 접근하는 스타일인데 이건 스스로 부족하다는 생각이 커서다. 우선적으로 내가 책임져야 할 캐릭터에 대해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그 감정선을 찾지 못한다면 내가 그 캐릭터로서 제대로 놀 수 없다고 생각해서 준비를 많이 하는 편이다. 작업 초반에는 일부러 예민도를 높이는 부분도 있고 그래서 잠을 잘 자지 못하기도 하지만, 이렇게 하다 보면 어느 순간 편해지더라.

구정태와 한소라는 둘 다 비정상이지만, 구정태는 마지막 선은 넘지 않는다. 둘을 가르는 요인은 무얼까.
우리 영화의 메시지가 세상에 나를 맞출 것인지, 내게 세상을 맞출것인지의 딜레마라고 했는데 구정태와 한소라의 차이도 여기에 있는 것 같다. 한소라는 세상이 자기에게 맞추기를 원하고, 구정태는 자기가 세상을 따라가고자 하는 인물이다. 그렇기에 누구보다 평판을 중요시하고, 자기가 쌓은 평판으로 누군가를 도와주려 한다. 이런 행동의 바탕은 나름의 정당성과 사회적인 우월감이라고 생각한다.

<그녀가 죽었다>는 각본과 연출을 맡은 김세휘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감독은 영화 <들개> (2013) 시절부터 당신의 팬이라고 밝히며 성덕(성공한 덕후)을 자처하기도. (웃음) 호흡은 어땠나. 곁에서 본 김세휘 감독은.
여러 번 말했듯이 이번 작품 하며 오히려 (내가) 김세휘 감독의 팬이 됐다. 감독님 보고 자꾸 천재라고 하는 이유가 스토리, 구성, 전개 방식에 있어서 어느 한순간도 집중력을 잃지 않으시더라. 또 내가 맞든 틀리든 아이디어 던지는 걸 좋아하는데, 그럴 때마다 아닌 건 아니라고 정확하게 말씀하더라. 그래서 좋았다. (웃음)

<들개>가 벌써 10여 년 전 작품인데, 그 당시와 지금을 비교하면 어떤가. 연기를 대하는 데 있어 변화가 있을까.
그때보다 연기가 더 좋아졌고, 여전히 어렵지만 재미있다. 재미의 크기가 더 커지고 무언가 더 쌓인 느낌이다. 여기서 재미라는 건 개인적인 만족감이나 노력하는 만큼 결과물이 나온다고 할까. 다만 더 많이 알아버린 만큼 어딘가 (스스로) 갇힐 수 있기에, 갇히지 않도록 마흔 살이 되기 전에 무언가 정의를 내리고 싶다.

‘마흔’인 이유가 있을까.
20대부터 40대 직전인 지금까지는 나 혼자만의 수련 기간이 아닌가 한다. 그간 여러 선배와 작품 하면서 작품을 책임지는 선배의 그 큰 울타리 안에서 정말 많은 걸 배웠다. 스스로 마흔 살까지는 ‘부반장을 하자’고 아예 정했었다. (웃음) 지금까지 선배님의 그늘 안에서 깊게 들어가 봤다면, 마흔에는 또 다른 챕터가 시작되지 않을지! 딱히 정한 건 없지만, 가령 멜로를 해도 40대에는 더욱더 깊이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그녀가 죽었다>와 디즈니+ <삼식이 삼촌>이 공교롭게도 5월 15일에 둘 다 오픈, 극장과 안방극장을 동시에 찾는다. 참여 배우로서 작품이 흥하기를 바라는 건 당연하지만, 그 의미는 다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어떤가.
꽤 오래전에 찍은 영화(<그녀가 죽었다)와 최근에 찍은 시리즈(<삼식이 삼촌)가 2024년 5월 15일 동시에 같이 나오는데, 이 자체로 각별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둘 다 최선을 다했고 잘 되기를 너무나 바라지만, <그녀가 죽었다>가 좀 더 잘 됐으면 하는 게 솔직한 마음이다. 배우를 떠나 영화를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극장에서 영화가 잘 되어야, 또 많은 분이 봐주셔야 앞으로 더 잘 될 여지가 생기니 그렇다.

차기작 소개를 부탁한다.
변영주 감독이 연출한 드라마 <블랙아웃>(원작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이 8월에 방영될 예정이고, 정말 세게 찍었으니 기대하면 좋을 것 같다. 또 얼마 전 크랭크인한 이종필 감독의 <파반느>(원작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에는 5월 25일부터 투입된다.


사진제공. ㈜콘텐츠지오

2024년 5월 14일 화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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