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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사의 허리를 끊고 싶은 작가적 욕심” <파묘> 장재현 감독
2024년 3월 15일 금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장재현 감독의 신작 <파묘>가 개봉 18일 만에 800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몰이 중이다. 544만명의 <검은 사제들>(2015)과 687만명의 <곡성>(2016)의 기록을 갈아치우며 감독의 최고 흥행작이자 역대 오컬트물 최고 흥행작에 등극했다. <검은 사제들>과 <사바하> 단 두 편의 영화로 한국 오컬트 장르의 장인으로 자리매김한 장재현 감독을 만났다. 올해 베를린국제영화제에 공식 초청된 이 영화를 현지에서는 ‘그로테스크한 신비로움’이라고 표현했다고 전하는 감독. 자신 역시 공포보다 미스터리 오컬트에 치중했고, 극의 내용에 부응해 서사의 허리를 끊고 싶은 작가적 욕심이 있었다고 밝힌다.

(*해당 인터뷰는 <파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무당 ‘화림’(김고은)이 주도하는 전반부와 지관 ‘상덕’(최민식)이 주도하는 후반부의 온도차가 크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중반부 이후 ‘험한 것’의 직접적인 노출에 따른 호불호가 엇갈리는데, 이에 따른 고민은 없었나.
시나리오 단계부터 호불호는 있었다. 프리 단계부터 비주얼을 어떻게 가져갈지에 고민이 많았고, 여러 가지 방법이 거론됐었다. 개인적으로 징그럽거나 무서운 비주얼보다 대사의 활용을 선호하는 편이다. ‘그것’의 존재는 그 대사와 이미지가 주제를 대변해야 한다고 생각해 무섭게 다가가기보다 오히려 신비하게 그리려 했다. 대사와 시그니처 이미지로 주제를 함축하고, 이를 끝까지 놓치지 않으려 했다. 그래서인지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어느 기자가 ‘그로테스크한 신비로움’이라고 표현하더라. 생각해 보니 나 역시 공포보다 그로테스크함과 신비함을 길어 올리는 데 치중했던 것 같다. <파묘>를 공포영화라고 굳이 표현하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 하겠다.

전반부와 후반부 사이에 서사의 허리가 끊긴다는 의견도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는지.
작가적인 욕심의 발동이라 하겠다. 말끔하게 3막 구조로 만들 수 있겠지만, 이 이야기의 허리가 끊겼으면 좋겠다는 본능적인 생각이 들었다. 반대가 심했지만, 내 욕심에 밀어붙였다. (웃음)

비주얼적인 공포를 지양했다지만, ‘험한 것’이 사람의 몸에서 간을 빼는 등 상당히 고어한 표현도 등장한다.
영화가 리얼 베이스로 시작해서 점점 허용치를 넓혀 나가는 과정의 일환, 그러니까 후반부를 위한 빌드업 같은 거였다. 나중에 더한 것이 있으니 준비하라는 사전 예고일 수도 있다. 만약 공포영화를 지향했다면 더욱더 노골적으로 드러내 표현했을 거다. 공포보다는 긴장감 정도의 톤으로 가져갔다.

‘험한 것’은 일본 정령으로 묘사되는데 그는 어떤 존재인가.
뱀파이어나 강시 혹은 미이라가 섞인 존재랄지, 일본 정령은 흔히 도깨비(오니)라고 하는데 국내에는 생소한 개념일 거다. 그는 아직도 전쟁 중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심지어 스스로 전쟁의 신이라고 소개하는데 이에 함축된 은유는 아마도 짐작하시지 않을까 한다. 아직도 전쟁 중인 전쟁의 신, 이를 ‘파묘’하는 것이 우리 영화의 주제이기도 하다.

김민준 배우가 ‘험한 것’을 연기했는데, 캐스팅 배경은.
관의 바디를 2m 20cm의 농구선수 키에 맞추어 준비해 놓은 후 캐스팅에 고민이 많았다. 단순히 크리처물이라면 ‘험한 것’이 등장하기만 해도 되겠지만, 우린 대사가 있고 연기도 해야 하니 말이다. 일본 배우 와타나베 켄 같은 얼굴을 상상하다가 우연히 동네에서 김민준 배우를 만났다. 밤에 산책하다 보면 가끔 마주치는데 딱 맞다 싶더라. 그런데 막상 찍고 보니 눈이 착하고 서글서글해서 이 부분은 후반 보정을 거쳤다. 분장과 대사 등 현장에서 정말 고생을 많이 했는데 멋지게 소화해 주셔서 너무 감사하다.

험한 것을 제압하는 최후의 일격을 지관이 담당한 이유는. 또 이때 ‘상덕’의 대사가 보이스오버라는 시선도 있다.
서사의 전개상 두 번째 파묘를 하자고 한 사람이 마무리를 지어야 했다. 사명을 띤 사람이 주도해 나가지만, ‘귀신을 때려잡자’ 라거나 어떤 처단을 하겠다는 것과는 뉘앙스가 다르다. 사실 풍수사(지관)나 장의사가 특별한 능력을 지닌 이들은 아니지 않나. 무당이 잠시 시간을 끄는 사이 말뚝을 뽑으려 하다가 험한 것을 물리치게 된, 어떻게 보면 ‘소 뒷걸음질 치다가 쥐 잡은 격’이라 하겠다. 이 최후의 일격에서 상덕이 하는 내레이션이 덜 설명적으로 느껴지도록, 극의 초반에 화림과 상덕이 스스로 자기소개를 하도록 미리 안배한 부분도 있다.

<명랑> 이순신을 염두에 두고 ‘상덕’역에 최민식 배우를 캐스팅한 것 아니냐는 일각의 시선이 있다. 마침 그가 묫자리 값으로 던지는 100원짜리 동전(앞면이 이순신 장군)도 그렇고 일종의 복선인 걸까.
솔직히 <명량>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묫자리 값은 원래 10원짜리로 하려다 요즈음 귀하기도 하고 크기가 작아 100원짜리로 해야 그 느낌이 살겠더라. 민식 선배님을 캐스팅한 건 오히려 딸의 결혼식을 앞둔 아버지의 마지막 일격 같은 이미지와 잘 맞는다고 생각해서였다.

최민식 배우는 당신이 막냇동생 같다며, 원하는 건 다 해주고 싶었다고 극진한 애정을 표했는데 (웃음) 함께 작업해 보니 어떤 분이든가.
연기력이야 말할 의미가 없고, 대한민국에서 제일 유명한 사람이 아닌가 싶더라. 무슨 말이냐면 본인은 모자를 눌러쓰는 등 (배우) 티 내지 않고 다니시는데, 무언가 기운이 있는지 시골에서조차 다 알아보더라. (웃음) 술을 좋아하실 것 같아도 촬영장에서는 한 번도 드시지 않고 또 절대 늦게 오는 법이 없는 등 정말 진지하게 작품에 임하신다. 한 번은 어깨만 나오는 장면이 있었는데, 6시간 이상 기다려야 하는 데도 흔쾌히 오케이 하는 걸 보고 과연 프로다 싶었다. 후배들에게도 자기를 낮춰 먼저 다가가고, 너무 낮춰서 문제일 지경으로! 현장에 와서 대본을 보는 일이 없이 미리 모든 걸 준비해 오신다. 선배님이 솔직하고 명쾌한 사람을 좋아하는데 나 역시 마찬가지로 무언가를 숨기고 돌리는 걸 잘못해서, 이런 면이 아귀가 잘 맞았었다. 개그코드도 그렇고!

김고은-이도현, 최민식-유해진 배우라는 신구의 자연스러운 연기 어우러짐이 영화의 관람포인트 중 하나가 아닌가 한다. 캐스팅 당시 이도현 배우는 신인이었는데, 어떻게 그를 주목하게 됐나.
김고은 배우는 <사바하> 뒤풀이 때 멀리서 보고 감독으로서 매력 있는 배우라고 생각했었다. 당시도 유명했지만, 앞으로 진짜 전성기가 오겠구나 싶더라. 젊은 데도 묘하게 연륜이 느껴졌고, 화림 역으로 다른 대안이 생각나지 않았다. 다만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유명해서 평소 친한 박정민 배우를 통해 조심스럽게 시나리오를 건넸다. ‘봉길’ 캐릭터는 워낙 쟁쟁한 배우가 포진해 있으니, 신인이 맡으면 좋겠더라. 당시 잠재력이 부글부글 끓던 이도현 배우가 딱이었다. 이후 <더 글로리> 등으로 너무 잘 나가고 있지만, 앞으로 더욱더 성장해서 세계적인 배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군 복무 중이라 함께하지 못해 아쉽지만, 요즘 군대는 카톡이 가능해서 <파묘> 행사할 때마다 보고하고 있다. (웃음)

무속인을 젊은 여성으로 한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실제 무속인의 연령대가 2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하다. 개인적으로 친한 무속인 중 30대분들이 꽤 많고 또 소위 잘나간다는 무속인 중에 젊은 분이 상당하다. 영화를 준비하면서 한 60대 무속인을 만났는데, 실명은 거론할 수 없지만 아주 유명한 분이다.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하는 무속인의 기질을 타고난 제자를 자기 아들과 결혼시킨 케이스인데, 30대 후반의 이 며느리는 경력이 5년 정도밖에 안 되지만, 80여 명이 넘는 제자 중 어나더 레벨이라고 들었다. 영화 속 굿 장면 중 이분들이 살짝살짝 나온다. 원래 방송이나 영화 같은 미디어에는 노출을 일절 안 하지만, 글이 좋다고 또 나와 고향(경북 영주)이 같아 어렵게 승낙받을 수 있었다. 극 중 캐릭터의 연령대는 처음부터 세대 간의 협업을 그리려고 했었다. 꼬장꼬장한 이른바 꼰대 세대인 장의사, 풍수사가 자식 같은 세대와 함께 (귀신을 보는) 갓난아이를 구하고, 앞으로 태어날 세대가 살아갈 터전을 일구는 걸 보이려 했다.

모태신앙으로 알고 있는데 무속인과 친분이 두텁다니! <파묘> 속 무속 퍼포먼스가 화제다. 특히 화림이 불 속에 손을 넣었다가 빼서 얼굴에 확 그은 후 새겨진 검은 손가락 자국이!
<검은 사제들>부터 무속에 푹 빠진 상태에서 만들었었다. 무속인의 아이덴티티로 두 사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게 작가적 의도였거든. 그 후 쭉 무속과 무속인에 관심이 많았고 여러분을 만나면서 알게 된 사실과 떠올린 아이디어를 아껴두었다가 이번에 다 쏟아 냈다. (웃음) 가끔 다른 미디어나 콘텐츠를 보면 멋으로 하는 동작이 있는데, <파묘> 속 무속 퍼포먼스는 정확한 목적이 보이도록 만들었다. 예를 들면, 대살굿의 경우 무속인은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 신을 받는데 화림이 스스로 칼로 긋고, 불에 손을 넣는 행위 등이 그렇다. 이렇게 해도 신이 몸에 들어와서 안전하다는 걸 확인한 후, 굿에 동원된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 그들이 땅에 손을 대면 칼로 쳐주는 거지. (닭) 피를 뿌리고 마시고 하는 것 역시 신을 위한 행위라 하겠다. (대살굿: 한 마디로 살(煞)을 대신(代)하는 굿, 타살군웅굿이라고도 불리며 피를 흘리며 죽어간 군웅신을 대접하고 험한 일을 막아달라는 의미로 동물을 죽여 신에게 바치는 굿거리의 일종)

풍수사와 무당이라는 소재는 언제부터 염두에 뒀던 건가.
<사바하>가 끝날 즈음 이 소재를 하고 싶었다. 보통 집필과 조사를 병행하는 편이다. 글을 쓰다가 막히면 조사하고 다시 글을 풀어나가고 하는 식이라 시나리오 완성까지 2~3년이 걸렸던 것 같다. 원래는 하드한 호러영화 그러니까 순수한 공포영화를 생각했는데 코로나가 터지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당시 작가주의 영화가 많이 상영됐고, 이런 영화를 마스크를 낀 채 보고 있자니 답답하더라. 그래서 답답함보다는 화끈하고 체험적인 영화로, 극장에서 재미있게 볼 영화로 방향을 바꾸었다. 호러를 강화하려 했다면 아마도 파묘를 의뢰한 ‘박지용’(김재철)을 주인공으로 해야 했을 거다. <파묘>는 공포보다는 어떻게 보면 전문가들이 각자의 임무를 수행하는 이야기라 하겠다.

박지용의 고모역으로 박정자 선생이 모처럼 스크린 나들이를 하셨다.
선생님이 처음에는 거절하셨었다. 그런데 이렇게 에너지를 뿜어 줄 수 있는 분이 없고, 처음부터 염두에 둔 캐스팅이라 찾아가서 이 역할의 중요성을 설명드렸다. 두 개의 이야기, 즉 허리가 끊긴 두 이야기를 이어줄 역할이라고 거듭 부탁드렸다. 다행히 오랜만에 현장에 나와 진짜 재미있었다고 하시더라. 얼마 전에는 민식 선배와 연극도 같이 보러 가셨다고 하더라.

<파묘>를 통해 듣고 싶은 칭찬이 있다면. (웃음)
음… 제일 좋은 평은 했던 걸 재탕하지 않았다는 평가일 것 같다. ‘발전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는 게 제일 기분이 좋고, 작업의 목적이기도 하다. 흥행이야 상황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진보해 가는 게 창작자로서 일종의 사명이 아닐까 한다. <검은 사제들>은 이야기가 없고 캐릭터만 보인다는 평가가 있었고, 이를 보완한 <사바하>는 이야기가 헤비해서 캐릭터가 손해 봤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파묘>는 이 둘의 절충안을 찾은 결과물이 아닌가 싶다.


사진제공. ㈜쇼박스

2024년 3월 15일 금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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