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은영 기자]
역대 박스오피스 부동의 1위인 <명량> ‘이순신’부터 빌런 끝판왕으로 손꼽히는 철저한 악인 <악마를 보았다>(2010) ‘장경철’, 글로벌 OTT 디즈니+ <카지노>에서 불나방 같은 인생을 살다 간 ‘차무식’까지. 설명이 필요 없는 배우 최민식이 첫 오컬트물 <파묘>로 관객을 찾는다. 평소 공포나 오컬트 영화를 즐기지 않는다는 그가 <파묘>에 선뜻 참여한 건 장재현 감독과 그 작품을 신뢰한 까닭이다. 감독의 전작인 <검은 사제들>과 <사바하>를 매우 재미있게 봤던 차에 무속과 풍수를 소재를 한 <파묘>를 어떻게 그릴지 흥미가 생겼다고. 풍수사 ‘상덕’으로 분한 최민식을 만났다. 개봉 4일 만에 200만 명을 돌파하는 등 화끈하게 관객몰이 중인 영화에 대해 “사실 김고은이 다했지 뭐, <파묘>의 손흥민이자 메시”라고 후배에게 그 공을 돌리며, “장 감독은 마치 막냇동생 같아, 원하는 건 모두 해주고 싶었다”고 각별한 애정을 드러낸다.
(*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전 예매만 30만 장이 넘는 등 <파묘>에 대한 기대감이 높다. 오랜만에 개봉을 앞둔 소감은.
기대감이 흥행으로 이어져야 할 텐데, 반짝하다 말면 얼마나 허망하겠나. 에고! 입방정 떨지 말아야지.(웃음)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 이후 첫 영화인데 그때는 코로나 시기라, 이번에 오랜만에 무대 인사하니 너무 좋더라. 극장에서 관객과 만나는 것 자체로 좋고 설렌다. 요즘 극장과 한국 영화 상황이 좋지 않으니 <파묘>가 산업적인 면에서 기여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후 개봉할 한국영화가 좋은 기운을 받으면 좋겠다.
오컬트나 공포 장르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밝힌 바 있는데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는.
장재현 감독의 전작 <검은 사제들>과 <사바하>를 재미있게 봤고 완성도가 높아, 이를 만든 감독에 대해 궁금하던 참이었다. 사실 공포나 오컬트 장르 자체를 선호하지 않는다기보다 내가 그간 좀 시원치 않은, 완성도가 떨어지는 걸 봐서 그런 것 같더라.
장 감독의 전작들과 비교해서 <파묘>만의 매력은 무얼까.
전작 중 특히 <사바하>는 어떤 철학적 사유를 요구한다. 영화를 본 후 ‘뭐지?’ 하며 궁금증이 일어 여러 내용을 검색했는데 이번 <파묘>도 그렇지 않을까 한다. 풍수, 음양오행, 묫바람 같은 용어나 풍습 등이 생소하면서도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것 같다. 개인적으로 <파묘>는 전작들보다 좀 말랑말랑한 느낌이다. 장 감독이 자기 색을 고수하면서도 좀 더 유연해졌는데 칭찬하고 싶은 부분이다.
비현실적인 존재를 상대로 연기해보니 어떻든가. 가령 허공을 보고 연기한 경험 등.
허공을 보거나 (상대를) 상상해서 연기한 게 아니다. 장 감독이 CG를 병적으로 싫어해서 도깨비불도 호스를 공처럼 만들어 진짜로 불을 붙여 스탭들이 공중에서 돌린 거였다. 그렇지 않았다면 조명을 쏘아 준 방향을 따라 허공에 대고 연기해야 했는데 진짜 불을 보면서 하니 훨씬 수월했다. 불이 사람을 묘하게 빨아들이는 부분이 있어 연기하는 우리야 좋았는데, ‘험한 것’을 연기한 그 분은 정말 개고생했다.(웃음) 여섯 일곱시간 먼저 와서 분장하고, 그 상태로 밥도 잘 못 먹고 하니 바나나 우유라도 하나 주고 싶고 담배라도 하나 물려주고 싶더라.
그렇지 않아도 ‘험한 것’의 존재와 출현에 호불호가 갈리는데, 시나리오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나.
나 역시 공포의 존재가 가시적으로 현실에서 드러날 때 관객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의구심이 생겼던 건 사실이다. 괜찮을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편이 어떨까 했지만, 사령관(장재현 감독)이 이런 작전을 펴겠다는데, 우리 같은 쫄병들은 당연히 따라야지! 무엇보다 몸을 사리지 않는 그 패기가 좋았다. 고민만 하기보다 노선을 정하고 이를 따라가는 것, 설령 관객의 반응이 부정적이거나 관객이 배신감을 느낀다 해도 이런저런 시도를 하겠다는 그 열린 생각이 좋았다. 영화의 주제와 메시지에 어긋나지 않는 자유로운 시도는 높이 평가한다.
<검은 사제들><사바하> 단 두 편으로 K-오컬트 장인으로 인정받은 장재현 감독인데, 곁에서 지켜보니 어떻든가.
아시겠지만, <파묘>는 김고은은 다한 것 아닌가. 나는 벽돌 한 장이나 얹었을까? 조감독 같은 심정으로 지켜봤던 것 같다. 무슨 말이냐면 이런 형이상학적인 소재와 주제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옆에서 보고 싶었거든. 자칫하면 너무 관념적일 수 있고, 또 한편으론 유치해 보일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정말 촘촘하고 집요하게 잘 풀어나가더라. 사실 집요함은 감독에 있어 기본인 것 같다. 이번에도 한곳에서만 찍은 것이 아니라 흙 색깔 하나하나, 원하는 무덤을 찾아 조선팔도를 돌아다니며 촬영했었다. 그 정도로 욕심이 많고 자기 주관이 뚜렷했는데 나는 그런 면이 좋더라. 이동을 많이 한 우리도 피곤했지만, <파묘>는 사실 미술팀의 승리라 할 수 있다. 나무를 일일이 가져다 심는 등 정말 고생을 많이 했다.
‘상덕’은 속물근성이 있지만, 땅에 대한 예의를 끝까지 놓지 않는 인물이라고 소개한 바 있다. 영화를 보니 그 이유를 알겠더라.
그 점이 좋았다. ‘상덕’ 이 끝까지 주판알을 두드리면서 무덤을 팠다가 다시 안 판다고 했다면… 이것도 흥미로웠겠다! 농담이고, 40년 땅 파먹고 살면서 속물근성도 있지만, 마지막에는 직업의식이나 직업적 소명을 외면하지 않은 점이 매력적이었다. 만약 끝까지 자기 안위만 챙긴다면 지관이라 하겠나. 이 부분은 평소 내 가치관과도 맞닿는 지점이고, 장 감독과 함께 그린 방향성과도 일치한다.
연기하면서 주안점은.
풍수라는 거대하고 방대한 분야를 내가 몇 달 공부한다고 해서 그 깊이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겠나. 예전에 멀리서 지관을 본 적이 있는데, 배우라는 직업상 다른 직업군의 사람을 보면 관찰하는 습관이 있거든. 지관이라고 외양에서 크게 다른 면은 없고 자기 분야의 전문적인 말씀을 할 때 좀 달라지는 건 있는데 이건 어느 분야나 마찬가지일 것 같다. 지관은 항상 자연을 관찰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으로 접근했다. 산 물 땅 나무의 자연을 바라보는 사람의 시야는 깊을 터이고 일반인은 감지하지 못하는 레이더 혹은 남다른 감성으로 자연을 바라볼 거로 생각해서, 이러한 마음을 시선에 담으려 했었다. 또 네 명의 캐릭터(최민식, 유해진, 김고은, 이도현)의 균형추를 맞추는 데 주안점을 뒀었다. 각자 맡은 롤이 있으니, 그 역할에서 너무 도드라지지도 또 모자라지도 않도록 했다.
나이 차가 꽤 있음에도 배우들의 호흡이 참 자연스럽더라. 후배들과 함께한 소감은.
나이 차 별로 없다, (웃음) 정신 연령은 거의 같은 수준이라 보면 된다. 고은이야 영화 <은교>때부터 봐 왔고, 해진은 <봉오동 전투>(최민식은 홍범도 장군으로 특별 출연함) 때부터 같이 일제시대를 건너온 사이라 전우애가 있는데 사실 도현은 처음에는 생소했었다. 젊은 친구들과 어색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마음의 준비를 하고 그 문을 열어 놨는데, 다행히 이 친구들이 아주 넉살이 좋은 것이 초반 리딩 때부터 잘 되겠다 싶었다. 솔직히 가끔 견제구를 날리는 친구들도 있고, 이러면 (그들을) 무장해제 시켜야 해서 또 피곤하거든. 그런데 이번에는 제대로 화학반응이 일어 나겠더라. 도현은 북을 얼마나 잘치던지, 그 모습을 보면 괜히 심장이 벌렁거리고 흥분됐었다. 고은이는 한마디로 <파묘>의 손흥민이자 메시라 하겠다. 농담처럼 투 잡 뛰는 것 아니냐고 감탄한 게 과장이 아니었다. 무속인 캐릭터를 연기하는 게 쉽지 않았을텐데 기술적, 정서적, 감성적으로 체득해 가는데 정말… 캐릭터에 거침없이 들어가고 거침없이 표현하는 용감함과 성실함, 선배로서 기특하고 대견했다. 앞으로 더 기대된다.
과거의 역사적 잔재를 장르적으로 풀어낸 점이 신선한데, 젊은 세대에게 소구점은.
무속이나 풍수를 미신 혹은 비과학적이라고 터부시하곤 하는데 그런 시각으로 보지 않았으면 한다. 종교가 무슨 죄가 있겠나. 이를 믿는 사람이 그릇된 행동을 해서 좋지 않은 편견이 생기는 거지. 무속도 마찬가지로 잘못 이용될 때 미신이 된다고 생각한다. 무속과 풍수를 베이스로 해서 우리 땅, 우리 역사의 상처를 파묘하고 싶었다는 장 감독의 의도에 1000% 공감한다. <파묘>는 오컬트의 외피를 입고 있지만, 그 근간은 땅을 소중히 하는 마음 나아가 자연과 인간을 향한 따뜻한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작품에 내재된 감독의 가치관에 젊은 세대도 충분히 공감하지 않을까 한다.
한우물을 판 상덕과 평생 연기만 해온 당신, 오버랩되지 않든가. 박찬욱 감독은 당신을 타고난 배우라고.
과찬이시다. 자칫 거창하게 들릴까 쑥스러운데, 연기는 이제 삶이 됐다. 내가 이제 와서 이력서를 낸다고 한들 어디서 받아주겠나. 그렇다고 자영업을 하자니 겁이 나고. 잘하고 못 하고 떠나서 스스로 대견한 부분은 한 길을 걸어왔다는 점이다. 그것 하나는 인정한다. 바나나 우유 하나 까서 주고 싶은 마음이랄까!
후배들에게 조언한다면. 또 연기하면서 슬럼프에 빠진 적은 없었나.
꼰대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자기가 정말 좋아서 연기하는지 생각해 볼 필요는 있다. 인기, 돈, 명성, 허영 같은 여러 이유로 배우를 하고 싶은 건 아닌지 찬찬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후배들에게 진짜 이 일이 좋은지, 자기한테 맞는지 딱 5년만 해보라고 한다. 연기한 걸 후회한 적이나 회의에 빠진 적은 없지만, 매번 행복하지만은 않았다. 내게 온 영화적인 세상, 그러니까 내가 맡은 역할이 사는 세계와 그 삶이 항상 즐거운 삶은 아니니 말이다. 어떤 삶은 지치고 괴롭고 고통스러운데 이런 삶을 만날 때는 나 역시 같이 힘들었다. 작품에 따른 이런 부침은 있어도 연기 자체에 대한 후회는 없다. 다만 내가 더 잘 표현할 수 있었는데 왜 놓쳤는지에 대한 후회와 반성은 매번 반복된다.
이번 <파묘>의 삶은 어땠나.
이번에 작업하면서 배우는 사람을 대하는 직업이라는 걸 다시 한번 느꼈다. 장 감독이 마치 막내 동생같이 예뻐서 원하는 건 다 해주고 싶더라. 왜 주는 것 없이 미운 사람이 있는가 하면 괜히 예쁜 사람이 있지 않나. 그만큼 장 감독이 내게는 영화감독으로도 인간적으로도 매력적이었다. 해진, 고은, 도현과 함께해서 좋았고 모처럼 박정자 선생님이 등장하셔서 정말 오랜만에 식사 자리도 갖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었다. 이번 팀이 참 좋았다.
가수 자이언티의 뮤직비디오 출연, 예능 ‘유퀴즈’ 출연 등 파격적인 행보를 보였는데 혹시 어떤 심경의 변화라도?
그냥 마음이 가는 대로 따라가는 중이다. ‘양화대교’ 등 평소 자이언티 노래를 너무 좋아했는데 개인 이메일로 뮤직비디오를 부탁한다고 메일이 왔더라. 만나고 싶다고 해서 만났더니 과연 아티스트더라. 즉석에서 콘티를 짜고, 처음에는 내 얼굴만 잡으려고 했는데 그렇게 하면 재미없고 좀 부담이 되어 개미를 등장시키게 됐다. ‘유퀴즈’는 <파묘> 홍보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은 마음에 나갔다. 지금까지 작품으로만 노출되기를 바랐는데 요즘 우리 동네(영화계)가 너무 우울한 듯해서… (웃음) ‘유퀴즈’ 때 끝나고 회식까지 가서 완전히 전사하고 왔다! 좋게 봐주시고 영화에도 긍정적인 영향이 된다면 감사하겠다.
마지막 질문이다. 디즈니+ <카지노> ‘차무식’ 역할 이후 ‘무식이 형’으로 불리며 젊은 팬이 많이 유입됐는데 체감하는지. 또 그때 멜로가 고프다고 했는데 여전히 유효한가.
고마울 뿐이다. 앞으로는 ‘유식’이라는 이름의 캐릭터를 꼭 맡고 싶다. 멜로는 당연히 하고 싶은데, 아직 들어온 제안이 없다.
사진제공. ㈜쇼박스
2024년 3월 4일 월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무비스트 페이스북(www.facebook.com/imov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