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은영 기자]
교회 여름 캠프에 참석한 소년은 짓궂게 장난치던 형들이 미웠지만, 마지막 날에는 헤어지기 싫다며 형들을 붙잡고 울었었다. 어린 마음에도 자기 행동이 잘 이해되지 않았던 소년은 청년이 되어 투덕거리며 쌓이는 그 감정이 무엇인지 점차 알게 됐다. <외계+인 2부>로 관객을 다시 찾은 배우 류준열 이야기다. 얼치기 도사 ‘무륵’으로, 늘 곁을 지키는 ‘우왕’(신정근)과 ‘좌왕’(이시훈)과 함께 종횡무진 활극을 펼치면서 어린 시절의 감정을 다시금 느꼈다는 그를 만났다. 사람의 인연과 운명, 그 관계 속에서 피어나는 여러 감정을 품은 영화라고 <외계+인>을 소개하며, 너무 철이 들었는지 쓸데없는 걱정과 주저가 많아졌다고 털어놓는다.
이 영화를 통해 이야기하려고 한 것이 바로 ‘인연과 운명’이었다고 밝힌 바 있다. 무슨 의미일까.
살면서 맺은 인연이란 게 참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는 것 같다. 훗날 어떤 식으로 작용할지 또 지금 곁에 있는 사람과 전혀 새로운 순간을 맞이하게 되기도 하고 말이다. <외계+인>은 조상과 후손, 무륵과 두 신선(염정아, 조우진) 또 무륵과 ‘이안’(김태리)의 관계 같이 스쳐 지나갔던 인연과 얽혔던 관계를 하나씩 드러나고 풀어지면서 세상을 구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는 자연스럽게 동료 배우들과의 만남으로 연결 짓게 되더라. 마지막 촬영 때 평소 인성 갑으로 평판이 자자한 선규 형, 하늬 누나 등을 비롯해 출연진이 모두 모였는데, 저절로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떠올랐었다. 좋은 분들과 한자리에 있다 보니 앞으로 이 인연을 어떻게 가꿔갈지 하면서 마치 세상을 구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회자정리 거자필반’(會者定離 去者必反, 만난 사람은 반드시 헤어지게 되고 떠난 사람은 또 반드시 돌아온다) 같은 대사에서도, ‘인연’이 작품의 주요 정서라는 게 읽히더라.
감독님이 동양적인 문화를 좋아하시고, 당신 작품에 녹여내는 걸 즐기신다. 사자성어나 고사성어는 처음에 들으면 어려워 보여도 그 뜻을 풀이하면 아름답고 심오한 의미를 담고 있지 않나. 이런 대사를 툭 하고 던지는데 운치있고 시적이라 처음부터 마음에 들었었다. 영화의 메시지와 일맥상통하고, 세련되게 주제를 표현한다고 생각한다.
이번 2부를 편집하는 과정에서 최동훈 감독이 배우들에게 따로 녹음을 요청했다고 하던데, 주로 어떤 내용이었나.
주로 관객의 이해를 높이는 대사를 추가했다. 감독님이 이렇게 1부와 2부로 나눠 개봉하는 건 처음 하는 작업이라 1부를 안 본 상태에서 2부를 봐도 따라가는 데 무리 없도록 배려하고자 하셨다. 어떤 정보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전달할지, 관객에게 친절하게 다가가기 위해 여러 시도를 하셨고 녹음도 그 일환이었다.
1부와 2부의 차이를 꼽는다면.
제일 먼저 눈에 띄는 차이는 러닝타임이다.(기자주: 1부 142분, 2부 122분) 편집하면서 덜어내거나 삭제하는 건 누구나 고통스러운 과정이겠지만, 최 감독님은 모든 캐릭터와 배우를 향한 애정이 크다 보니, 아마도 그 고통이 더욱더 심하실 거다. 이를 감수하고 덜어낸 점이 큰 차이라 하겠다. 또 감독님이 결국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2부에 잘 녹아져 있다고 생각한다.
‘무륵’의 변화도 궁금하다.
‘무륵’이 어떤 인물이며 그를 어떻게 표현할지 고민하면서 문득 어떤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으려는 것 자체가 무리라는 생각이 들더라. 이건 시간이 흐르고 나이를 먹을수록 더 그래지는 것 같다. 캐릭터로 접근하자면, 그는 얼치기 도사로 자기 수행의 결과라기보다 자기도 모르게 외부의 힘이 몸에 들어오면서 능력을 갖추게 된 인물이었다. 그런데, 이 힘이 빠져나가도 능력이 있는 거다! 무륵을 보며 평소에 하던 고민, 그러니까 배우로서 재능과 노력 중 무엇이 먼저일지 하는 고민과 맞닿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했다. 기본적으로 재능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타입인데, 이건 스스로 재능이 부족하다고 인식해서 그렇다. 그렇기에 ‘노력해야 한다’고 다잡는 편이다. 나와 닮은 면이 있는 무륵을 보며 어느 순간에는 위로받게 되더라.
재능과 노력 사이에 고민한다는데, 드라마와 영화 모두 타율이 좋은 배우 중 한 명이 아닌가 한다. 평단과 관객에 호평 받은 최근작 <올빼미> 도 그렇고. 연기를 계속하게 되는 동력은 무얼까.
다행히 나를 계속 찾아 주셔서다! (웃음) 재능과 노력 둘 중의 하나는 있는 게 아닐까 한다.
그렇다면 ‘류준열’을 계속 찾게 하는 배우로서의 장점은 무얼까. (웃음)
글쎄… 나를 찾는 이유는 좀 달라서, 그러니까 ‘뻔하지’ 않아서인 것 같다. ‘다른 배우와 좀 다른데?’ 하는 부분이 있어서가 아닐까 싶다. 그렇게 되고 싶은 바람도 분명 있다. 그래서 같은 역할을 하더라도 나만의 톤으로 다르게 표현하고자 노력한다. 만약, 감독님이 내게 ‘생각하는 방향 그대로 캐릭터를 완벽하게 구현했다’고 한다면, 얼핏 칭찬 같지만 개인적으로 아쉬움이 남을 것 같다. 감독님의 생각과 전혀 다른 색다른 방식(모습)으로 (감독님을) 만족시킬 때 보람이 더 큰 편이라 그렇다.
영화 <소셜포비아>(2015)로 데뷔해 벌써 10년차다. 쉴 새 없이 달려왔는데, 요즘의 화두 혹은 고민이 있다면.
음… 책임감과도 연결되는 것 같은데 내 어깨에 어디까지 얹어야 할 지 감이 잘 안 온다. 때로는 과한 것 같기도 또 부족한 것 같기도 하고 잘 모르겠다. 열정이 넘치는 걸로 보일 수도 아니면 선을 넘는 걸로 보일 수도 있을 것 같아서 그렇다. 주변 사람들이 상처받지 않으며 그 균형을 찾아가는 게 중요한 것 같다. 그때그때 고민의 종류가 다른데, 어느 날은 ‘이런 말 왜 했지’ 하며 후회하기도 한다. 이게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점점 걱정이 많아지고, 한편으로는 너무 철이 든 건 아닌가 해서 고민되기도 한다. (웃음) ‘절대 철들지 말아야지!’ 하고 마음먹으며 산 적도 있는데 어느 순간부터 주저하고 고민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 순간, ‘이게 이럴 일이 아닌데’ 하면서도 너무 철이 들었나 싶다. 철이란 게 한 번 들고 나면 무를 수가 없어서, 최대한 늦게 들고 싶은 마음이다.
철들면 좋은 것 아닌가? (웃음)
철이 들면 확실히 못 하게 되는 부분이 생기는 것 같다. 초창기 작품을 보면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무슨 생각으로 저렇게 연기했지 하는 포인트가 있다. 어떤 감각으로 했는지도 잘 모르겠고 또 지금은 못 할 것 같은 거지. 흔히 말하는 ‘대담한 혹은 날 것의 것’ 같은 표현과는 좀 다른 느낌이 있다. 그때(철들지 않은 때)만이 할 수 있는 연기랄지, 그래서 그때를 좀 더 늦추고 싶은 바람이다.
추구하는 연기 방향이 있다면.
그 방향이 한결 같을 수는 없을 터이고, 이를 수시로 바꾸는 것이 좋은지 아닌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내 연기에 반성이나 후회하는 순간이 있고, 이때 그 방향으로의 속도가 늦춰지는데 속도가 아닌 방향 자체를 바꿔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있다. 아까 한 이야기와 연결하자면, 개인적으로 철이 덜 들어야 능숙하게 연기 방향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이다.
<외계+인>으로 1부와 2부로 나누어 개봉하는 이례적인 경험을 했는데, 개인적으로 어떤 의미로 남을 것 같은가. 혹은 작품을 통해 배운 점이 있다면.
그간 해 온 작품이 모두 특별한 이유는 저마다에서 무언가를 배웠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끈질김과 집요함이다. 2부를 편집하는 감독님을 보면서 정말 그 집요함에 감탄했다. 1부의 아쉬운 부분을 2부에서 보완하는데 괜히 최동훈이 아니구나 싶더라. 나도 집요한 편이라, 감독님이 더욱 이해됐던 부분도 있다. 곁에서 지켜본 감독님은 정말 한우물만 파는 분이시다. 늘 영화 이야기를 하고 영화에 대한 지식도 엄청 넓은 게, 이건 감독님이 소장한 책 제목만 봐도 알 수 있다. 정말 ‘이야기’를 좋아하는 뛰어난 이야기꾼이시다.
찐친으로 유명한 김태리 배우와의 호흡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2018)에서는 소꿉친구로, 이번에는 무려 부부(?)로 만나지 않았나.
태리 씨와는 단순히 좋은 친구를 넘어, 영화적 동지 같다. 부부 같은 친구 혹은 친구 같은 부부라 할지! (웃음) 때론 동생 같기도 또 누나 같기도 하고, 사석에서 이야기를 하다 보면 대부분은 뻘소리지만, 그 와중에 큰 깨달음을 주는 말들이 있다.
새해인 만큼! 지난 한 해는 어떻게 보냈나. 또 새해 목표가 있다면.
지난해는 마라톤도 하고 사진전도 여는 등 작품 외적으로 결과가 많았던 한 해였다. 덕분에 ‘생각’을 많이 할 수 있었고, 이런 시간이 앞으로의 자양분이 될 것 같다. 요즘에는 생각을 많이 하는 게 오히려 쉼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생각하는 자리’도 하나 마련했다. 침대와 벽 사이, 아주 어정쩡한 공간인데 때론 엄청 편안해서 꼭 그 사이에 누워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새해 목표는, 딱히 목표를 세우는 타입은 아니라서… 무언가 새로운 것 혹은 새로운 다짐을 하기보다 지금 가지고 있는 좋은 것들, 그러니까 주변의 좋은 사람이나 습관 등을 잘 챙기고 유지하자는 생각이다.
마지막으로 <외계+인>의 매력을 한껏 소개한다면!
이번에 영화를 SF 혹은 판타지 등 이런 식으로 소개하지 않는 이유는 어느 한 카테고리로 규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최동훈 감독님의 영화는 볼거리와 유머도 충분하지만, 그 깊은 내면에는 따뜻함이 있다. <외계+인> 역시 마찬가지다. 하나의 영화를 보고 여러 요소, 그러니까 비주얼과 서사, 정서적인 면을 두루두루 느끼고 싶은 분이라면 강추한다!
사진제공. CJ ENM
2024년 1월 16일 화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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